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정: (뜬금없이) 난, 조선시대가 맞았어. ‘오늘부터 저 사람이 니 짝이야’ 그럼, ‘넵. 오늘부터 열렬히 사랑하겠습니다’ 그러고 그냥 살아도… 잘 살았을 것 같애. …사람 고르고 선택하는 이 시대가, 난 더 버거워.
---「1화 63씬」중에서
미정: (E) 모든 관계가 노동이에요. 눈 뜨고 있는 모든 시간이 노동이에요.
---「2화 61씬」중에서
진우: 그런 쪽으로 염두에 두고 보시면 얼추 맞을 거예요. 그리고 아무나 사랑하겠다는 막무가내식 결심보다는, 맘에 드는 사람이 생기면, 꼭 먼저 대시해 보겠다는 결심이 훨씬 건설적일 거예요.
기정: 역시 전문가다우시네요. 네! 마음에 드는 남자 나타나면 꼭! 먼저 들이대 보겠습니다.
진우: ‥들이대지 말고, 고백.
기정: 고백은 부끄러워서.
진우: 저희 어머니가 늘 하시는 말씀. ‘집하고 짝은 찾아다니는 거 아니다. 때 되면 온다.’ 때 되면 옵니다. 내 께 옵니다.
기정: 올까요?
진우: 옵니다.
기정: (가방 만지는 척) 복채를 드려야 될 것 같은데.
---「3화 46씬」중에서
미정: (E) 사람들은 천둥 번개가 치면 무서워하는데… 전, 이상하게 차분해져요. / 드디어 세상이 끝나는구나. / 바라던 바다. / 갇힌 것 같은데, 어딜 어떻게 뚫어야 될지 모르겠어서, 그냥 다 같이 끝나길 바라는 것 같애요. ‘불행하진 않지만, 행복하지도 않다. 이대로 끝나도 상관없다.’ / 다 무덤으로 가는 길인데, 뭐 그렇게 신나고 좋을까. / 어쩔 땐, 아무렇지 않게 잘 사는 사람들보다, 망가진 사람들이 훨씬 더 정직한 사람들 아닐까… 그래요.
---「4화 53씬」중에서
창희: …예린이 정도 된다는 건, 끌어야 되는 유모차 있고, 보내야 되는 유치원 있는, 그런 여자라는 건데… 내가 생각하는 괜찮은 여잔, 그 정도 욕심은 내도 되는 여잔데… 근데, 나는 그걸 해줄 수 없는 남자라는 거… / 이게 나의 딜레마야. 이 딜레마를 해결하지 못한 상태에서 계속 여잘 만나니까 계속 헤어지는 거야. 다연이라고 뭐 다르겠냐. 걔 욕심 빤하고, 내 주제 빤하고.
---「5화 49씬」중에서
미정: 누구랑 있으면 (내가) 좀 나아 보일까. 누구랑 짝이 되면. 그렇게 고르고 골라놓고도, 그 사람을 전적으로 응원하진 않아. 나보단 잘나야 되는데, 아주 잘나진 말아야 돼. / 전적으로 준 적도 없고. 전적으로 받은 적도 없고. / 다신 그런 짓 안 해. 잘돼서 날아갈 것 같으면 기쁘게 날려 보내줄 거야. 바닥을 긴다고 해도 쪽팔려하지 않을 거야. 세상 사람들이 다 손가락질해도, 인간 대 인간으로, 응원만 할 거야.
---「6화 31씬」중에서
창희: 좋을 땐 그냥 좋아. 심장이 뛸 땐… 잘하면 가질 수 있겠다 싶을 때. 폭풍 치는 기대 심리. 이런 거. 내 껀 그냥 내 껀가 보다 해. 너 월급 들어오는데 심장 뛰는 거 봤어? 내 껀데 왜 뛰어? 내 께 아닌데, 아니란 걸 알겠는데, 잘 하면 가질 수 있을 것 같을 때, 그때 심장이 뛰어. 남녀 관계도 똑같다. 결혼한 사람들 중에, 첫눈에 내 짝인 줄 알아봤다는 사람들 얘기 들어보면 보자마자 ‘(덤덤) 음. 너구나.’ 이런대. 가슴이 막 뛰는 게 아니고. ‘(덤덤) 음. 너구나.’ 그냥 내 껀 거야. 인연은 자연스러워. 갈망할 것도 없어. 내 껀데 왜 갈망해? 부자들이 명품 갈망하는 거 봤어? 그냥 사지. 내가 뭔가 죽어라 갈망할 땐, 저- 깊은 곳에서 영혼이 아는 거야. 내 께 아니란 걸. 갖고 싶은데 아닌 걸 아니까 미치는 거야. (말해놓고 문득) 이런 씨이. 그래서 내가 차를 못 모는 거였어. 아…
---「7화 9씬」중에서
미정: 가끔 그런 생각이 들어. 세 살 때… 일곱 살 때… 열아홉 살 때… 어린 시절의 당신 옆에 가 앉아서, 가만히 같이 있어주고 싶다…
---「8화 71씬」중에서
원희: 난 왜 백화점에서 무리 지어 쇼핑하는 내 또래 여자들이 그렇게 꼴 보기 싫을까.
