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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나가 있던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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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나가 있던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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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5년 05월 08일
판형 양장?
쪽수, 무게, 크기 364쪽 | 458g | 128*188*30mm
ISBN13 9788956055923
ISBN10 8956055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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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 김선정
대학에서 서양화를 공부했고, 애니메이션 [마리 이야기] [천년여우 여우비] 등의 배경을 맡아 작업했으며, 『시민의 정부 시민의 경제』 『한 번은 독해져라』 『솔로계급의 경제학』 『여섯 날의 크리스마스』 등의 일러스트를 그렸다. 현재 어린이 그림책을 준비하며 프리랜서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 중이다.
+ 홈페이지 http://www.underan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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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같은 경험일지도 모릅니다. 거리를 가득 메운 벌거숭이들 가운데 하나가 되는 것과 광활한 사막에서 티끌이 되는 것. 나의 맨살을, 나의 내면까지도, 객관적으로 보게 되는 거죠. 있는 그대로 볼 수 없다면 벗어날 수도 없어요. 그러니, 너무 속상해 말아요. 넘어져도, 비틀거려도, 끝까지 용감하게 그 거리를 통과하세요.” --- p.73

“모든 고통은 절대적인 것으로 시작해 상대적인 것으로 끝을 맺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변화라는 것 자체가 일말의 부도덕을 안고 있죠. 당신의 고통이 인류 최초의 것이 아니라면, 인류 최후의 것도 아니라면, 아마 당신은 감당할 수 있을 겁니다. 지금의 고통을 흔적 없이 지워버린다는 뜻이 아닙니다. 몸속의 장기처럼 떼어낼 수는 없지만 간직하기 편한 형태로 변모시켜서 함께 살아가게 된다는 뜻입니다. 다만 그렇게 되기까지…… 누구도 중간과정을 건너뛸 수 없을 뿐이죠.” --- p.74

해나는 눈물을 닦지 않았다. 뚝뚝 떨구며 울었다. 놀이에서 진 아이가, 어쩔 수 없이 놀이의 규칙을 따라야만 하는 때처럼, 주먹을 꽉 쥔 채 울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왜?’라고 묻지 않았다. 결코 놓아버릴 수 없는 이름을 부르지도 않았다. 오직 울었다. 그녀는 혼자였다. 어둠이 내린 하늘, 모두 집에 가버린 해변, 텅 빈 식당. 천지의 사물이 그녀에게 반드시 홀로 서야 한다고, 극진한 무대를 만들어 제공하고 있었다. 그녀의 가슴을 어루만지며…… 알고 있다고…… 안 되었다고…… 하지만…… 그것은…… 어떤 의도도 없이…… 그냥 그리 되었다고…… 그러니…… 이제 그만 하라고…… 널 떠나간 것을 온전히 보내주라고…… 지금 이 무대에서 네 혼자 힘으로 일어서 보라고……. --- p.98

점차 눈물과 눈물 사이에 간격이 생겼다. 간격 속에 드러난 공백이 보였다. 알 것 같았다. 다 비워진 것은 필연적으로 다시 채워지게 되어 있다는 것을. 그렇게…… 살아 있는 것들은 …… 또 살아진다는 것을……. --- p.99

재인아 엄마는…… 이곳에서 길을 걷다가 오래오래 꽃들을 들여다보곤 해. 똑같은 가지에 났어도 똑같은 꽃이 하나도 없다는 게, 그런데도 모두 아름답다는 게 참 놀라워. 엄마가 만나는 사람들도 그 꽃들 같다는 생각을 해. 레오도, 마리도, 리아나도, 무지개떡 아줌마도, 이디도, 저마다 다른데 각기 아름답거든. 엄마는 아직도 침묵할 때가 있고, 뾰족해질 때가 있는데, 그럼에도 사람들이 매번 아름답게 다가와주니 고마울 뿐이야. --- p.103

조금이라도 너와 결이 닮은 것을 찾아내면, 그것을 반드시 기억해두렴. 환경과 결이 맞지 않는 이들은 언제나 신중한 ‘관찰자’이자 ‘채집가’여야 해. 스스로 그 환경을 박차고 나와 ‘행동가’가 될 때까지, 관찰하고 채집한 것들을 들여다보면서, 단 한 가지를 잊지 말아야 해. 인간은 누구나 우물 안에서 태어나는 숙명을 지녔다는 것. 그러므로 지금 자신이 놓인 그곳이 세상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 --- p.176

마음이라는 것은 물과 같아서 최후의 한 방울이 보태져야 흐르기 시작한다. 일단 흐르면 또르르 흙을 적시며 새로운 길을 낸다. 최후의 한 방울이 보태지기 전까지, 마음은 출렁거릴 뿐이다. 확신할 수 없다. 내일이면, 내가, 멀리멀리 흘러나가 새 길을 낼 거라는 것을. 그 길의 끝에 대양이 기다린다는 것을. 첫 방울이 흙을 적시는 순간, 해나는 정확히 알았다. 그동안 충전된 힘으로, 새로 낼 길 위에서, 자신을 위한 음식을 하고, 자신을 위한 옷을 지어 입고, 자신을 위한 집을 지을 수 있을 거라는 것을. 그러고 나면 타인을 위해서도 제대로 공들인 자리를 만들어 줄 수 있을 거라는 것을.--- p.261~262

“나무가 그냥 서 있기만 하는 것 같지? 한번 자세히 보라구. 생존하려고 얼마나 처절한 전투를 벌이는데. 열매까지 들먹거릴 것도 없어. 그 마디 말이야. 그 껍질 말이야. 그 나이테 말이야. 거저 얻는 건 하나도 없지. 살아 있는 건 모두 전사라니까. 전사. 자기가 전사라는 걸 알면 감당 못할 게 뭐가 있겠어.” --- p.270

나는 당신에게 남은 주유소가 많지 않다고 느껴요. 어쩌면 지금쯤 ‘이제 더 이상 남은 주유소는 없다’고 내게 돌아와 이야기를 해주기를, 나는 바라고 있는지도 모르겠어요. 설령 그렇지 않다고 해도, 아직도 사막 한가운데서 또 다른 주유소를 찾아 헤맨다 해도, 그간의 헤맴이 모두 부질없어서 이제부터 새로이 헤매겠다 해도, 그리하여 당신을 다시 이곳에 데려다놓은 것이 또 다시 상처의 힘이어도, 상실의 힘이어도, 난 괜찮아요. 당신이 나와 함께 하는 한 두렵지 않아요.
--- p.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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