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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르르르……
잘난 당신을 쓰러뜨리고 말겠어 럼 창백한, 너무도 창백한 펌 그가 내게 편지를 썼다 펌 그는 도착할 것이다. 그가 그렇게 말했으므로 펌 무한한 어려움 흠므므 조심하라 라리라 패배자(아레펜티다) 리 헝가리인들에게 고함 롬 숨은 자들은 모두 연주용 참고 자료 이어서 럼, 펌, 펌, 펌, 흠므므, 라리라, 리, 롬 럼, 펌, 펌, 펌, 흠므므, 라리라, 리, 롬 럼?라리라, 리라롬 트르르르 다 카포 알 피네 |
저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
관심작가 알림신청Krasznahorkai Laszl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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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노승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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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자네들을 사랑하지도 미워하지도 않고 내가 보기에 자네들은 모두 지옥에 갈 것이고 하나가 쓰러지면 다른 누군가가 그 자리를 차지할 것이며 나는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가를 미리 보고 미리 들으며 그것에는 기쁨도 위안도 없을 것이기에 이 같은 것은 무엇도 다시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요, 내가 자네들, 악사들과 함께 무대에 오를 때 이 임무가, 가능성에 입각한 이 임무가 결실을 거두더라도 나는 조금도 만족하지 않을 것이며 작별 인사차 자네들에게 말해두고 싶은 것이 있으니 나는 음악을 좋아하지 않는데, 달리 말하자면 고백하건대 우리가 지금 여기서 함께 만들어내려는 것을 전혀 좋아하지 않는데, 나는 여기서 모든 것을 감독하는 자요, 무엇도 창조하지 않고 그저 모든 소리 앞에 존재하는 자요, 신의 진리에 따라 이 모든 것이 끝나기를 그저 기다리는 자이기 때문이다.
---pp.16~17 일등칸에서 처음으로 혼자였으며 한 손으로는 여행 가방을 움켜쥐고 다른 손으로는 작은 테이블을 꼭 쥐고서 그들을,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여인과 어린아이를 그저 바라본 것은 여인이 아이의 사진을 찍고 싶어 하는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며 이를 위해서는 해가 비치는 지점에 그가 서 있어야 했는데, 이 해는 끊임없이 그들을 희롱하며 돌아다녀 양달이 나타났다가도 카메라가 준비되었을 즈음이면 아이는 그늘에 서 있는 신세가 되었으며 둘이 방금 나타난 또 다른 양달로 가도 작업을 끝내기 전에 햇빛이 사라지는 탓에 남작은 그들에게서 눈을 뗄 수 없었으며 아이가 고분고분하게 여인을 따라 이 지점으로 저 지점으로 가고 이따금 철로 사이로 안내되는 광경을 보았으니 그는 양달에 세워졌으나 햇빛은 끊임없이 그의 위에서 사라졌으며 갑자기 기차가 덜커덩거렸으나 움직이지는 않고 그곳에 가만히 서 있되 마치 어떤 기술적 결함이 생긴 것처럼 서 있었으나 기술적 결함은 없었던 것이, 1분 뒤에-엄청나게 달그닥달그닥 덜커덕덜커덕 삐그덕삐그덕 끼익끼익거리며-기차는 자신이 움직일 수 있음을 아주 느리게 보여주기 시작했으며 그가 여행 가방을 놓고 작은 테이블에서도 손을 뗀 것은 그들을 보고 싶다면 계속 몸을 돌려야 했기 때문으로, 그는 정말로 그들을 보고 싶었으며 마지막 순간까지도 저 어린아이와 여인을 보고 싶었으나 테이블에서 손을 떼도 허사였고 몸을 돌려도 허사였던 것은 그들이 시야에서 금세 사라졌기 때문이며 어차피 그가 볼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었던 것은 그의 눈이 눈물로 가득했기 때문이나 기차가 시커먼 배차실 앞을 지날 때 그는 눈에서 눈물을 닦고 아까만큼 힘주어 쥐어짜지는 않았어도 다시 한번 여행 가방과 작은 테이블을 움켜쥔 채 창밖을 내다보지 않은 것은 실내를 응시하고 있었기 때문으로, 그는 더럽고 번들거리는 바닥을, 바닥에 붙박여 있으려는 악어가죽 구두를 바라보고 있었다. ---pp.179~180 지금까지 아마도 일주일간 남작은 잔심부름꾼에게 부치게 할 편지 한 통을 쓰고 또 쓰고 있었지만 마음을 바꿔 두 번째 편지를 썼는데, 그 편지에서는 첫 편지에서 정확히 표현하지, 자신이 