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란, 기록하는 역사가가 현재 서 있는 자리에서 필요한 사람을 불러내는 소환이다. 소환은 언제나 까닭이 있게 마련이다. 우리는 그동안 약산 김원봉을 소환할 수 없었다. 밀양 사람이지만 해방조국에서 북으로 넘어갔기 때문이다. 공산주의자가 아니었으므로, 조선의용대가 팔로군으로 갈 때는 사령관이면서도 같이 가지 못했다. 하지만 해방조국에서 북으로 갔다는 사실 때문에 공산주의자로 몰렸고, 우리 현대사에서 폐족이 되어버렸다.
그 때문에 이봉창, 윤봉길 의거보다 훨씬 이전에 일으킨 박재혁, 김익상, 김지섭, 김상옥, 최수봉, 나석주를 비롯한 수많은 의열단 의거도 제대로 소환되지 못했다. 일제가 내건 현상금이 임시정부 김구 주석보다 두 배나 많은 의열단장으로, 조선의용대 사령관으로, 광복군 부사령관으로, 임시정부 군무부장으로 일제와 맞서 싸운 투쟁도 모두 삭제되고 말았다.
해방조국에서 남북 단일대오를 이루어내기 위해 북으로 갔고, 북에서 ‘남북정치지도자연석회의’를 이끌어낸 일도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역사가 되어버렸다. 일본을 몰아내는 단일대오를 위해 국민당이든 공산당이든 누구와도 손잡은 일은 남쪽에서 공산주의자로 몰렸고, 북쪽에서는 장개석 스파이로 몰렸다. 모두와 손잡으면 모두와 벗이 되지만 그 모두가 편을 나누어 갈라서면 모두에게 적이 되고 마는 운명을 약산을 통해 절절히 보게 된다. ---「작가의 말」중에서
손일민 선배가 찾아오라는 반약여관은 압록강을 향해 팔을 벌리듯 옆으로 기다랗게 펼친 모습이다. 손 선배는 일장기 똥통 사건 때 우리 집으로 직접 나를 찾아와서 처음 알게 되었다.
“밀양 사람 어깨를 한 뼘이나 높인 기특한 녀석이 바로 너구나!”
나를 보자마자 허리를 덥석 끌어안아 번쩍 들고는 이마를 부비며 연신 고맙다고 했다. 그날로 나와 세주는 손 선배가 이끄는 청년단에 들어갔다. 청년단이 남천강변에서 하는 체력 훈련도 같이 하고 주먹싸움도 배웠다.
손 선배는 4년 전 중국 망명길에 올랐는데, 중간에 일본 경찰에게 붙들려 평양경찰서에서 1년 동안 갇힌 일로 온 밀양에 명망이 자자했다. 손 선배가 옆에 서 있는 사람을 소개해주었다. 백야 김좌진 장군이라고 했다.
“밀양 사람 김원봉입니다.”
“밀양 일장기 똥통 의거를 일으킨 소년투사 약산을 이제야 만났구려, 반갑소.”
나는 허리를 조금 숙이고 김좌진 장군이 내미는 손을 마주 잡았다.
김좌진 장군은 충청도 홍성 사람이다. 나보다 아홉 살이 많은데도 말을 놓지 않았다. 열다섯 살에 집안에서 부리던 노비를 모두 해방시키고 풀려난 노비가 먹고살 수 있도록 땅까지 나누어 주었다. 군자금을 모으다 일본 경찰에 붙들려 2년 반이나 형무소에 갇히기도 했다. 소문만으로도 고개가 절로 숙여질 사람이다. 풍모도 장군님이라고 불러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당당함을 풍겼다. ---「동화학교에서 덕화학당으로」중에서
의열단이 일으킬 첫 거사가 정해졌다. 한날한시에 폭탄을 투척하기로 했다. 조선에 사는 모든 왜적은 폭탄을 맞고, 모든 관청은 파괴되어 결국 일제가 맥을 못 추고 쫓겨 가는 그림을 그렸다.
