대멸종은 우리가 인지하는 시간보다 훨씬 오랜 기간 동안 아주 천천히 지구에 어둠의 그림자를 드리웠다. 페름기 후기 대멸종은 그저 하나의 거대한 땅으로 연결되었던 판게아가 또다시 맨틀의 대류에 의해 천천히 이동하고 부딪히고 갈라지고 솟아오르는 자연적인 현상을 겪으면서 발생한 부차적인 현상에 불과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지구 생물의 90퍼센트 이상 멸종되었다는 것은 지구의 모든 것을 재부팅해야 한다는 말과 마찬가지이다. 반면에 대멸종은 예상 밖의 생물이 진화할 수 있는 또 다른 기회가 되었다. 대멸종 이후에 공룡 같은 파충류, 쥐만 한 크기의 포유류가 살아갈 수 있는 빈틈이 생겨난 것이다.
--- p.26~27
엽록체를 가진 조류는 더 많은 햇빛에 노출될수록 좋다. 하지만 바다에서 온 생물이라서 육지의 건조함을 버텨내야 살 수 있다. 바닷속에만 있던 조류는 어느 날 밀물에 떠밀려 육지에 도달했다. 그중 정말 작은 한 가닥의 조류가 우연히 바닷가 근처 사체 안에서 숨죽이고 있던 균류와 맞닿았다. 조류와 균류의 우연한 만남은 지상 최대의 혁신적인 사건이 되었다. 둘이 만나 탄생한 생물이 지의류Lichens이다. 지의류는 조류와 균류가 만나 공동생활을 하는 공생생물이다. 조류는 엽록체를 통해 스스로 영양분을 만들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미생물이고, 균류는 추위, 더위, 가뭄 같은 최악의 기후 조건에서도 견딜 수 있는 힘을 가진 미생물이다. 이 둘이 만나면서 어느 장소든 어느 팍팍한 환경이든 견뎌낼 수 있는 천하무적 생물이 되었다. 지금도 전 세계 어디에서나 볼 수 있다.
--- p.36~38
이런 곳에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동물이 등장한다. 파충류이다. 그런데 지금껏 보았던 파충류와는 다르게 생겼다. 악어 같은 파충류는 대부분 네 다리의 길이가 비슷하고 ㄱ자 형태로 꺾인 엉거주춤한 모습을 하고 있으며, 꼬리를 땅에 끌며 돌아다닌다. 두 눈은 양측면에 있다. 반면 이 낯설기 이를 데 없는 작은 파충류는 골반에서부터 곧게 쭉 뻗은 튼튼한 뒷다리, 뒷다리에 비해 짧아서 땅에 닿지 않는 앞다리를 가지고 있다. 튼튼해 보이는 꼬리는 엉덩이와 비슷한 높이에 달려 있어 땅에 끌리지 않고 걷거나 달릴 수 있다. 두 눈은 정면을 응시할 수 있다. 바로 공룡의 조상이 등장한 것이다.
--- p.73~74
속씨식물이 어떤 식물에서 진화되었는가에 대한 답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현재는 여러 가지 가설 가운데 수생식물에서부터 기원했다는 가설이 가장 유력하다. 수생식물 기원설을 뒷받침하는 근거가 있다. 우선 연못 같은 하천 주변은 생태계의 균형을 파괴하거나 해치는 생물 때문에 생태계 교란이 심하다. 이런 곳에서 적응하고 살아남기 위해 여러 유전적 변이를 지닌 다양한 식물이 등장한다. 그다음으로 물속에서는 물과 영양분이 제대로 공급되기 어렵다. 물속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관다발의 구조가 중요하기에 육상식물보다 수생식물이 더욱 진화된 관다발 구조를 가지고 있다. 마지막으로 식물 분류의 바탕이 되는 분류군인 수련목, 쌍떡잎식물과 그리고 이 분류군과 자매 관계인 붕어마름목, 외떡잎식물이 모두 수생식물에서부터 출발했다.
--- p.109
프테로사우루스Pterosaurus는 날개 달린 도마뱀, 즉 익룡으로 중생대 트라이아스기 후기에 등장해 백악기 후기까지 존재했다. 지구 역사상 유일하게 하늘을 날았던 파충류이다. 익룡은 공룡이 아니다. 공룡은 중생대 육지에 살았던 파층류만을 뜻하고, 익룡은 중생대 하늘을 지배했던 파충류만을 뜻한다. 어룡과 수장룡은 중생대 바닷속을 지배했던 파충류이다. 따라서 익룡, 어룡, 수장룡을 모두 공룡이라고 부르는 것은 잘못된 상식이다.