느끼기에 못한 모든 것을 바로잡으려 했던바, 기억이 떠나가고 있소, 라고 애석한 상황을 서술했는데, 말하자면 시간이 흐르면서 그의 기억 능력에 어떤 일이 일어났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으로, 다른 말로 하자면 녹슬고 있었다는 바로 그 일이 일어나고 있었으니 그가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 많았고 더는 떠올리지 못하는 것이 많았으며 이름들은 그의 머리에서 영영 사라지는 것 같아서 그는 거리 이름을 기억해내려 애썼으나 허사였고 옛 대루마니아 구역 근처의 자분정 우물 이름과 병원으로 가는 길에 있는 다리의 이름을 떠올리려 했으나 우물과 다리 둘 다 더는 생각나지 않았으며 사라진 게 분명했으니 그 가 헝가리에 보낸 편지에 썼듯 그에게 남은 게 거의 없었던 것은 그의 기억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만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노화 과정의 결과로 다리가 약해졌기 때문이기도 한데, 그는 언제나 조금 비틀거리며 걸었으며 약한 시력과 예민한 위장과 삐걱거리는 관절과 아픈 등과 폐는 말할 것도 없었으나 그가 계속하고 싶지 않았던 것은 이 모두가 비참한 결말로 끝날 것이기 때문이었으며 그가 두려워한 것은 그녀가, 마리에타가 그의 실제 모습보다 더 불쾌한 인상을 받으리라는 것이었는데, “하지만 나를 밑어주오”, 그는 ‘믿’을 ‘밑’으로 잘못 쓴 탓에 처음의 편지를 구겨 피아노책상 옆의 쓰레기통에 던져넣고서 계속하여 쓰길 나의 능력 중에서 영원히 ‘부서지지 않는’ 것 단 하나가 있는데, 엄밀히 말해서 그것은 이 도시를, 그리고 이 도시 안에서 당신을, 마리에타를 떠올릴 때 그런 고통을 느낀다는 것이오, 이제 나는 예순다섯이 넘었소, 어쩌면 나는 두 가지 사실을, 내 삶을 지탱한 두 가지를 고백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소만 그것은 내가 한 도시를 알았고 그 도시에서 당신을 알게 되었다는 것과 또한 털어놓을 수 있는바 내게 이것의 의미는 오직 하나라는 것으로, 그것은 ‘이 생에서 내가 가장 사랑하는 것은 이 도시, 그리고 그 속에 있는 당신’이라는 것이니 내가 여기서 무슨 대단한 비밀을 실토하는 것이 아님을 당신도 분명히 알 터인데, 내가 아직도 기억하는 것은 내가 아무리 비겁해도 결국 당신을 사랑한다고 고백했다는 것이니 지금이야 끝났다는 걸 알고 내가 예전의 내가 아니라는 걸 알고 내가 만신창이가 되었다는 것도 알지만 당신도 알다시피 마리에타, 나는 가장 힘들 때 이 도시를, 그리고 그 속의 당신을 생각하면 언제나 기운이 솟았고 실은 마지막으로 딱 한 번 당신을 찾아가 직접 이야기하고 싶으니 나의 사랑하는 마리에타, 당신이 있기에-그는 이렇게 썼으나 이제 종이가 피아노 책상 표면을 저절로 미끄러지다시피 하여 쓰레기통을 향해 가고 있었는데-당신의 얼굴, 당신의 미소, 그리고 당신이 미소 지을 때 아담하고 어여쁜 뺨에 생기는 자그마한 보조개 두 개는 내게 무엇보다, 다른 무엇보다 귀중했소. ---pp.222~224 그녀는 편지 두 통을 심장 바로 위에 간직했는데, 밖에 나갈 때면 코트 안주머니에 넣었으며 집에서 드레싱 가운을 입고 있을 때면 사이드포켓에 넣었으니 물론 그곳은 심장 위가 아니라 심장 옆이었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다며 그녀가 생각하길 중요한 것은 감정이었는데, 그녀가 생각하기에 두 편지는 그녀의 심장 위에 있었고 영원히 그럴 것이며 이미 며칠간, 실은 몇 주간 두 편지와 함께했는데도 그녀는 결코 편지와 떨어지지 않을 작정이었던바 그녀는 자신이 느끼는 이 무한한 행복을 누군가와, 친척이나 지인과 나누고 싶었으나 그럴 수 없었던 것은 나눌 사람을 아무도 찾지 못했기 때문으로, 도러에게는 두 번이나 시도했지만 허사였고 이렌조차도 이것을, 그녀 영혼의 유일한 비밀을 감당할 만한 사람은 아니었으니 이 이렌-진정 그녀의 가장 친한 친구이자, 고락을 함께한 이렌-에게 그녀는 삶에서 가장 중요한 일에 대해 이야기할 수조차 없었거니와 이렌은 지극히 현실적이고 매사에, 모든 감정과 모든 환희에-하지만 이 모든 것은 언제나 그녀의 마음속에 들어 있었는데-찬물을 끼얹었으며 편지 두 통이 그녀의 심장에 바싹 붙어 있는 지금 이렌은 결국 편지를 조롱하고 그녀를 다정하고 어리고 낭만적인 바보라고 놀릴 터였던바 그녀는 그녀를 늘 그렇게 생각했으나 이번에 그랬다가는 그녀의 심장이 조각조각 부서질 것 같았으니 그녀는 편지 두 통 아래에 있는 이 심장이, 자신의 심장이 어찌나 연약하게 느껴지던지 어떤 섭섭한 말뿐 아니라 이렌 같은 사람의 정색한 충고에도 무너질 것 같았기에 편지 두 통을 항상 몸에 지니고서 시내 여기저기를 