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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의 말_살아 있는 소설가가 할 수 있는 일_장강명
학교를 사랑합니다: 자퇴 전날_이기호 킬러 문항 킬러 킬러_장강명 구슬에 비치는_이서수 그날 아침 나는 왜 만 원짜리들 앞에 서 있었는가_정아은 다른 아이_박서련 소나기_서윤빈 덜 싸우고 덜 상처받는 전략_정진영 대치골 허생전_최영 한 바퀴만 더_주원규 민수의 손을 잡아요_지영 지옥의 온도_염기원 지나간 일_문경민 우리들의 방과 후_서유미 김남숙_김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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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는 그게 사실상 나에게 주어진 마지막 기회라고 말했다. 지금 자퇴를 하고, 검정고시를 보고, 검정고시 만점을 못 받으면 다시 정시로 가는 일정.
“아빠가 큰마음 먹은 거야. 여기 학원비가…….” 엄마의 말에 따르면 학원비가 한 달에 400만 원 가까이 든다고 했다. 먹고 자고 관리하는 비용까지 모두 합쳐서. “아빠는 네가 지금 자퇴했으면 좋겠어. 그게 현명한 일이야.” ---「이기호, 〈학교를 사랑합니다: 자퇴 전날〉」 중에서 입시 컨설턴트들은 킬러 문항을 죽인 존재라는 의미로 정부를 ‘킬러 문항 킬러’라고 불렀다. 그러면서 자신들은 바로 그런 정부를 죽이는 존재라며 ‘킬러 문항 킬러 킬러’라고 소개했다. 사교육 시장을 이길 수 있는 정부는 없다고 했다. ---「장강명, 〈킬러 문항 킬러 킬러〉」 중에서 우리나라가 왜 이렇게 자살률이 높은지 아세요? 뭐든 줄을 세워서 그런 거예요. 가장 돈 많이 버는 직업, 오로지 성공만을 위해 달려가는 인생이 뭐가 그리 즐겁겠습니까. 그리고 대부분은 낙오하기 마련이에요. 모든 아이가 의사가 될 수는 없다고요. ---「이서수, 〈구슬에 비치는〉」 중에서 이 시가 어떤 느낌인가, 이 글을 어떤 어조로 낭독해야 하는가, 이런 게 세상에서 제일 쓸데없는 고민이거든? 시에 자기 느낌을 가지면 안 된다, 그게 대한민국 국어 교육의 핵심이라고! 대체 몇 번을 말해줘야 하니? ---「정아은, 〈그날 아침 나는 왜 만 원짜리들 앞에 서 있었는가〉」 중에서 네가 내 기분을 알아? 아직 초등학교도 안 들어간 아들이 게이일지도 모르는 부모의 심정을 알아? 그렇게 소리치고 싶었지만 참았다. 참으면서 다른 무슨 말이라도 떠올려보려 애썼지만 잘되지 않았다. 어렵사리 짜낸 말은 겨우 이랬다. “선생님은 우리 애가 게이라고 생각하세요?” ---「박서련, 〈다른 아이〉」 중에서 선생은 그날 입학식에서 신입생들을 모두 강당에 불러놓고 저주인지 응원인지 모를 말들을 늘어놓았다. 그에 따르면 첫 학기에 전교 4등 안에 든 애들로 특별반을 만들 거라고 했다. 특별반에 든 애들에게는 대입을 위한 대대적인 지원을 할 예정이며 거기에 못 들면 대입은 망한 거나 다름없다고 했다. 그러나 선생의 열변에도 불구하고 듣는 애들은 거의 없었다. ---「서윤빈, 〈소나기〉」 중에서 매년 실용음악과를 졸업하는 학생이 몇 명인 줄 아니? 걔들 몇 명 빼고 다 백수야. 그런데 서울대학교를 나오면! 음악으로 성공하지 못해도 다른 길이 생긴다니까? 든든한 보험이야. 음악 말고 다른 공부도 하니까 더 좋은 음악을 만들 수 있는 교양도 쌓이고. ---「정진영, 〈덜 싸우고 덜 상처받는 전략〉」 중에서 공부에는 왕도가 없지만, 시험에는 왕도가 있습니다. 입시는 공부를 하는 것이 아니라 시험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많은 수험생이 시험을 준비하기 위한 암기에 매진하지 않고, 순수한 공부를 위한 이해에 매진하고 있으니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최영, 〈대치동 허생전〉」 중에서 어머니, 외국어고등학교나 과학고등학교 출신이 아닌 대안학교 출신 애들은 안 받아요. 