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을 뛰어넘은 한강의 소설. 섬세한 감수성과 치밀한 문장으로 인간 존재의 본질을 탐구해온 작가 한강이 광주의 5월을 그렸다. 1980년 5월 18일부터 열흘간 있었던 광주민주화운동 당시의 상황과 그 이후 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철저한 고증과 취재를 바탕으로 담아낸 책. -소설MD 박형욱
벌써 5월입니다. 저는 부산에서 나고 자랐지만 5월이 되면 어김없이 1980년 광주가 떠오릅니다. 당시 시민들은 스스로 조직화하고 서로 연대하면서 계엄군에 맞서 싸웠죠. 한강 작가는 『소년이 온다』 속 ‘은숙 누나’의 입을 통해 말합니다. “군인들이 반란을 일으킨 거잖아, 권력을 잡으려고. 너도 봤을 거 아냐. 한낮에 사람들을 때리고 찌르고, 그래도 안되니까 총을 쐈잖아. 그렇게 하라고 그들이 명령한 거야. 그 사람들을 어떻게 나라라고 부를 수 있어.”(p.17) 총과 탱크를 앞세운 군대의 무자비한 진압에도 불구하고 독재에 항거하고 민주주의를 지키고자 했던 1980년 광주와 “이게 나라냐”고 외치며 광장에서 촛불을 들었던 지난 시간들. 모두 제대로 된 나라에서 살고픈 위대한 시민들이 써 내려간 역사입니다.
"너무 많은 피를 흘리지 않았습니까. 어떻게 그 피를 그냥 덮으란 말입니까. 먼저 가신 혼들이 눈을 뜨고 우릴 지켜보고 있습니다."(p.22)
한강의 『소년이 온다』는 쉽게 페이지를 넘길 수 없고, 단어 하나 문장 하나 허투루 지나칠 수 없는 책입니다. 신형철 평론가가 말한 대로,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겠다고 각오한 사람조차 휘청거리게 만듭니다. 작가가 얼마나 온 힘을 쏟아 써 내려 갔는지, 읽어보면 알 수 있죠. 물론 5.18 민주화운동을 다룬 책과 영화는 이미 많이 나와 있지만 한강 작가가 글로 그려낸 광주와 사람들 이야기는 오감을 자극하는 영상보다 더 생생합니다. 그저 그런 슬픈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리 시대 실제로 일어난 끔찍한 범죄를 있는 그대로 드러낼 뿐만 아니라 상처 입은 존재들의 처절한 경험과 증언을 낱낱이 끄집어 냅니다. 1980년 5월의 광주를 사건이 아닌, 현실로 마주한 이들의 이야기 말입니다.
"114 버튼을 누르고 기다렸다. 도청 민원실 부탁합니다. 안내받은 전화번호를 누르고 다시 기다렸다. 분수대에서 물이 나오고 있는 걸 봤는데요, 그래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떨리던 그녀의 목소리가 점점 또렷해졌다. 어떻게 벌써 분수대에서 물이 나옵니까. 무슨 축제라고 물이 나옵니까. 얼마나 됐다고, 어떻게 벌써 그럴 수 있습니까."(p.69)
그들의 몸은 왜 열십자로 겹겹이 포개져 있어야 했을까요. 당시 인구가 사십만이었던 도시에 80만발의 탄환이 군인들에게 지급되었을까요. 왜 아직도 그날의 진실은 채 밝혀지지 않았을까요. 40년이 지난 지금, 이 책을 마주하고 물어봅니다. 그리고 되뇌입니다. "우리는 고귀해."
아직 책을 읽지 않은 분들은 물론, 이미 읽은 분들에게도 『소년이 온다』를 건넵니다. 여전히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어둠과 폭력의 세계 속에 상처 입은 존재들을 섬세하게 그려온 한강의 소설이 5월 광주의 시공간에서 벌어진 잔혹한 학살의 참상과 정면으로 마주한다. 증언하는 자의 소명의식과 듣는 자의 상상력이 치열하게 어우러지는 간절한 고백의 서사는 잊을 수 없는 ‘그 도시의 열흘’을 고통스럽게 되살린다. 물방울이 내쏘는 햇빛의 파편에도 눈이 시린 순결한 ‘어린 새’의 흔적을 쫓는 이 소설은 우리가 ‘붙들어야 할’ 역사적 기억이 무엇인지를 절실하게 환기하고 있다.
- 백지연 (문학평론가)
어떤 소재는 그것을 택하는 일 자체가 작가 자신의 표현 역량을 시험대에 올리는 일일 수 있다. 한국문학사에서 ‘80년 5월 광주’는 여전히 그러할 뿐 아니라 가장 그러한 소재다. 다만 이제 더 절실한 것은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 응징과 복권의 서사이기보다는 상처의 구조에 대한 투시와 천착의 서사일 것인데, 이를 통해 한국문학의 인간학적 깊이가 심화될 여지는 아직 많다. 『소년이 온다』는 한강이 쓴 광주 이야기라면 읽는 쪽에서도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겠다고 각오한 사람조차 휘청거리게 만든다. 이 소설은 그날 파괴된 영혼들이 못다 한 말들을 대신 전하고, 그 속에서 한 사람이 자기파괴를 각오할 때만 도달할 수 있는 인간 존엄의 위대한 증거를 찾아내는데, 시적 초혼과 산문적 증언을 동시에 감행하는, 파울 첼란과 쁘리모 레비가 함께 쓴 것 같은 문장들은 거의 원망스러울 만큼 정확한 표현으로 읽는 이를 고통스럽게 한다. 5월 광주에 대한 소설이라면 이미 나올 만큼 나오지 않았느냐고, 또 이런 추천사란 거짓은 아닐지라도 대개 과장이 아니냐고 의심할 사람들에게, 나는 입술을 깨물면서 둘 다 아니라고 단호히 말할 것이다. 이것은 한강을 뛰어넘은 한강의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