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의 글프롤로그1부 돌연히 무너진 삶상실의 시작모든 것에서 떠나기짊어져야 할 것들2부 슬퍼할 새 없이 걷다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고통에 가려진 고통불안을 둘러싼 아름다움숲속에 남은 단 한 명의 여자3부 눈부시고 아픈 길텅 빈 곳에서 태어난 행운잃어버린 길 위의 여우레이디, 레이디, 레이디4부 뜨거운 야생에서 지금, 여기 이곳의 나현실과 현실길이 없는 길비로소 숨을 쉬다5부 돌아가다오리건에서 만난 사람들텅 빈 그릇을 채운 것뛰고, 넘고, 돌면 끝PCT의 여왕 신들의 다리에필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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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셰릴 스트레이드
관심작가 알림신청Cheryl Strayed
역우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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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고, 걷고, 또 걸었다. 내 두 발로 온전히 설 수 있을 때까지.” 캄캄한 벼랑 끝을 출발선 삼아 떠난 95일간의 여정쇼펜하우어는 말했다. “모든 인생은 고통”이라고. 하지만 그 고통이 내가 사랑하는 이에게 들이닥칠 땐 비이성적으로 세상을 원망할 수밖에 없다. 셰릴 스트레이드는 엄마의 폐암 소식을 듣고 외친다. “뭣 같은 소리 집어치우라고 해!” 엄마의 삶은 늘 예기치 못한 고통의 연속이었다. 열아홉에 예상치 못한 임신을 하여, 폭력을 일삼는 남편 아래 삼 남매를 낳았다. 가까스로 남편으로부터 도망친 다음엔 쉼 없는 노동에 시달렸다. 그럼에도 엄마는 항상 넘치는 사랑으로 자식들을 키워냈다. 그리고 마흔다섯, 늘 제 삶이 뒷전이던 엄마가 뒤늦게나마 대학을 다니며 못다 이룬 학업의 꿈을 펼치던 때였다. 이제 꽃필 일만 남은 엄마의 삶에 폭탄처럼 떨어진 ‘폐암’은 셰릴에겐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는 현실이었다. 셰릴은 제 일상을 모두 포기하고 엄마의 곁을 지키지만, 암을 진단받은 지 겨우 49일 만에 엄마는 세상을 떠난다. 그때부터 그의 삶에서 사랑과 희망, 꿈 같은 낭만적인 가치는 모두 힘을 잃었다. 그는 스스로를 망가뜨리기로 작정한 듯 무분별한 성생활과 마약에 찌들어 살아간다.그러다 우연히 들른 상점 진열대에서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 여행에 관한 안내서를 발견한다. 멕시코 국경에서 시작해 캐나다 국경 너머까지 9개의 산맥을 따라 이어지는 도보 여행길로 사막과 열대우림은 물론 빙벽과 강, 고속도로까지 거쳐야 했다. 웬만한 베테랑 여행자도 엄두 내지 못할 길이었다. 그러나 불현듯 이곳으로 떠나야겠다고 결심한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곰, 방울뱀, 퓨마 같은 야생동물이 있을 것이다. 온몸이 상처투성이가 될 것이며, 모든 것이 부족하고 추위와 더위, 외로움과 고통, 그리고 갈증과 허기가 괴롭힐 테지만 그는 직감한다. “이 황야의 순수함이 나를 구원해주리라는 것을.”“깨달음의 눈물과 기쁨은 무슨, 내 입에서 나오는 것은 비명뿐이었다.” 셀 수 없는 물집과 상처, 얻어맞은 듯한 근육통, 멍들다 못해 빠진 발톱들…아름다운 여행기가 아닌 거친 야생의 생존기 속으로580페이지, 그 방대한 분량만큼 이 책은 노골적이고 거칠며 가감이 없다. 그의 이야기는 보기 좋게 편집된 여행 프로그램이라기보다 자연의 공포를 포착한 내셔널 지오그래픽에 가깝다. 여행을 시작한 지 40분 만에 내뱉은 그의 첫 감상은 이 책의 매력과 정체성을 드러낸다. “내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거야.” 그는 유려한 말로 정제하기보다 자신이 겪는 모든 육체적 고통과 두려움을 여과 없이 묘사한다. 이 책이 “억지스럽거나 작위적이지 않다” “이 책을 읽는 것 자체가 위대한 경험이다”라는 평을 받으며 수많은 독자를 사로잡은 이유이다. “나는 해 질 무렵 노을 아래에서나 혹은 청결한 산의 호수들을 바라보며 깊은 자아 성찰을 하는 내 모습을 상상했다. 