그건 우리 학원계의 상식이고 기본이에요. 지금 이런 얘기를 하는 저 자신이 다 창피해지네요. ---「주원규, 〈한 바퀴만 더〉」 중에서 콧물은 줄줄 흐르고 침 삼킬 때마다 목이 찢어질 듯 아팠는데도 수는 헤헤 웃었다. 학교에 안 가도 되니까, 구구단을 외웠는지 검사를 안 받아도 되고 받아쓰기 시험을 안 볼 수도 있으니까. 38.5, 39.1, 39.8, 40.3. 체온계 숫자가 올라갈 때마다 웃는 데에는 다른 이유도 있었다. 수의 세계에서 높은 숫자는 잘한다는 뜻이었다. ---「지영, 〈민수의 손을 잡아요〉」 중에서 아빠가 말했잖아. 세상은 총성 없는 전쟁터라고. 너랑 네 엄마가 어떻게 대한민국에서 가장 좋은 아파트에 살 수 있었니? 아빠가 서울대학교 나왔으니까! 그 치열한 대치동에서 일타강사가 됐으니까! 난다 긴다 하는 집안 애들도 대기 번호를 받고 기다려야 들어가는 학원을 차렸으니까! ---「염기원, 〈지옥의 온도〉」 중에서 통화의 시작은 냉랭했으나 몇 마디 주고받은 뒤로는 둘 다 자기 아들을 변호하기 바빴다. 거친 감정이 오가던 통화 끝에 지영은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이 일로 자신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아느냐고, 잠도 못 자고 밥도 못 먹고 아이를 학교에 보내놓고 기도하는 심정으로 하루를 보낸다고 했다. 그 말에 정후 엄마는 싸늘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우리 애도 그쪽 애 때문에 힘들었어요.” ---「문경민, 〈지나간 일〉」 중에서 서진은 사춘기라서 쓸데없는 얘기를 하는 게 아니라 인생에 대해 궁금한 것이 많아졌다. 공부와 상관없고 해답이나 정답이 없어 보이는 것들에 대해 좀 더 알고 싶고 얘기하고 싶어졌다. 그런데 학교나 학원 모두 그런 것에 대해서는 가르쳐주지 않았다. ---「서유미, 〈우리들의 방과 후〉」 중에서 사랑이 혐오를 이긴다는 얘기에 대다수가 고갤 끄덕일 때쯤 김남숙과 다시 눈이 마주쳤다. 왜 또, 하는 순간에 눈물이 핑 돌았다. 나에 대해 뭘 안다고, 하는 순간에 나를 알아봐주는 사람과 한 교실에 있다니, 몸이 떨리는 것이 느껴졌다. ---「김현, 〈김남숙〉」 중에서 |
“규정을 다 지키며 사는 사람은 경쟁에서 점점 밀려나
나중에는 아예 게임에 끼질 못하게 돼” 모두를 피해자로 만드는 구조의 부조리함 《킬러 문항 킬러 킬러》의 첫 소설인 이기호의 〈학교를 사랑합니다: 자퇴 전날〉에서 성적이 좋지 않은 고등학생 ‘나’는 부모로부터 자퇴와 검정고시를 권유받는다. 검정고시 만점이 내신 2등급으로 반영되므로 자퇴가 입시에 더 유리하리라는 판단 때문이다. 그러자 ‘나’를 대신하여 반대해주리라 믿었던 학교 측에서는 “그것도 좋은 방법이지”라며 자퇴를 적극 옹호한다. 학교가 학생의 대입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제 역할 수행마저 포기하는 교육 현실이 기이하다. 장강명의 〈킬러 문항 킬러 킬러〉에서는 수능 시험일 아침 한 소년이 부모로부터 수백만 원을 주고도 구하기 어려운 ‘집중력 강화제’를 건네받는다. 학생 변별을 위해 출제되던 킬러 문항이 수능에서 배제됨으로써 상대적으로 쉬운 문제를 빠르게 푸는 방식이 성공 전략으로 떠오른 탓이다. 긴장하면 덤벙대는 자식이 실수라도 할까 봐 불안한 부모와 반칙을 저지르면서까지 친구들과 경쟁하고 싶지 않은 소년의 대립은 끝내 생각지도 못한 반전으로 이어진다. 정진영의 〈덜 싸우고 덜 상처받는 전략〉은 뛰어난 작곡가가 되고 싶다는 아들에게 엄마가 자율형사립고등학교 진학을 권하는 이야기이다. 음악을 하고 싶다면 명문대에 꼭 들어가야 한다는, 그것이 음악으로 실패하더라도 든든한 보험이 되어주리라는 엄마의 말에는 일견 납득되는 부분이 있다. 