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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이 책을 읽는 여러분께 짝꿍 철승이 줄에 매달린 나무 인형 비밀기지인 토끼풀 언덕 곽밥 풀 고리 관성열차 방학 생활 계획 혁명사적지 청소 장마 모란봉청소년체육학교 축구 경기 모서리 먹이기 건병 소나기 꼬마과제 떡 |
글김진섭
이 글은 작은 가방 하나에서 시작되었답니다. 텔레토비가 그려진 초등학생용 배낭 가방.
북한 용천의 열차 폭발 사고 현장 위성사진을 텔레비전으로 보게 되었습니다. 폭발 사고로 피해를 입은 인근 소학교 모습이었습니다. 허물어진 학교 건물과 학생들이 미처 챙겨 가지 못한 가방이 흩어져 있는 사진이었어요. 그런데 그 사진 속에 한때 유행하며 인기를 끌었던 텔레토비가 그려진 가방이 있었답니다. ‘맞다, 북한 땅에도 가방 메고 학교에 다니는 어린이가 있었지!’하는 그 느낌을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작가의 말’ 중에서 둥근 밥상을 꺼내 거실에 펴는데 철승이가 안방 문 쪽으로 눈짓을 하며 말했습니다. “너희 어머니 또 아프시니?”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철승이는 실망한 표정이 뚜렷했습니다. 그러고는 가방을 내려놓고 상 앞에 털썩 주저앉았습니다. 그러는 철승이를 보자 기분이 더 나빠졌습니다. 철승이가 왜 그러는지 알기 때문이지요. 어머니가 아프지 않을 때면 가끔 옥수수엿을 내다 주거나 시원한 단물을 만들어 주기도 하거든요. 철승이는 오늘 그런 호강을 기대할 수 없다는 걸 알기 때문에 실망한 거였어요. 철승이는 특히 오늘처럼 더운 날에 어머니가 얼음을 동동 띄워 내주는 시원한 단물을 제일 좋아했습니다. --- p.32 은혜가 철구 머리통을 한 번 쓰다듬어 주고 나서 몸을 일으켰습니다. 그러고는 철승이를 올려다보고 눈을 부라리며 말했습니다. “야! 너 한 번만 더 동생들 때리면 죽을 줄 알아. 확 그냥!” 난데없는 말에 철승이와 나는 서로 돌아보면서 입을 딱 벌렸습니다. 여자 애가, 그것도 우리 학교에서 가장 센 철승이에게 싸움을 걸다니요. 철승이는 어이없다는 듯이 웃으며 말했습니다. “확! 어쩔 건데?” “뭐야? 한번 해보겠다는 거야? 까불고 있어!” 은혜가 눈을 부릅뜨고 철승이에게 한 발짝 다가섰습니다. 철승이는 여자 애와 싸울 수 없다는 듯 주춤 한 걸음 물러서면서 어이없는 웃음만 실실 흘렸습니다. --- p.42 “우리 북조선 인민들은 서로 평등하고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 순간, 우리 곁에 밥을 못 먹고 있는 동무가 있다는 것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늘 함께 공부하고 함께 노는 다정한 친구가 말입니다.” 여기쯤 말을 끊고 다시 한 번 교실 안을 한 바퀴 휘둘러보았습니다. 동무들이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어쨌다고? 그게 안타까우면 네가 도시락을 네 개씩 싸 오든지!” 선봉이가 다시 불쑥 나섰습니다. 나는 선봉이가 하는 말을 싹 무시하고 말을 이었습니다. “그래서 말인데, 옛말에 여러 사람이 한 숟가락씩 나누면 밥 한 상이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 반 40명 동무들이 한 숟가락씩만 나누면 다정한 세 동무의 밥이 충분히 될 것입니다. 내 생각이 어떻습니까?” “옳소!” “찬성이오!” 교실 뒤편에서 누군가가 큰 목소리로 외쳤습니다. 그러자 저마다 고개를 끄덕이며 찬성한다고 말했습니다. 선봉이는 마지못한 듯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나는 마음속으로 가슴을 쓸어내렸습니다. --- p.52 “이야! 그럼 정말 좋겠다. 