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똘스또이 클래식

책소개

목차

러시아 독본 Ⅲ 009

황제와 매 010
꼬리 없는 여우 011
엄벌 012
야생 당나귀와 집 당나귀 013
토끼와 사냥개 014
수사슴 015
토끼 015
개와 늑대 017
황제의 형제들 018
장님과 우유 019
숲멧토끼 020
늑대와 활 023
농부는 거위를
어떻게 나누었을까? 024
모기와 사자 026
사과나무 027
말과 주인들 029
빈대 030
노인과 죽음 031
거위는 어떻게
로마를 구했을까? 032
나무는 왜 추운 겨울에
갈라질까? 034
습기1 035
습기2 036
입자의 다양한 결합 037
사자와 여우 038
공정한 재판관 039
사슴과 포도밭 045
왕의 아들과 길동무들 046
새끼 까마귀 052
나는 어떻게 말 타기를
배웠을까 054
도끼와 톱 059
군인의 삶 060
고양이와 쥐 072
얼음, 물, 그리고 수증기 073
엄마 메추리와 새끼 메추리들 077
사냥개 불카 078
불카와 멧돼지 080
꿩 083
사냥개 밀튼과 불카 086
거북 088
사냥개 불카와 늑대 090
퍄티코르스크에서
불카에게 있었던 일 093
불카와 밀튼의 최후 097
새와 그물 99
후각 100
개와 요리사 103
로마의 건국 104
신은 진실을 알고 있지만,
바로 말해 주지 않는다 108
입자의 결정 123
늑대와 염소 126
사모스 섬의 왕 폴리크라테스 127
용사 볼가 131

러시아 독본 Ⅳ 143

황제와 셔츠 144
갈대와 올리브 나무 145
늑대와 농부 146
두 친구 151
다이빙 점프 152
참나무와 개암나무 155
해로운 공기 157
나쁜 공기 160
늑대와 새끼 양 162
비중 163
사자, 늑대, 그리고 여우 165
벌거벗은 임금님 166
여우의 꼬리 168
누에 169
장님과 코끼리 177
의지가 강하면 어떤 어려움도
극복할 수 있다 179
어미 닭과 병아리 194
기체 1 195
기체 2 197
사자, 당나귀, 그리고 여우 199
늙은 미루나무 200
귀룽나무 202
나무는 어떻게 이동하는가? 204
뜸부기와 그의 아내 206
열기구는 어떻게 만들까? 207
기구 비행사의 이야기 210
암소와 숫염소 215
아빠 까마귀와 새끼 까마귀 216
태양과 열 218
세상의 악은 무엇에서
비롯되는가? 222
갈바니와 직류전기 226
물의 신령과 나무꾼 231
까마귀와 여우 232
카프카스의 포로 1 233
미쿨루쉬카 셀랴니노비치 285

