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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과 이미지
회화와 기보에 깃든 선율들
박찬이
풍월당 2024.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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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top100 3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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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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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책을 내면서

Ⅰ. 악기의 음악Musica Instrumentalis

1장-음악의 꽃밭, 하프시코드의 정원-1
2장-화폭 속 하프시코드-2
3장-춤추는 활, 노래하는 현-바이올린
4장-인간의 숨결, 바람의 선율-목관악기
5장-인간의 숨결, 바람의 선율-금관악기
6장-울림의 손길, 공명하는 류트-1
7장-울림의 손길, 공명하는 류트-2
8장-울림의 손길, 공명하는 류트-3

Ⅱ. 인간의 음악Musica Humana

9장-장미 꽃잎에서 피어나는 음표들
10장-하트와 하프의 가락
11장-우연의 음악, 유희의 음악
12장-간계와 속임수, 오페라 속 엉터리 의사들
13장-텔레만과 『걸리버 여행기』
14장-음악이 그려낸 지형도
15장-죽음의 기법과 〈푸가의 기법〉
16장-18세기 초상화의 시대와 C.P.E.바흐

Ⅲ. 우주의 음악Musica Mundana

17장-우주의 조화, 음악의 순환
18장-음악과 신앙의 교차점-십자가 기보
19장-신앙의 눈으로 보고 듣다-비버 〈로사리오 소나타〉
20장-오르가니스트 바흐, 작곡가 바흐, 음악가 바흐
21장-바흐가 그린 ‘승리자 그리스도’ 〈요한 수난곡〉

도판 출처
참고 문헌

저자 소개1

이화여자대학교 조형예술대학 공예학부와 시각정보디자인 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시각정보디자인 학과에서 광고디자인을 세부 전공하고 미학도 함께 공부했다. 종합광고회사 대홍기획을 다녔다. 음악 및 미술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으며 경기도어린이박물관, 경기북부어린이박물관 등에서 공연기획자 및 감독으로도 일했다.

품목정보

발행일
2024년 12월 20일
쪽수, 무게, 크기
576쪽 | 1618g | 159*229*51mm
ISBN13
9791189346751

책 속으로

공감각‘synesthesia이라는 단어는 그리스어에서 유래했다. ‘함께syn’ 접두사와 ‘감각aesthesis’이 합쳐져 ’동시에 느끼다’를 뜻한다. 오감 중 시각과 청각은 긴밀하게 연계되며, 강력한 상호작용을 촉발한다. 시각예술과 음악의 관계성을 다룬 연구도 많다. 이는 미학, 음악학, 철학은 물론 멀티미디어, 인지심리학, 뇌과학에서도 활발히 논의되는 소재다. 사이토윅Richard E. Cytowic 같은 신경과학자는 공감각을 주류 과학 반열에 편입했으며, 이글먼David Eagleman, 브랜트Anthony Brandt의 과학과 예술을 접목한 분석도 널리 알려졌다. 20세기 칸딘스키나 파울 클레의 경우처럼 음악과 회화의 조우 사례에 대한 탐구도 활발하다. 그러나 근대 이전 음악과 이미지의 상응을 논하는 책들은 많지 않고, 국내에는 이렇다 할 저서나 번역서조차 드문 실정이었다. 이 책은 위 문제의식에 대한 생각 및 사례 모음이다.
--- p.7

이 글이 어떤 이의 영혼에 닿아, 작은 울림과 색채로 남을 수만 있다면.
세상 한 모퉁이에서 누군가의 공감각을 잠시나마 일깨울 수 있다면
--- p.9

지금은 사라진 광화문 금호아트홀. 하프시코드 콘서트가 자주 열렸던 곳이다. 공연이 끝나면 나는 유심히 하프시코드를 보곤 했다. 소리는 물론 외양마저 아름다운 악기. 낮은 조도를 선호했던 하프시코디스트 때문이었을까. 어둑한 무대서 조명을 받은 하프시코드는 교교한 분위기마저 감돌았다. 처음 향판을 보았던 기억도 생생하다. 만져질 듯 화려한 장미와 튤립과 새들. 향기가 훅 끼쳐오고, 귀에서 새소리가 제멋대로 울려 퍼졌다. 오감이 아우성치며 깨어나는 느낌이었다. 그곳은 하프시코드 속 숨겨진 정원. 만발한 꽃밭이었다. 그때의 경이로움으로 이 글을 쓴다. 달리 무슨 이유가 필요할까?
--- p.17

