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인간에게서 전형적으로 찾아볼 수 있는 성행위 자세는 거의 다 보노보에게서도 볼 수 있다. 이에 대해 클라우디아 요르단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가능한 거의 모든 자세로 짝짓기 행위를 한다." 보노보의 성생활이 얼마나 풍부한가 하는 것은 예쩐에 샌디에이고 동물원에서 관찰된 유형의 목록만 살펴보아도 알 수 있다. 이 동물원에 가기 전부터 나는 보노보가 매우 성적인 동물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실제로 접한 보노보의 현란한 체위들과 흥분하는 정도는 내 상상을 완전히 초월하고도 남았다. 가장 흔한 짝짓기 자세는 등과 배를 맞대는 후배위이다. 이 자세는 동시에 대부분의 영장류가 취하는 자세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침팬지만 해도 거의 모든 짝짓기를 이런 "멍멍이 자세(doggy style)"로 한다. 그러나 보노보는 우리 인간처럼 배와 배를 맞대는 대면위 자세에 적합하도록 성기가 해부학적으로 몸 앞쪽에 위치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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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까지만 해도 보노보보다 우리 인류와 훨씬 먼 친척뻘인 사바나 비비[개코원숭이]가 원시 인류의 행동을 연구하기에 가장 적당한, 살아 있는 모델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었다. 땅에서 생활하는 이 영장류는 사람상과 동물의 조상이 나무에서 내려온 후에 접했을 것이 분명한 환경과 유사한 조건에 적응한 동물이었다. 그러나 비비에게는 침팬지에게서 찾아볼 수 있는 인간의 몇 가지 기본적인 특징들이 전혀 없거나 아니면 미미하게 발달했을 뿐이라는 것이 밝혀지면서 곧 모델로서의 가치를 상실하게 되었다. 침팬지에게서는 협동 사냥, 음식을 나누어 먹기, 도구의 사용, 힘의 정치, 원시적인 전쟁 등이 관찰되어 왔다. 또 이 유인원들은 실험실에서 기호 언어(sign language)와 같은 상징을 이용한 의사소통 방법을 배울 수 있는 능력을 보여주었고, 거울을 보면서 자기 모습을 알아보기도 했다. 이처럼 자아를 인식할 수 있다는 표시는 지금까지 원숭이들에게서는 거의 또는 전혀 관찰된 바 없다. 물론 인간과 마찬가지로 침팬지도 오래 전에 영장류 계통수의 다른 영장류들에서 분리되어 나온 가지인 호미노이데아(Hominoidea)에 속한다. 따라서 유전학적으로 침팬지는 비비보다는 인류에 훨씬 더 가깝다.
그러나 인류 진화의 표본으로 침팬지를 선택함으로써 비비를 모델로 할 때보다 여러모로 진전이 있었지만 모델이 바뀌었어도 한 가지 측면만큼은 전혀 조정할 필요가 없었다. 즉 수컷 지배가 "자연스러운" 상태로 계속 남아 있는 것이 그것이다. 침팬지와 비비 양쪽에서 모두 수컷이 압도적으로 암컷을 지배하고 있다. 수컷 비비는 암컷에 비해 덩치가 두 배나 클 뿐만 아니라 표범처럼 무시무시한 송곳니를 갖고 있는 반면 암컷에게는 그러한 무기가 없다. 침팬지의 경우 성별에 따른 차이점이 비비만큼 두드러진 편은 아니지만 이 종에서도 수컷이 지배권을, 그것도 종종 잔인하게 행사한다. 다 자란 건장한 어른 수컷이 암컷에 지배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보노보를 살펴보자면, 아무래도 이 종의 특징은 암컷 중심적이고 평등주의적인 영장류로서 공격(성)을 섹스로 대체한다는 점으로 가장 잘 규정될 수 있을 것같다. 이 영장류의 성생활을 고려하지 않고 이들의 사회 생활을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 둘은 분리할 수 없다. 성적인 행위가 사회 생활과는 전혀 무관한 범주를 이루는 대부분의 다른 종들과는 달리 보노보에게 성적인 행위는 사회적 관계의 핵심적인 부분이며, 그것도 단지 수컷과 암컷 사이의 관계에서만 그러한 것이 아니다. 보노보는 사실 가능한 모든 짝과 어울려 섹스를 한다. 수컷과 수컷, 수컷과 암컷, 암컷과 암컷, 수컷과 어린 개체, 암컷과 어린 개체 등 다양한 파트너 조합이 이루어진다. 또 성적 접촉의 빈도도 다른 영장류에 비해 월등히 높은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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