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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인 에어
작품 해설 작가 연보 독후감 - 박신영(작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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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은 어머니와 누이들에게 그다지 애정이 없었고, 나에게는 적의를 품었다. 존은 나를 괴롭히고 때렸다. 일주일에 이삼일도 아니고, 하루에 한두 번도 아니고, 끊임없이 말이다. 존이 가까이 올 때마다 내 몸의 온 신경이 두려움에 떨었고, 뼈에 붙은 모든 살점이 졸아드는 듯했다. 존이 휘두르는 공포에 절절맨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는데, 그 애가 협박하고 주먹을 휘둘러도 나로서는 하소연할 데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인들은 괜히 어린 주인의 심기를 건드릴까 봐 내 편을 들지 않았고, 리드 부인은 그런 문제에는 눈과 귀를 닫았다. 리드 부인은 존이 나를 때리는 걸 봐도 못 본 체했고 욕하는 소리를 들어도 못 들은 체했다. 리드 부인이 보는 앞에서도 심심찮게 나를 때리고 욕을 해대는 존이니, 자기 어머니가 못 보는 자리에서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
---pp.14~15 여덟 해 동안 생활은 한결같았지만 정체돼 있지 않았으므로 불행하지는 않았다. 손만 뻗으면 닿는 곳에 훌륭한 교육 수단들이 있었다. 특정 학과들에 대한 애착, 모든 학과에서 뛰어나고 싶은 욕망, 그리고 선생님들, 특히 내가 사랑하는 선생님들을 기쁘게 해드릴 때의 더없는 희열이 나를 부추겨댔다. 나는 내게 주어진 이점들을 십분 활용했다. 머지않아 최상급 반에서 최우수 학생이 되었고, 그러고는 교사 직책을 부여받아 이 년 동안 열심히 일했다. 하지만 이 년째 해가 끝날 때쯤, 나는 달라졌다. ---p.138 “그 애는 로체스터 님이 후견인으로 돌봐주는 아이예요. 주인님이 가정교사 구하는 일을 나에게 일임하신 거고요. 그분은 그 애를 여기서 키울 작정인 것 같아요. 아, 저기 그 애가 오는군요. ‘본느’ 하고 같이요. 저 애는 제 보모를 그렇게 부른답니다.” 이렇게 해서 수수께끼가 풀렸다. 이 붙임성 있고 친절한 자그마한 부인은 대단한 귀부인이 아니라 나와 같은 고용인 신분이었다. 그런 얘기를 들었다고 부인이 덜 좋아지지는 않았다. 오히려, 훨씬 더 기뻐졌다. 그분과 내가 동등하다는 건 사실이었다. 그저 부인이 겸손해서 그렇게 말한 것이 아니었다. 그게 훨씬 좋았다. 내 지위가 훨씬 더 자유로워졌으니까. ---p.166 “허! 이런! 당신에겐 뭔가 특이한 데가 있어. 어린 수녀 같은 분위기가 있단 말이야. 기묘하고, 고요하고, 진지하고, 단순하고, 그렇게 손을 모으고 앉아서는, 말이 났으니 말이지만, 내 얼굴을, 예컨대 지금처럼, 꿰뚫을 듯이 쳐다볼 때가 아니면, 시선은 대체로 양탄자를 향해 있지. 그러다 누가 질문이라도 하면, 또는 대답해야 하는 언급이라도 하면, 당신은 툭 퉁명스러운 정도는 아니더라도 무뚝뚝하다고는 할 수 있는 솔직한 답을 내놓는단 말이오. 그건 왜 그런거요?” ---pp.218~219 “단순히 저보다 나이가 많다거나 저보다 세상을 많이 보셨다는 이유로 저에게 명령할 권리가 있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주장하시는 우월성은 그 시간과 경험을 어떻게 쓰고 계시느냐에 달려 있겠지요.” “흠! 