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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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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하루

마르탱 파주 저 / 이승재 역 / 정택영 드로잉 | 문이당 | 2005년 10월 25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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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05년 10월 25일
쪽수, 무게, 크기 160쪽 | 354g | 166*221*20mm
ISBN13 9788974562960
ISBN10 8974562960

중고도서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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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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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로잉 : 정택영
홍익대학교와 동대학원에서 서양화를 전공하고, 국내외에서 10여 회의 개인전과 160여 회의 국제전에 참여했다.

현재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에 재직 중이며, 국제창작예술가협회(ICAA) 부회장을 맡고 있다.

생텍쥐페리의『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전 2권), 세계 최초 영어 그림 동화 『탈무드』(전 15권), 톨스토이 원작의 『세 가지 질문』, 라틴 아메리카 우화집 『똑똑한 바보』와 『천재들의 우화』, 엘런 코헨의 『미스터 에버릿의 비밀』 등 많은 책에 드로잉을 했다.

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내가 입는 외투는 출근을 위한 나만의 우주복이다. 내 가발은 머리에 뒤집어쓰는 헬멧이다. 내 안경은 운석의 충격에도 끄떡하지 않는 플렉시 유리로 만든 보안경이다. 이브 생 로랑 더블 버튼 양복은 나사(NASA)가 공식 지정한 내 우주복이다. 알루미늄 이중 합금에 완전 절연이 가능한 케블라(Kevlar) 성분이고, 내 신체의 온도를 이상적으로 지켜 주기 위한 각종 전기 저항 장치와 기계들이 내장되어 있다. 내가 신는 영국제 신발은 달 탐험 전용 부츠다. 게다가 악천후나 우주 방사능에 오염되지 않을 만큼 튼튼하게 제작되었다.
--- p.24
정밀 검사 결과 박사의 진단은 정확했다. 내 몸속에 커다란 백상어가 유유히 헤엄을 치고 있었다. 크기는 5.2미터였다. (……) 사실, 커다란 백상어를 죽이는 일이 그리 달갑지만은 않다. 마찬가지로 식용 상어나 돌고래가 들어 있다면 어찌 그 가련한 생명체를 죽일 수 있겠는가? 차라리 귀엽고 깜찍한 마르모트 한 마리가 들어 있다면 좋으련만……. 녀석을 내 몸에서 밀어내는 방법 중 하나는 일단 채식주의자가 되는 것이다. 매일같이 야채만 집어 먹는다면 녀석도 더 이상 먹을 게 없어서 결국 다른 바다를 향해 나갈 것이라는 계산이었다.
--- p.38~40
난 그렇게 사 모은 디킨슨의 전집을 집약식 농경지나 소규모 과수원 등에서 씨를 뿌리듯 여기저기로 보냈다. 세계의 초등학교, 공공 혹은 사립 교육 기관, 대학교, 기업 등이 그 대상이다. 그리고 박물관이나 미술관에 걸려 있는 그림 뒤여 붙여 놓거나, 지하철이나 버스의 의자 아래, 혹은 공연장이나 극장 등 전략적 요충지에 배치해 두었다. 또 정치인, 연예계 스타, 영향력 있는 모든 인물들에게도 에밀리 디킨슨의 시집을 보냈다. 마지막으로 전화번호부를 뒤져 닥치는 대로 시집을 선물했다. 지구상 모든 사람들의 손에 시적인 선물을 전달해 주기 위해서 말이다.
--- p.119~120
내 휴가지 상태. 체중 150킬로그램 이하의 사람 스무 명은 거뜬히 태울 수 있는 커다란 엘리베이터. 문 반대편에는 커다란 거울도 달려 있다. 천장까지 높이는 대략 2.5미터 정도이다. 바닥에는 초록색 카펫이 깔려 있고, 벽은 푸른색 벽지로 덮여 있다. 천장에는 쇠창살 비슷한 것이 달려 있는데 그 사이에 스웨덴에서 물 건너온 기다란 네온 형광등이 달려 있다.
--- p.147