기정: 돈 쓰러 왔으니까. 남편도 있을 거야. 애도 있고. (우린 없고)
원희: …그 여자들 앞에서 그 여자들이 못 사는 아주 비싼 걸 사서 기를 팍 죽이고 싶어. 제일 섹시하고 제일 멋진 옷도 제일 잘 소화하는 몸매이고 싶어.
기정: …난 무리 지어 다니는 여자들보다 4인 가족이 더 꼴 보기 싫어. 그 철옹성.
원희: …우리도 가족에서 나왔는데.
기정: 우린 식구들끼리 절대 안 돌아다녀. 미쳤니? 집구석에서 보는 것도 징그러운데. (잠잠히 전광판을 보며) 우리가 꾸린 집구석도… 우리가 나온 집구석하고… 똑같을까?
---「9화 39씬」중에서
구씨: (E) 너는… 본능을 죽여야 돼… 도시로 가서 본능을 무뎌지게 해야 돼. 그래서 개구리 터져 죽은 얘기 같은 거 말고, 여자들 수박 겉핥는 얘기, 그런 지겨운 얘기를, 정성스럽게 할 줄 알아야 돼. 지겹고, 지겹게… 그래서… 남자가 지겨워 죽고 싶게… 본능이 살아 있는 여잔 무서워…
---「10화 10씬」중에서
미정: (E) 91년 이전에 존재하지 않았고, 50년 후면 존재하지 않을 건데. 이전에도 존재했고 이후에도 존재할 것 같은 느낌. 내가 영원할 것 같은 느낌… 그런 느낌에 시달리면서도 마음이 어디 한군데도, 한 번도, 안착한 적이 없어. 이불 속에서도 불안하고, 사람들 속에서도 불안하고. 난 왜… 딴 애들처럼 해맑게 웃지 못할까? 난 왜… 늘 슬플까? 왜… 늘 가슴이 뛸까? 왜… 다 재미없을까? / 인간은 다 허수아비 같애. 자기가 진짜 뭔지 모르면서… 그냥 연기하며 사는 허수아비. 어떻게 보면 건강하게 잘 산다고 하는 사람들은 이런 모든 질문을 잠재워 두기로 합의한 사람들일 수도. ‘인생은 이런 거야’라고, 어떤 거짓말에 합의한 사람들. / 난 합의 안 해. 죽어서 가는 천국 따위 필요 없어. 살아서 천국을 볼 거야.
---「11화 20씬」중에서
태훈: 행복하자고 모인 모임이니까, 저희 인생을 좀… 정직하게 들여다보고자 하는 차원에서 세 가지 강령을 정했습니다.
향기: (끄덕)
태훈: 1. 행복한 척하지 않겠다.
향기: (차분+진지) 네. 저한테 딱 맞는 말이에요. 행복한 척하지 않겠다.
태훈: 2. 불행한 척하지 않겠다.
향기: (음?) 네…
태훈: 3. 정직하게 보겠다.
향기: … (쭈뼛쭈뼛, 생글생글) 근데요. 전 왜… 정직한 게… 무서울까요?
태훈: 자신한테만 정직하시면 돼요. 속으로.
향기: 아, 네. 깜짝이야. 오늘 바로 탈퇴할 뻔했어요. 무서워서. 하하하.
---「12화 22씬」중에서
창희: 때려치려고 할 때마다, 여름휴가까지는 챙겨 먹고, 이왕이면 추석 연휴까지… 그러다가 연말엔 쓸쓸하니까, 봄은 견딜 만하니까… 그렇게 한 바퀴를 돌아요. 제가 정 선배처럼 돈에 깃발 꽂고 죽어라 달리는 욕망 덩어리도 아니고. 여기까지 달려봤으면 된 것 같애요. 내 길이 아닌데, 계속 떠밀려서 달려갈 필요는 없잖아요.
강 팀장: 나한테 설명할 필요 없다… 왜 모르냐…
창희: 솔직히 전… 깃발 꽂고 싶은 데가 없어요. 돈, 여자, 명예… 어디에도. 근데… 꼭… 깃발을 꽂아야 되나… 안 꽂고, 그냥 살면 안 되나… 없는 욕망을 억지로 만들어서 굴려갈 수도 없는 노릇이고…
---「13화 52씬」중에서
구씨: 그동안 해방은 되셨나?
미정: (F) …그럴 리가.
구씨: …추앙해 주는 남잔 만났나?
미정: (F) …그럴 리가.
구씨: …보자.
미정: (F) …안 되는데.
구씨: 왜?
미정: (F) …살쪄서. 살 빼야 되는데.
구씨: 한 시간 내로 빼고 나와.
---「14화 64씬」중에서
미정: 하루에 5분. 5분만 숨통 트여도 살 만하잖아. 편의점에 갔을 때, 내가 문을 열어주면 ‘고맙습니다…’ 하는 학생 때문에 7초 설레고. 아침에 눈 떴다가 ‘아, 오늘 토요일이지…’ 10초 설레고… 그렇게 하루 5분만 채워요. (싱긋) 그게, 내가 죽지 않고 사는 법.
---「15화 19씬」중에서
미정: (E) 나 미쳤나 봐. …내가 너무 사랑스러워. / 마음에 사랑밖에 없어. 그래서 느낄 게 사랑밖에 없어.
---「16화 70씬」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