레프 톨스토이 연보 291

저자 소개2

레프 톨스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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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v Nikolayevich Tolstoy,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러시아의 소설가이자 시인이자 사상가. 도스토옙스키와 함께 19세기 러시아 문학을 대표하는 대문호로 손꼽힌다. 1828년 9월 9일, 러시아 남부 야스나야 폴랴나의 톨스토이 백작 집안에서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두 살과 아홉 살 때 각각 모친과 부친을 여의고, 이후 고모의 후원으로 성장했다. 어린 시절에는 집에서 교육받았고, 16세가 되던 1844년에 카잔대학교 동양어대학 아랍·터키어과에 입학하였으나 사교계를 출입하며 방탕한 생활을 일삼다 자퇴해 1847년 고향으로 돌아갔다. 진보적인 지주로서 새로운 농업 경영과 농노 계몽을 위해 일하려 했으나 실패로 끝나고 이후 3년간 방탕하게
러시아의 소설가이자 시인이자 사상가. 도스토옙스키와 함께 19세기 러시아 문학을 대표하는 대문호로 손꼽힌다. 1828년 9월 9일, 러시아 남부 야스나야 폴랴나의 톨스토이 백작 집안에서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두 살과 아홉 살 때 각각 모친과 부친을 여의고, 이후 고모의 후원으로 성장했다. 어린 시절에는 집에서 교육받았고, 16세가 되던 1844년에 카잔대학교 동양어대학 아랍·터키어과에 입학하였으나 사교계를 출입하며 방탕한 생활을 일삼다 자퇴해 1847년 고향으로 돌아갔다. 진보적인 지주로서 새로운 농업 경영과 농노 계몽을 위해 일하려 했으나 실패로 끝나고 이후 3년간 방탕하게 생활했다. 1851년 맏형이 있는 캅카스에서 군인으로 복무했다.
1852년 문학지 『동시대인』에 처녀작인 중편 자전소설 「유년 시절」을 발표해 투르게네프로부터 문학성을 인정받았다. 1853년에는 『소년시절』을, 1856년에는 『청년시절』을 썼다. 1853년 크림전쟁이 일어나자 전쟁에 참여했다. 당시 전쟁 경험은 훗날 그의 비폭력주의에 영향을 미쳤다. 크림전쟁에 참전한 경험을 토대로 『세바스토폴 이야기』(1855~56)를 써서 작가로서 명성을 확고히 했다.
이듬해 잡지 『소브레멘니크』에 익명으로 연재를 시작하면서 작가로 첫발을 내디뎠다. 작품 집필과 함께 농업 경영에 힘을 쏟는 한편, 농민의 열악한 교육 상태에 관심을 두어 학교를 세우고 1861년 교육 잡지 『야스나야 폴랴나』를 간행했다. 1862년 결혼한 후 문학에 전념해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니나』 등 대작을 집필, 작가로서 명성을 누렸다. 1859년에 고향 야스나야 폴랴나에 농민학교를 세우는 등 농촌 계몽에도 지속적인 관심을 기울였다.
34세가 되던 1862년에 소피야 안드레예브나와 결혼해 슬하에 자녀를 열세 명 두었다. 볼가 스텝 지역에 있는 영지를 경영하며 농민들을 위한 교육 사업을 계속해 나갔다. 1869년 5년에 걸쳐 집필한 대표작 『전쟁과 평화』를 발표하면서 세계적인 작가로 명성을 얻었으며 1873년에는 『안나 카레니나』 집필을 시작해 1877년에 완성했다. 1880년대는 톨스토이가 창작활동을 가장 왕성하게 한 시기로 알려져 있는데,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크로이체르 소나타』 『이반 일리치의 죽음』 등이 이때 쓰였다.
그러나 이 무렵 삶에 대한 회의에 시달리며 정신적 위기를 겪었다. 그리하여 1880년 이후 원시 기독교 사상에 몰두하며 사유재산 제도와 러시아 정교를 비판하고 『교의신학 비판』 『고백』 등을 써서 ‘톨스토이즘’이라는 자신의 사상을 체계화했다. 사십 대 후반 정신적 위기를 겪으며 삶과 죽음 그리고 종교 문제에 천착하면서 작품세계의 분수령이 되는 『참회록』(1879)을 내놓았고 정치, 사회, 종교, 사상적 문제들에 관해 계속 저술하고 활동했다.
술과 담배를 끊고 직접 밭일을 하는 등 금욕적인 생활을 지향했으며, 빈민 구제 활동도 했다. 1899년 종교적으로 전향한 이후 대표작 『부활』을 완성했으며, 말년까지도 『예술이란 무엇인가』(1898), 『부활』(1899) 등을 발표하며 세계적 작가로서 면모를 과시했다. 수익은 당국의 탄압을 받던 두호보르교도를 캐나다로 이주시키는 데 쓰였다. 그 자신은 백작의 지위에 있는 귀족이었으나 『바보 이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사람에게는 얼마나 많은 땅이 필요한가』 『세 가지 질문』 등을 집필해 러시아 귀족들이 재산을 너무 많이 소유했기 때문에 대다수 민중이 가난하게 살고 있음을 비판하다 러시아 귀족들의 압력으로 『참회록』과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의 출판 금지를 당했다.

하지만 독자들은 필사본이나 등사본으로 책을 만들어 몰래 읽었고 유럽, 미국, 아시아에 있는 출판사들이 그의 작품을 출판해 외국에서는 이들이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그는 극단적인 도덕가가 되어 1880년 이후에 낸 일련의 저술에서 국가와 교회를 부정하고, 육체의 나약함과 사유재산을 비난하는 의견을 발표했다. 개인이 저작물에서 이득을 취하는 것이 부도덕하다는 생각에 저작권을 포기하겠다고 선언했고(1891), 1899년 종교를 바꾼 이후에 대표작 『부활』을 완성했다. 이 작품은 러시아에서 출간되자마자 독일, 영국, 프랑스 등에서도 번역되었으며, 출판 수익은 당국의 탄압을 받던 두호보르교도를 캐나다로 이주시키는 데 쓰였다.

