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균 출산율 0.6명의 대한민국이 걸어야 할 길은, 육아와 부모의 삶 중 하나를 택일해야만 하는 기존의 패러다임에서 벗어나는 것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을 위해선 엄마만 고군분투하는 힘든 육아가 아닌, 부부 모두가 각자의 역할에 최선을 다하는 삶의 형태를 새로운 표준으로 삼아야 합니다.
아이를 만나기 전, 혹은 휴직을 앞둔 맞벌이 부부들이 만약 육아휴직 기간 동안 무엇을 해야 가장 생산적으로 보낼 수 있을지 묻는다면, 나는 주저 없이 육아에 전념하라고 말하고 싶다. 그것이 가장 생산적으로 휴직 기간을 보내는 유일한 방법이며, 그렇게 보낸 1~2년은 당신의 향후 몇 년간을 가장 뿌듯하게 빛낼 수 있기 때문이다.
어린이집 운영시간을 늘릴 게 아니라 근무시간을 단축시켜서 모든 아이가 해가 떠 있을 때 놀이터에서 맘껏 놀고 엄마, 아빠와 함께 저녁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우리보다 맞벌이 부모가 훨씬 많은 해외 국가들의 출산율이 왜 우리보다 더 높은지를 생각해야 한다. 자라나는 아이들의 두 시간은 고작이 아니다.
부모가 아이의 사회관계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아이가 사회 속에서 다른 이들과 잘 지낼 수 있도록 마음의 바탕을 만들어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타고난 기질이 가장 결정적이겠지만, 많은 전문가들이 말하듯 태어나 가장 먼저 맺는 인간관계인 부모와 아이 간의 애착 관계를 튼튼하게 만드는 것 또한 사회성 형성의 중요한 요인이라는 것이 여러 연구 결과에서도 증명됐다.
모든 것을 엄마표로 다 해내야 한다는 강박을 내려놓기로 했다. 외주화할 수 있는 것은 외주화를 하고 나보다 우리 아이를 더 잘 가르치고 지도할 수 있는 분들을 믿기로 했다. 물론 그 중심에는 우리 가족이 있어야겠지만, 긴 맞벌이 육아의 레이스는 적절한 외주화가 필수적임을 지난 경험에서 배웠다.
하루 종일 근무에 지쳐 눈꺼풀이 절로 감기는 날에도 아이와 약속한 놀잇감 만들기를 하고 잔다. 이는 우리 부부가 반드시 지키려고 노력하는 항목이다. 아이와의 약속을 하찮게 여기지 않는 부모의 모습에서 자신이 존중받는 느낌을 받을 것이리라고 생각한다. 또, 아이든 어른이든 자신이 내뱉은 일은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지키는 사람을 존중할 수밖에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우리는 완벽한 부모가 아니다. 이렇게 노력한다 해도 아이의 입장에서는 언제나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 같은 다른 친구의 엄마를 보면서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 날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저 “엄마가 나가서 돈 많이 벌어 올게. 그럼 됐지?”라고만 하고 싶지는 않다. 일을 하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경제적인 것은 맞지만, 아이가 벌써부터 가족 간의 시간보다 돈을 우선시하는 가치관을 갖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경제활동을 해야 하기에 엄마 아빠가 언제나 함께할 순 없지만, 엄마 아빠는 항상 나와 한 약속은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소중히 여긴다는 느낌만큼은 가졌으면 좋겠다.
육아가 힘들 때 선배맘들이 늘 하던 이야기를 떠올리게 된다. 육아는 단기 경주가 아닌 장기 마라톤이니, 오래 지속할 수 있는 나만의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맞벌이 육아 역시 하루 이틀 할 것이 아닌 장기간에 걸쳐 지속돼야 할 나와 우리 가족의 생활 방식이다. 그렇기에 단기적인 스퍼트를 올리기보다 오랫동안, 건강하게 지속 가능한 삶을 살아가고 싶다.
잠시 잠깐 아이를 다른 사람 손에 맡긴다고 해도 부모의 자리를 원천적으로 대신할 수 있는 사람은, 이 지구상에 없었다. 설령 아이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할아버지 할머니라고 해도 부모님이 될 순 없었다. 직장에서는 아무리 오래 일을 해도 내가 퇴사를 하는 순간 내 자리를 대신할 수 있는 사람은 얼마든지 있다. 하지만 육아는 이와 전혀 다르다. 대체 불가능한 존재가 된다는 것, 정말 아름답고 영광스러우면서도 또한 무거운 왕관이었다.
역설적으로 그러한 상황에서 나는 삶의 이유를 찾았다. 피할 수 없으면서 피하고 싶지 않은 확고 불변한 목표다. 아이의 행복이라는 목표다.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가 행복하다는 말도 있지만, 역으로 아이가 행복해야만 내가 행복하기도 했다. 아이가 불행하다면 엄마인 내가 행복할 수 있다는 것도 역시 어불성설이다. 그렇기에 아이의 행복을 추구하는 것은 결국 나의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됐다. 나는 내가 진심으로 행복하기 위해, 아이를 행복하게 키우려 노력하게 됐다.
엄마가 되기 전 나의 삶이 망망대해에서 이리저리 파도에 밀려 떠다니는 조각배와 같았다면, 지금은 아이의 행복이라는 분명한 목적지를 가진 배로 진화한 느낌이다. 비록 그 길에 때론 폭풍우가 몰아치기도 하겠지만, 목적지가 이끄는 힘이 있기에 모두 이겨낼 수 있다는 희망이 있다.
나는 육아를 하면서 느끼는 죄책감을 무조건 애써 몰아내려고 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를 적절하게 이용하려고 한다. 일하느라 평일에 많은 시간을 함께하지 못하는 데 죄책감이 들면, 그 죄책감을 원동력 삼아 퇴근 후와 주말은 피곤함을 무릅쓰고 개인 시간을 최소화하고 아이와 양질의 시간을 보내려고 노력한다.
아이가 말을 잘하게 되고 나서는 가끔씩 아이의 속마음이 궁금해서 “엄마가 널 사랑하는 것 같아?”라고 물어보기도 했다. 아이는 매번 1초도 망설이지 않고 “응”이라고 대답한다. 왜냐고 물으면 “내가 엄마를 좋아하니까!”라고 한다. 아이는 실제로도 물리적 시간을 더 많이 보내는 어린이집 선생님이나 심지어 아빠보다도 엄마를 세상에서 가장 많이 좋아한다고 늘 말한다. 감정적인 사랑을 아낌없이 퍼부어주는, 언제나 화내지 않고 짜증 내지 않고 힘이 넘치는 슈퍼우먼 같은 엄마는 못 되었지만, 그런 엄마여도 아이는 충분히 사랑을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그때야 알았다. 책임감 역시 모성애의 한 줄기라는 것을.
모성애는 많은 사람이 묘사하듯 아이를 낳는 순간 저절로 뿅 하고 생기는 게 아닌, 그냥 쉬고 싶은 본능을 잠시 억누르고 아이와 놀아주는 것을 선택하는 그런 사소한 이성적인 선택 하루하루가 모여서 만들어지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출산율 0명대 시대에 그 어떤 출산장려정책보다 중요한 것은 부모의 인생과 아이의 행복이 공존 가능하다는 믿음이라고 생각합니다. 부모의 인생과 아이의 행복이 어느 한쪽을 영영 포기해야만 하는 제로섬 게임이 아닌, 충분히 양립 가능하다는 용기와 긍정적 비전을 줘야 합니다. 그래야 젊은 세대들도 다음 세대를 가질 용기를 낼 수 있을 것입니다.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