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점이 니체의 실존철학의 본질이다. 이에 의하면, 실존철학이란 의지의 복음이라 간주된다. 이는 이상을 부정하지는 않으나 이상은 어디까지나 2차적으로, 의지에 앞서서는 아니된다. 만약 이 순서가 뒤바뀌어 보다 충실한 인생을 지향하는 의지가 이상의 노예가 된다면, 니체에겐 이상이 별 소용이 없게 되리라. 그러니 자라투슈트라라는 아웃사이더의 복음을 군중에게 설교한들 소용이 없음을 멀지 않아 알게 된다.
--- p.167
옷을 벗는 여자를 지켜보고 있는 남자의 눈은 원숭이의 눈처럼 빨개진다. 그렇지만 단둘이 앉아 있는 연인을 바라보면서 그 장면의 슬픔과 정열, 유연함이나 불확실성을 기술하는 동일한 그 남자는 야수가 아니라 매우 인간적인 존재다. 이처럼 한 육체 속에 원숭이와 인간이 함께 있고, 원숭이의 욕망이 채워질 것 같은 순간에 원숭이는 사라지고 인간이 나타난다. 그리고 인간은 원숭이의 욕망에 정나미가 떨어지게 마련인 것 이다. 이것이 '아웃사이더'의 문제다.
--- p.32
아웃사이더는 자기가 무엇인지 확실히 알지 못한다. 하나의 자아를 발견하였으나 이는 진정한 자아가 아니다. 그의 중요한 임무는 자기 자신으로 돌아가는 길을 발견하는 일이다. ....p.239
말할 필요도 없이 우리는 이러한 기생충적 인간을 이미 알고 있다. 그는 생각이 너무 많다. 사고로 말미암아 몸의 피가 마르고 자연스런 마음으로 즐길 수 없게 되어 있다. 그리하여 단순하고 우매한 인간들을 부러워 한다. 분열되지 않는 정상인이 부럽다. 그러나 이는 처음 대하는 일은 아니다. 기생충적 인간은 이보다 더한 어떤 것을 알려주는지가 문제다. 그런데 여기에 재미있는 사실이 있다. 그는 고통을 좋아한다.
--- p.255
비록 희망의 여지가 없더라도 진리를 말하지 않으면 안된다. 아웃사이더는 깨어나서 혼돈을 본 인간이다. 아웃사이더는 혼돈이 적극적인 것이며 생명의 근원이라고 믿을 만한 이유를 갖고 있지 않은지도 모른다. 유태인의 신비 사상에 의하면, 혼돈이라는 것은 질서가 잠재하는 상태에 불과하다. 즉 알은 새가 창조되기 전의 혼돈에 불과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리는 말하지 않으면 안 되며, 혼돈에 맞부딪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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