1901년 『부활』에 러시아 정교를 모독하는 표현이 들어 있다는 이유로 종무원(宗務院)으로부터 파문을 당했다. 노년에 접어들어서도 집필 활동을 왕성하게 펼쳐 『이반 일리치의 죽음』(1886), 『크로이처 소나타』(1889), 『예술이란 무엇인가』(1897), 『부활』(1899) 등을 계속 발표했다. 사유재산과 저작권 포기 문제로 아내와 불화하던 중 1910년 집을 떠났으며 82세 때 현재 톨스토이역으로 바뀐 아스타포보역 역장의 관사에서 폐렴으로 영면했다. 임종 때 아내를 보지 않겠다고 한 톨스토이의 마지막 말은 “진리를…… 나는 영원히 사랑한다…… 왜 사람들은……”이었다.

톨스토이는 귀족이었으나 왜곡된 사상과 이질적 현실에 회의를 느껴 실천하는 지식인의 삶을 추구했다. 고귀한 인생 성찰로 러시아 문학과 정치, 종교관에 놀라운 영향을 미쳤고, 인간 내면과 삶의 참 진리를 담은 걸작을 많이 남겨 지금도 러시아를 넘어 세계적인 대문호로 존경받고 있다. 인간과 진리를 사랑했던 대문호 톨스토이는 세계 문학의 역사를 바꾼 걸작들을 남긴 소설가이자 인도 마하트마 간디의 비폭력 사상에까지 영향을 준 ‘무소유, 무저항’을 몸소 실천한 사상가였다. 톨스토이 작품에서만 볼 수 있는 문체와 서사적 힘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특히 소설 속 아름다운 풍경 묘사와 이야기의 서사성, 섬세한 인물 심리 묘사 등이 돋보였던 그는 오늘날까지도 19세기 러시아 문학을 대표하는 대문호로 사랑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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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외대 노어과를 졸업하고 한국외대 통번역대학원 한노과 석사, 한국외대 통번역대학교 통번역학 박사힉위를 취득 했다. 한국통역번역학회 총무부회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한국외대 통번역대학원 한노과 겸임교수로 재직중이다. 저역서로는 통번역학 연구 현황과 향후 전망(2013, 공저, 한국문화사), 셔츠(2018, 예브게니 그리시코베츠, 이야기가있는집), 러시아독본(2017, 레프 톨스토이, 뿌쉬킨하우스), 도스토옙스키 단편선(2020,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걷는사람)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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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4년 09월 30일
쪽수, 무게, 크기
312쪽 | 354g | 135*195*17mm
ISBN13
9791170360872

책 속으로

수사슴 한 마리가 물을 마시러 개울가로 왔다가 물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사슴은 크고 멋지게 뻗은 자신의 두 갈래 뿔을 보자 몹시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자신의 다리를 보더니 말했다. “나는 다 좋은데 다리는 왜 이리 부실하니 볼품이 없을까.” 그때 갑자기 사자가 뛰쳐나와 사슴에게 달려들었다. 사슴은 깜짝 놀라 탁 트인 들판으로 잽싸게 달아났다. 도망가던 사슴이 숲 속에 들어갔다. 그런데 뿔이 나뭇가지에 걸리는 바람에 사자에게 잡히고 말았다. 사슴은 잡혀 죽게 되자 탄식하며 말했다. “이런, 난 정말 어리석구나! 부실하니 볼품없다고 부끄러워하던 다리는 날 구해주었는데, 정작 자랑스러워하는 뿔은 나를 죽게 만들었구나.”
--- p.15

사자가 나이가 너무 많아 더 이상 사냥을 할 수 없게 되자 살기 위해 꾀를 하나 냈다. 사자는 동굴에 들어가 아픈 척하고 드러누웠다. 짐승들이 사자를 문병하러 찾아오자, 사자는 동굴로 찾아온 짐승들을 잡아먹었다. 여우가 이 사실을 눈치 채고 동굴 입구에 서서 말했다. “사자님, 몸은 좀 어떠신가요?” 사자가 말했다. “안 좋아. 그런데 여우 너는 왜 들어오지 않고 거기 섰느냐?” 그러자 여우가 말했다. “여기 발자국을 살펴보니 안으로 들어간 발자국은 많은데 밖으로 나온 자국은 없어서요.”
--- pp.38~39