영광이는 평양외국어학원에 다니고 나는 평양예술학원에 다니고, 그리고 철승이는 모란봉청소년체육학교에 다니면 말이야. 경기가 있을 때 영광이랑 나랑 응원가서 만나면,와! 그럼 정말 좋을 텐데?” 철승이는 어깨를 축 늘어뜨리면서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너희들이야 원하는 데로 갈 수 있겠지만 난 어려울 거야. 영광이 아버지는 인민군 대좌고 또 은혜네 아버지는 고등중학교 교원이잖아! 하지만 난 농사꾼 아들이거든, 우리 아버진 노동당 당원도 아니고.” 나는 철승이 어깨를 탁 치면서 짐짓 목소리에 힘을 주었습니다. “그게 무슨 상관이야! 축구는 누가 얼마나 잘하냐에 따라 뽑히는 거야!” “맞아! 우리가 열심히 응원해 줄게!” 그제야 철승이는 얼굴이 환해졌습니다. 철승이는 마음을 단단하게 굳힌 듯 보였습니다.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면서 활짝 웃었습니다. --- p.119 토끼는 두려움 없이 슬그머니 다가와 작은 입으로 오물오물 풀을 뜯어 먹습니다. 작은 입을 오물오물 움직이면 수염이 뻗어 나간 하얀 뺨이 아래위로 움직입니다. 마치 볼우물이 쏙 들어간 은혜의 웃는 얼굴 같습니다. 토끼 머리에 은혜 얼굴이 겹쳐집니다. “내가 널 얼마나 좋아하는지 알지? 몰라?” 나는 중얼거렸습니다. 은혜가 고개를 끄덕이는 것 같기도 하고 가로젓는 것 같기도 합니다. 토끼는 이파리를 다 먹고 나서 줄기까지 와삭와삭 소리를 내면서 뜯어 먹습니다. --- p.137 은혜가 발걸음을 멈추고 섰습니다. 내가 은혜 곁을 지나치려는 순간, 은혜가 다시 발걸음을 떼놓기 시작했습니다. 은혜는 나와 나란히 걷고 싶었나 봅니다. 가슴이 두근두근 빠르게 뛰었습니다. 아무 말 없이 마을마당까지 와서 은혜는 자기 집이 있는 골목을 향해 몸을 돌렸습니다. 그리고 밝은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하여간 결승전에서 철승이가 잘했으면 좋겠다. 그래야 체육학교에 갈 수 있잖아! 그럼 너와 내가 나란히 응원을 하러 갈 수도 있을 테고.” 가슴이 쿵 소리를 내면서 떨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도대체 무슨 뜻일까요. 손을 흔들면서 어두워진 골목길로 멀어져가는 은혜의 뒷모습을 오랫동안 바라보았습니다. 철승이가 체육학교에 가는 것을 바라는 것일까요? 아니면 나와 함께 철승이 경기를 응원하러 가고 싶어 하는 걸까요? --- p.165 |
영광이는 평양 사동소학교 4학년입니다. 영광이네 집은 어머니가 몸이 편찮아 직장에 다니지 못함에도, 아버지가 인민군 대좌인지라 살림은 넉넉한 편이지요. 영광이는 공부도 잘해 학교 시험에서 매번 최우등을 받습니다. 영광이에게는 4년째 단짝으로 지내는 철승이가 있는데, 시험 때마다 낙제를 받고 위생검열에도 매번 걸립니다. 부모가 협동농장에서 일하는 가난한 집 아이로, 곽밥(도시락)을 싸 오지 못해 점심시간이면 식수대로 달려가 찬물을 들이킵니다. 하지만 축구 실력만큼은 으뜸이라서 학교를 대표하는 선수로 뛰는 아이지요. 영광이와 철승이에게는 꼬마과제(북한 어린이들의 노동의 의무)로 키워야 하는 토끼들이 있습니다. 그 토끼에게 먹일 풀을 뜯으려고 다른 아이들 몰래 토끼풀 언덕을 알아내 비밀기지로 삼아 두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철승이 동생 철구가 한 무리의 아이들을 이끌고 토끼풀 언덕으로 찾아옵니다. 영광이에게는 그 아이들 중에서 은혜라는 아이가 눈에 띕니다. 얼마 전 담배 공장 노동자들을 위한 선전선동 활동(위문 공연)에서 춤을 추기도 했던 은혜인데 무용하는 애답지 않게 뻣뻣하며 얼굴도 까무잡잡했던 것을 기억합니다. 비밀기지에 왜 아이들을 데려왔냐고 동생을 닦달하는 철승이에게 은혜는 눈을 부라리며 맞섭니다. 그날 이래로 영광이에게는 선머슴 같은 은혜의 얼굴이 자꾸만 떠오릅니다. 