그렇지만 “작곡을 배우고 싶을 뿐” “내가 원하는 건 두리고와 서울대학교가 아냐”라는 아들의 항변에서 우리는 자식을 위하는 부모의 마음이 실제로는 일방적인 억압으로 작용할 뿐임을 여실히 볼 수 있다. 자녀의 성공적인 입시를 위해서라면 부정행위나 겁박마저 불사하는 부모들의 모습은 기실 누구보다 자식의 안위와 행복을 바라는 마음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이러한 부모들의 심정을 과연 비난만 할 수 있을까. 《킬러 문항 킬러 킬러》는 작금의 현실 속에서 자녀에 대한 애정이 깊을수록 가해자가 될 수밖에 없는 부모의 모순을 예리하게 포착해낸다. 실패자가 되지 않으려면 부조리한 인간이 될 수밖에 없는 구조를, 그로 인해 모두가 피해자일 뿐임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몇십 년 뒤에 이 문제를 바라볼 후대의 눈에는 정답이 선명하게 보일까?” 오늘날의 교육 현실을 소설로 쓰다 이서수의 〈구슬에 비치는〉에서는 과도한 학습에 지친 아이와 상담을 나눈 담임선생이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 올린 영상 이야기가 나온다. 그 영상 속에서 담임은 “돈을 더 많이 벌 수 있으니까 무조건 의사가 되어야 한다고 말하면 아이들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어른들이 이상한 짓을 하니까 아이들이 행복하지 않은 거예요”라며 상기된 얼굴로 항변한다. 학생의 괴로움을 지켜보면서도 이를 도울 수 없는 교사의 무기력한 위치를 정확하게 짚어낸 것이다. 주원규의 〈한 바퀴만 더〉는 엄마 ‘윤’이 학교폭력 피해자인 아들을 시골의 대안학교로 전학시켰다가 다시 대치동으로 돌아와서 겪게 되는 곤란을 다룬다. 소수 정예를 내세우는 학원들이 하나같이 외국어고등학교나 과학고등학교 출신만을 받아주기에 아들이 다닐 수 있는 학원이 한 곳도 없게 된 것이다. 엄마 때문에 자신은 ‘루저’가 될 거라는 아들의 비난에 ‘윤’은 혼란과 자책감을 느끼며 대치동 학원가를 돌고 또 돈다. 문경민의 〈지나간 일〉에서도 학교폭력은 당사자인 자녀뿐 아니라 부모에게 깊은 상처를 남긴다. 사건 당시 가해자 학생의 엄마와 피해자 학생의 엄마는 제 자식을 감싸느라 서로 날선 감정을 주고받았다. 아이를 학교에 보내놓고 매일 기도하는 심정으로 지낸다는 말에 “우리 애도 그쪽 애 때문에 힘들었어요”라고 응수하며 각자의 어려움만 토로한 것이다. 오랜 시간이 흐른 뒤 우연히 다시 마주친 두 사람은 “무엇이라 명명할 수 없는 뒤엉킨 마음”이 여전히 남아 있음을 느낀다. 한편 박서련의 〈다른 아이〉는 영어 유치원에서 남자아이끼리 커플로 소꿉놀이를 하는 바람에 벌어진 소동을 다룬다. 외국인 교사가 뭘 모르고 저지른 일이라 여긴 엄마 ‘나’는 이에 항변하러 ‘마이클’을 찾아간다. “아직 정체성이 확실하지 않은 아동들에게 그런 식으로 성소수자 역할을 맡기는 건 무책임하다고” 따져 묻는다. 그러자 마이클은 고개를 갸웃하며 알 수 없는 웃음만 지어 보인다. “난생처음 듣는 외국어처럼” 생경하게만 느껴지는 질문을 되돌려준다. 이렇듯 현재 한국문학 내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소설가 14인이 써 내려간 이야기는 저마다 날카로운 시각과 뜨거운 쟁점을 내포하고 있다. 생동감 넘치는 인물과 구성으로 교육 현실의 풍경들을 핍진하게 묘사한다. 그렇다면 입시 제도가 이 모든 문제의 원인일까? 주입식 교육과 시험만능주의 때문일까? 학벌을 따지는 문화 탓일까? 부모들의 욕망 때문일까? 정권에 따라 갈팡질팡하는 교육 정책과 이를 악용하는 사교육 탓은 아닐까? 정답은 알 수 없지만 이제 우리는 이러한 논점들을 외면하지 말고 하나하나 곡진히 들여다봐야 한다. “혼란스러운 질문들을 마주하는 것.” 《킬러 문항 킬러 킬러》는 바로 그러한 시선에, 우리가 함께 찾아내야 할 교육의 미래에 긴요한 안내서가 되어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