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오래된 육신의 낡은 생각들을 정리하며1장. 삶의 끝이 오니 보이는 것들모든 것을 잃은 후에야 다시 꿈을 꾸게 되었다살아 있어도 되는 이유나이가 들어서도 인생은 두려움의 연속이다내 목숨에 남겨진 최후의 자신감오직 시간만이 내 편이 되어주었다쓸모 있는 사람을 주변에 두려면 내가 먼저 쓸모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2장. 흔들리고, 방황하고, 실패할지라도나는 쇼펜하우어를 포기할 수 없었다좋아하는 일을 하면 지치지 않는다는 거짓말너는 왜 그곳에서 내게 말을 걸어오나극이 끝날 때까지 가면을 벗지 아니하리라모두가 포기하라는 시점에 전력을 다하는 힘인생의 순간들을 고귀하게 만들어주는 것들“아들아, 너는 나보다 나은 삶을 살게 될 것이다”3장. 끝나기 전까지는 끝난 게 아니다풍파와 고비를 버텨낸 사랑만이 결혼생활을 유지시킬 수 있다 “할 수 있다. 여기서 포기하면 안 된다. 버텨보자”최악의 악몽은 더 이상 꿈꾸지 않는 나를 발견했을 때였다타인을 용서하는 것, 다름을 포용해주는 것세월은 여전히 흐르고 사람은 여전히 그립다 4장. 쇼펜하우어처럼 살다가 톨스토이처럼 죽고 싶다여든 살 소년의 표류기부모는 나약하고 위태로운 존재다나는 톨스토이처럼 죽고 싶다아프리카 노인들은 나이 듦에 대한 보상을 부끄럽게 여겼다“누구도 너의 생애에 너 이상의 영향력을 끼치지 못하게 하라” 수십 년을 투덕거리며 살아온 부부의 지혜5장. 문이 닫히면 어딘가 창문은 열린다오늘 실패했기에 내일 새로운 일을 찾을 수 있다나는 너무 많은 불안에 시달렸다죽음이 좋은 까닭은 바깥으로 돌아간 시선을 내 안으로 돌려준다는 점이다호상에도 자격이 있다면망한 이야기를 써달라는 청탁을 받으면 나는 아주 기고만장한 얼굴이 된다바닥까지 떨어지고 나서야 내가 용감한 사람임을 깨달았다 마지막 소원에필로그 세상과의 마지막 작별 모습
|
김욱의 다른 상품
“끝이라고 생각했던 때가 언제나 끝이 아니었다.”‘90세 현역 작가, 김욱의 문학적이고 철학적인 인생 고찰나는 내 인생과 꿈을 사랑한다. 그런 내 모습이 사랑스럽다. 나는 이런 나를 사랑할 수밖에 없다. 사람은 자신을 사랑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는 생물이다. 나마저 나를 미워하면 그땐 정말 모든 게 끝난다는 걸,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사람은 바로 나 자신이라는 걸, 뼈저리게 배웠다. -저자의 말소설가를 꿈꾸던 소년은 어느새 아흔의 노인이 되었다. 그사이 남들처럼 직장에서 일도 해봤고, 집도 가져봤고, 전 재산을 잃어도 봤다. 가난을 대물림하기 싫어 자식도 낳지 않으려 했는데 어디 세상일이 뜻대로 되는가. 나이 쉰에 아들도 얻었다. 담담하게 자신의 지나온 삶을 반추하는 작가의 글을 읽고 있으면 과연 그가 백 살에 가까운 ‘노인’이 맞는가 싶다. 그의 고민과 생각이 요즘 우리의 것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그가 읽고 영향을 받았다고 밝힌 톨스토이, 쇼펜하우어, 디자이 오사무의 글들은 작금에도 많이 읽히는 책이다. 아흔 노인의 글이 지금에도 낡지 않고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이유일 것이다.김욱 작가는 흔치 않은 이력의 소유자임이 확실하다. 남들은 손에서 일을 놓는 일흔에 번역자로서 인생 2막을 시작했다. 잘나가는 중앙지 기자에서 한 번의 투자 실패로 남의 집 제사를 지내주는 묘지기로 추락했을 때, 저자는 남들과 다른 선택을 했다. 사람들은 이제 ‘끝’이라고 그를 ‘실패한 인생’이라고 손가락질했다. 하지만 저자는 하늘을 날지는 못해도 바닷속으로 뛰어드는 펭귄처럼 자신의 새로운 하늘로 삶의 방향을 바꾸었다. 스스로 출판사 문을 두드려 번역일을 찾고, 『그대들, 어떻게 살 것인가』 『약간의 거리를 둔다』 등 지금까지 200여 권이 넘는 책을 번역하는 동시에 『쇼펜하우어 아포리즘 : 당신의 인생이 왜 힘들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니체 아포리즘: 혼자일 수 없다면 나아갈 수 없다』 등의 책을 썼다. 일흔에 맞이한 시련을 그동안 돌아보지 않았던 ‘글을 쓰겠다’는 꿈을 찾는 기회로 삼았다. 과연 그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잘 살았다’라는 평가는오직 자신만이 할 수 있다남다른 행보를 보인 저자의 곁에는 언제나 문학과 철학이 있었다. 저자가 ‘인생은 그 자체로 비극이라는 쇼펜하우어의 글에 빠져들면 빠져들수록 제대로 살아남고 싶다는 한 인간의 갈망이 내 것처럼 생생하게 느껴졌다.’고 한 말에는 세상사에 흔들릴지언정 한 사람의 주체로서 당당히 자신의 삶을 살아가려 했던 삶의 자세가 담겨 있다. ‘남들 눈치 보느라 인생을 허비하지 마라’, ‘인생은 원래 외로운 것이다’, ‘실패에서 배우는 길밖에 없다’와 같은 메시지는 굳이 철학에서 찾지 않더라도 저자의 삶 그 자체였다. 이 책에서 저자는 말한다. 누군가 자신에게 망한 이야기를 써달라고 하면 기고만장한 얼굴로 책상 앞에 앉는다고. 실패가 결국 실패가 아니었고, 실패가 있었기에 지금의 행복이 있다는 것을 삶으로 체험했기 때문이다. 익히 아는 말이지만, 우리는 늘 실패를 두려워하고 인생이 왜 이렇게 힘드냐고 한탄한다. 그래서 그것밖에 실패하지 못한 나 자신이 분하고 억울해 한숨이 절로 나온다고 투정을 부리는 작가의 진심이 새삼 새롭게 다가온다. 사람들은 인생의 시기를 나누고 각각의 시기마다 할 수 있는 일이 따로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백세시대가 되면서 우리는 긴 시간 이어져온 많은 관습과 관념들을 바꾸어야 할 시점에 이르렀다. 저자는 아들, 남편, 직장인, 아버지가 아니라 ‘나’로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새로운 노년의 모습을 제시했다. 또, 저자는 ‘죽음’마저도 달라지지 않으리라 법이 없다고 말한다. 그는 톨스톨이의 죽음에서 해답을 찾았지만, 그것이 모두의 해답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결국 그가 우리에게 말하고자 하는 것은 ‘내’가 주체가 되는 삶이기 때문이다. 그 속에서 우리는 저절로 삶과 자신을 사랑하는 자세를 배우게 될 것이다. 그렇기에 아흔의 저자가 그랬던 것처럼, ‘잘 살았다’는 평가는 오직 자신만이 할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