나는 여행을 하면서 내가 매일매일 자신을 씻어내는 눈물을 흘리고 새롭게 태어나는 기쁨을 만끽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러기는커녕 내 입에서 나오는 건 비명뿐이었다. 그것도 내면의 고통 때문이 아니었다. 그건 단지 발이 아파서, 등이 아파서, 엉덩이의 상처가 다 아물지 않아서였다.” (162p)“이 여행길을 통해 내 인생을 다시 반추할 수 있을 줄 알았지. 나를 무너뜨린 모든 것들에 대해 생각을 하고 스스로 다시 새로 태어나는 기회가 될 줄 알았어. 그렇지만 현실은, 최소한 지금까지는 고작해야 바로 눈앞에 놓인 육신의 고통에 급급해하고 있을 뿐이었다. 이 여행을 시작한 이후로 내 인생의 고통들은 해결되기는커녕 마음속을 왔다 갔다 하고만 있을 뿐이었다.”(161p)상실의 회복을 위해 떠난 여정이었으나,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당장 눈앞의 ‘한 걸음’에 집중하는 것뿐이었다. 그렇게 걷고, 걷고, 또 걸으며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도, 험준한 바위산도, 다리를 감싸는 보드라운 풀꽃조차도 자신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한다. 그리고 다시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가며 그는 무자비한 자연과 무자비한 인생 그리고 엄마의 죽음까지 서서히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때로는 차갑고 서슬 퍼런 빙벽을 지나고, 때로는 황량하고 뜨거운 사막을 걷는다. 발 디딜 곳 없이 빽빽한 숲속을 걷다가, 풀 한 포기 없는 황무지를 마주하기도 한다. 그렇게 걸으며 마주한 야생은 그의 생각보다 훨씬 더 거칠고, 변덕스러웠으며, 그럼에도 순간순간 지독하게 아름다웠다. 이 모든 고통과 아름다움은 스스로 바란 것은 아니지만, 걷다 보니 저절로 손에 쥐게 된 것이었다. 그는 무엇도 예측할 수 없이 흘러가는 이 길 위에서 서서히 삶의 진실을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인생이란 얼마나 예측 불허한가. 그러니 흘러가는 대로, 그대로 내버려둘 수밖에.” (575p)밥 말리 티셔츠, 행운의 까마귀 깃털, 꼬마 아이가 들려준 엄마의 노래험난한 여정 속 선물처럼 다가온 다정한 연대이 책의 또 다른 묘미는 홀로 떠난 여행에서 만난 수많은 여행자와 현지인의 이야기다. 고통스러운 여정 속에서도 이들의 이야기는 감초처럼 유쾌한 재미와 색다른 위로를 선사한다. 셰릴은 가능한 한 모든 여정을 혼자 헤쳐나가는 것이 이 여행의 목적이라고 고집스레 되뇌지만,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 여행의 특성상 히치하이킹은 불가피하다. 그렇게 여덟 살 아이와 사별한 루와 스파이더, 아내 몰래 감초를 먹는 마초 프랭크, 노숙자 잡지 인터뷰를 요청하던 기자 지미 등 다양한 운전자와 대화하며 그들의 이야기를 전해 듣는다. 또한 짐 정리를 도와준 앨버트, 큰 위안이자 기쁨이었던 PCT의 여자 여행자들, 밥 말리 티셔츠를 선물해준 파코, 행운의 까마귀 깃털을 선물해준 톰, 바닷가 앞에서 깊은 사랑을 나누었던 조나단 등 여행지에서 만난 수많은 사람과 정을 나누고 연대하며 여행의 가장 큰 위기에 닥칠 때마다 사람으로부터 구원받는다. 모두와 멀어져 세상에 홀로 남았던 순간, 그러므로 혼자 떠나야만 한다고 다짐했던 순간, 아이러니하게도 결국 누군가의 위로와 연대가, 진정으로 자신을 우뚝 서게 만든다는 것을 느낀다. 셰릴은 혼신의 힘을 다해 3개월간의 여정을 마친다. 넘어질 때도 있고 포기하고 싶은 순간도 있지만 결국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길을 걸었다. 그리고 그 길의 끝에서 마주한 것은 역시나 기대만큼 엄청난 감동은 아니었다. 그러나 여정 내내 강해진 두 다리로 다가오는 내일을 온전히 살아가기로 한다. 누구나 살면서 한 번은 길을 잃는다. 그리고 지팡이 하나 없이 어두운 숲속으로 홀로 걸어 들어가야 할 때가 온다. 끝을 알 수 없고, 어떤 짐승이 튀어나올지 모르는 숲속으로. 이 책은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는 그 순간, 그 길의 끝에 새로운 세상이 있다는 분명한 믿음을 제시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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