옛사람들은 하프시코드에 귀 기울이며 꽃과 새와 풍경을 보았고, 경구를 읽으며 유한한 삶 속 음악이 주는 찰나의 기쁨을 되새겼다. 아름다운 음악, 데코레이션이 상징하는 회화, 명문으로 대표되는 시. 이 모든 것이 하프시코드에서 경이롭게 통합되었다.
--- p.56

타일러의 기록은 이 글에서 다뤘던 소재들을 요약한다. 하프시코드를 연주하는 여인, 친밀한 음악적 초대, 악기를 사이에 두고 담소를 나누는 연인, 노래와 화음이 주는 기쁨.

이 모든 중심에 음악과 악기가 있다. 수 세기가 지났지만, 우리는 페르메이르를 비롯한 화가들이 묘사한 일상에 여전히 전율한다. 하르모니아Harmonia와 콘코르디아Concordia가 표방하는 조화와 합치. 고요 속에서 들려오는 선율. 회화 속으로 스며든 음악. 그 빛나는 순간을 그들처럼 찬란하게 포착한 이들은 거의 없다.
--- p.82~83

목동 티티루스가 나무 그늘에서 피리를 부는 장면이나 요정들이 춤추는 숲에서 울리는 뮤즈의 피리 소리는 그리스 로마 시대 이래 자연과 전원이 주는 평온과 휴식 그 자체였다. 이는 ‘로쿠스 아모이누스Locus amoenus’4 같은 목가적 이상향, 즉 아르카디아Arcadia나 유토피아 같은 가상공간을 상기시켰다. 리코더의 서정적 선율은 다다를 수 없거나 이미 소멸하였기에 모종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낙원, 황금시대를 연상시키는 기제이기도 했다.
--- p.136

여성에게서 완전히 등을 돌린 남성은 류트 위에 현을 잔뜩 늘어놓고 교체 중이다. 그는 여인 쪽 테이블에 놓인 류트는 외면한 채 다른 류트 현을 잇고 있다. 사내가 조율이 아니라 현을 갈고 있는 점은 의외인데, 당시 네덜란드 회화에서 악기를 함께 연주하거나 조율하는 남녀는 매우 선호되는 주제였고, 사랑이나 연인의 화합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 p.256

현이 끊어진 비올라 다 감바 역시 함축적이다. 베이스 비올은 바소 콘티누오basso Continuo 역할과 저역을 담당했기에, 당시 사고로 가정의 기반이자 근거로 인식되었던 남성, 남편을 의미하는 악기였다. 당시 회화 속 여성과 비올이 남녀의 조화로운 이중주나 그에 대한 초대를 암시했음을 숙고해볼 때, 현이 끊어져버린 비올은 반전에 가까운 부분이다. 여자 역시 류트 현을 잇는 데만 집중하는 사내를 외면하며, 그림 밖 우리를 노골적으로 주시한다. 끊어진 비올의 현, 다른 류트 현 갈기에만 몰두하고 있는 남성, 대담한 시선으로 관람자를 응시하는 여인. 두 남녀의 듀엣은 아마 불가능하지 않을까.
--- p.256~259

페르메이르 작품 역시 류트 함의와 연계할 때 보다 풍부한 의미를 드러낸다. 여인은 류트를 들고 창밖을 내다보고 있다. 눈빛과 미소로 보아, 그녀는 막 도착한 동반자의 모습을 보았거나 인기척을 들었을 수도 있다. 맞은편 의자 옆에는 비올이 놓여 있어, 애인과의 이중주가 준비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 p.268

기보 속 게는 이런 맥락을 종합한다. 역행 카논과 회문의 일종인 g-a-b-a-g 음계는 ‘뒷걸음치는 세계’를 음악적으로 구체화하며 ‘거꾸로 움직이는 게’는 이를 시각화한다. 세상을 등에 지고 뒤로 가는 게는 통제할 수 없는 세태와 쇠퇴를 보여주며, 개인, 공동체 모두의 혼돈을 요약한다.

