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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언어로 세상을 본다면
중고도서

엄마의 언어로 세상을 본다면

: 딸에서 어른이 되기까지, 82년생 보통 엄마의 기록

이현미 저 / 김시은 그림 | 부키 | 2018년 07월 20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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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8년 07월 20일
쪽수, 무게, 크기 336쪽 | 500g | 135*205*30mm
ISBN13 9788960516427
ISBN10 8960516422

중고도서 소개

사용 흔적 약간 있으나, 대체적으로 손상 없는 상품
  •  판매자 :   casd235   평점4점
  •  첫장 서명 있슴/ 첫장 서명 있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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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떤 엄마가 되고 싶은가?’
이런 물음을 엄마들이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완벽한 엄마, 아이에게 모든 걸 다 해 주는 엄마가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녀와의 관계를 돌아보고 적절한 관계를 맺기 위해서다.
학령기 자녀를 둔 소꿉친구도 나와 같은 고민을 하고 있었다. 친구는 같은 반 아이가 자신을 몇 번이나 모함했는데도 그 아이와 계속해서 놀고 싶어 하는 아들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았다. 숙고 끝에 친구가 굳힌 결심은 더 높은 경지의 마음가짐이었다. 친구는 조금 편안해진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는 전처럼 스트레스받지 않기로 했어. 아이 인생에 문제가 생길 때마다 옆에서 도움을 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어차피 이 애의 인생이잖아. 지켜보면서 그때그때 필요한 조언을 해 주는 엄마가 될래.”---「고민 없이 엄마가 된다는 것」중에서

나에게 삶은 견뎌야 하는 과정이었다. 가족 관계는 썩은 나무 같았다. 도려내고 싶지만 뿌리가 뽑히면 살아갈 수가 없었다. 버릴 수가 없었다. 엄마의 하소연에 매여 살던 어느 날 ‘나도 나만의 일을 생각하며 자유롭고 싶어’라는 생각을 했다.
서른 이후 머리가 굵어지면서부터는 이럴 줄은 몰랐는데 엄마에게도 반감을 갖게 됐다. 그러면서도 미안해했다. 결혼 이후에는 과거와 적당히 거리를 두고 지냈다. 하지만 육아는 성장 과정의 상처를 마주하는 과정이었다. 어린 시절의 상처는 어떤 형태로든 나타나 자녀 양육에 영향을 미친다. 대개 두 가지 형태다. ‘부모님처럼 하지 말아야지’라며 극심한 강박증으로 자신을 검열해 무리하게 버티는 경우와 ‘하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똑같이 되풀이하며 자신을 혐오하고 자학하는 경우다.---「다시 성장을 시작했습니다」중에서

자녀 교육과 관련된 어떤 글에서 “아이가 있는 데서 부모가 브렉시트나 양적완화 같은 사회현상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라”는 조언을 본 적 있는데 이 역시 문화자본과 관련된 말이다. 브렉시트에 대해 처음 들은 아이는 ‘뭥미(그게 뭐임)?’라며 흘려버리겠지만 그런 대화가 오가는 환경에서 자란 아이는 훗날 해당 용어를 다시 접했을 때 그 의미와 맥락에 더 관심을 기울이고 배움을 세상에 대한 이해 과정으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커진다.
이전까지의 나는 세상 사람들을 수직으로 세우고 그 안에서 나의 좌표를 찍어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문화자본에 대해 배운 뒤로는 계층화된 사회구조와 그 안에서의 나의 위치가 보이기 시작했다. 우리는 공부를 하고자 하는 의지, 배움을 지속하려는 의지, 배움을 통해 자신의 가치를 높이려는 의지 등 계층에 따라 결과뿐 아니라 의지를 품을 가능성이 달라지는 사회에 살고 있었다.---「나를 울게 한 문화자본」중에서

모유 수유는 이제 지난 일이고 그냥 안 한 게 아니라 몸과 마음이 너덜너덜해지는 고통을 겪다가 중단한 것이다. 무엇보다 아이가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다. 그러니 이제 그만 죄책감을 털어 버리자. 나는 마음을 다잡았다.
‘늘 함께 있어 주는 엄마’는 일을 그만두지 않는 한 내가 결코 도달할 수 없는 목표다. 늘 함께 있지 못하는 대신 나는 아이의 말을 인내심 있게 잘 들어 주고 반응하는 엄마가 되겠다. TV 좀 보여 주면 어때? 온종일 보여 주는 것도 아닌데. 내가 잘할 수 있는 것을 실천하는 것만으로도 나는 괜찮은 엄마야……. 엄마로서 나를 칭찬해 주기 시작했다. 그랬더니 발에 차고 있던 보이지 않는 쇠고랑을 벗은 느낌이었다. 홀가분했다. 늘 죄책감에 시달리는 엄마들에게 나는 이런 말을 전하고 싶다. 우리는 조금 더 자기편이어도 된다고. 조금 더 자신을 챙겨도 된다고.---「알 수 없는 죄책감의 근원을 찾아서」중에서