상해에서 중국 사람으로부터 구입한 폭탄을 영국 사람 보일에게 부탁해 단동으로 날랐다. 폭탄을 궤짝 맨 아래에 깔고, 책을 얹어서 위장했다. 일부는 국내로 수입되는 수수가마니에 감추어 들여갔다.
국내로 들어간 모든 단원은 각각 자기 위치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여기까지는 모든 준비가 착착 진행되었다.
공동 책임자인 곽재기는 거사를 일으킬 동지와 자금을 모아나갔다. 5파괴로 정한 조선총독부, 동양척식주식회사, 매일신보사, 각 경찰서, 기타 왜적 주요 기관과 7가살로 정한 조선 총독 이하 고관, 군부 수뇌, 매국노, 친일파 거두, 밀정, 반민족 토호열신마다 한꺼번에 폭탄을 던지려면 많은 사람이 필요했다. 사람을 모으는 일에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었다. ---「드디어 1차 거사를 실행하다」중에서
미리 연통해둔 대로 부산역에는 나를 데리러 온 사람이 있었다. 그를 따라 동래성이 멀찍이 보이는 민가로 갔다. 저녁술을 놓고 세수를 마쳤는데 약수 형님이 기척도 없이 문을 확 열어젖혔다.
“발소리도 없이 오는 걸 보니 밤손님 다 되셨소.”
“거사는 성공했다는구나.”
약수 형님이 내가 가장 궁금해할 소식을 알려주었다. 부산경찰서장은 그 자리에서 죽었고, 박재혁은 중상을 입었다고 했다. 부산경찰서가 크게 파손되었고 일본 경찰 두 명도 부상을 심하게 입었다고 했다. 폭탄을 던진 게 아니라 경찰서장과 마주 앉은 상태에서 터트렸다는 말에 왜 퇴로 확보를 사양했는지 이해가 되었다. 폭탄이 실패해 총을 쏘려면 최대한 가까이 붙어야 한다. 네댓 걸음만 떨어져도 몸을 비틀어 피하면 명중시키기가 어렵다.
박재혁은 폭탄을 손에 쥐고 터트려서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심한부상을 당했고, 치료가 되어도 어차피 사형을 받아 죽을 목숨이라며 식사를 거부한다고 했다. 가슴을 파고들어 심장을 도려내는 통증이 훅 밀려왔다. ---「부산경찰서와 밀양경찰서에 폭탄을 투척」중에서
지난 1923년 1월 12일에 의열단원 김상옥이 종로경찰서에 폭탄을 던져 일본 경찰을 죽이고 거사를 성공시켰다. 그 후 피신을 다니다 22일 5백여 명이나 되는 일본 경찰에 둘러싸였다. 일본 경찰 수십 명을 죽거나 다치게 한 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번 거사는 김상옥에 대한 복수도 겸하고 있다. 모든 준비는 완벽하다. 총독부와 동양척식주식회사, 전국 경찰서에서 동시에 폭탄이 터지고 왜적과 친일파를 처단할 날이 눈앞에 왔다. 이번에야말로 불발탄과 시간 끌기도 없이 일사불란하게 해치울 조건이 다 갖추어졌다. 김상옥 사건을 처리하기 위해 북경에 왔다는 황옥이 오히려 의열단과 합심하고 복수에 앞장서게 되었으니 김상옥 동지가 주고 간 숙제를 풀어간다는 희열이 차올라 가슴이 두근거렸다. ---「황옥은 밀정일까, 아닐까」중에서
거사 실패 소식을 들은 한 달 뒤쯤 김지섭에 대한 재판 소식이 들려왔다. 김지섭은 재판정에서 일제가 조선을 강점한 일이 왜 죄인지, 총독 통치가 얼마나 악랄한지를 당당하게 밝히고 일제에 항거하는 일이 정당함을 소리 높여 주장했다. 김지섭은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얼마 뒤 옥중에서 이유를 알 수 없는 죽음을 맞았다.
