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물론이죠. 국내 유명 동굴에도 흔치 않은 박쥐며 장님굴새우, 등줄굴노래기…… 어머, 잘 아시네요. 그럼요, 전문 가이드가 자세한 해설도 해주기 때문에 자녀분의 체험 학습장으로는 최고입니다. 네? 아아, 걱정 마세요. 이곳은 전 세계 동굴 중에서 유일하게, 내부 어디에서나 휴대폰이 팡팡 터지는 곳이랍니다.
--- 본문 중에서
자, 먹어. 종구를 둘러싼 아이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종구의 팔을 양쪽에서 붙들었다. 담배를 물고 있던 아이가 절반쯤 타들어간 담배를 종구의 눈앞에 가져다 댔다. 안 처먹으면, 이걸로 모가지에 구멍을 뚫어주겠어. [……] 오빠아, 나비! 나비이이! 정신이 번쩍 들었다. 종구는 눈을 있는 대로 치떴다. 종희였다. 그의 앞에서 오른손 엄지와 검지로 노랑나비를 쥐고 뿌듯하게 웃고 있는 이는, 틀림없는 종희였다. 저 바보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을까. [……]아이들은 갑자기 나타난 종희에게 큰 관심을 보였다. 이 새끼 동생인가 봐. 어째 좀 쪼다 같은데? 야, 이리 와봐. 사탕 먹어. 니가 이거 다 먹으면 대신 니 오빠 보내줄게. 말이 끝나기도 전에 종희는 사탕을 보고 달려들었다. 그러면서도 오른손에 쥔 나비는 놓지 않았다. 종구는 종희를 남겨두고 돌아섰다.
--- 본문 중에서
훔친 물건이 워낙 많아서 아직도 정리해야 할 것이 쌓여 있다는 얘기를 여자는 웃으면서 늘어놓았다. 신문의 법률 상식 코너에서 절도는 반의사불벌죄가 아니므로 발각되면 무조건 처벌을 받는다고 했는데. 기환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꿈속에서는 본래 말이 잘 나오지 않는 법이므로. 좁다란 반지하의 원룸은 깨고 싶지 않은 꿈처럼 따스하고 포근했다. 여자가 십여 개의 립스틱들을 색깔별로 나누다 말고 그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얼굴이 마치 꽃밭 같아요. 여드름투성이 기환의 얼굴이 더욱 붉어졌다.
--- 본문 중에서
그것은 계란 껍데기 위에 찰흙을 발라놓은 형태의 공작물로, 윗부분 끝에 완구용 폭죽의 심지가 비어져 나와 있었다. 손에 쥐니 묵직했다. 안에 뭐가 들었길래 이렇게 무겁죠? 아, 찰흙 때문에 무거운 겁니다. 안에는 피리탄이랑 밀가루밖에 안 들어 있어요. 그는 친절하게도 색종이를 일부러 넣지 않았다고 했다. 나더러 잊고 싶은 일이 생기면 직접 적어서 오려 넣으라는 것이었다. 물론 그게 꼭 효과가 있는 건 아닙니다만. 남자는 자꾸만 말끝을 길게 늘였다. 저도 그랬거든요. 어영부영 흐려지는 말끝이 떠나기 싫은 사람처럼 문고리를 잡았다. 그래도 안 잊혀지더라구요.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