당시 나의 문제 중 하나는 배출구가 없다는 것이었다. 집에만 있다 보니 작은 일을 곱씹으며 울화를 키울 때가 많았다. 직장 생활의 스트레스가 종류도 더 많고 상황이 엄중할 때도 있지만 해소와 배출이 안 된다는 점에서 전업주부로서의 스트레스가 더 감당하기 힘들었다. 회사 생활을 할 때는 동료들과 이야기를 나누거나 술을 마시면서 억눌린 마음을 잠시나마 풀 수 있었다. 일에 집중하며 잊어버릴 수도 있었다. 감정이 불타오를 때 잠시 다른 일을 하면 잊고 있었던 시간만큼 내면의 갈등이 사그라져 있었다.
하지만 집에만 있을 때는 스트레스가 뇌리에 달라붙어 떨어지질 않았다. 매일매일 해도 별로 표시 나지 않는 집안일로 는 성취감을 느끼기가 어려웠다. 나의 역할은 있었지만 이 일이 나를 드러내 주지는 않았다. 계속 이렇게 지낸다면 나는 무엇을 통해 나를 찾아야 할까? 나를 잃고 엄마로서, 아내로서만 살아갈 수 있을까? 사회적 역할과 지위를 잃은 내가 열등감 없이 생활할 수 있을까? 자존감이 흔들리기 시작했다.---「세상에서 가장 극한 직업, 전업주부」중에서

아기가 크면서 고양이들과 함께하는 기쁨이 커졌다. 아이는 6개월 때부터 동물의 존재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어른들이 큰 자극을 줘야 시원한 웃음을 보여 줄까 말까 하던 아이가 고양이들을 보기만 하면 깔깔깔 웃음을 터뜨렸다. 사람도 아니고 장난감도 아닌, 저와는 다른 생명인 걸 느끼고 좋아하는 듯했다. 기어 다닐 무렵에 첫째 냥이가 등짝을 허락할 때마다 얼굴을 비비댔고 걷기 시작하면서는 셋이서 술래잡기를 했다. 친정 엄마는 아이와 고양이가 노는 모습을 보며 “녀석들 밥값 하네”라며 웃었다. 아이는 한때 고양이 꼬리잡기를 놀이로 생각했지만, 요즘은 고양이들을 보며 자신보다 작고 약한 생명을 지켜 줘야 한다는 것도 배우고 있다.---「육아육묘, 털과의 전쟁」중에서

둘 다 직장 생활을 하는데 왜 퇴근 후 육아가 온전히 내몫이 된 걸까. 집집마다 사정은 다르겠지만 나의 경우 육아휴직의 탓이 컸다. 생후 1년간 아이 옆에 찰싹 붙어 있던 사람은 나였다. 예쁜 아가, 내 새끼를 외치며 애착을 형성한 것도 나였다. 그런 엄마가 집에 있는데 아빠 품으로 가라니, 아이에게도 황당한 이야기일 것이다. 아이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내게 달라붙었다. 졸음이 쏟아질 때면 설레고 행복하고 고맙게도 내게 달려왔다.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귀여운 폭탄이 됐다. 더 놀고 싶은데 졸음이 쏟아지면 엄마의 귓가에 “으아아아앙” 로켓포를 터뜨렸다.
남편도 육아휴직을 했다면 우리 집 풍경은 좀 달랐을 것이다. 아이는 내가 엄마라서 무조건 나를 좋아하는 게 아니다. 엄마가 누군지 모르던 시절부터 자신을 돌봐 주고 아이의 욕구를 세심히 파악해 들어줬던 얼굴이 나였기에 엄마를 세상에서 최고로 여기는 것이다. 하루도 빠짐없이 아이를 관찰하다 보니 나는 눈빛만 봐도 아이의 상태를 안다. 남편이 아이 옆에 붙어 있었다면 아이가 집착하는 얼굴은 아빠가 되었을 것이다.---「워킹맘은 퇴근 후에 집으로 출근합니다」중에서

나 역시 아들에게 살림을 가르쳐야겠다고 다짐했다. 나의 부모 세대는 자녀가 많은 것도 아니고 하나둘밖에 없는데 굳이 시킬 게 뭐냐며 엄마 혼자 집안일을 전담했고 그렇게 고정된 성역할 개념을 자녀 세대에 전수했다. 나는 아들에게 집안일을 가르치는 건 생활 교육뿐 아니라 인성 교육의 일환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점에서 딸이 아니라 아들을 낳아서 다행이라고 안도하기도 했다. 딸이었다면 “너와 가치관이 비슷한 남자를 만나야 해. 배우자가 될 사람뿐 아니라 그 부모님 성향도 살펴야 한다”라며 방어적인 교육을 했겠지만 아들은 내가 직접 그런 남자로 자라도록 도울 수 있기 때문이다.
남편에게도 “내가 아무리 아이를 가르쳐도 우리의 모습이 부모 세대와 똑같다면 결국 보고 자란 경험에 큰 영향을 받을 거야”라며 동참을 요구했다.
---「여자는 부엌 안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보냈다」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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