“빌어먹을 왜놈. 가만두지 않을 테다.”
김상윤은 치미는 오열을 누르지 못했다. 단원 모두 비탄에 빠져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부산까지만 오면 어떻게든 돌아올 수 있었을 텐데.”
유자명 말대로 황옥과 함께한 거사 때도 감시망을 피해 돌아왔으니 마음만 먹었으면 무사히 복귀했을 김지섭이다.
“자꾸 나이 말씀을 하시더니 무슨 일을 해서라도 지진으로 희생당한 동포를 위해 영혼을 달래고, 꼭 복수를 하려는 마음이었나 보오.”
내 말대로 모두 김지섭이 돌아오지 않은 까닭을 이해하게 되었다. 황옥과 함께한 거사를 실패했다는 자책이 누구보다 컸던 김지섭은 그렇게 우리 곁을 떠나갔다. ---「일본을 놀라게 한 황궁 앞 폭탄 투척」중에서
1932년 4월 초, 임시정부에서 주석을 맡고 있는 백범이 보냈다는 사람이 나를 찾아왔다. 지금은 임시정부를 백범 혼자서 지키고 있다고 해도 과한 말이 아니다. 양반 귀족 출신이 아닌 백범이 주석이다보니, 후원금도 거의 모이질 않는다고 한다. 이름만 거창하지 돈도 없고 조직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단체로 작아졌다.
의열단이 임시정부와 척을 진 사이는 아니지만 그동안 서로 무언가를 주고받을 일도 없었다. 그런데 임시정부에서 의열단에 처음으로 도와달라는 손길을 내밀었다. 백범이 쓴 편지도 없이 사람만 왔는
데, 비공개로 대화하기를 원했다. 빈방에 둘만 마주 앉았다.
“주석께서는 애먼 의열단에 피해가 가지 않기를 바란다고 하십니다.”
의열단이 나섰다고 하지 말라는 말이다. 의열단에 피해를 주지 않으려는 뜻이라고 했으나 그 뜻만 들어 있지는 않다는 눈치를 못 챌 내가 아니다. 레닌주의정치학교를 연 뒤로 의열단 전체가 공산주의자로 몰리고 있으니, 의열단 도움을 받았다는 소리를 듣고 싶지 않은 마음이 더 크게 들어 있다고 짐작했다.
하지만 독립이라는 대의 앞에서 파벌 따위는 있을 수 없다. 빛이 되었든 그림자가 되었든 성공만 된다면 어떤 자리라도 마다할 까닭이 없다는 대답을 주어서 보냈다. ---「윤봉길 의거를 돕다」중에서
졸업식이 끝나고 뒤풀이 자리에서 이육사가 직접 지은 시를 한 수 읊었다.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디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모든 산맥들이
바다를 연모해 휘달릴 때도
차마 이곳을 범하던 못하였으리라.
끊임없는 광음을
부지런한 계절이 피어선 지고
큰 강물이 비로소 길을 열었다.
지금 눈 내리고
매화 향기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다시 천고千古의 뒤에
백마白馬 타고 오는 초인超人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 놓아 부르게 하리라.”
(……)
이육사가 평소답지 않게 부끄러워했다. 제목이 무엇이냐는 내 물음에 조금 머뭇거리더니 ‘광야’라면서 머리를 긁적였다.
“제목으로 마침맞소.”
나는 이육사 손을 잡고 감동을 전했다.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자리가 바로 광야다. 또한 우리가 가야 할 길이 바로 광야이니, 이육사가 시로 지금 우리를 가장 잘 표현했다.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우리만이 내달릴 광야. 비록 지금은 춥고 바람도 불지만 거칠 것 하나 없는 완전한 자유에 도달하는 그 광야가 바로 우리가 달려갈 광야라고.
---「임시정부가 빠진 민족혁명당」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