철승이를 골려 주려고 토끼풀 언덕에 여기저기 풀 고리를 만들어 놓을 때도, 문수유희장(놀이공원)에 놀러 갔을 때도 영광이는 은혜와 계속 마주칩니다. 평양외국어학원에 가기 위해서는 영어 공부를 미리 해두어야 한다는 어머니의 성화에 영광이는 억지로 영어책을 펴게 되는데, 평양예술학원 진학을 바라는 은혜가 영어를 가르쳐 달라고 하자 이제 은혜를 만날 기대에 부풀게 됩니다. 축구 학교 대항전이 있는 날, 사동소학교 전교생이 응원을 하러 나옵니다. 모란봉청소년체육학교 축구 학급에 들어가고픈 철승이에게는 실력을 힘껏 발휘해야 할 중요한 경기이지요. 결국 철승이의 결승골로 사동소학교의 승리가 확정되고, 응원하던 아이들은 모두 운동장으로 쏟아져 나옵니다. 영광이도 철승이가 있는 자리로 뛰어가려는 찰나, 거기서 서로 얼싸안고 기뻐하는 철승이와 은혜의 모습을 목격하고는 재빨리 돌아서 버립니다. 그때부터 영광이는 단짝인 철승이와 말 한마디도 나누지 않습니다. 은혜와 철승이 문제로 괴로워하던 영광이는 그만 꼬마과제로 키워야 하는 토끼를 잃어 버리고 맙니다. 영광이는 곧 다가올 토요일 생활총화 시간에 자신과 경쟁 관계에 있는 사회안전부장(경찰서장) 아들 선봉이로부터 호상비판을 받게 될까 걱정하기 시작하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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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이 상상하는 북한 친구들의 일상, 어떤 모습인가요?
보수 단체가 북녘 하늘로 살포하는 대북 전단, 이른바 삐라 문제가 뉴스에 자주 보도됩니다. 새삼 과거에 북한이 살포한 삐라를 주워 파출소 등지에 가져다주면 책받침이나 자와 같은 문구를 받아 오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 책받침에는 으레 ‘간첩을 식별하는 방법’을 칸칸이 소개하는 만화가 그려져 있곤 했지요. 간첩이라든지 무장공비, 땅굴,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등으로 상징되는, 남북 대결이 첨예하던 냉전시대에 초등 교육을 받았던 사람들은 〈간첩 잡는 똘이장군〉과 같은 만화에서처럼 북한 사람은 모두 인민군이거나 늑대인 줄 알았던 때가 다들 있을 겁니다. 그 시절의 학생들이 이제 성인이 되었고 또 세계적으로 냉전시대가 종식되었다고는 합니다만, 우리 사회가 떠올리는 북한 사람의 이미지는 여전히 단순하고 일면적입니다. 당에 충성하는 열성적인 당원의 이미지라든가, 배고픔에 허덕이는 노동자의 이미지, 북한 정권의 체제 선전에 동원되는 학생들 이미지 등등, 그 각각은 일말의 진실을 담고 있긴 하지만 북한 사람들이나 그 삶을 입체적이고 생생하게 그려 내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탈냉전의 시대에 태어난 요즘 아이들은 북한 사람들에 대해, 혹은 같은 또래인 북한 아이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요? 요즘 아이들은 간첩 침투, 무장공비 사건이나 뜨거운 눈물을 쏟아 내는 이산가족 상봉 장면에 노출되지 않은 세대이지요. 기성세대에게서 특정의 북한 이미지가 고착화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면, 요즘 아이들에게서는 북한에 대해 어떤 하나의 경향적인 이미지를 가졌다기보다는 오히려 ‘무관심’에 가까운 태도를 보이는 것 같습니다. 사회적으로 남북 대결 구도가 완화되기도 하였거니와 초등학교 교육과정에서 영어 수업이 강화되고 학원과 과외 등의 사교육 열풍이 몰아치면서 요즘 아이들에게 통일이나 북한과 관련한 이슈는 뒷전으로 밀리는 것이 어쩌면 당연할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그저 북한 아이들은 자신과는 다르게 살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 정도만 할 뿐이겠지요. 