극도로 조심하며 다녔을 뿐 아니라 자신의 이 연약한 심장도 지니고 다녔으니 그녀가 두 편지 중 하나를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단연코 아무도 없었던 것은 자신이 느끼는 것을 털어놓을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고 그것은 그녀가 다시 한번 행복을 느낀다는 것으로, 그녀의 행복은 그렇게 단순한 말로 표현할 수 있다고 그녀는 행복하게 생각했거니와 계획을 짜거나 하는 것이 아니라 편지 두 통을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 그토록 지독하게도 섬세한 감정이 그녀에게로 흘러들었는데, 이 감정을 그녀가 다시는 바랄 수 없던 것은 다시는 이토록 무한히 세련된 말을 소망하지 않았고 자신의 삶이 너무나, 하지만 너무나 실망스러운 때에 이 일이 자신의 삶에서 한 번 더 일어나리라고는 전혀 믿을 수 없었기 때문이어서, 그녀는 기적이, 그녀가 언제나 기다렸으나 언제나 실망으로 끝난 기적이 또다시 일어나리라고는 조금도 믿을 수 없었던바 ---pp.278~279 두 사람은 말없이 그저 앉아 있다가 부엌에서 커피 끓는 소리가 들리자 머리커는 실례한다고 상냥하게 말하고는 거실에서 나와 도자기 잔에 에스프레소를 따라 커피를 들여왔으며 아직은 떨고 있지 않았지만 조만간 그렇게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는데, 잠깐은 여전히 방금 일어난 일을 납득하는 동시에 거부하는 상태로 구수한 커피 향이 퍼지고 둘은 주거니 받거니 커피를 홀짝였는데, 남작은 침묵한 채 밭은기침을 하고는 이 여인이 마리에타와 무슨 관계인지 곰곰이 생각하다가 어떤 방향에서 이 문제에 접근하더라도 매번 똑같은 결론에 도달했으니 그것은 그녀가 필시 그녀의 어머니이거나 적어도 고모할머니이리라는 것으로, 어쨌든 그는 이곳에 앉아 있었고-남작이 조가비 의자에 앉아 신음을 내뱉으며-그의 앞에는 마리에타의 어머니가, 적어도 그녀의 고모할머니가 있었으니 그는 어느 쪽도 본 적이 없었지만 무척 온화하고 무척 수줍어하는 이토록 사랑스러운 얼굴은 그가 늘 상상하던 대로였으며 그들의 얼굴을 본 적은 없었어도 그들의 유사성과 행동거지에 대해 자유롭게 상상의 나래를 펼 수 있었으니, 그래, 그는 유사성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마리에타가 이 여인의 특징을 고스란히 물려받은 것 같지는 않았지만, 하지만 그래도 그녀의 얼굴과 태도에는 그들과 관계된 사소한 특징 몇 가지가 있었으며 그러는 동안 머리커가 입을 최대한 작게 오물거리며 커피를 홀짝인 것은 이 오물거리는 홀짝임으로 도피하려는 것임과 더불어 이 오물거리는 홀짝임이 자신을 구해줄 것 같았기 때문으로, 오, 하느님, 이제 처음으로 그녀의 손이, 커피잔을 들고 있는 손이 떨리기 시작했고 와들와들 떨렸던바 이곳에, 그녀 맞은편에 벨러가, 모든 신문에 대서 특필된 저 세계적 유명 인사가 앉아 있었으니 그가 그녀를 만나려고 전 세계를 여행하여 이곳 그녀 바로 앞에 앉아 있다니, 바로 지금 그들 머리 위의 조명 기구가 달라졌고 그녀가 앉아 있는 팔걸이의자가 달라졌고 거실 전체가, 실은 아파트 전체가 더는 직전의 모습이 아니었던 것은 벨러, 그녀가 저 늙은 얼굴에서 똑똑히 분간할 수 있는 청년의 이목구 비를 가진 사람, 벨러, 바다 건너에서 그녀에게 저 끝없는 다정한 문구를 써서 보낸 사람, 그 벨러가 이제 그녀 맞은편에 앉아 그녀에게 느끼는 감정을 토로하고 있었기 때문으로, 잠시 뒤에 남작은 이 혼란에서 벗어날 길이 전혀 보이지 않았고-이 여인이 지금 당장은 이야기하고 싶어 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으므로-자신의 가장 성스러운 감정에 대해 가장 진솔하게 그녀에게 이야기하는 것 말고는 다른 길이 보이지 않았기에 처음에는 이렇게만 말하길 그가, 남작이 인간에 대한 사랑 같은 예민하고 정말이지 개인적인 문제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이 무척 놀랍겠지만 여기서 어찌 된 영 문인지-그가 거실에 두루 시선을 던지며-뭔가 편안함이 느껴졌거니와 그런 표현에 대해서는 ‘응당’ 그녀에게 용서를 빌어야 할 것은 그가 도착한 지 아직 몇 분밖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나 이 친절한 여인은 어찌나, 하지만 어찌나 너그러운지 이런 낯선 사람을 집에 들였기에 이제 그가 그녀의 응접실에서 그녀 맞은편에 앉은 것은 한 번도-제 말은 사실입니다, 친애하는 부인-한 번도, 한순간도 저는 그때를, 제가 이 도시를, 또한 이 나라를 떠날 수밖에 없었던 열아홉 살 그때를 잊을 수 없었으며 제 삶에서 제가 매달릴 수 있는 것은 단 하나만 