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상우는 자신에게 단 하나의 재능도 없는 이유가 팔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적당한 길이의 팔을 지녔다면 남의 눈치를 덜 봤을 것이고, 다른 재능을 발견할 시간도 생겼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 p.11
세상에는 소리가 넘쳐난다. 소리는 이제 모두 쓰레기가 되었다. 재활용되지 못한 소리들이 도로에 쏟아졌다. 귓속에 소리가 쌓여서 더는 아무 소리도 들을 수 없게 됐다. 나는 소리의 쓰레기 더미를 밤새 헤집고 다녔다.
--- p.25
코스모가 누구인지는 몰라도 사람 심리는 비슷하거든. 선수들은 대부분 어디로 도망갈지 계획을 세우고 자신의 동선을 짠단 말야. 퇴로를 먼저 생각하고 상대방의 움직임을 나중에 보는 거지. 그럼 자신도 모르게 몸이 탈출구 쪽으로 움직일 수밖에 없어.
--- p.63
민시아는 책 속의 이상한 문장을 자주 기억했다. 다른 사람들은 눈여겨보지 않는, 절대 기억하지 못할 문장을 혼자 기억했다 조용히 속삭였다. 뉴욕 날씨는, 더웠지만, 나는, 아직, 레인코트를 입고, 있었다, 그런 마음으로 살아야지, 내 몸에는 레인코트가 있는 거야, 나는 어딜 가나 레인코트를 입고 있는 거야, 레인코트는 나의 갑옷이야, 문장을 읽으면서 그렇게 혼자 되뇌었다.
--- p.91
이대로는 못 살겠다 싶은데, 흙이 내려앉으면서 눈앞에 맛있게 생긴 지렁이가 툭 떨어져. 나쁜 일 하나에 좋은 일 하나. 시끄러우면 지렁이가 생겨.
--- p.253
나는 모든 일이 끝난 지금, 뜻밖에, 죽음을 생각한다. 있다가 사라지는, 나타났다가 없어지는, 드러났다가 소멸하는, 보였다가 보이지 않는, 모든 존재들을 생각한다.
--- p.2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