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이 이렇게까지 커질 줄은 정말 몰랐다. 1985년에 우연히 어느 잡지사의 의뢰로 마크 카워다인과 함께 멸종위기에 처한 ‘아이아이’라는 여우원숭이를 찾아 마다가스카르에 가게 됐다. 그때까지 우리 셋은 서로 만난 적이 없었다. 나는 마크를 만난 적이 없고, 마크는 나를 만난 적이 없으며, 오랫동안 아이아이를 본 사람이 아무도 없는 건 두말할 나위가 없었다.
--- p.26
우리 셋은 끔찍하고 엽기적인 살인사건을 목격하기라도 한 것처럼 창백한 얼굴로 앉아 있었다. 그러나 살인을 목격했더라도, 살인자가 살인을 하며 무심한 눈동자로 우리를 바라보지는 않았을 것이다. 우리를 그토록 불편하게 만든 건 조금도 위축되지 않는 녀석의 냉혈한 거만함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도마뱀에게 아무리 사악한 감정을 덮어씌운들, 그게 도마뱀이 아닌 우리 자신의 감정이라는 걸 우리는 잘 알고 있었다. 도마뱀은 그저 단순하고 명백하게 도마뱀다운 방식으로 도마뱀이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다. 동물 중에서 유일하게 죄를 짓고 부끄러운 행동을 하는 인간이 뒤집어씌우는 공포나 죄책감, 수치, 추악함 따위를 녀석은 알지 못했다.
--- p.78
스물두 마리. 이런 상황에는 기막힌 속사정이 있는데, 코뿔소 뿔의 궁극적인 가치이다. 아프리카 밖으로 반출되어 부잣집 예멘 도련님이 여자를 꼬시기 위해 차고 다니는 멋대가리 없는 패션 장신구로 만들어졌을 때의 가치는 수천 달러를 호가한다. 그런데 자금과 노력을 투자해서 보호하고 있는 코뿔소를 잡겠다고 공원에 들어와 목숨을 걸고 사냥을 하는 밀렵꾼에게 돌아오는 건 뿔 한 개당 10달러, 12달러, 기껏해야 15달러가 고작이다. 그러니까 단돈 12달러에 세상에서 가장 희귀하고 가장 위풍당당한 동물의 생사가 좌우된다는 얘기다.
--- pp.162~163
그중에서도 제일 별난 건 카카포다. 별나기로 치면 펭귄도 상당히 독특하지만, 펭귄의 독특함은 꽤 안정적이며 주변 환경에도 완벽하게 적응한 반면, 카카포는 그렇지 못했다. 이 녀석은 시대에 뒤떨어진 새다.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이 순진무구한 표정을 짓고 있는 녀석의 커다랗고 둥그런 녹갈색 얼굴을 보고 있으면, 상황이 그렇지 않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녀석을 끌어안고 모든 게 다 잘 될 거라고 말해주고 싶어진다.
--- p.199
인간이 엔진을 발명한 이후 양쯔강돌고래가 사는 강은 끔찍한 악몽으로 변했다. 중국의 도로체계는 대단히 열악하다. 철도가 있지만 전국을 망라하지 못하기 때문에 양쯔강이 주요 고속도로인 셈이다. 이곳엔 늘 배가 넘실댄다. 그게 어제오늘 일은 아니지만 예전엔 돛단배였는데 지금은 낡고 녹슨 증기화물선, 컨테이너 선박, 거대한 페리호, 여객선과 바지선까지 엔진을 부릉거리며 강물을 휘젓는다.
--- p.257
이전에도 멸종된 동물들은 있었지만, 도도는 아주 특별한 동물로 모리셔스섬이라는 제한된 환경에서만 살았다. 이제 도도가 더 이상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건 명백한 사실이다. 새로운 도도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건 도도뿐이므로, 도도는 두 번 다시 존재할 수 없다. 우리는 섬 주변을 돌아보며 그 사실을 분명하게, 그리고 절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그때까지 인간은 어떤 동물이 완전히 사라질 수 있다는 개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뭔가를 죽이면 그게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몰랐다는 이야기다. 영영. 도도새의 멸종으로 인간은 더 슬프지만 조금은 더 현명해졌다.
--- p.328
마지막으로 이들에게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이유가 한 가지 더 있는데, 나는 이것 말고 더 필요한 이유는 없다고 믿는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코뿔소와 앵무새와 카카포와 돌고래를 지키는 데 인생을 거는 이유도 그 때문일 것이다. 이유는 아주 단순하다. 그들이 없으면 이 세상은 더 가난하고 더 암울하고 더 쓸쓸한 곳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 pp.348-3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