남았으니 그것은 마리에타였습니다, 제 가족은 전 세계를 누비다 마침내 아르헨티나에 정착했으나 저는 한 번도 그녀의 얼굴을 잊지 않았고 그 사랑스러운 얼굴의 윤곽은 언제나 제 눈앞에 있었으며 저는 어느 때든 그 윤곽을 불러낼 수 있었고 제가 그 윤곽을 불러 내지 않은 날은 단 하루도 없었으며 그러는 동안 제 가족은 한 명씩 세상을 뜨거나 먼 곳으로 뿔뿔이 흩어져 저는 부에노스아이레스에 홀로 남았습니다, 라며 그가 말하길 하지만 그녀가 제게 미소 짓는 모습을 보지 못한 날은 하루도 없었습니다, 그것이야말로 유일하게-틀림없이 지금 저를 비웃으시겠죠, 친애하는 부인-정말이지 그것이야말로 유일하게 저를 살아 있게 했습니다, 그 미소가요, 마리에타에 대한 저의 사랑 말고는 제겐 아무것도 없었으니까요, 게다가 저는 무엇 하나 가지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사업에도 관심이 없었고 어떤 학식에도 흥미가 없었습니다, 예술에는 더더욱 관심이 없었는데, 언제나 그녀를 떠올리게 했기 때문입니다, ---pp.366~368 모든 것이 불타고 있다, 그들이 지휘관의 지프를 타고 그 지역을 순찰할 때 무전이 들려오길 무슨 이유에서인지 가시덤불땅이 전부 화염에 휩싸였다, 벼락이라도 맞은 것처럼 연기가 피어오르고 악취가 진동한다, 화염이 어마어마하다, 지금 당장 차량 넉 대가 필요하다, 베케슈처버에 지원을 요청하라, 차량 넉 대로는 부족하다, 물도 충분히 확보하라, 화염이 얼마나 크냐면, 그만, 그가 운전사에게 고함치길 차 돌려! 운전사가 즉시 후진 기어를 넣고 가속 페달을 밟아 20여 미터를 물러선 것은 화염이 그들 위로 들이닥쳐 지프와 그 안에 탄 사람들에게 닿을 정도였기 때문으로, 잘 들어, 경찰서장이 운전사에게 외치길 고길 구우려면 불판을 가져와야지, 예, 서장님, 운전사가 대답했으나 나머지 탑승자들은 두 사람이 무슨 말을 하는지 제대로 듣지도 못했으니 그것은 불을 보고서 어안이 벙벙했기 때문인바, 첫째, 불이 시작된 것은 아무리 봐도 불과 며칠 전 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때였고 둘째, 무엇 때문에 잡초가 이렇게 타들어가고 있는가였으니 여기에 아무것도 아무도 없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바였고 여기 있었던 사람이, 그가 용의자는 아닌 것이, 그러니까 누가 이곳에 돌아오려 했다 해도 그것이 그일 리는 없었던 것은 그들에게 검거될 것이 뻔했기 때문이므로 그가 이 장소 전체에 불을 놓지는 않았을 터인즉 왜 그러겠는가, 셋째-이 문제를 방금 제기한 것은 경찰서장이었는데, 혼잣말이었지만 소리내어 말해서 모두 들을 수 있었으니-말하자면 일종의 석유 냄새가 났다는 것으로, 하지만 석유일 리 만무했던 것이 도시 어디에서도-그가 알기로는-석유를 구할 수 없었거니와,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이렇게 활활 타는 거지, 대체 어떤 재료이기에 이렇게 거대한 화염을 일으키는 거지? 그게, 서장님, 특공대 일경인 운전사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내자, 계속해봐, 경찰서장이 고개를 끄덕였는데, 그게, 제 생각엔 4년 전 독일인 소유의 가옥에서 난 화재와는 불길이 다른 것 같습니다, 그때는 매우 규칙적으로 탔는데, 이번 화재는 다릅니다, 그래, 귀관은 어떻게 생각하나, 경찰서장이 묻자, 그게, 일경이 말하길 화염이 거듭거듭 타올랐습니다, 그렇지, 경찰서장이 외치길 귀관 말이 옳아, 그게 문제라고, 저런 화염을 어디서 봤나 기억을 되짚어봤더니, 그래, 드레스덴 소이탄 폭격이나 베트남 융단 폭격을 다룬 디스커버리 채널 다큐멘터리가 떠오르더군, 그래, 그때 이런 비슷한 걸 봤어, 여기서 화염이 솟아오르는 모습과 같았다고, “이건 불이 아니야,” 서장이 단언했는데, 그때 지프에 정적이 감돈 것은 그가 하려는 말을 그들이 대충 이해하긴 했으나 이게 불이 아니면 대체 무엇이겠느냐고 그들이 스스로에게 물었기 때문으로, 여기 가시덤불땅의 불은, 말하자면 ‘어마어마한 큰불’이야, ---pp.455~456 나는 이걸로 시작해, 그가 비체레 기차역의 작은 대합실에서 누군가에게 말하길 말하자면 하루 종일 생각하지 않아도 되도록 하루에 두 시간씩 생각해야 해, 하루 종일 생각하면 체력이 고갈되니까, 결코 어디에도 이르지 못하는 열정도 마찬가지야, 열정은 결코 어디에도 도달할 수 없어, 사물의 본성에서 필연적으로 비롯하듯 말이지, 그러니 나는 이 연습을 그만두지 않을 거야, 이건 잘된 일인데, 내 두뇌가 작동하는 데 필요한 것이 우연하게도 내가 꽤 잘하는 것과 일치하기에 이 예외적인 상황 때문에 나의 생각면역 연습이 중단되도록 할 수는 없어, 이 연습을 하루 두 시간으로 압축한 것은 알고 보니 유용했으니, 말하자면 