--- p.142
아르케옵테릭스Archaeopteryx는 쥐라기 후기 약 1억 5,800만 년에서부터 1억 4,850만 년까지 살았다. 아르케오Archa?s는 고대, 프테릭스Pteryx는 깃털 또는 날개라는 뜻이다. 최초로 발견된 하나의 깃털에 붙인 학명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시조새’라고 부르기도 한다. 아르케옵테릭스는 얼핏 보면 새 같기도 하고, 공룡 같기도 하다. 공룡 연구자들은 19세기 후반에서 21세기 초반까지만 해도 새의 조상이라고 생각해 ‘새’로 분류했다. 그 뒤 다양한 연구가 진행되면서 지금은 수각아목 ?아르케옵테릭과 공룡으로 분류한다.
--- p.155
2019년 미얀마의 호박 광산에서 백악기 중기인 약 9,900만 년 전 호박 화석이 발견되었다. 화석에서 네 종의 딱정벌레가 나왔다. 쥐라기 중기에 등장한 딱정벌레목 꽃벼룩과에 속하는 종으로 지금까지 살고 있다. 긴 시간 동안 약간의 유전적 변이는 있었을 것이다. 오늘날 이 꽃벼룩과 딱정벌레는 꽃가루를 먹고 살며, 뒷다리가 길어서 자극을 받으면 톡톡 튀는 특징 때문에 ‘벼룩’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벼룩은 등과 다리에 털이 많고, 머리와 가슴을 꽃에 깊이 넣을 수 있는 구조 덕분에 마디로 된 꽃의 깊은 곳에 있는 꽃가루도 잘 찾아 먹을 수 있다. 몸길이는 약 3~5.5밀리미터이며 검은색을 띤다. 약 9,900만 년 전 꽃벼룩과도 현생종과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 p.188~189
잘람달레스테스Zalambdalestes 역시 몽골의 고비사막에서 발굴된 화석이다. 백악기 후기에 살았던 원시 유태반류 포유류이다. 잘람달레스테스는 긴 주둥이, 긴 이빨, 작은 뇌, 큰 눈을 가졌다. 유카아테리움처럼 치골뼈도 있다. 몸길이는 약 20센티미터, 두개골의 길이는 약 5센티미터로 다른 원시 포유류에 비해 큰 편이다. 강한 앞발과 뒷발로 현생 토끼처럼 멀리 뛸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 이처럼 백악기 후기부터 현생 포유류의 조상이 모두 등장하기 시작했다. 엄청난 속도로 번성하던 포유류는 그들의 영역을 점점 확장해나가기 시작했다. 작고 힘없이 숨어서 지낼 것만 같던 원시 포유류에 결코 약한 존재만 있었던 건 아니다.
--- p.223
후각을 담당하는 기관은 제대로 발달하지 않아 냄새를 맡아 다른 생물을 파악하기는 어려웠다. 후각이 좋지 않은 모사사우루스는 시체 청소부 역할도 할 수 없었다. 이들은 온전한 포식자로만 살았다. 포식자의 본능은 같은 종도 피해 가지 못했다. 모사사우루스코노돈Mosasaurus Conodon의 골격 화석에는 두개골과 목 뒷부분에 여러 번 물린 상처와 부러진 상처, 구멍이 나 있다. 두개골의 구멍은 누군가에게 물린 상처이며, 이 상처로 인해 그 자리에서 즉사한 것으로 밝혀졌다. 당시 모사사우루스의 두개골을 물어뜯고 구멍까지 낼 수 있는 해양 생물은 과연 누구였을까? 연구자들은 두개골에 구멍을 낸 이빨 자국과 같은 이빨을 가진 생물을 찾아냈다. 같은 모사사우루스 코노돈이었다. 같은 종끼리도 서로 치명적인 상처를 입힐 정도로 사나웠던 것이다. 같은 종 사이에 치열한 경쟁을 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은 짝찟기 순간이나 먹이경쟁이 아니었을까.
--- p.236~237
오늘날 여섯 번째 대멸종이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2020년 ICUN은 매년 멸종되는 생물종 수는 약 1,000종에서 1만 종 사이로 추정되며, 하루에 한 종에서 열 종의 생물이 지구상에서 사라져가고 있다고 발표했다. 멸종에 가장 취약한 생물은 식물과 곤충이다. 이들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큰 역할을 하는 생태계에서 가장 중요한 구성원이다. 그러니 작은 식물 하나의 멸종, 작은 곤충 하나쯤의 멸종으로 치부해선 안 된다. 생태계는 이 지구상의 모든 생물과 연결되어 있다.
--- p.2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