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1장 보내는 사람의 뒷모습
2장 내가 사랑하고 싶었던 남자 3장 겨자씨 4장 당신을 위한 의자 5장 한 줌의 모래 |
저마치다 소노코
관심작가 알림신청町田そのこ
마치다 소노코의 다른 상품
역이은혜
관심작가 알림신청이은혜의 다른 상품
고등학교 2학년 여름방학 때 나는 원래도 짧았던 머리를 버즈 커트로 더 짧게 밀어 버렸다. 우연히 텔레비전에서 진 세버그가 한 아주 짧은 커트 머리를 보고 한눈에 반해서 곧장 미용실로 달려갔었다. 여름방학 중 저지른 일탈이랄까? 머리 위쪽만 3센티미터 정도 남기고 나머지는 과감하게 싹 밀었다. 흑발이 만든 그러데이션은 완벽했고, 거울 속 나는 내가 봐도 반할 만큼 멋있어서 그야말로 기분이 날아갈 것 같았다. 방학이 끝나고 의기양양하게 학교에 갔을 때는 반 친구들, 동아리 부원들 할 것 없이 모두가 “나는 마나가 원래 잘생긴 얼굴이라고 생각했다니까”, “배구부 왕자님 탄생”이라며 추켜세웠고, 배구부 고문도 “네 덕분에 부원들 사기가 올랐어. 다들 네 의욕에 자극받은 모양이다”라며 기뻐하셨다.
---p.25 “나쓰메에게는 나쓰메만의 전쟁이 있고 거기서 같이 싸워 줄 사람은 아무도… 적어도 우리는 아니었습니다. 전쟁터에서 억지로 끌어낼 수는 있었을지 모르지만 그건 본인이 원하는 바가 아니고, 나쓰메는 그런다고 고마워할 사람도 아니죠. 우리는 나쓰메가 싸우는 모습을 그저 지켜봐 줄 수밖에 없었어요.” 손에 쥐고 있던 캔이 와작 소리를 내며 우그러졌다. 나쓰메가 괴로워하고 있다는 사실은 나도 알고 있었다. 소설에 관해 이야기할 때 다른 감정이 모두 사라지고 절망만 남아 있던 얼굴을 봤다. ---p.61 노자키 하야미. 과거 남편이었던 사람이자 아마네 아버지다. 그는 아마네가 세 살 때 집을 나갔다. 아무리 설득해도 더는 나와 같이 살 수 없다며 강력하게 이혼을 요구했다.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따로 없었다. 나는 늘 남편과 아마네, 우리 세 식구가 잘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했고 좋은 아내, 좋은 엄마가 되려고 애썼으니까. 나의 어떤 점이 어린 딸에게 상처를 주면서까지 헤어져야 하는 이유였을까. 하지만 그는 눈물까지 흘리며 제발 헤어져달라는 말만 반복했고, 마지막에는 우리를 둘 다 아는 지인에게 그를 그만 놔주라는 말까지 들어야 했다. “너의 그 똑 부러지는 면이 그 자식을 힘들게 하는 거야”라고 했던가? “하야미가? 누구의?” 그의 어머니는 결혼하기 전에, 아버지는 결혼하고 2년 뒤에 돌아가셨다. 달리 형제도 없는데 도대체 누구 장례식을 준비하는 걸까? ---p.92 “그거면 충분해. 장례식은 어때?” “아… 장례식은….”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입사한 지 고작 3개월이지만 벌써 수십 건의 장례식을 봤다. 지금까지 살면서 내가 경험한 장례식이라고는 어머니 장례식뿐이었으니 예전보다는 훨씬 익숙해졌다. 하지만 그렇다고 특별한 감정이 생기지도 않았다. 오히려 ‘죽음’에 대한 생각이 점점 가벼워지고 있달까. 굉장히 특별한 일인 듯 다루고 있지만 사실 누구나 겪는 강제적인 이벤트일 뿐이다. 너무나 당연하게 빈부 격차가 드러나는 세속적인 의식이기도 하고. “그러니까… 아, 어렵네요. 유족분들 응대하는 일이나….” 나는 솔직하게 말했다. 호상이라도 예민한 유족들이 있기는 했다. 그런 사람은 아무리 정중하게 대해도 사소한 말이나 행동에 하나하나 예민하게 반응하면서 배려가 부족하다거나 더 신경 써달라고 불평했다. 게다가 지금까지 고객 응대의 핵심은 미소라고 배워 왔지만, 이 일 만큼은 예외다. ---p.172 “장례를 마치고 두 사람의 유골은 부인의 부모님이 거둬 가셨어. 두 분은 아직 젊은 이하라가 과거 얽매이지 말고 새 인생을 살기를 바라셨던 거지. 