굉장했으니 지금까지 몇 달간 오후 3~5시를 제외한 어떤 시간에도 생각 활동에 종사해야겠다는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으니 말이지, 10초 있으면 오후 3시가 될 텐데, 내가 극심한 탈진을 겪게 되리라는 걸 부인할 수 없지만 이건 변명거리가 될 수 없어, 오늘의 연습도 끝내야 하니까, 그래야 게오르크 칸토어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어, 내가 그에 대해 이야기해야 하는 것은 그가 모든 문제에서 핵심 인물이기 때문이야, 이걸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라며 그가 기차역의 텅 빈 대합실에서 누군가에게 표현하길 과거에 그랬듯 그는 여전히 핵심 인물이야, 한때 잊혔지만 다시 살아났지, 칸토어와 더불어 등장한 것, 칸토어가 자신의 답을 제시한 문제는 모든 것이 원을 그리며 처음으로 돌아간다는 거야, 칸토어, 상트페테르부르크 할레의 이 불운한 혜성과 함께 우리는 수만 번 출발한 그 지점으로, 수만 번 돌아간 그 지점으로 돌아가는 거야, 하지만 그가 처음으로 이 답을 내놓은 건 아니야, 그는 널리 알려진 그 메시아주의에 깊이 물들어 있었으니까, 그건 한순간도 의심할 수 없어, 유대 경전 타나크를 향한 깊은 공동의 열정에서만 생겨날 수 있는 그런 일신론적 존재를 그는 열렬히 믿었어, 이 존재가 정말로 생겨난 것은 게오르크 칸토어가-그가 이 이름을 입안에서 음미하며-그가 어디로 빗나갔는가 때문이니, 그래, 물론 그는 타나크에 뿌리를 둔 채 빗나갔는데, 물론 문제는 언제나 뿌리에서 발생하거나 적어도 거기서 발생하여 마구잡이로 퍼져 나갈 가능성이 가장 크니 말이야, 칸토어는 무한이 없다는 가설을 수립하지도 않았어, 그는 무한이 있다는 걸 ‘아브 오보’, 즉 애초부터 알고 있었어, 그는 이것이 자신의 소명임을 느꼈지, 어쩌면 그에게 유난히 깊숙이 자리 잡은 그 자신의 믿음을 바탕으로 제 나름의 방식으로 이른바 과학적 토대를 창조하도록 부름받았다고 느꼈는지도 몰라, 그 점에서 그는 그때까지의 발전에 만족하지 못했어, 가련한 칸토어, 이 기이한 천재, 그의 순수한 재능과 협잡술은 둘 다 하나의 점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어, 말하자면 그는 신앙 때문에 병든 거야, 늘 이런 식이었으니까, 우리는 언제나 이 지점에 도달해, ‘태초에 이것이 있었고 저것이 있었다’라는 말은 사실이 아니야, 실제로는 이렇게 썼어야 옳다고, 태초에 믿음이 있었고, 외통장군! ---pp.472~474 여기서-그가 앞의 두 철로를 바라보며-끝이 다가오고 있었으니, 말하자면 모두가 무언가를 지닌다면, 그렇다면 이 거대한 존재 속에서 그는 무엇을 지녔던가, 그가 태어나 이 삶을 마지막 나날에 이르기까지 살아야 했던 것은 무엇 때문인가, 말하자면 이 모든 일이 일어나야 했던 것은 왜인가, 그는 이미 몇 차례 그랬듯 걸음을 멈추었는데, 마치 맞은편에서 기차가 오는 소리를 들은 것 같아서였으나 아니었고 그의 상상에 불과했기에 계속 걸었는데, 그는 두려움을 느끼지 않았을 뿐 아니라 단 한 방울의 두려움도 느끼지 않았고 그와 반대로 자신이 확고하게 자유롭다는 것을 알았으니 그것은 그가 죽음을 향해 걸어가는 것 같지도 않았고 실은 생각에 빠진 채 이제 완전히 캄캄해진 숲을 가로질러 호젓한 철길 한가운데를 따라 그저 나아가는 것 같았기 때문으로, 그는 그저 걷고 또 걸었는데, 요제프 요양원 방향에서도 셔르커드 방향에서도 기차는 한 대도 오지 않았고 그는 좋으신 주님께 정말로 간구할 참이었거니와 이것은 지난 몇십 년간 도통 몸에 익지 않은 일이 되어버렸고 이 좋으신 주님이 이 땅의 모든 것 위에 계시는 것 같지 않아서 이따금 주님을 부르려다가도 어색함과 무력함을 느꼈기에 그만둔 바 있으나-이것이 족히 몇십 년 전 일이었는데-지금은 그 생각이 전혀 뜬금없어 보이지는 않았으니 그 생각이란 다시 주님을 부르고 다시 한번 애원하는 것이었으니 그가 존재하는 것이 필요했다면 주님께서 이 마지막 몇 분간 그의 마음을 밝히시어-그가 간구하길-그를 이 삶으로 인도하고 계속 살려두신 데는 어떤 쓰임새가 있는지 설명해주십사 하는 것이었는데, 그것은 그의 삶이 무척이나, 하지만 무척이나 지독히 쓸모없었기 때문으로, 그래, 그의 삶은 어떤 종류의 삶이었는가-그는 질문을 속으로 제기했으나 좋으신 주님이 저 위에서 똑똑히 들으실 수 있도록 또렷하게 소리내어 말하길-그렇다면 세상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넘어서는 그 무엇도 일어나지 않았고, 또한 그런 정도로는 일어나지 않은 그런 삶은 어떤 삶인가, 그 안에는 사랑이, 세상 안에 사랑이 있는데, 그 사랑이 환상이라는 사실이 만년에야 드러난 것은 그것이 실제로도 