한 사내의 연심이 하트로 표현되고 하프가 음악 자체가 되었듯이, 퇴행하는 세상에 대한 한탄과 신랄한 비판이 지구의를 짊어진 게 이미지 속에 음악으로 구현되었다.
--- p.316

여기 애묘인들이 경악할 악기가 있다. 바로 고양이 클라비어다. 원리는 단순하다. 키보드와 이어진 줄이 고양이 꼬리에 연결되어 건반을 두드리면 고양이들이 울음소리를 낸다. 다행히 이 잔혹한(?) 악기는 널리 일반화되지는 않았고, 옛 서적에 주로 등장한다. 수많은 이들이 고양이가 울어대는 화음이 어떤 음악이 될지 호기심을 느꼈다. 명백한 동물 학대이자 악취미지만, 여러 석학이 이 악기가 내포한 우연성에 매료되었다.
--- p.322~323

한갓 유랑 의사나 약장수가 공연자라고? 아니, 그 이상이었다. 떠돌이 치유자들은 스스로가 배우이자 가수였고, 사실상 무대 기획자이자 흥행사impresario였다. 뒤의 몰레나르 그림과 같이 돌팔이들이 바이올린이나 트럼펫 악사를 대동하는 경우는 흔했다. 여기에 어릿광대, 곡예사, 춤꾼, 인형사, 현대적 의미의 스턴트맨까지 다양한 엔터테이너가 추가되었다. [...] 떠돌이 치유자들의 판촉은, 우리로 치면 ‘동춘서커스단’이 푯값 대신 약값을 받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약장수가 도착한 날은 마을 잔칫날이나 진배없었다. 어른은 물론 동네 꼬맹이들까지 뛰어나와 이 촌극에 열광했다.
--- p.346~347

두 악보를 보자. 첫 악보에는 음표들이 빽빽하다. 너무 촘촘해서 128분음표인지 256분음표인지 분간이 되지 않을 정도다. 두 번째 악보에서는 온음표들이 오선지를 둥둥 부유한다. 놀랍게도 이들은 같은 제목 아래 작곡되었다. 대체 무슨 곡일까? 정답은 텔레만Georg Philipp Telemann의 〈걸리버 여행기 모음곡Suite ‘Gulliver’s Travels’〉TWV 40:108이다.
--- p.361

음악사가 찰스 버니Charles Burney는 C.P.E. 바흐를 방문했던 경험을 생생히 전한다. 1772년 함부르크에서의 일화다. 앞 단락은 버니의 수기를 다소 각색했지만, 내용이 크게 벗어나지는 않는다. 수백 점의 초상화가 있는 방에서 클라비코드를 치는 에마누엘 바흐. 이처럼 상상력을 자극하는 이야기가 있을까.
--- p.410

비버처럼 가톨릭으로서 강한 정체성을 가진 이는 흔치 않았을 것이다. 그는 가톨릭 개혁의 구심점 역할을 했던 예수회의 두 성인, 이그나츠와 프란츠를 자신 이름으로 새겼다. 그의 〈로사리오 소나타〉는 당시 가톨릭이 강조했던 시각을 포함한 오감을 총동원한 관상과 내적 역동성, 묵주기도, 성모 신심을 극명하게 보여주며, 17세기 가톨릭 신앙의 정수를 함축한 작품이 되었다.

그래서 이 곡의 이상적인 감상은 이냐시오 데 로욜라가 발전시켰던 관상기도를 염두에 두고 듣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기 예수가 태어난 마구간을, 겟세마니 동산을, 성모 마리아가 승천하는 하늘을 ‘신앙의 눈’으로 바라보며 온몸으로 느끼고 듣는 것이다. 그 속에서 우리는 비버가 목도했던 찬란한 마음속 신비를 함께 주시할 수 있으리라.

--- p.485

출판사 리뷰

옛 사람들의 ‘멀티미디어’ 경험

‘멀티미디어’라는 말이 이미 낡은 표현으로 들릴 만큼 우리는 감각의 홍수 속에 살고 있다. 스마트폰으로 항시 자극을 받는 우리의 오감은 지쳐 있고, 역치易置가 올라가 더 자극적인 것이 아니면 반응하지 못한다. 늘 영상을 좇으나 이를 해석할 여유가 없으니 감각이 넘쳐나지만, 주체적으로 공감각의 능력을 발휘하기는 어렵다.