하지만 이하라는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게시미안으로 왔어. 이유를 물었더니 유족의 슬픔을 지켜보고 있어야 아내와 딸의 존재를 잊지 않을 수 있을 것 같다고 하더군.” 소중한 사람을 잃은 마음에는 피를 토하는 고통이 새겨지고 슬픔이 가득 찹니다. 그 슬픔에 공감하면서 제 마음속에 남아 있는 상처에 다시 피를 낼 겁니다. 그 고통과 슬픔만이 두 사람이 내 옆에 있었다는 사실을 느끼게 해 주거든요. 그렇게 말했다고 한다. ---p.223 “내일은 오랜만에 우리 부모님 댁에 다녀오자. 어머니가 유라 돌봐 주실 테니까 당신도 쉬고 좋잖아. 아버지가 좋아하시는 화과자랑… 콩 찹쌀떡인가? 이따가 사다 놔.” 다시 한번 하품을 하는 남편 앞에 나는 작은 종잇조각 하나를 내밀었다. “또, 뭐?” 만사가 다 귀찮다는 듯 시선을 내렸던 남편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었다. “당신은 이런 짓이나 하고 다니면서 나는 친구 조문도 못 가게 하는 거야?” 남편 가방에서 나온 건 성매매 업소 아가씨 명함이었다. ‘안냥’이라는 사람 이름인지 아닌지도 모를 정체불명의 이름이 적힌 화려한 명함은 메시지 카드로도 쓸 수 있는 형태였고, 뒷면에 조잡한 글자가 적혀 있었다. ---p.247 “감기에 걸렸을 뿐인데 시아버지가 갱년기 아니냐고 하시더라. 시어머니는 친척들한테 손주는 이미 포기했다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셔. 남편은 더 해. 목욕하고 옷 갈아입으러 갈 때나 화장실에서 나왔을 때 발을 디딜 수밖에 없는 곳에 체중계를 놔둬.” 체중계는 에이타의 스마트폰과 연동돼서 바로 남편에게 몸무게가 전송된다고 한다. 몸무게를 확인한 에이타는 살쪘다, 돼지라고 놀리기까지 한단다. “그따위 짓을 한단 말이야?” 화를 넘어 혐오스럽기까지 했다. 딱딱하게 굳어가는 내 얼굴을 보며 후코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내 체중 관리까지 해야 해서 힘들어 죽겠다고 사람들 앞에서 웃으면서 얘기해. 문제는 그런 행동들을 그저 농담이라고 생각한다는 거야. 나이 많은 돼지를 며느리이자 아내로 흔쾌히 받아들인 재밌는 우리 가족이라는 식이야.” ---p.327 |
뜻대로 안 되는 게 인생이지만,
마지막 순간은 누구나 다 똑같다! 삶이 끝나는 곳에서 깨닫는 나답게 산다는 것의 의미 오늘을 살아가는 너와 나의 이야기 『새벽의 틈새』는 『바다가 들리는 편의점』을 쓴 마치다 소노코의 장편소설로, 가족장 전문 업체인 ‘게시미안’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다룬다. 그동안 개성 강한 등장인물들을 통해 흥미롭고 감동적인 에피소드를 선사함으로써 많은 독자에게 사랑을 받아온 저자는 이번 작품에서도 다양한 인물 간의 마음 따뜻한 정서적 유대와 교류를 보여줌으로써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필요한 ‘연대’가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한다. 소설의 무대가 되는 ‘게시미안’은 누군가의 죽음을 다루는 장례 전문 업체다. 여성 장례지도사인 ‘사쿠마 마나’는 죽은 이들의 마지막 가는 길을 최선을 다해 살핀다. 예를 갖춰 고인을 모시는 일은 소중한 사람을 잃고 괴로워하는 유족의 슬픔과 고통을 덜어주는 일이기도 하므로, 마나는 장례지도사로서의 일에 보람을 느낀다. 친한 친구인 ‘나쓰메’의 장례를 맡아 진행하면서 그녀는 ‘나답게 산다는 것’의 의미와 지금 자신이 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를 다시 한번 깨닫는다. 