또 그 신속한 답이군. 하지만 난 그 두 가지 이점을 나쁘게는 아니더라도 무심하게 쓰고 있으니, 그 말이 내 경우에 절대 맞지 않을 걸 아니까, 그렇다고 인정하면 안 되겠지. 그럼, 우월의 문제는 제쳐 두고, 당신은 이따금 내 명령을 받더라도 그 어투에 화를 내거나 기분 상하지 않겠다고 동의해줘야겠소. 어떻소?” ---p.223 “제가 가난하고, 비천하고, 보잘것없고, 작다고 해서, 제가 영혼도 없고 마음도 없다고 생각하세요? 틀렸어요! 제 영혼은 당신 영혼만큼이나 충만해요, 제 마음도 당신 마음만큼이나 온전하다고요! 신이 제게 약간의 아름다움과 많은 재산을 베풀어주셨다면, 지금 제가 당신을 떠나기 힘든 만큼 당신도 저를 떠나기 힘들게 만들었을 거예요. 전 지금 관습이나 인습을 매개로 말씀드리는게 아니에요. 죽을 육신을 통해서도 아니고요. 당신의 영혼에 말을 건네는 건 제 영혼이에요. 우리 두 영혼이 무덤 속을 통과해 신의 발치에 섰을 때 동등하듯이, 지금 우리는 동등해요!” ---p.421 “저 사람이 ‘내 아내’요. 이런 것이 내가 아는 유일한 부부 사이의 포옹이고, 이런 것이 내 한가한 시간을 위안하는 애정의 표시요! 그리고 여기, 내가 얻고자 소망하는 사람이 있소.” 그가 내 어깨에 손을 얹었다. “이처럼 엄숙하고 고요하게 지옥의 입구에 서서, 이처럼 침착하게 악마의 망동을 지켜보는 이 젊은 여성을, 나는 저 지독한 스튜를 맛본 다음에 입가심을 원하듯이, 이 사람을 원했소. 우드, 브릭스, 이 차이를 보시오! 이 맑은 눈과 저 붉은 눈을 비교해보시오. 이 얼굴과 저 면상을, 이 자태와 저 덩치를 말이오. 복음을 전하는 사제와 법을 아는 법률가, 두 분은 그러고 나서 나를 심판하시오. 그리고 그 심판과 함께 ‘너희가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라는 말도 잊지 마시오! 이제 나가시오, 나는 내 보물을 가두어야 하니.” ---pp.491~492 결혼한 지 이제 십 년이 되었다. 나는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사람과 사는 것이, 또 그 사람을 위해 사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안다. 나는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는 최고의 축복을 받았다. 남편이 온전히 나의 생명인 만큼 내가 온전히 남편의 생명이기 때문이다. 어떤 여성도 나보다 배우자와 더 가깝지는 않을 것이며, 나보다 더 ‘그의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지는 않을 것이다. 자신의 가슴 속에서 뛰는 심장의 고동에 지루해지는 일이 없듯이, 나는 에드워드와 함께 있는 일에 지루해지지 않고, 그도 그렇다. 그 결과, 우리는 늘 함께 있다. 우리에겐 함께 있는 것이 혼자 있는 것처럼 자유로운 동시에 여러 사람과 어울리는 것처럼 흥겹다. 우리는 종일 얘기를 나누는 것 같다. 머릿속에서 생각하는 것은 뭐든 소리를 통해 더 생기 있게 서로에게 전달된다. 나는 모든 신뢰를 그에게 주었고, 그는 모든 신뢰를 내게 주었다. 우리는 성격적으로 정확하게 딱 맞았다. 완벽한 일치가 그 결과이다. ---p.757 |
