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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그림노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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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나 저기 봐. 지렁이가 우산이 없나 봐.
지렁이야, 우리가 집에 데려다줄게. "누나 비 온다! 나가자." 창문을 두들기는 비를 구경하던 밤이와 달이는 밖으로 나간다. 시원하게 내리는 빗줄기, 촉촉하게 젖은 땅, 한층 선명해진 풍경 속을 따라 걷던 두 아이는 우산이 없는 동물들을 발견한다. “우산이 없네? 우리가 집에 데려다줄게.” 식구가 많은 오리 가족, 북극에 사는 백곰, 어제 새집으로 이사한 말, 친구 집에 가는 코끼리... 밤이와 달이가 만나는 동물들이 차례차례 합류하지만, 우산 속 공간은 신기하게도 전혀 부족하지 않다. 어디까지든 갈 수 있을 것 같다. 그때 우르르 쾅쾅! 커다란 천둥번개가 친다. 밤이와 달이와 동물들은 모두 무사히 집에 돌아갈 수 있을까? 오늘은 비가 와서 좋은 날! 다정히 들여다보고, 성큼 손 내밀자 ‘변신’하는 세상 무심히 스치는 어른들의 시선에는 보이지 않는 것이 작은 두 아이의 눈에 들어온다. “지렁이들이 우산이 없나 봐!” 하지만 지렁이들은 빗물에 목욕 중이라 우산이 필요 없고, 달팽이는 이고 있는 집으로 쏙 들어가며 데려다주겠다는 밤이와 달이의 권유를 산뜻하게 거절한다. 나의 호의가 누군가에게는 지금 필요가 없는 것일 뿐, 아이들은 움츠러들지 않고 또 다음에 만나는 존재에게 곁을 내어준다. 오리 가족처럼 식구가 많아도, 백곰처럼 집이 북극이어도 괜찮다. 우산은 어디든지, 누구든지 환영하는 아이들의 넉넉한 마음만큼 커진다. 밤이와 달이는 어린이의 일상 속 고민과 갈등 상황을 사랑스럽게 돌파해 왔다. 친구가 슬플 땐 시를 읽어 주라는 것, 시간이 지나면 상처는 아문다는 것, 아쉬움을 남겨 두었을 때 찾아오는 기쁨도 있다는 것, 그렇게 차근차근 배우고 받은 마음들을 주변 존재들에게 건넨다. “괜찮아!” 긴장되고 조바심 나는 마음도 마법처럼 부드럽게 풀어내던 그 말을 돌려주며 손 내밀자, 세계는 나와 너를 넘어 ‘우리’라는 환대와 유대의 공간으로 ‘변신’한다. 빗물처럼 스미고 번지며 마음을 물들이는 그림 작품마다 다양한 기법을 선보여 온 노인경 작가는 ‘밤이랑 달이랑’ 시리즈에서 꾸준히 부드러운 연필 선과 수채화 기법을 사용해 왔다. 맑은 색의 수채 물감으로 장면을 물들이며 감정의 결을 편안하게 풀고 또 쌓아 올린다. 『우르르 팡 변신 우산』에서는 보다 다채로워진 색감이 눈에 띈다. 붉게 물드는 하늘, 각양각색의 동물들로 일상은 순식간에 환상적인 공간으로 변모하고, 천둥번개가 치자 일시 정지된 듯 어둠 속에서 번쩍이던 동물들은 재빠르게 사라지며 재치 있는 흐름을 만들어 낸다. 모두가 흩어진 뒤, 한 뼘 더 짙어진 풍경 속을 내달리는 두 아이는 비 오는 날을 축축하고 거추장스러운 날이 아니라, 상쾌하고 자유로운 날로 탈바꿈시킨다. 어느새 다시 작아진 우산마저 던져 버리며 아이들은 말한다. ‘사실 비 맞는 게 더 좋다’고. 타자(他者)는 나를 침범하는 존재가 아니라, 스미고 물들며 함께 살아가는 존재라는 그 당연한 진리가 명쾌하게 전해 오는 순간이다. 내가 손을 내밀면, 언젠가 누군가도 내게 손을 내민다. 머리 위로 씌워진 이 작은 우산이, 서로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한 단단하고 다정한 세상 속으로 어린이 독자들을 초대할 것이다. |
어린이는 나를 믿어 주고 어디에 가든 같이 가 주는 모험의 동반자들을 책 속에서 만나면서 용기를 얻고 실제 세계의 친구에게 말을 건넬 힘을 얻는다. ‘밤이랑 달이랑’은 그런 시리즈다. 생활 속의 즐거움을 그림책이 가장 잘 담아낸 사례로서 이 작품은 어린이는 물론 어린이와 더불어 살아가는 어른 독자들에게도 오래 사랑받을 것이다.
(2024 한국에서 가장 즐거운 책 심사평 중에서) - 김지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