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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노래
2 상자 3 가족 4 빨래 5 꽃 6 사진 7 수의 8 유서 9 친구 10 신문 11 휴대폰 작가의 말 |
글유은실
그림강경수
“비밀 상자는 물려주면 안 돼?”
“그건 안 돼. 죽으면 이……벤트 할 때 써야지.” “죽으면 이벤트?” “응.” “죽었는데 무슨 이벤트를 해?” “장례식이 이벤트지 뭐야. 휴우…… 인생 졸업식인데 그냥 보내? 내가 죽으면…… 이벤트 하라고 준비한 거야.” _본문 중에서 반짝이는 은하수를 건너 하얀 쪽배를 타고 서쪽으로 건너간 할아버지의 아름다운 이벤트 유은실은 등단 이래 10여 년 동안 한국 아동문학에서 저학년, 고학년, 단편, 장편을 망론하고 동화의 모든 연령대에서 전범(典範)이 될 만한 작품을 부지런히 출간, 출간하는 작품마다 문단의 집중적인 조명 및 독자들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한국 아동문학을 대표할 만한 작가로 자리 잡았다. 장편동화 『일수의 탄생』,『나의 린드그렌 선생님』,『우리 집에 온 마고 할미』등을 통해 때론 따듯한 유년동화의 진수를, 때론 아이의 눈으로 보는 어른 세상에 대한 신랄한 풍자를 보여 주었다. 연작 동화집 『우리 동네 미자 씨』에선 어른을 주인공으로 외로움을 이야기했고, 저학년 동화 『나도 편식할 거야』,『나도 예민할 거야』에선 너무 많이 먹거나 너무 예민하지 않은 주인공 여자아이의 이야기를 코믹발랄하게 그려냈다. 카멜레온처럼 작품마다 보여 주는 다양한 색깔의 변신은 특히 단편동화에서 그 정점을 찍는다. 단편집『만국기 소년』은 한국어린이도서상을 받았고,『멀쩡한 이유정』은 국제아동도서 협의회 주최 2년에 한 번씩 가장 뛰어난 글작가에게 수여되는 상인 IBBY 어너리스트로 선정되기도 했다. 단편집『내 머리에 햇살 냄새』역시 세련되면서도, 아이의 입장을 대변하는 작가의 역량을 유감없이 보여 주었고, 2012년 학교도서관저널 선정 ‘올해의 어린이책’으로 뽑히기도 했다. 유은실 동화의 가장 큰 매력은 모든 세대가 아우를 수 있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는 점이다. 어떤 세대가 읽어도 자기만의 이야기라고 느낄 수 있을 만큼 여러 세대가 읽어도 좋다.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읽힐 수 있는 이야기의 힘에는 바로, 어른인 작가이지만 늘 상상력의 기저에는 자신의 어린 시절, 그리고 어린이들과 마음이 닿아 있기 때문이다. 어린이와 어른은 서로 상통한다는 얘기만큼, 동화만큼 어린이와 어른이 서로 소통할 수 있는 매력적인 매체도 없을 것이다. 웃기고 울리는 장례식 이야기 이야기는 크게 두 부분으로 이루어진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의 앞부분과,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 입관식이 있기까지 장례식장에서 일어난 이틀간의 이야기가 뒷부분이다. 영욱이네 식구는 할아버지와 함께 산다. 젊은 시절 워낙 사고를 많이 쳐서 할아버지에 대한 식구들의 신뢰도는 바닥이다. 심지어 할머니조차 할아버지와 이혼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재혼하셨다. 하지만 할아버지와 한 방을 쓰는 영욱이에게는 세상에서 둘도 없이 친한 친구다. 남들이 다 손을 내젓는 할아버지의 입 냄새도 영욱이에겐 별게 아니다. 어린 시절부터 할아버지의 이마는 푸른 하늘, 검버섯은 은하수라고 부르며 할아버지의 늙은 모습도 소중하기 그지없다. 식구들에게 수시로 곧 죽을 것 같다며 양치기 소년처럼 거짓말을 한 탓에, 정작, 자신의 죽음을 예감한 마지막 순간에는 식구들 중 아무도 할아버지의 죽음을 곁에서 지키지 않게 되고, 오직 영욱이만이 함께한 할아버지의 마지막은 쓸쓸했다. 쓸쓸한 분위기 가운데 자신의 마지막을 위해 할아버지가 준비한 특별한 ‘이벤트’ 덕분에 영욱이네 가족은 그야말로 한바탕 소란을 치른다. 할아버지의 장례식에서 영욱이는 여태껏 경험하지 못했던, 장막이 한풀 걷혀진 어른 세계를 만나게 된다. 어떻게 보면 유치하고, 우스꽝스러운 모습들이다. 조의금 몇 푼에 관계를 재고, 가족의 죽음에도 남의 눈을 의식하는 어른들의 세상은 한마디로 영욱이 눈엔 ‘웃픈’ 현실 그 자체다. 영욱이 시선에 꽂힌 이런 모습들이야말로, 작가 유은실만이 보여 줄 수 있는 미덕이다. 꽃, 사진, 수의, 유서 등의 장 제목 순서대로 진행되는 장례식 현장의 모습은 장례식이라는 과정을 객관적으로 알려 주며 밀도 있게 그려진다. 그런 과정 저 밑바닥에는 영욱이의 시선을 통해 삶에 대한 철학적인 메시지가 담겨 있다. 죽음의 슬픔과 배고픔이 공존하는 장례식 현장은, 삶이라는 게 어느 한쪽으로만 재단될 수 없는 것이고, 동시에 사람 역시 좋고 나쁨 어느 한 면으로 판단할 수 없고 다만 그 사람 자체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추억해 나가는 그 사실 자체가 얼마나 값진 것인지 얘기해 준다. 할아버지의 인생 자체는 성공이라고 말할 순 없지만, 어떤 세월을 살아낸 그 누군가를 한 번쯤 이해해 보려는 노력 자체는 소중한 것이다. 할아버지와 손자라는 애틋한 사이는 두 세대 중간에 낀 어른들의 우스꽝스러움을 살짝 비웃고 풍자하면서도, 그 또한 보통 사람들의 자화상임을 얘기한다. 어린이의 눈높이로 담아낸 이 풍경은, 어린이에서부터 성인까지 모든 세대의 가슴 한구석에 뭔가를 남겨 놓는, 이 이야기만의 힘이라 할 수 있다. 두 할머니의 선물 『마지막 이벤트』는 두 할머니가 내게 주신 마지막 선물이다. 외할머니가 준비했던, 그 장엄하고 통쾌한 수의가 아니었다면 쓰지 못했을 것이다. 실수투성이 삶을 살았다고 해도 죽음 앞에서는 따뜻하게 이해받았으면 좋겠다. 사랑받지 못해서 힘들었을 거라고, 속 깊은 영욱이처럼 헤아려 주면 좋겠다. 책 안팎에서 삶과 죽음을 가르쳐 주신 분들께 감사드린다. -「작가의 말」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