줄거리 줄거리 보이기/감추기

몸뚱어리 하나만 잠드는 싸늘한 침대 위에서 홀로 아침을 맞이하는 나는 아침 뉴스 시작 2분 전에 눈을 뜨고, 전날 밤 서랍에 넣어 두었던 357 매그넘 권총을 꺼내 든다. 아스피린 한 알을 물 컵에 넣어 마시고 방아쇠를 당겨 내 머리가 산산조각이 나 피가 방을 빨갛게 청소하는 상상을 한다. 출근을 위해 면도를 하고 샤워를 하고 옷을 입으면서도 나는 자살 방법만을 생각한다. 갑자기 복통 증세가 느껴진다. 수면제, 마취제, 우울증 치료제, 항히스타민 등으로 만든 나만의 칵테일을 들이켜지 않아서다. 무언가 내 배 속을 야금야금 갉아먹고 있다는 생각에 병원을 찾았었다. 의사는 CT 촬영을 해보더니 내 배 속에 5.2미터짜리 백상어가 살고 있다는 진단을 내렸다. 박사의 처방대로 쇠고기 덩어리를 미끼로 낚시를 해보고, 영화 <조스>를 반복해서 봤지만 녀석은 좀처럼 내 몸에서 나갈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

출근을 위해 집을 나선다. 엘리베이터가 멈출 때마다 명품 상표가 달린 옷을 입은 사람들이 탄다. 침묵하는 사람들 사이에 섞인 나는 가방 속에서 쇠줄로 만든 올가미를 꺼내 천장에 건다. 그러고는 옆에 있는 두 사람을 버팀목으로 삼고 올라가 목을 건다. 엘리베이터가 도착하자 사람들은 나는 아랑곳도 않고 모두 내려 버린다. 천장에 대롱대롱 매달려 목이 죄어 오는 것을 느낀다. 건물을 나와 거리로 나온다. 거리의 덧없는 물건들과 수많은 사람들로 인해 길을 잃을까 두려운 나는 집에서 사무실까지의 1킬로미터 거리에 나만을 위한 구명 튜브를 배치해 두었다. 그것은 바로 9개의 공중전화이다.

다국적 기업들이 들어 있는 거대 건물의 50층에 있는 사무실에 도착한 나는 컴퓨터를 켜고 시한폭탄을 설치한 뒤 타이머를 점심시간 1분 전인 11시 59분에 맞추어 놓는다. 그 시간이 되면 나는 앉은자리에서 그대로 까맣게 타버린다. 단어와 숫자가 뒤죽박죽으로 섞여 있는 종이 위에 잉크 몇 방울 묻혀 얼룩을 남기고는 하루 일과를 끝낸다. 도저히 직장 동료들과 함께 엘리베이터를 탈 용기가 나질 않아 나는 사무실 창문을 열고 나가 창틀을 타고 내려간다. 부주의와 바람 때문에 그만 허공에서 떨어지고 만다. 집으로 돌아온다.

절망과 고독이 내 침대 위에 누워 서로를 얼싸안고 있다. 안락의자에 앉아 TV에서 방영되는 <가위손>을 시청하며 공동묘지에 안장돼 있는 친구들을 생각한다. 6개월 전에 나는 이미 유령이나 다름없는 친구들의 합동 영결식을 치렀다. 인간으로서 그들은 살아 있을지 모르지만 친구로서의 그들은 모두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공동묘지를 방문하고 돌아온 나는 이제는 쓸모없는 존재가 되어 버린 내 물건과 대화를 시도한다. 마리아치 4중창단이 나타나 연주를 들려준다.

밤. 샤워를 마치고 잠옷을 둘러 입고 앉아 내게 남은 내일들을 어디에 써야 할지를 생각하고, 엘리베이터에서 보낸 내 마지막 휴가를 떠올린다. 잠을 자려다 일어나 온몸에 기름을 바르고 성냥에 불을 붙인다. 내 육신이 타들어 간다. 새벽. 드디어 내 몸에서 백상어가 빠져나와 거리로 나간다. 어디선가 나타난 마리아치 4중창단과 함께 나는 마르모트를 타고 도시로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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