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으로부터 해방되기 위해, 행복을 꿈꾸기 위해 우리는 문을 박차고 나가야 한다. 골방에 틀어박혀 복음과 경전을 붙들고 있을 필요도 없고, 달변의 멘토와 자기 계발서의 호언장담에 마음을 내줄 필요도 없다. 신발 끈을 여미고 폐쇄된 공간에서 훌쩍 벗어나는 게 우선이다. 행복은 지금 있는 공간으로부터의 ‘이탈’ 가능성에 비례한다. 해발 고도를 높일 때 우리는 행복에 잠길 수 있다.
지금으로부터 100여 년 전 레몽 루셀이라는 프랑스 소설가가 있었다. 그의 소설에서 라틴어 ‘로쿠스 솔루스Locus Solus’를 배웠다. 우리말로 풀면 ‘외딴곳’ ‘은밀한 장소’쯤 되겠다. 등산을 오래 다니면 나만의 아지트가 생긴다. 후미지고 외진 곳이 아니어도 좋다. 주위에 사람들이 있어도 그들을 잠시 잊고 나에게 온전히 집중한다면, 그 순간 내가 앉은 곳이 로쿠스 솔루스다. 크게 굽은 소나무 아래든, 계곡의 구석이든, 정상 옆 작은 바위든 상관없다. ‘주위’를 잊는 그곳이 로쿠스 솔루스다.
‘넝쿨 움켜쥐며 푸른 봉우리에 오르니
흰 구름 가운데 암자 하나 걸려 있네.
눈에 보이는 곳 우리 땅으로 한다면
오월의 강남땅도 그 속에 있으련만.’
『연려실기술』에 수록되어 있다는 조선의 태조 이성계의 시다. 백운대 정상 부근에 세워진 안내 구조물의 내용이다. 원문은 물론 한자이고, 제목은 〈등백운봉(登白雲峰)〉이다. 그러니 이성계가 백운대에 직접 오른 뒤에 쓴 시다. 바다 건너 오나라, 월나라의 중국 땅을 어찌 육안으로 볼 수 있겠나. 하지만 한 나라를 일으킨 인물이 간만의 산행에 취해 뱉은 호언과 장담이니 넘어가 주기로 하고 시를 살피자. 중요한 건 이성계가 ‘넝쿨’을 움켜쥐며 ‘푸른’ 봉우리에 올랐다는 사실이다. 사람들이 제 몸속으로 품고 와 내뿜는 도시의 독기와 우악스러운 등산화들의 공격으로 지금은 밋밋한 바위의 연속일 뿐이지만, 500년 전엔 달랐던 모양이다.
드라마도 서사도 찾기 어려운 산행에 흥미를 잃은 적이 있다. 그때마다 산을 노래한 몇 개의 시들이 불현듯 떠올라 다시 등산화를 조이곤 했다. 유명 시인의 노래가 아니어도, 산 구석구석엔 이웃들의 말 없는 애환들이 스며들어 있는 것 같다. 값비싼 여가를 멀리하고 그저 해발 고도를 거스르는 데서 주말의 즐거움을 찾는 사람들의 수줍은 서정 말이다. 티내지 않는 이들의 은근한 서정을 발견하는 건 산행의 또 다른 기쁨이다. 그것을 누구 다른 사람에게 나눠 주겠나.
초유의 팬데믹이 모든 여행을 고사시켰던 몇 년 전 절박한 가을의 일이다. 알프스 여행에 동행했던 사업가가 융프라우에 관한 새 소식 하나를 들고 찾아왔는데, 난감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그저 홀가분한 표정이었다. 그해 겨울 초대형의 첨단 곤돌라가 아이거의 그 악명 높은 북벽을 도발적으로 거슬러 융프라우 요흐에 도착한다는 소식(아이거 익스프레스 개통)을 그는 조용히 전해주었다. 사업의 존폐를 걱정해야 할 난관에도 불구하고, 그는 묵묵히 자기 일을 수행하며 삶과 일의 경계를 허물고 있었다. 열정은 경계를 넘나든다. 그러나 경계 앞에서 주춤하곤 하지만 끝내 그 경계를 넘어서는 것이 특정한 민족, 특정한 사람들의 전유물일까? 우리는 모두 저마다의 경계와 한계 앞에서 현기증을 느낀다. 하지만 다시 그 경계를 향해 걸어간다. 열정 때문이든, 울분 때문이든, 의무 때문이든 그 걸음은 미지의 영역을 향한 도전이다. 그 옛날 게르만의 알프스 월경(越境)이 그랬듯이….
