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입는 외투는 출근을 위한 나만의 우주복이다. 내 가발은 머리에 뒤집어쓰는 헬멧이다. 내 안경은 운석의 충격에도 끄떡하지 않는 플렉시 유리로 만든 보안경이다. 이브 생 로랑 더블 버튼 양복은 나사(NASA)가 공식 지정한 내 우주복이다. 알루미늄 이중 합금에 완전 절연이 가능한 케블라(Kevlar) 성분이고, 내 신체의 온도를 이상적으로 지켜 주기 위한 각종 전기 저항 장치와 기계들이 내장되어 있다. 내가 신는 영국제 신발은 달 탐험 전용 부츠다. 게다가 악천후나 우주 방사능에 오염되지 않을 만큼 튼튼하게 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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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밀 검사 결과 박사의 진단은 정확했다. 내 몸속에 커다란 백상어가 유유히 헤엄을 치고 있었다. 크기는 5.2미터였다. (……) 사실, 커다란 백상어를 죽이는 일이 그리 달갑지만은 않다. 마찬가지로 식용 상어나 돌고래가 들어 있다면 어찌 그 가련한 생명체를 죽일 수 있겠는가? 차라리 귀엽고 깜찍한 마르모트 한 마리가 들어 있다면 좋으련만……. 녀석을 내 몸에서 밀어내는 방법 중 하나는 일단 채식주의자가 되는 것이다. 매일같이 야채만 집어 먹는다면 녀석도 더 이상 먹을 게 없어서 결국 다른 바다를 향해 나갈 것이라는 계산이었다.
--- p.38~40
난 그렇게 사 모은 디킨슨의 전집을 집약식 농경지나 소규모 과수원 등에서 씨를 뿌리듯 여기저기로 보냈다. 세계의 초등학교, 공공 혹은 사립 교육 기관, 대학교, 기업 등이 그 대상이다. 그리고 박물관이나 미술관에 걸려 있는 그림 뒤여 붙여 놓거나, 지하철이나 버스의 의자 아래, 혹은 공연장이나 극장 등 전략적 요충지에 배치해 두었다. 또 정치인, 연예계 스타, 영향력 있는 모든 인물들에게도 에밀리 디킨슨의 시집을 보냈다. 마지막으로 전화번호부를 뒤져 닥치는 대로 시집을 선물했다. 지구상 모든 사람들의 손에 시적인 선물을 전달해 주기 위해서 말이다.
--- p.119~120
내 휴가지 상태. 체중 150킬로그램 이하의 사람 스무 명은 거뜬히 태울 수 있는 커다란 엘리베이터. 문 반대편에는 커다란 거울도 달려 있다. 천장까지 높이는 대략 2.5미터 정도이다. 바닥에는 초록색 카펫이 깔려 있고, 벽은 푸른색 벽지로 덮여 있다. 천장에는 쇠창살 비슷한 것이 달려 있는데 그 사이에 스웨덴에서 물 건너온 기다란 네온 형광등이 달려 있다.
--- p.1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