환상이고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며 그것이 아마도 결코 존재하지 않은 것은 실재가 아니었기 때문이요, 그 대상이 결코 실재일 수 없었기 때문이지, 그때의 그것, 그리고 지금 그 자리를 차지한 그것은 처량하고 적막하고 공허하고 기만적이었으니 이 모든 일에 무슨 의미가 있었느냐며 남작은 죽음을 향해 걸어가면서 좋으신 주님에게 질문을 던졌는데, 죽음은, 침목 사이로 행진하면서 그가 생각하길 ‘여전히’ 지금 당장이라도 올 수 있었으나 오고 싶어 하지 않았던바 모자를 벗고 다시 철로 이쪽저쪽에 무릎을 꿇고 앉아 땅에 귀를 대고 요제프 요양원발 열차나 셔르커드발 완행열차가 오는 소리가 들리는지 들어보았으나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그래서 그는 계속 걸었으며, 벌써 몇 킬로미터를 걸은 거지, 라며 뒤를 돌아보았는데, 물론 길이 수없이 구부러졌기에 그것으로는 자신 이 얼마나 멀리 왔는지 가늠할 수 없었으며 그건 그에게 어떤 생각도 없었기 때문인바 다리에서 출발할 때 시계를 차 고 있었던 것은 아무 소용이 없었으며 어쨌거나 그는 시간에 별로 관심이 없었고 그가 산책을 시작한 것은 몇 분 전일 수도 있었고 심지어 한 시간 전일 수도 있었으니 요점은-그 가 다시 고개를 저으며-기차가 한 대도 오지 않는다는 것이었으나 그는 일찍이 호텔 도어맨에게 (영혼을 걸고 아무에게도 발설하지 않겠다고 맹세시키고서) 물어보았고 그는 아무도 보지 않을 때 그 정보를 몰래 알려주었으며 셔르커드-베케슈처버 시간표가 입수되었는데, 그로부터 그는 자신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열차들의 시각을 읽었으니 5시 32분, 6시 32분, 7시 32분, 8시 26분이었으며-맨 오른쪽이 마지막 기차였는데-열차 상황이 이러했고 배차 간격이 한 시간을 넘지 않았으니 그렇다면 시간표가 정확하지 않거나 연착이, 연착이-남작이 다시 고개를 내두르며-일어났다는 것인데, 그는 힘을 모으려고 잠시 가만히 서 있다가 무릎을 짚고서 쌀쌀한 숲 공기를 깊이 호흡하고는 다시 출발했으니 그는 하늘 위에 계신 선하신 주님의 선한 은총을 다른 각도에서 받고자 했는데, 말하자면 주님의 대답을 끈기 있게 기다리기로 작정한 상황에서 웬 걸림돌이 나타나 열차가 지연되었으므로 그에게는 시간이 좀 더 생겼으나 그가 여기서 끈기 있게 기다린다고 해서 자신의 질문에 대답이 있을 것임을 신뢰하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었으니 그 대답에 기대어 그는 죽음의 팔에 고요히 자신을 던질 수 있을 터였으며 죽음에 대해서는 특별한 관념이 없다고 그는 생각하여 지연된 완행열차를 향해 철로를 따라 그저 걸어가고 있었으며 이 지연된 열차가, 요제프 요양원 역에서 오고 있으나 본래는 셔르커드 방향으로부터 오는 이 열차가, 이곳의 모퉁이 한 곳에 서 나타날 때까지 걸을 작정이었으므로 그에게는 머무르는 것밖에는, 두 철로 사이에 머무르는 것밖에는 할 일이 없었던바 그런 기차가 모퉁이를 돌기 전에 멈추지는 않으리라 가정한다면, 이라고 그는 가정했으며 물론 기차는 그러지 않을 것이라며 남작이 스스로에게 말하길 이 모퉁이 중 한 곳에서 어떤 사람이 열차가 정차하기에는 너무 가까운 거리에서 불쑥 나타난다고 가정한다면, 말하자면 열차가 그 사람을 칠 것이고 그 사람은 ‘산산조각’으로 짓이겨질 가능성이 있으나 그게 지금 그에게 왜 흥미롭겠느냐고 그가 생각했으니 중요한 것은 그가 서둘러 가서 자신이 이곳에 와서 기다리려고 한 그것을 따라잡는 것이었으나 그래도 그때가 오기까지는 그는 정말로 답을 기다리고 있었으니 그것은 이 모든 것이 무엇을 위해서인지 알고자 함이었다. ---pp.515~519 하지만, 그 가 목소리를 높여, 그의 ‘유지(遺志)’가 무엇이었느냐는 문제가 남아 있고 그것은 실제로 존재하니 내 말이 맞지 않소, 한편으로는 ‘유언’이 있다는 데 아무도 의심을 품을 수 없으며- 당신 말에 따르면 없다지만-다른 한편으로 ‘유지’가 있는데, 이것이 분명히 존재했고 지금도 존재하는 것은 실제이기 때문이며 이 ‘유지’에 따르면 그의 재산은 물론 시에 기증될 것이오-경찰서장은 여기에 하등의 관심이 없었는데, 일반적으로는 시장의 어조가 맘에 들지 않았고 오늘은 왠지 정말로 그랬기에 여기서 끼어들어 반박하길-그는 시장이 그것을 뭐라고 부르든, 유언이라고 하든 유지라고 하든 하등의 관심이 없으며 요점은 그것 둘 다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인바, 글쎄요, 경찰서장의 양해를 구하며 시장이 말을 가로채길 하지만 그 자신은 유지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을 결코 들어본 적이 없으며 경찰서장이 이 정보를 정확히 어디서 얻었는지 궁금한데, 유지가 있었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바요, 이 유지가 무엇인지는 그도 아는 바이니, 말하자면 흔히 말하듯 그의 재산은-시장이 작고 통통한 손으로 크게 동그라미를 그리며-시에 속하며 이것은 논란거리가 아닌바, 아니, 논란거리이기도 하고, 이제 다소 격앙된 채 서장이 말하길 아니기도 해, 당신에게 말해봐야 아무 소용 없어 보이지만 다시 말해야 할 것 같아서 되풀이하자면 우리는 아무것도 찾지 못했어, 알아듣겠나, 시장? 