풍월당에서 출간하는 『음악과 이미지』는 그런 면에서 미답지의 영역을 다룬다. 이 책은 악보, 악기 등 음악과 관련된 이미지를 통해 ‘옛 사람들의 멀티미디어 경험은 어떠했을까’ 하는 화두를 던진다. 하프시코드의 덮개, 류트의 공명홀, 갖가지 형태의 악보에 그려진 그림은 이미지라는 시각과 음향이라는 청각을 연결한다. 이 공감각은 또다시 당대 사람들의 관념과 세계관을 비춰준다.

공감각을 다루는 저자 박찬이의 시각은 독특하다. 지칠 줄 모르는 호기심으로 가득하다. 『걸리버 여행기』로 작곡을 한 음악가, 엔터테이너 역할을 하는 돌팔이 의사, ‘고양이 악기’가 만들어내는 우연의 음악 등 옛 사람들의 상상력을 엿볼 수 있는 생생한 사례들이 가득하다. 감각과 상상력, 의미가 즐겁게 이어진다. 르네상스와 바로크 시대의 음악에 대한 실용적, 인문적 지식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은 덤이다. 우리의 공감각 경험, 상상력은 어떠한가. 충분히 주체적인가. 『음악과 이미지』는 오늘의 독자들에게 그렇게 묻고 있다.

공감각

책의 중심에는 공감각 경험이 놓여 있다. 오랜 시간 광고업계에서 일한 저자 박찬이는 ‘색청’을 느끼는 복합 감각의 소유자다. 색청이란 음악을 들을 때 명암 혹은 색채를 함께 느끼는 것을 말한다. 어린 시절 아버지가 사 오신 LP의 음악을 듣고 자켓의 그림을 보면서 음악과 이미지가 서로 연동되는 경험을 했다. 이 경험은 오랜 음악 감상 생활을 거치며 지금껏 국내의 어떤 저자도 다룬 적이 없는 특별한 주제로 그를 이끌었다. 옛 그림에 그려진 ‘악기’와 그 의미를 들여다보자는 것이었다. 물론 그림 자체에서 소리가 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려진 악기의 소리나 악보의 곡조를 알고 있다면 그림을 보며 상상할 수 있다.

그런데 이처럼 상상력을 발동시키는 것은 매우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감상 행위다. 이미지에서 음악을, 음악에서 이미지를 느끼려면 서로 다른 두 매체를 연결시키는 감수성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수동적인 듣기, 무비판적인 미디어 중독이 사회적인 문제가 되고 있는 오늘날, 저자 박찬이는 적실한 주제를 건드리고 있는 셈이다.

고음악, 우리 시대를 비추다

또한 이 책은 그동안 우리가 잘 알지 못했던 고음악의 다채로운 세계를 일깨워 준다. 물론 고음악만을 다루는 것은 아니지만, 옛 플랑드르 악기 제작자들의 이야기, 작곡가, 연주가의 이야기가 전체에 빼곡하다.

그동안 고음악 분야는 시대악기 연주 붐과 함께 지난 반세기동안 비약적으로 성장하여 클래식 공연 및 음반 시장을 실제적으로 이끄는 동력이 되었다. 시대 악기 연주란 단순하게 표현하자면 ‘바흐의 음악을 바흐 시대의 악기로 연주하자’는 것을 말하지만, 점차 역사적 고증이나 ‘복원’ 이상의 영향력, 곧 현대성을 지니게 되었다. 고전 음악의 경전을 선정하는 과정에서 누락된 걸작들을 다시 발굴하고, 이전까지 음악의 시장화, 근대화, 공연의 대형화 등의 흐름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잊힌 여러 작품을 새롭게 조명하는 계기가 됐다. 그 결과 ‘시대 악기 운동’은 오늘날 클래식 음악 시장에 ‘새로운’ 작품들을 공급하고 있다.

