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는 말 그대로 ‘반은 육지이고 반은 섬’이기에, 양자의 중간에 속하는 성향이 강해서 좋게 말하면 유연성이 뛰어나고 나쁘게 말하면 쉽게 돌변한다고 한다. 우리가 흔히 대륙 사람들은 선이 굵다든지, 섬나라 사람들은 얄팍하다든지, 혹은 한국과 이탈리아 같은 반도 국가들은 쉽게 변하는 성향이 있다든지 하는 얘기들은 이와 맥락이 닿아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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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으로 우연한 사건이 사회·경제 환경에서 누적적인 인과관계를 낳으면서 새로운 특수성을 낳는 경우도 종종 있다. 미주 대륙과 같은 신대륙의 경우, 이주민들은 갑자기 당면한 사회경제적 조건 속에서 새로운 삶을 꾸려나가야 했다. 사회경제적 환경의 변화는 사람들의 삶의 행동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고, 이런 것들이 시간이 흐르면서 누적적 인과관계를 만들어 하나의 문화로서 고착되면 다른 지역과는 확연히 다른 특수성을 낳을 수도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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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지리 요인과 분리해서 문화와 문화이론을 따로 두는 이유는 사람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명시적인 문화와 암묵적인 문화를 구분하기 위해서이다. 앞서 인문지리 요인으로 살펴보았던 역사와 제도 등은 넓은 의미의 문화의 한 부분인데, 명시적인 성격이 강하다. 제도가 잘 습득되었다면 의식하지 않고도 그 제도에 맞는 행동을 할 수도 있지만, 제도를 의식하며 행동을 하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제도 등은 명시적인 문화라고 볼 수 있다. 그렇지만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가운데 우리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암묵적인 문화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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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도 별반 다르지 않다. 일찍이 조선시대로 거슬러 올라가 보면, 중기의 대표적 지리학자 이중환은 자신의 명저 《택리지》에서 지리와 인심이 서로 관계가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즉, 조선에 대하여 “동쪽과 남쪽, 서쪽이 모두 바다이고, 북쪽 한 길만이 여진의 요동 심양과 통한다. 산이 많고 들이 적으며, 백성은 유순하고 부지런하지만 도량과 기상이 좁다”고 평가한다.
나아가 조선의 영역을 팔도(八道)로 구분해 팔도 지역별로 그 역사와 지세 및 인물에 대하여 논한 뒤, 그에 따른 해당 지역 사람들의 특성을 ‘인심’이라는 표현으로 개관하였다. 이중환이 개관한 지역별 인심 중에는 쉽게 수긍이 가지 않는 면도 있고, 지역적 특성을 사람들의 성격에 과도하게 일반화시킨 면이 있어서 동의하기 어려운 면도 있다. 하지만 지역적 특성과 사람들의 행동 방식이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음을 충분히 시사한다. 한국에서도 지역 간에 사람들의 행동 방식이 다르다는 주장이 오래전부터 전해져 내려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사례들은 서로 다른 위도, 지형 및 기후 조건들의 차이로 인하여 지역이 나누어지고, 사람들의 식문화, 주거문화, 경제활동 및 인심 등이 달라지며 그 영향이 오랫동안 이어져 내려옴으로써 한 나라 내에서도 지역 간에 사람들의 행동에 큰 차이가 발생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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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을 먹는 방법은 나라나 지역마다 차이가 크다. 지리적 위치와 기후 등에 따라 자연에서 얻을 수 있는 먹거리가 다르니까 음식을 먹는 방법이 다를 수 있다. 식문화는 크게 음식을 손으로 집어 먹는 수식(手食)문화, 숟가락이나 젓가락을 이용하는 젓가락(箸食)문화, 그리고 나이프, 포크 및 스푼을 쓰는 문화의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우리에겐 깨끗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지만, 세계적으로 보면 수식문화가 40%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포크문화와 젓가락 문화는 각각 30%를 차지하고 있는데, 그중 젓가락은 한국과 중국, 일본, 베트남, 싱가포르 및 몽골 등 동아시아 지역에서 사용하고 있다. 특히 한국, 일본 및 중국 세 나라가 젓가락문화 인구의 80% 이상을 차지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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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사람이 차를 타지 않고 도로를 가는 경우는 조깅을 할 때 정도이다. 그러다 보니 조깅을 할 때 차와 같은 방향으로 달리는 것이 아니라 차와 반대 방향으로 달리도록 교육을 받는다. 차와 사람이 마주 보고 달려야 서로 피해서 가기 쉽기 때문이다. 