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에 몰입하는 인간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손민규 (인문MD)
『새로운 단어를 찾습니다』의 부제가 '4천만 부가 팔린 사전을 만든 사람들'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야마다와 겐보가 펴낸 사전을 합치면 판매량이 4천 만부가 넘는다. 흥미로운 점은 원래는 둘이 함께 사전을 펴내다, 각각 다른 사전을 만들게 된다는 사실이다.
야마다가 펴낸 『신메이카이 국어사전』은 독특한 뜻풀이에서 강점을, 겐보가 펴낸 『산세이도 국어사전』은 이와 대비되게 담백하게 단어를 설명했다. 이렇게 본다면, 파격적인 『신메이카이 국어사전』이 새로운 단어를 더 많이 실었을 듯한데 최신 트렌드를 반영한 신조어는 『산세이도 국어사전』이 강점이었다.
『신메이카이 국어사전』은 '주관적'이고 때로는 '장문의 상세한' 뜻풀이를 보인다. 『산세이도 국어사전』은 '객관적'이고 '단문의 간결한' 뜻풀이로 일관한다. 사실 두 사전의 이런 차이는 나중에 자세히 서술할 야마다 다다오와 겐보 히데토시라는 사전 편찬자의 언어관이나 세계관 등 '개성'의 차이와 그대로 겹친다. 국어사전은 사람의 손으로 만들어진다. 따라서 그 사람의 '인격'이 저절로 사전의 문면에 떠오르는 것이다. (21~22쪽)
패전후, 고학력자이지만 현실에서는 딱히 쓸모가 없었던 고문학 전공자 야마다를 받아들인 건 이미 산세이도 출판사에서 자리를 잡고 있던 겐보였다. 두 사람의 뛰어난 실력이 합쳐지며 『메이카이 사전』은 국어사전계를 평정한다. 압도적인 판매를 올렸다. 말은 계속 변하는 법. 개정판을 내야 하지만 어찌 계속 늦어진다. 서전 편찬 작업을 진두지휘하던 겐보가 용례 수집에 빠진 까닭이다. 출판사는 출판사대로 답답해 하고, 야마다 역시 초조하다. 마침 주간 교대제를 겐보가 주장하기도 했고, 『신메이카이 사전』은 야마다의 주도로 만들어진다.
『신메이카이 국어사전』은 개성이 강한 독특한 뜻풀이로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하지만 야마다가 그런 뜻풀이를 쓴 것은 다른 사전의 모방을 되풀이하는 사전계에 대한 격분과 순수하게 사전의 진보와 발전을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204쪽)
한편 야마다의 『신메이카이 사전』이나 겐보의 『산세이도 국어사전』이 나오게 된 또다른 배경으로는 종전까지 업계에서 횡행하던 짜깁기 관행이 있었다. '생활수첩'의 의혹으로 시작되어 사실로 확인된 사전계 짜깁기 관행의 원흉으로 『메이카이 국어사전』이 지목되자 야마다는 그 누구도 따라할 수 없는 사전을 만들겠다고 결심한다. 여기에 둘 사이를 갈라놓으려 했던 사측의 야마다 자극하기도 새로운 사전의 탄생에 기여한다. 그리고 마침내 나온 『신메이카이 사전』.
둘의 관계는 사전의 서문에 쓰여진 "겐보에게 사고가 있어"라는 표현으로 파탄나고 만다. 겐보 입장에선, "내게 사고가 있었다고? 나는 멀쩡히 살아 있는데? 감히 야마다 네가 그 자리를?" 이렇게 받아들일 수밖에. 평소 화를 안 내던 겐보는 그날 대노했다. 그 뒤로 그는 『산세이도 국어사전』을 만든다. 용례 수집을 위해 자가용이 아니라 전철 출근을 고집하고, 가족과 밥 먹을 때조차 대화 없이 용례 수집에 몰두하는 겐보. 죽기 전까지 무려 145만 개의 용례를 수집한다.
이러니 겐보에게 야마다와 관계를 회복할 여유따윈 없었으리라. 이는 야마다도 마찬가지라, 굳이 겐보와 관계를 복구하려 노력하지 않는다. 겐보와 야마다 둘은 죽을 때까지 화해하지 않고 저 세상으로 향한다. 겐보가 먼저 죽고, 야마다가 겐보 가족에게 편지를 쓰긴 했다. 그런데 그마저도, 자신의 잘못은 없다고 써버렸는데 표현과 달리 야마다가 겐보의 죽음을 진심으로 안타까워 했음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아무런 감정이 없었다면 오랫동안 연락을 끊고 지낸 사람의 남은 가족에게 굳이 편지를 쓰지 않았을 테니까.
이런 이야기를 몹시 흥미진진하게 기록했다. 두 사람도 대단하지만, 이 사연을 취재한 저자의 취재력과 필력도 훌륭하다. 저자는 두 사람이 펴낸 서점의 뜻풀이를 기반으로 둘의 관계가 어떻게 전개됐는지, 파국을 맞게 됐는지 설명한다. 두 사전을 직접 본 적이 없는 나같은 독자라도 저자가 설명하는 사전 뜻풀이를 보면 '으음, 저런 사전이군' 하고 이해할 수 있다.
평생에 걸쳐 『산세이도 국어사전』과 『신메이카이 국어사전』 양쪽의 편자로 이름을 올린 시바타 다케시 선생은 인터뷰에서 두 편찬자의 인물상을 비교했다.
"두 사람의 개성이 다릅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대조적인 개성을 가졌으니까요. 간단히 말하면 겐보 선생은 '진보주의자'입니다. 야마다 선생은 '전통주의자'지요. 그러니까 겐보 선생은 새로운 것을 계속 흡수할 수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사전에 삼켜졌지요. 야마다 선생은 그렇지 않습니다. 역시 사전을 통제합니다(생각대로 다룹니다). 겐보 선생은 사전 이외에는 생활이 없었을 겁니다. 야마다 선생은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사전 일을 받아들이는 바람에 여유가 없어져 곤란하다고 불만스러워하는 마음이 있었지요." (301쪽)
가족도, 취미도 포기하고 오롯이 용례 수집에만 몰두한 겐보나 고문학을 전공하고 자신만의 철학으로 세상에 없던 사전을 내놓은 야마다 모두 위대한 개인이다. 둘이 처음에는 사제였고 나중에는 대등한 동료였고 업계에서 인정받는 라이벌이었다 끝내는 화해하지 못한 원수가 되는 과정을 드라마틱하게 담아냈다. 압권은 결말인데, 저자에 따르면 야마다나 겐보나 말의 본성을 잘 꿰뚫은 사람이고, 말의 본성이란 끊임없이 변한다는 점이니, 둘은 결국은 서로를 미워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뭉클했다.
서로를 존경할 수 있는 전문성을 갖추고 있는가. 라이벌이 있는가. 동료가 있는가. 그런 게 딱히 없이 서로 고립되어 일하다, 이 직장 저 직장, 이 일 저 일을 옮겨갈 수밖에 없는 현대인이 바라보기에 야마다와 겐보의 시대는 지금에는 없는 낭만적인 구석이 있는 듯하다. 이제는 현실에서 잘 구하기 힘든 종이 사전에 관한 이야기라는 점이 향수를 자극하기도 하고. 하나에 몰입하는 사람은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