책세상 세계문학 12권,《제인 에어》. 주인공 제인 에어는 아기 때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셔서 외삼촌 댁 게이츠헤드 저택에 맡겨진다. 하지만 외삼촌도 일찍 돌아가셔서 외숙모 리드 부인과 외사촌 일라이자, 조지아나, 존 남매와 함께 지내게 된다. 하지만 이들 가족은 모두 제인 에어를 미워해 학대를 일삼는다. 특히 존은 제인 에어에게 폭언과 폭행을 일삼았는데, 어느날 존과 크게 싸워 몸싸움을 벌인 후 외숙모 리드 부인은 제인 에어를 기숙학교인 로우드 학교로 보내버린다. 제인 에어는 그곳에서 처음에는 학생으로, 몇 년 후에는 교사로 생활하게 된다. 8년의 세월이 지난 후 제인 에어는 새로운 인생을 살리라 결심하고 로우드 학교를 떠나 손필드 저택에서 가정 교사로 일하게 된다. 그곳 주인인 로체스터는 제인 에어에게 호기심과 관심을 보이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둘의 감정은 깊어져 사랑하는 사이가 되고 결혼을 결심한다. 하지만 결혼식 당일, 로체스터에게 정신병을 가진 숨겨둔 아내가 있음이 밝혀지고 파혼하게 된다. 깊은 슬픔과 고통을 느낀 제인 에어은 간단한 옷과 약간의 돈만 챙긴 채 손필드 저택을 떠나 방황하게 된다. 오갈 데 없이 극심한 굶주림과 추위에 고통받던 제인 에어는 모르는 사람의 집 앞에 쓰러지게 되고, 그 집의 사람들이 그녀를 거두게 된다. 그 집은 신존, 다이애나, 메리라는 삼 남매의 집이었는데, 그곳에서 건강을 회복한 제인 에어는 마을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맡게 된다. 제인 에어는 그들에게 자신의 신분을 숨겼는데, 우연한 계기로 그들이 제인 에어의 고종사촌이라는 사실이 밝혀진다. 바로 제인 에어의 숙부가 죽으면서 전 재산을 제인 에어에게 상속했기 때문이었다. 행방불명된 제인 에어를 찾는 편지를 신존이 받았던 것이다. 부자가 된 제인 에어는 고종사촌인 신존, 다이애나, 메리에게 유산을 나눠주었고, 곧이어 신존에게 청혼을 받게 된다. 하지만 제인 에어는 청혼을 거절하고 로체스터를 찾아 손필드로 향하는데 저택은 모두 불에 타 무너져내린 지 오래였다. 제인 에어는 수소문 끝에 로체스터의 다른 저택으로 향하고 그곳에서 한쪽 팔을 잃고 장님이 된 로체스터를 만나게 된다. 정신병을 가진 아내가 저택에 불을 질렀던 것이다. 하지만 그 무엇도 제인 에어에겐 장애가 되지 않았다. 제인 에어는 로체스터에게 평생 함께 하겠다는 약속을 하고 조촐한 결혼식을 올린다. 그렇게 둘은 한몸이 된 듯이 평화로운 삶을 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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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믿고 사랑하는 ‘자애’를 가진 인물, 제인 에어.
변화하고 성장하는 능동적 주체로서의 여성의 등장! 제인 에어는 어떤 인물인가? 무엇보다 변화를 원하는 인물이다. 그리고 더 나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인물이다. 완고하고 고집불통인 성격이지만 자제력과 식견이 부족하다는 점을 인정하고 자신보다 나은 사람들의 본을 받아 더 나은 자신이 됨으로써 과거의 오류와 잘못을 만회하고자 한다. 그러한 열망의 기저에 깔린 것은 사회적인 성공이나 타인의 인정과 같은 외부적 동기가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좀 더 존경할 만한 사람이 되고자 하는 내부적 동기, 자신을 믿고 사랑하는 ‘자애’의 정서이다. 또한 제인 에어는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향유할 줄 아는 사람이다. 세간의 기준이나 평가가 아니라 자신이 직접 보고 들은 바로 자신만의 기준을 가지고 판단하는 미학적 인물이다. 샬럿 브론테의 제인 에어는 외부의 가치 기준에 기대지 않고 저 자신의 고유성과 특이성을 발명하고 그 역량을 펼쳐내는 삶을 갈망하는 실존의 미학을 선취한 인물이며 상충하는 충동과 욕구들을 다스리며 끊임없이 자신을 극복하여 새로이 변화하고자 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그리고 제인 에어는 스스로의 선택으로 더 나은 관계를 맺을 줄 안다. 