북한 친구들의 말과 생활상으로 그려본 ‘북한 어린이 생활동화’ 만나기! 이 책 『내 마음 들키고 싶지 않아』는 이런 우리 아이들에게 북한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려주고자 기획되었습니다. 그동안 북한의 생활상을 다룬 형식의 책들은 많았으나 대부분 정보 전달의 역할에만 치중해 결과적으로 ‘보고서’ 형식이 돼 버린 경우가 많았습니다. 북한 아이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해 그 아이들의 상황이나 배경을 풀어가는 창작동화 형식으로는 이 책에서 최초로 시도된 것입니다. 이래서 ‘북한 어린이 생활동화’입니다. 지은이 김진섭 작가는 북한 용천 열차 폭발 사고 현장을 담은 위성사진에서 이 이야기의 단초를 얻었습니다. 폭발 사고로 허물어진 소학교 터에 텔레토비가 그려진 가방이 흩어져 있는 걸 보고, 자연스레 그 가방을 메고 다닐 북한 아이들의 모습을 강렬하게 떠올렸던 겁니다. 그때부터 인터넷과 도서관을 뒤지며 북한 어린이들에 관한 자료들을 모으고 정리하며 이야기의 뼈대를 하나 둘씩 세워 나갔습니다. 이 책에서는 그런 북한 아이들의 모습이 그려집니다. 출신성분이 좋은 사람들만 살 수 있다는 평양에서든, 아니면 평양에서 멀리 떨어진 농촌 지역에서든, 어느 학교, 어느 학급에나 잘사는 집 아이와 못사는 집 아이가 있기 마련이지요. 북한으로 치자면 당 간부 집 아이와 협동농장 농부의 아이가 될 겁니다. 그리고 그 사이에는 질투도 있고 우정도 있을 겁니다. 아이스크림을 좋아하고, 엄마에게 투정 부리며, 친구들과 다투기도 하고, 맘에 드는 아이에게 고백도 못 하고 혼자 가슴앓이하는 모습. 남한의 아이들과 하등 다를 게 없는 익숙한 모습 아닌가요? 이 책을 읽다 보면 북한에서 소학교 학생으로서 살아가는 것이란 어떤 모습일지 자연스레 머릿속에 그려질 것입니다. 그와 더불어 ‘내가 만약 북한에서 태어났다면?’ 하는 역지사지의 입장에서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북한 친구들도 우리와 똑같다고요! 체제가 다르다고 해서, 어려서부터 받는 교육이 다르다 해서, 북한 아이들에 대한 선입견을 갖기 쉽습니다. 외부 방문객들을 맞이하기 위해 공연을 펼치는 학생소년궁전의 아이들이나 집단체조 아리랑 공연에 동원된 아이들을 보여 줘 경직되고 폐쇄적인 북한 사회의 모습만을 부각시키는 매스컴의 보도도 이에 한몫하고 있습니다. 북한 사회에 대한 이러한 몰이해는 서로 간의 대화와 협력에 걸림돌이 될 뿐입니다. 북한 아이들의 말과 현실 상황을 반영해 구현해 본 이 작품이 궁극적으로 의도하는 바는 명확합니다. 북한의 아이들 역시 남자친구 또는 여자친구 문제로 고민하고, 상급학교 진학과 미래를 걱정하는, 우리와 다를 바 없는 똑같은 아이들이라는 점입니다. 여러 계기로 북한을 다녀온 이들 중에는 북한 사람들이 우리와 “너무 똑같아서도 놀라고 너무 달라서도 놀란다”라고 하는 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동안 우리는 ‘서로 다름’에 지나치게 많은 관심을 쏟은 나머지 ‘서로 같음’에는 주의를 기울이지 못했습니다. 때론 그 ‘서로 같다’는 사실을 애써 외면하기도 했지요. 통일 후, 아니면 통일 전에라도 남북 간의 교류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서로 왕래가 잦아질 경우, ‘서로 다름’으로 인한 갈등과 오해와 반목을 해소하려면 ‘서로 같음’에 대한 이러한 이해와 공감이 먼저 이루어져야 하지 않을까요? 이 책은 앞으로 다가올 그날의 주역이 될 지금의 아이들에게, 북한에는 우리와 같은 말을 쓰고, 수천 년 동안 전해 내려온 같은 문화, 같은 핏줄을 가진 친구들이 살고 있음을 느끼게 해 주고자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