추사는 서른을 즈음해 두 차례 북한산 비봉을 오르고 진흥왕 순수비를 고증했다. 이때 산행 루트에 승가사가 언급된다. 북한산성으로 통하는 비봉능선은 향로봉에서 시작해 비봉, 승가봉을 거쳐 문수봉에 이른다. 향로봉이 남쪽, 문수봉이 북쪽이다. 승가사를 지나 능선으로 올라가면 비봉과 승가봉 중간 지점에 서게 된다. 그곳에서 비봉의 북쪽 비탈은 지척이다. 굳이 남쪽 비탈로 돌아갈 이유가 없다. 북쪽이든 남쪽이든 요즘 나오는 값비싼 등산화를 신고도 오르기 힘든 곳이 비봉이다. 게다가 추사가 비봉을 오른 건 6월과 7월, 이미 여름 들어서였다. 추사에 대한 존경의 정도를 높여 가는 것은 그렇게 험난한 산행을 마다하지 않던 고증의 열정 때문이다. 당대의 예술적 천재가 푹푹 찌는 여름, 지치지 않는 체력으로 암반의 꼭대기에 오르는 모습을 상상하는 일, 멋지지 않나. 간결하고 강인한 추사 필체의 요체는 어쩌면, 북한산 암반을 툭툭 치고 오르던 그의 건강한 몸에 담겨 있을지 모른다.
맴돌기만 했다. 주변을 배회할 뿐, 중심으로 진입하지 않았다, 못했다. 왜 마이너리티를 자처하는지 물은 이도 있다. 대답하지 않았다. 그 정도로만 살았다. 넘보지 않을 세상을, 일찍이 밀쳐 두었다. 거기까지만, 그때까지만…. 넘보지 않을 것을 넘보지 않았다. 내 세상이 아닌 것을 알았으므로, 그 세상 아니어도 살아갈 곳 있었으므로. 산행도 사람을 닮아 가나. 여러 해 북한산을 오르면서도, 북한산성 안으로 선뜻 발 들여놓지 않았다. 우회하고, 배회하고, 관망했다. 꾸준히 다가가기는 했다. 누구에게든, 어디로든 다가가는 건 세상에서 가장 수줍은 일, 행복한 일이니까.
언젠가는 경계를 뚫고 북한산성 내부로 진입할 것이다. 하지만 경계 위에서만 보이는 것들이 따로 있다. 탕춘대능선, 비봉능선, 북한산성 주능선을 느린 걸음으로 주파하며 멀리서 뱀처럼 유영하는 한강을 보고, 서울의 전모를 조감한다. 불꽃처럼 명멸하는 북한산의 수많은 봉우리를 감상한다. 그렇게 주변부를 방황하고 배회하는 것만으로도 볼 수 있는 것들이 이 세상에는 너무나 많다. 다른 세상을 넘보지 않아도, 절경은 넘쳐난다. 다가갈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당국자미, 방관자청(當局者迷, 傍觀者淸)이란 말을 들었다. 바둑을 직접 두는 사람은 좁은 사각의 싸움터 앞에서 혼미하지만, 옆에 서서 훈수를 두는 사람의 마음은 맑다. 판세를 훤히 읽는다. 경계에 선 사람에게만 존재하는 미덕이 있다. 중심에서 떨어져 있는 사람에게만 보이는 것들이 있다.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