어릴 적 제인은 외사촌들에게 따뜻한 대우를 받지 못했지만 상속받아 부자가 된 후 가난한 고종사촌들에게 유산을 나누어 주고 가족을 얻는다. 외로운 고아인 자신의 운명을 바꾼 것이다. 제인은 고아라고 차별받았지만 가정 교사로 자신이 가르치는 사생아 소녀를 멸시하지 않는다. 또한 과거 기숙학교에서 학대받았지만 가난한 농가집 학생들을 성심껏 가르친다. 이렇게 제인 에어는 타고난 운명, 남이 좌우하는 운명을 벗어나 스스로 자기 운명을 완성한다. 《제인 에어》는 남성의 보조자로서의 여성이라는 당시 시대의 여성상을 과감히 뛰어넘어 변화하고 성장하는 능동적 주체로서의 여성 캐릭터를 보여주고 있다. 또한 여성이 여성이기 이전에 한 인간으로서 존중받아야 하는 이유를 제시하고 여성도 자신의 운명을 개척할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남기고 있다. 소녀들이여, 여기 《제인 에어》가 있다 _‘독후감’: 박신영(작가) 세계명작 동화전집과 소설전집을 읽으며 성장했다. 어릴 때는 《소공녀》의 세라를, 좀 더 자라서는 《작은 아씨들》의 조를 닮고 싶었다. 고1때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부터는 제인처럼 살리라 결심했다. 가난한 고아지만 자존심 강한 제인. 자신을 부당하게 대하는 사람에게는 따지고 저항하지만,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성실한 제인. 그리하여 끝내 자신의 운명을 완성하는 제인. 나만이 아니었으리라, 아래 인용 부분에 줄 쳐놓고 제인을 롤 모델로 삼는 소녀는. (…) 손필드 저택에서 가정교사로 일하게 된 제인은 로체스터 백작과 동등한 위치에서 대화하려 든다. “단순히 저보다 나이가 많다거나 저보다 세상을 많이 보셨다는 이유로 저에게 명령할 권리가 있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주장하시는 우월성은 그 시간과 경험을 어떻게 쓰시느냐에 달려 있겠지요.”(222쪽) 가난한 고아이며 어린 여성이고 피고용인인 제인은 모든 면에서 ‘을’의 위치에 있다. 로체스터는 제인의 ‘갑’이다. 거대장원의 주인인 부유한 귀족이며 연장자 남성이고 고용주다. 그런 로체스터에게 제인은 자신을 존중해주기를 요구한다. (…) 제인은 나쁜 패턴을 반복하지 않는다. 정략 결혼과 사기 결혼의 피해자였으면서도 제인을 속이고 사기 결혼을 추진한 로체스터의 선택과 대조적이지 않은가? 이렇게 제인은 타고난 운명, 남이 좌우하는 운명을 벗어나 스스로 자기 운명을 완성한다. 바로 어릴 적 내가 제인에게서 가장 본받고 싶은 자세였다. (…) 버릇없는 어린 여자애는 죽으면 지옥으로 간다고 말하며, 안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묻는 브로크허스트 씨에게 제인은 이렇게 말한다. “건강을 잘 지켜서 죽지 말아야 해요.”(52쪽) 그렇다. 지옥이든 뭐든, 당신들이 만들어놓은 시스템으로 움직이는 그 세상에 내가 들어가지 않으면 그만이다. 그러니 무서워하며 당신들 마음에 드는 착한 아이가 되려고 노력할 필요가 없다. 어린 제인은 그동안 학대받은 경험으로 깨우쳐 알고 있다. 약자를 쉽고 편하게 지배하는 방식은, 약자에게 차별받을 결함이 있으니 좋은 대우를 받고 싶으면 ‘알아서 기라’고 가르치는 것임을. (…) 그러므로 세상이 아직도 소녀들에게 《어린이 길잡이》 같은 책을 권한다면, 나는 이 책을 내밀며 말하겠다. 여기, 《제인 에어》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