이는 다시 감상자의 듣기에도 영향을 미쳤다. 근대화, 산업화, 대형화의 시대에는 크고, 영웅적이고, 웅장한 ‘공연장’ 음악이 ‘고전 음악’의 주류로 각광받았고, 그 빛이 강렬한 만큼 그늘을 만들었다. 그러나 대형 미디어, 대형 음반사, 대형 공연장의 일방향적 제작 방식이 후퇴하고 보다 다원적인 교류가 가능해지자 보다 친밀하고, 섬세하고, 세밀한 감성의 세계가 새로 조명 받았다. 고전, 낭만 시대의 음악이 여전히 시장의 주류에 놓여 있지만, 이전보다 훨씬 더 다채로운 관심사와 취향을 반영하는 감상의 문화가 생겨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고음악의 약진은 결국 역설적으로 우리 시대의 취향을 말해준다. 박찬이의 『음악과 이미지』 또한 그러한 변화를 유쾌하게 드러낸다. 저자는 시종일관 관찰자적 시각으로 작은 것에 대한 호기심을 보여준다. 역사나 이념보다는 옛 악기, 악보에서 보는 세밀한 이미지를 통해 다양한 감각 경험의 즐거움을 앞세운다. 새로운 취향의 공동체 속으로 독자들을 끌어들인다. 그 과정에서 고음악과 관련된 깨알 같은 지식을 얻을 수 있는 것은 물론이다.

악기, 인간, 우주로 이어지는 인문학 여행

박찬이는 『음악과 이미지』의 각 부의 제목은 보이티우스의 『음악 원론』에서 가져왔다. 곧 악기의 음악, 인간의 음악, 우주의 음악이 그것이다. ‘악기의 음악’은 물리적 음악, ‘인간의 음악’은 인간 내부의 조화, ‘우주의 음악’은 천체의 조화를 말하지만, 저자는 이를 각각 악기 속의 이미지, 당대 사람들의 문화와 이미지, 그와 연관된 세계관과 종교관 등으로 펼쳐낸다. 이미지와 음악이라는 공감각을 중심 주제로 놓으면서도 인문학적 접근을 심화한다. 이를 통해 박찬이는 우리의 감각 경험 또한 우리 시대의 문화 및 관념과 긴밀히 관련되어 있음을 넌지시 드러낸다.

외양의 이미지, 인상의 이미지

이러한 구분법은 여러모로 유용하다. 1부 ‘악기의 음악’은 하프시코드, 류트, 바이올린, 목관 및 금관 악기들을 다루지만, 이미 악기의 외양(이미지)을 뛰어넘어 거기 깃든 인상(이미지)까지도 포착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류트에는 조화라는 인상이, 바이올린에는 떠돌이의 인상이, 호른 등에는 사냥, 야외 활동의 인상이 따라붙는다. 이 인상은 다양하게 변형, 강화, 첨가될 수 있다. 줄이 끊어진 류트가 불화를 상징하는 것처럼 말이다. 우리 문화에서도 ‘꿔다 놓은 보릿자루’라거나 ‘동네 방네 나팔 분다’는 표현은 실제적인 모습뿐 아니라 모종의 인상을 동시에 떠올리게 만드는 것이다.

이 책에는 호기심을 자극하는 생생한 사례들이 넘쳐난다. 옛 이미지에 드러나 있는 사람들의 욕망이나 음흉한 속내를 들춰내는 쾌감 또한 이 책의 묘미다. 때로는 암호를 풀듯이, 때로는 이야기를 듣듯이, 이미지는 삶을 누설한다.

이로서 이미지, 소리, 관념은 옛 서양 문화를 보다 생생하고도 긴밀하게 이해하는 수단이 된다. 머리로 이해하는 것을 넘어서서 감각을 동원해서 이해하는 차원으로 우리를 안내하는 것이다. 독자 입장에서는 이 책에서 소개하는 갖가지 청각, 시각, 관념 사이의 유사성을 발견하고 그것을 새로운 예술 감상을 위한 기본 지식으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의미와 상상력와 감각이 이토록 즐겁게 이어지는 책을 찾기란 어렵다. 음악 따로 미술 따로, 텍스트 따로가 아니라 이 세 가지를 한데 연결하는 흥미진진한 지적 체험이 될 것이다.

상세한 도판 해설, 주석, 추천음반

저자 박찬이는 이 책에서 다루는 회화 작품과 음악 작품을 제대로 누릴 수 있도록 돕기 위해 가능한 한 상세한 해석과 주석을 실었다. 추천 음반도 책의 말미에 별도로 수록하여 공감각적 체험을 원하는 독자들을 배려했다. 읽기, 보기, 듣기, 이 셋을 연결하는 것은 독자의 몫으로 남겨져 있지만, 저자의 친절하고도 세심한 가이드를 따라간다면 이전까지는 느끼지 못했던 새로운 감동의 순간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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