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1. 山居集
2. 茶來軒 閑談 3. 悲 4. 出世間 |
저법정
法頂,박재철
'쥐야, 네게도 영혼이 있거든 내 말을 들어라. 네가 여러 생에 익힌 업보로 그같이 흉한 탈을 쓰고 있는데, 이제 청정한 수도장에서 나와 같이 지낸 이 인연으로 그 탈을 벗어 버리고 내생에는 좋은 몸 받아 해탈하거라. 언제까지 그처럼 흉한 탈을 쓰고 있어서야 되겠니? 부디 해탈하거라. 나무아미타불!'
쥐는 그대로 내 말을 듣고 있었다. 기이한 것은 그 다음날 헌식돌에 나가니 쥐가 보이지 않았다. 웬일인가 했는데, 그 쥐는 헌식돌 아래 죽어 있었다. 사람이 사람을 못 미더워하고 서로의 말이 통하지 않는 막힌 세상에서, 쥐가 사람의 말을 알아들었구나 싶으니 대견스러웠다. 하는 짓에 따라 그 겉모습이 다를 뿐 착하게 살려는 생명의 근원은 조금도 다를 게 없음을 거듭거듭 확신할 수 있었다. --- p.146 |
좋은 날을 맞으려면 모순과 갈등 속에서 삶의 의미를 캐내야 한다.하루하루를 남의 인생처럼 아무렇게나 살아 버릴 것이 아니라, 내 몫을 새롭고 소중하게 살려야 한다. 되풀이되는 범속한 일상을 새롭게 심화시키는 데서 좋은 날은 이루어진다.
--- p.56 |
오늘 우리들 의식을 가득 채우고 있는 갖가지 현실들은 한결 같이 우울하고 암담하기만 하다. 그런 사실들을 우리는 당연한 것처럼 묵묵히 받아들인다. 입벌려 말을 하면 그 색조가 더욱 우울하고 암담해지기 때문인가. 이런 상황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 p.95 |
세상에는 인사법도 가지가지다. 요즘은 대개 "안녕하십니까?"로 두루 통하고 있지만, 예전에는 "밤새 안녕하셨습니까?" 또는 "진지 잡수셨습니까?" 처럼 진지한 염려를 주고받던 시절이 있었다. 또 요 몇 해 전부터는 안면에 따라 손을 꼭 쥐면서 "그새 별고 없으셨습니까?"라고 나직하게 주고받는 경우도 있다.
단순한 인사치레가 아니라 궁금했던 신변의 안부를 묻는 인사다. '별고 없느냐'는 이 문안은 전에 없던 별고 속에서 별난 세상을 별스럽게 살아가고 있는 우리 시대 특유의 별스런 인사말이기도 하다. 이와 같은 인사말에는 다분히 시사적인 입김이 배어 있다. 그러나 출세간에 몸담아 살고 있는 선승들끼리 나누는 첫 대면의 인사말은 흔히 오는 곳을 묻는다. "어디서 오십니까?" 또는 "어느 곳에서 왔는가?" 이런 물음은 수사과들이 불심검문하는 류의 그런 뜻이 아님은 물론이다. ---p. 217 |
대화란 끼리끼리의 수군거림이 아니다. 입장과 견해가 다른 사람끼리 마주앉아 털어놓고 이야기를 나눔으로써 막혔던 길이 트이고 오해의 장벽 대신 이해의 지평이 열린다. 입장이나 견해가 같다면 굳이 대화가 필요하지 않다. 광장의 대화란 더 말할 것도 없이 직접 간접으로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언론의 자유다.
--- p.215 '현자의 대화' 중에서 |
그리 많지도 않은 책이 부담스러울 때가 있다. 책에 길이 있다는 걸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자꾸만 쌓이는 부피를 치다꺼리하다보면 정말 짐스럽게 느껴진다. 지난 가을 방을 수리하는 김에 5백여 권이나 되는 책을 친구들의 서가로 흩어 버린 까닭도 그 부피 때문이었다. 근래 책이 탐탁지 않게 느껴지는 둘째 이유는 그 안에 담긴 내용들이 더러는 시시콜콜한 소음으로 들려 내 안에서 우러나오려는 생생한 목소리와 맑은 사유의 길을 가로막는 것 같아서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 그토록 많은 분량의 정보와 지식이 꼭 필요한 것인가에 대해서 나는 적잖은 회의를 느낀다. 예전의 선비들은 아는 것만큼 행동하려고 했다. 지와 행의 일치를 꾀하면서 자신의 인격을 갈고 닦았다. 그렇기 때문에 양심에 거슬리는 일에는 아예 발을 적시지 않았고 의롭지 못한 것을 보았을 때는 그대로 있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오늘날 대부분의 학자나 지식인들은 지식과 행동 사이의 균형을 잃고 있으면서도 홍수처럼 밀려드는 정보와 지식의 물결에만 다투어 매달리려고 한다. 입만 벌리면 누구의 학설이 어떻고 아무개의 이론이 어떻다고 할 뿐 자신의 말이나 창의력은 일깨우려고 하지 않는다. 이렇듯 체험이 없이 밖에서 얻어들은 공허한 지식에는 아무래도 믿음이 가지 않는다. --- p.150-151 |
『서 있는 사람들』은 마땅히 자리잡고 있어야 할 자리에 앉지 못하고 방황하고 절망하는 현대인의 아픈 마음을 어루만지고 치유하는 책이다.
1970년대 개발, 독재시대에 집필된 이 책은 당시의 억압적 상황, 급격한 산업화가 가져오는 자연 파괴와 인간성 상실에 관한 사색의 글이 특징이다. 비겁한 지식인의 허상, 불신사회, 물질만능주의, 부도덕한 정치에 대한 실랄한 비판의 목소리가 담긴 이 책은 그래서 자연 친화적인 메시지를 담은 책들과는 뚜렷하게 구별될 뿐 아니라 종교인이면서도 이념과 현실을 뛰어넘어 부조리한 사회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늦추지 않은 스님의 구도자로서의 자세도 돋보인다. 더불어 한자 한자에 압축된 절제미와 상징적인 표현들을 따라 읽다보면 당시의 암울한 시대상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점도 이 책만이 갖는 중요한 의미라 할 수 있다. 그로부터 30여 년의 세월이 흐른 오늘날에 읽어도 당시의 가르침과 메시지가 퇴색하지 않고 고스란히 적용된다는 점에서 현대인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