늑대가 돌산 위에서 풀을 뜯고 있는 염소를 보았다. 하지만 늑대는 염소 쪽으로 다가갈 수가 없었다. 그러자 염소에게 말했다. “염소야, 네가 아래로 내려오면 여긴 땅이 평평해서 더 맛있는 풀을 먹을 수 있을 거야.” 그러자 염소가 말했다. “늑대야, 네가 날 밑으로 내려오라고 하는 건 그 때문이 아니잖아. 내 먹이가 아니라 네 먹이를 얻기 위해서겠지.”
--- p.127

내가 기구를 타고 비행하는 것을 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기구는 준비가 다 되어 있었다. 네 개의 굵은 밧줄에 연결된 풍선이 푸르르 떨다가 위로 솟아오르고 다시 쪼그라 들기를 반복하는 과정에서 공기가 가득 채워지고 있었다. 나는 가족과 작별인사를 하고 바스켓에 올라 모든 비축품들이 제자리에 있는지 확인한 다음 소리쳤다. “출발!” 밧줄을 끊으니 풍선이 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망아지가 고삐에서 풀려 주변을 두리번거리듯 가만히 올라가더니, 갑자기 위로 누가 잡아당기듯 날아올랐다. 바스켓이 부르르 떨리며 흔들렸다. 아래를 보니 사람들이 박수를 치고 환호성을 지르며 손수건과 모자를 흔들고 있었다. 나도 사람들에게 모자를 흔들었지만 그 모자를 머리에 다시 쓰기도 전에 이미 너무 높이 올라와버려 사람들의 모습이 제대로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처음 얼마간은 두려움에 소름이 돋았다. …
--- pp.210~211

… 그렇다면 세상의 열은 어디에서 오는가? 바로 태양에서 온다. 겨울에는 태양이 낮고 비스듬히 떠서 대지에 햇살을 잘 비추지 않기 때문에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는다. 하지만 태양이 머리 위로 높이 올라 대지를 똑바로 내리쬐기 시작하면 세상 모든 것이 따뜻하게 데워지면서 활발히 움직이기 시작한다. 눈이 녹기 시작하고, 강의 얼음이 녹아 갈라지면서 소리를 내고, 산에서 물이 흘러내리고, 물에서 증발한 수증기가 올라가 구름이 되고 빗방울이 되어 떨어진다. 누가 이렇게 만드는가? 바로 태양이다. …

--- pp.219~220

출판사 리뷰

대문호 톨스토이는 위대한 작가이자 사상가일 뿐만 아니라 교육자로서도 유명하다. 그는 1859년 자신의 고향인 야스나야 폴랴나에 농민의 아이들을 위한 학교를 세우고 교육활동에 전념했다. 당시 농민의 아이들은 부모와 같이 노동을 하는 게 전부였으나 톨스토이는 이들에게 참된 삶을 일깨워주고자 교육을 시키기로 결심하고 이들을 위해 교과서를 썼는데, 이 책들은 처음에는 「아즈부카」로 이후에는 「새로운 아즈부카」로 개작되었다가 그중 읽기 파트만 따로 떼어내어 최종적으로 「러시아 독본」이라는 제목으로 출판되었다.

총 네 권으로 이루어진 「러시아 독본」에는 새로이 창작된 작품은 상대적으로 적다. 대부분은 러시아, 인도, 아랍, 페르시아, 터키, 독일의 설화나 이솝 우화를 자유롭게 각색한 것이고, 다른 작품들도 새롭게 개작하였다.

톨스토이가 기존의 이야기를 선택하거나 자신의 이야기를 쓸 때 언제나 염두에 두었던 원칙은 바로 스토리는 단순하되 흥미로워야 하고, 이야기를 통해 교훈과 깨우침을 얻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 책의 또 다른 특징은 톨스토이가 고대 그리스 문학 작품과 여러 민족들에게서 구전되던 시가를 주로 활용하였다는 점이다(톨스토이는 이를 위해 특별히 그리스어를 배워서 고대 그리스 작품을 원어로 읽었을 정도였다). 몇몇 이야기들은 야스나야 뽈랴나 학교 학생들이 썼던 글들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것은 매우 흥미롭다. 톨스토이는 「누가 누구에게 글을 배워야 할 것인가, 농민의 아이들이 우리에게 배워야 하는가, 우리가 농민의 아이들에게 배워야 하는가」라는 논문에서 이에 대해 탄복하며 언급한 바 있다.