아무것도, 단 1필레르도, 단 1포린트도, 1페소도, 그 어떤 통화도 찾지 못했다고, 아무것도, 그 아무것도 없었다고, 라틴어를 배운 친구가 하나 있는데, 이런 일에서 내가 써먹을 수 있는 최고의 인재야, 그는 이 문제가 터지자마자-그가 ‘문제’라는 단어의 첫음절을 강조하며-친척들을 조사하기 시작했어(그는 당신이 언급한 이 재산이 어디 있는지 알아), 계좌 번호도 알고 어느 은행인지 등등도 알지, 이 모든 것을 어떻게 입수하는지 안다고, 하지만 그의 조사는 애석한 결과로 이어졌어, 내게는 개인적으로 실망스러운 일이기도 하지, 그러니 이 문제에 대해 더 왈가왈부하지 말라고, 그건 ‘재산은 하나도 없다’는 거야, 내 말 잘 들어, 이 남작은-그가 자신의 독서용 안경을 만지작거리며-아무것도 남기지 않았어, 단돈 1필레르도 없었다고, 내 이 말을 해주지-경찰서장이 잠시 뜸을 들였는데, 두 손님이 얼굴에 회의와 의심이 역력하면서도 솔깃하여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들으려고 그를 향해 몸을 숙이자-내 이 말을 해주지, 그는 어떤 재산도 ‘전혀’ 없었어, 이 모든 일이 거대한 금융 사기였어, 이 남작은, 우리의 남작은, 이봐, 시장, 말 그대로 단돈 1필레르도 없이 이곳에 온 사기꾼에 지나지 않았어, 빈에 있는 그의 가족이 여행 경비로 준 소액의 유로화조차 찾을 수 없었다고, 알겠나, 그의 지갑조차도, 그가 말하길 사건 현장에서도, 그의 호텔에서도 찾지 못했어, 그곳을 모조리 헤집었는데도, 정말이야, 우리가 무관심해서지…… 진실에 도달하지 못한 게 아냐…… ---pp.544~546 이 장소들이 하나씩 화염에 휩싸인 것이 아니라 정확히 같은 순간에 모두 화염에 휩싸였기 때문이요, 여기서는 단어의 선택이 문제가 되기 때문이요, 이것을 서술할 누군가가 있었다고 치면-그런 사람은 없었으나-그 사람은 ‘화염에 휩싸였다’나 ‘불이 붙었다’나 ‘화마의 제물이 되었다’ 따위의 표현을 썼을 것이 틀림없으며 그렇게 계속할 수도 있으나 이 경우에는 문장들의 서술어가 이 사건들에 대해 원하든 원하지 않든 어떤 순서도 암시할 수 없으니 이곳에서 일어난 일은 하나의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한 하나의 어마어마한 불 공격이, ‘도시 자체보다 훨씬 큰’ 불 공격이 도시를 강타했기에 뭔가 이야깃거리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이지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말해줄 사람은 아무도 남지 않았으며 기계적 순서대로 따라 나오는 단어들만 있어서, 공간 속에 일렬로 반듯하게 줄지어 있을 테지만 그 단어들을 말할 사람은 아무도 없기에 단어들을 그저 하나씩 줄세우자면 불은 처버 도로와 초코시 도로와 너지바러디 도로 방향에서, 루마니아 국경 방향에서, 엘레크 도로 방향에서 몰아닥쳐 순식간에 도시를 집어삼켰으며 이 불의 속도가 어찌나 어마어마하고 어찌나 아득하던지 이 단어들은, 더는 누구도 발음할 수 없는 이 단어들은 존재하지조차 않으니 단어들이 나타날 시간조차 없기 때문이요, 파괴에 대해 이야기를 들려드 리자면 모든 것은 무시무시한 동화에서처럼 일어났기에 이곳은 끝장났고 사라졌으며 그리하여 더는 시청도 없었고 평화로도 없었고 대루마니아 구역도, 소루마니아 구역도, 대헝가리 구역도, 크리놀린도, 도심도, 아무것도 없었으며 도시의 주민도 더는 하나도 없었으니 이 공격으로 도시는 존재하기를 포기했으나 신기하게도 도시 외곽에서는, 도보즈로 나가는 길에서는, 심하게 불타긴 했지만 거대한 시멘트 급수탑이 여전히 서서 흔들흔들 다른 건물처럼 무너질 것 같았지만 그래도 서 있었으며 그 꼭대기에는 한때 전설적이던 천문대의 휑하고 뻥 뚫린 창문 하나에서-유리는 열파에 순식간에 깨졌기에-저능아가 창밖으로 다리를 달랑거렸으니 고아원 출신의 저 저능아가, 자신의 심란한 마음에 이끌려 어제저녁에 불쑥 이곳에 온 그가 다리를 달랑거리고 있었는데, 그가 쇠틀에 손을 뻗지 않은 것은 너무 뜨거웠기 때문으로, 그래서 그는 손을 더 벌려 시멘트 창턱에 대고 균형을 잡은 채 처음에는 왼 다리로, 다음에는 오른 다리로 차는 시늉을 하다가 지쳐서 다리를 조금 흔들고는 조금 전까지도 그의 도시이던 불잉걸을 바라보면서 혼자 나직하게 노래했으니 도시가 타네, 도시가 타네, 소방차 불러, 소방차 불러, 불이야, 불이야, 불이야, 불이야, 물을 뿌려, 물을 뿌려. 