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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를 판 사나이
오빠가 돌아왔다 크리스마스 캐럴 너를 사랑하고도 이사 너의 의미 마지막 손님 보물선 해설 / 김태환 작가의 말 |
Kim Young-Ha,金英夏
오빠가 돌아왔다. 옆에 못생긴 여자애 하나를 달고서였다. 화장을 했지만 어린 티를 완전히 감출 수는 없었다. 열일곱 아님 열여덟? 내 예상이 맞다면 나보다 고작 서너살 위인 것이다. 당분간 같이 좀 지내야 되겠는데요. 오빠는 낡고 뾰족한 구두를 벗고 마루에 올라섰다. 남의 집 들어오기가 어디 그리 쉬운가. 여자애는 오빠 등뒤에 숨어 쭈뼛거리고 있었다. 오빠는 어서 올라오라며 여자애의 팔을 끌어당겼다. 아빠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둘을 바라보다가, 내 이 연놈들을 그냥, 하면서 방에서 야구방망이를 들고 뛰쳐나와 오빠에게 달려들었다. 오빠의 허벅지를 노린 일격은 성공적이었다. 방망이는 오빠허벅지를 명중시켰다. 설마 싶어 방심했던 오빠는 악, 소리를 지르며 무릎을 꺾었다. 못생긴 여자애도 머리를 감싸며 비명을 질렀다. 그러나 계속 당하고 있을 오빠는 아니었다. 아빠가 방망이를 다시 치켜드는 사이 오빠는 크레코로만형 레슬링 선수처럼 아빠의 허리를 태클해 중심을 무너뜨렸다. 그러고는 방망이를 빼앗아 사정없이 아빠를 내리쳤다. 아빠는 등짝과 엉덩이, 허벅지를 두들겨맞으며 엉금엉금 기어 간신히 자기 방으로 도망쳐 문을 잠갔다. 나쁜 자식, 지 애비를 패? 에라이, 호로자식아. 이런 소리가 안방에서 흘러나왔지만 오빠는 못 들은 체 하고는 여자애를 끌고 건넌방으로 들어가버렸다. 물론 방망이는 그대로 든 채로였다.
---pp. 43~44 |
작가의 말
투망을 던지듯 소설을 쓰던 때가 있었다. 요새는 뭐랄까. 낚싯대를 던져놓고 물끄러미 찌를 바라보고 있을 때가 더 많다. 고기야 물려라. 안 물리면 할 수 없고. 그런 마음으로 살아서일까. 5년 만에 소설집을 묶게 되었다.
낄낄거리며 즐겁게 쓴 소설도 있고, 인간이란 왜 이 정도밖에 안되도록 생겨먹은 것일까, 갈피마다 호흡을 고르며 울적하게 써내려간 소설도 있다. 여러 색채의 소설들이 한 두리에 모여 있지만 한가지 분명한 건, 나도 모르는 새 이미 어딘가 멀리 흘러왔더라는 것이다. 요즘은 냉소보다는 아이러니, 반전보다는 딴전에 더 마음을 뺏긴다. 딴전. 이 얼마나 귀여운 말인가. 제임스 조이스는 언젠가 소설을 손톱깎이에 비유한 적이 있다. 손톱을 깎으며 이러쿵저러쿵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듯, 너무 집중하지도, 괜히 심각해지지도 말며 에둘러가라는 뜻이었겠지. 「너를 사랑하고도」의 마지막에 화자의 입을 빌려 나는 이런 말을 하고 있다. “……뭔가 나아지겠지. 나는 애써 낙관적으로 생각하며 한단어 한단어에 집중하며 앞으로 전진했다. 어휘와 문장의 숲에서 벌이는 이 전투가 과연 언제 끝날지 도저히 가늠할 수 없었다.” 교정을 보다 문득 지금의 심사에 어울린다 싶어 끼워넣는다. 추운 날에 아내가 가자미를 굽고 있다. 온 집안에 고소한 냄새가 퍼진다. 아, 또 한 고비 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