톨스토이는 1872년 「아즈부카」를 출판하면서 자신이 여러 가지 이야기를 차용해서 썼다는 사실을 밝힌 바 있다. 몇몇 경우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작품에는 원작의 출처가 명시되어 있었으며, 톨스토이가 쓴 작품과 원작을 대조해 보면 원작 스토리의 큰 틀을 가져오긴 했지만, 언제나 자신만의 이야기, 자신만의 우화, 자신만의 실화, 자신만의 설화, 자신만의 서사시를 창조해 냈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톨스토이는 「아즈부카」에 수록되었던 작품을 「러시아 독본」에 실으면서 작품들의 장르만 명시하고 다른 원작을 차용하였다는 사실을 전혀 언급하지 않은 것은 바로 그러한 이유 때문이다.

「러시아 독본」은 다양한 작품들을 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놀랍게도 전체적으로 특유의 통일된 스타일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아이들이 읽을 수 있는 이야기를 쓴다는 것은 사실 대문호인 톨스토이에게도 새로운 문체를 습득해야만 하는 어려운 과제였다. 이는 모든 예술적 요소들 속에 톨스토이가 민중의 시와 민중의 삶 속에서 얻어낸 특징을 담아내는 방대한 실험이었다. 그 특징은 '명확하고 분명하며 아름답고 온화한' 것으로 톨스토이는 그것을 이제 예술 전반에 반드시 필요한 특징으로 여기기 시작했다.

톨스토이는 70년대 초 자신이 품고 있던 꿈, 즉, '고대 그리스 로마 문학처럼, 그리스 예술처럼 군더더기 없는 순수하고 우아한 작품'을 창조하고자 하는 꿈을 어린이를 위한 책 속에 실현시켰다. 어린이 책을 쓰는 과정에서 톨스토이는 작품에 대한 섬세하고 엄격한 그 특유의 작가적 성향을 보여, 말 그대로 단어 하나하나를 선택할 때마다 신중하게 고민하고 이리저리 재보며 꼼꼼하고 치밀하게 써 나갔다.

1876년 「러시아 독본」에 실린 작품들에 대해 높이 평가한 예브게니 블라지미로비치 리보프 공작의 편지를 받고 톨스토이는 답장을 통해 그 이야기들은 “전에 써 놓았던 20배나 많은 이야기들 중에서 엄선되었으며, 작품들 하나하나는 열 번씩이나 되는 수정 작업을 거쳤으며, 자신의 작품들 중 그 어느 작품보다도 가장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고 했다. 톨스토이는 작업을 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부분은 ‘간결하고, 명확하며, 그 어떤 거짓이나 군더더기가 없도록' 쓰는 것이었다고 토로했다. 톨스토이는 편지에서 강한 자부심을 가지고 “나는 민중과 민중의 아이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그들과 어떻게 대화해야 하는지 알고 있다. 나는 그것을 사랑과 노력을 기울여 얻을 수 있었다.”라고 했다.

이번 「러시아 독본」(하)에 수록된 「카프카스의 포로」는 1872년 「여명」이라는 잡지에 실렸던 작품으로, 어른을 위한 이야기를 쓰기 위한 방법과 언어를 시범해보는 사례로 간주했고, 「러시아 독본」에 실린 작품 중 가장 널리 알려진 작품이다. 또한 “신은 진실을 알지만, 바로 말해주지 않는다”와 같은 유명한 작품들도 수록되어 있다.

「아즈부카」에 실린 작품들을 통해 다듬어진 예술적 원칙('모든 것이 아름답고, 간결하고, 단순하며, 무엇보다 명확해야 한다는')은 의심할 여지없이 「안나 카레니나」나 이후 톨스토이의 작품 활동 후기에 쓰여진 미완성 역사 소설과 기타 다른 작품들의 문체에도 영향을 미쳤다. 빠르게 전개되면서 극적인 스토리를 보여주는 「전쟁과 평화」에 비해 더 방대하고 단순하며 명확하고 간결한 언어 구사와 같이 「안나 카레니나」와 「부활」에서 나타나는 주요 특징들을 살펴보면 작가가 70년대 초 농민의 아이들을 위한 단편을 쓰면서 연구했던 문학적 요소들을 명확히 찾아볼 수 있다. 톨스토이는 「예술이란 무엇인가?」라는 논문을 통해 창조적 여정의 종착점에서 심미적 원칙들을 천명했고, 이는 블라지미르 바실리예비치 스타소프가 언급한 바와 같이 「아즈부카」에 수록된 작품들에 상당 부분 이미 구현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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