차와 사람이 같은 방향으로 달리다가는 상대방의 의중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자칫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나라가 워낙 넓다 보니 자동차가 발명되고 널리 보급되는 데 매우 유리한 여건을 갖추고 있었고, 사람들은 대부분 자동차로 이동하게 되었다. 그리고 도로도 인도가 없는 독특한 양상으로까지 발전하게 된 것이다. 이 사례는 지리적인 이유 때문에 채택하게 된 교통수단의 차이에서 도로의 구조가 달라진다는 것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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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적으로 인접해도 역사, 제도 및 관습이 다를 수 있다. 미국의 총기 소유, 지중해의 망루와 미로길 및 인질 비즈니스, 좌측통행 대 우측통행, 미국의 홈리스와 자선문화 및 입양문화, 그리고 한국의 카페 문화 등의 사례를 통해 이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런 차이는 비즈니스로 연결될 수 있다는 것을 일본 자동차의 성공 사례에서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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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생물지리학자인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명저 《총, 균, 쇠》에서 인류는 안정적인 동물 식량을 확보하기 위하여 야생 상태의 동물을 가축화해 왔다고 주장하였다. 동물을 가축화하는 데에는 필수적인 조건들이 있는데, 그 가운데 한 가지라도 충족하지 못하면 가축화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그는 이를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의 소설 《안나 카레니나》에서 나오는 첫 문장, 즉 “행복한 가정은 모두 엇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불행한 이유가 제각기 다르다”를 인용하여 ‘안나 카레니나의 법칙’이라고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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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지리적으로 볼 때 대부분 지역이 따뜻한 기후대에 속하며 강수량도 많다. 자연히 쌀 재배에 유리하여 농업 생산성은 매우 높았다고 보는 게 합리적이다. 일본의 높은 농업 생산성은 많은 인구를 부양할 수 있게 하였고, 당시의 주력 산업이 농업이었던 만큼 이는 높은 경제발전 수준을 가능케 했을 것이다. 따라서 많은 인구와 높은 경제발전 덕분에 경제 규모도 세계적 수준이었다고 추론해 볼 수 있다.
게다가 당시 국제경제에서 지금의 달러화처럼 국제적으로 유통되는 화폐는 백은이었다. 일본은 양질의 은광이 많아서 이를 개발하여 16세기 말에는 세계 백은 생산량의 1/4~1/3을 차지하였다. 오늘날의 용어로 말하자면 달러화와 같은 경화를 찍어내는 데서 얻는 시뇨리지(seigniorage) 이득까지는 아니더라도 엄청난 국제 구매력을 갖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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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최초의 자유무역협정을 맺은 칠레와의 관계가 대표적 사례에 속한다. 칠레는 지리적으로 볼 때 지구의 거의 반대쪽에 위치하므로 한국과 유전적으로 섞이거나 생활권에서 겹치지 않는다. 문화적으로 차이가 크다. 게다가 식생도 크게 다르고 산출물이 출하되는 시기도 반대여서 상호 경쟁적이라기보다는 보완적이다. 차이가 서로에게 방해가 되는 것이 아니라 이익이 되니까 무역을 하는 데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 정책을 집행하는 사람들의 입장으로는 정책 추진에 따른 부담도 줄어들게 되니 반대할 이유도 별로 없다. 문화는 일반적으로는 서로 유사한 나라에서 무역을 촉진하는 방향으로 작용하지만, 때로는 문화의 차이가 오히려 무역을 촉진하는 방향으로 작용할 수도 있어서 양면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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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리적 욕구’나 ‘안전 욕구’는 생존과 직결되는 욕구이어서 욕구의 존재 자체는 지역이 다르거나 시간이 흐른다고 해서 변할 수 없으며, 경제발전 단계가 낮아 절대빈곤에 처해 있다고 해도 충족되어야 하는 기초적인 욕구이다. 그러다 보니 그 욕구를 충족시키는 구체적인 대상이 상당 부분 특정 지역의 자연지리 요인에 의해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애정과 사회적 소속 욕구’, ‘존중 욕구’, 그리고 ‘자아실현 욕구’는 성격이 좀 다르다. 이들 욕구는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는 드러나기 쉽지 않다. 하지만 경제발전 단계가 일정 수준에 도달해서 먹고 사는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되면 존중 욕구나 자아실현 욕구는 강하게 표출될 가능성이 있다. 지역에 따라 역사나 문화특성이 다르기에, ‘애정과 사회적 소속 욕구’, ‘존중 욕구’ 및 ‘자아실현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대상이나 활동 역시 지역이나 시대에 따라 다를 수 있다. 나라마다 애정 표현 방식이 다른 것이 한 예이다.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