마나와 함께 게시미안에서 일하는 신입사원 ‘스다’는 학창시절 자신을 괴롭혔던 동창의 부친상을 맡아 진행한다. 불우한 가정환경에서 자란 스다는 동창의 부친상을 주관하면서 돌아가신 어머니의 고달픈 삶을 조금씩 이해하게 되고, 부친의 죽음을 슬퍼하는 동창의 모습을 보면서 소중한 사람을 잃은 슬픔에 공감한다. 게시미안은 항상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곳으로 남은 사람들의 후회와 슬픔, 그것을 이겨내기 위한 정서적 연대가 동시에 일어난다. 게시미안이 삶과 죽음, 부재(不在)와 존재(存在) 간의 간극을 공간적으로 보여준다면, 낮과 밤 사이의 ‘새벽’은 그것을 시간적으로 보여준다. 저자는 이 소설을 통해 우리가 쉽게 잊고 지내는 ‘현재’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이 소설을 통해 나는 지금 어떤 마음가짐으로 살고 있는지, 내 마음속에는 어떤 분노와 슬픔이 자리하고 있는지,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를 곰곰이 생각해보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말하는 ‘여성의 삶’이란 무엇인가?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여성을 위한 소설! 이 소설은 여성의 삶에 대한 작가적 시선이 잘 드러난 작품이기도 하다. ‘여성에 의한 여성을 위한 R-18 문학상’ 대상을 수상하기도 한 마치다 소노코는 이 소설을 통해 우리 사회가 여성에게 덧씌운 ‘여성다움’의 가치가 얼마나 불평등하고 낡은 것인지를 잘 보여준다. 마나는 가족과 연인으로부터 장례지도사 일을 그만둘 것을 종용당한다. 자신의 일에 자부심을 느끼는 마나와 달리 그녀의 어머니와 언니는 주변의 부정적인 시선 등을 이유로 그만두라고 강요하기 일쑤고, 결혼을 약속한 연인마저도 그녀의 직업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 일은 마나에게 단순히 직업 이상의 의를 가진, 주체적인 삶을 살고 있다는 표식이기도 하다. 결국 그녀는 자신의 일을 끝내 인정하지 못하는 연인과 관계를 정리하고 게시미안의 장례지도사로서 원하는 삶을 이어간다. 마나의 친구인 ‘후코’는 자신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시댁의 요구에 맞춰 결혼식을 치른다. 게다가 그녀의 남편과 시부모의 반대로 미용사로서의 커리어 또한 결혼과 동시에 단절되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주부로서의 역할을 강요당하던 후코는 자신이 원하는 미용 일을 계속하기 위해 남편과의 결별을 선택한다. 마나와 후코를 비롯해 소설 속에 등장하는 여성들은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로부터 ‘여성다움’을 강요받는다. 그 과정에서 개인의 의사는 거부되거나 무가치한 것으로 매도당한다. 저자는 ‘나쓰메’, ‘마나’, ‘후코’ 등 여성 캐릭터를 통해 성 역할에 얽매이지 않는 ‘나다운 삶’이 무엇인지 이야기한다.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금지되고 거부되는 삶은 있을 수 없다. 저자는 가족과 사회라는 이름으로 여성에게 규격화된 삶을 강요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AI’로 대변하는 눈부신 과학기술의 시대를 살고 있음에도 여성에게 요구하는 사회적 역할은 좀처럼 바뀌지 않았다. 여성은 남성의 소유물도 아니고 사회라는 시스템 속에서 고정되는 일개 부품도 아니다. 이 책을 통해 저자가 우리 사회에 보내는 메시지를 읽고 생각하고 공감해보길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