그는 다시 시작했는데, 도시가 타네, 도시가 타네, 소방차 불러, 소방차 불러, 불이야, 불이야, 불이야, 불이야, 물을 뿌려, 물을 뿌려. 노래는 멈추지 않았고, 이제 그는 두 손으로 창턱을 짚지 않았으며 그냥 앉은 채 텅 빈 창문에서 몸을 앞뒤로 흔들며 그을린 폐허를, 한때 도시가 있던 장소를 바라보다가 다시 언제나 처음부터 부른 것은 가락과 노랫말이 그렇게 해주길 바랐기 때문이니, 도시가 타네, 도시가 타네, 소방차 불러, 소방차 불러, 불이야, 불이야, 불이야, 불이야, 물을 뿌려, 물을 뿌려. 끝으로 그는 하늘을, 어두워지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양손을 들어 누군가, 아마도 지휘자가 전에 하는 것을 똑똑히 본 모양으로, 보이지 않는 관객에게 몸짓하면서 객석을 향해 활기차게, 자, 이제 다 같이 ---pp.751~754 |
“이전 소설의 카덴차”, 《벵크하임 남작의 귀향》
말의 리듬으로 악보를 쓰다 작가는 이 소설을 “이전 소설의 카덴차”라고 말한다. 카덴차는 악곡이나 악장을 마치기 직전에 연주자가 기교를 최대한 발휘하도록 구성된 화려하고 자유스러운 무반주 부분을 가리키는 음악 용어다. 원래는 연주자가 즉흥적으로 연주했지만, 관습이나 작품의 본질에서 벗어나기 쉬워서 작곡자가 직접 악보에 표시하는 것이 통례가 되었다고 한다. 그는 《벵크하임 남작의 귀향》이 소설가로서 살아오는 동안 낙서한 것을 묶은 소설이라고 설명했다. 그렇기에 즉흥적이면서도, 라슬로의 기교를 최대한 발휘한 작품인 셈이다. 그래서인지 이 소설의 차례는 악보와 같다. 다소 낯설고, 꼭지마다 붙은 제목은 가사 같으며, 악기 소리와 합창단의 목소리를 배열해놓은 것 같다. 라슬로는 컴퓨터를 사용하지 않고, 저장용으로만 활용한다고 한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게 1만 년의 살아온 결과라고요? 마이크, 노트북, 기술 사회가 전부인가요? 정말 슬프고도 실망스럽습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에서 아인슈타인, 부처에서 안드레 세레메디에 이르기까지, 인간 역사에 그토록 많은 천재가 있었는데 말이죠.” 라슬로는 길디긴 문장을, 쉼표와 말이음표로만 연결되어 마침표도 없이 이어지는 문장의 굽이굽이를 머릿속에서만 다듬어낸다. 라슬로야말로 말의 리듬을 고스란히 살려내고 그 호흡에 따라 이야기를 풀어놓을 줄 아는 진정한 천재가 아닐까. 귀향, 인간의 영원한 그리움 라슬로는 어린 시절 이후로 어느 곳에서든 집이라고 느껴본 적이 없다고 한다. 집은 불안정한 공간이고, 집이라고 느끼는 감정은 일종의 환상이다. 이 느낌은 원시적이고도 오래된 감정이다. 그렇기에 이런 느낌을 평생 유지하는 것은 일종의 축복이자 행운이며 능력이다. 집에 있는 것처럼 느끼려면, 많은 것에 눈이 멀고, 많은 것을 인정하지 않고, 자신의 집이 불안정하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해야 하기 때문이다. 한편 애정은 안전의 문제다. 나를 보호해줄 가족이, 친척이, 친구가 없는 집은 안전하지 않다. 그런데도 벵크하임 남작은 집으로, ‘고향’으로 향한다. 더 이상 친숙하지도, 안전하게 보호해줄 대상도 없는 그곳으로, 다만 애정을 갈구하면서. 오래되고 잊힌 첫사랑이자 단 하나의 기억을 좇아, 그 또한 원시적이고 오래된 감정을 따라 다시 귀향한다. 귀향은 문학에서 거듭 되풀이된 아주 오래된 주제다. 이 소설은 가장 ‘헝가리적’인 문체로 가장 친숙하고도 오래된 가치가 사라져가는 것을 담았다. 라슬로는 귀향을 다룬 선구적 작품들이 지닌 고전적 클리셰에서 벗어나려 하지 않는다. 벵크하임 남작은 평생 단 하나의 사랑을 품고 살아갔고, 그 사랑이 시작된 곳으로 돌아가 죽는다. 마치 오래된 발라드처럼, 기사도의 노래처럼 말이다. 그래서 벵크하임 남작은 변함없는 가치와 그것의 종말을 귀향과 죽음으로 보여준다. 오래된 것에 경의를. |
“《벵크하임 남작의 귀향》은 라슬로 4부작에 걸맞은 마무리이자 현대 문학의 최고 업적이고, 라슬로는 현존하는 최고의 소설가다.” - 〈파리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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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십 년에 걸친 라슬로 작품의 정점에 있는 소설이다.” - 〈퍼블리셔스 위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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