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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 윤동주 시의 올바른 이해를 위하여
1부 성장기 1934~1937 초 한 대 삶과 죽음 거리에서 공상 창공 꿈은 깨어지고 조개껍질 병아리 기왓장 내외 비둘기 오줌싸개 지도 식권 모란봉에서 황혼 종달새 닭 산상山上 오후의 구장(球場) 이런 날 양지쪽 산림 곡간(谷間) 빨래 빗자루 햇비 비행기 굴뚝 무얼 먹고 사나 봄 아침 편지 버선본 눈 겨울 황혼이 바다가 되어 거짓부리 둘 다 반딧불 밤 만돌이 개 나무 장(場) 달밤 풍경 한란계 그 여자 소낙비 비애 명상 바다 비로봉 산협(山峽)의 오후 창(窓) 유언 2부 연희전문학교 입학기 1938~1939 새로운 길 산울림 햇빛·바람 해바라기 얼굴 애기의 새벽 귀뚜라미와 나와 어머니 비 오는 밤 사랑의 전당 이적(異蹟) 아우의 인상화 코스모스 슬픈 족속 고추밭 달같이 장미 병들어 투르게네프의 언덕 산골 물 자화상 소년 3부 번민과 갈등의 시기 1940~1942 위로 병원 팔복(八福) 간판 없는 거리 무서운 시간 눈 오는 지도 새벽이 올 때까지 십자가 눈 감고 간다 태초의 아침 또 태초의 아침 바람이 불어 못 자는 밤 돌아와 보는 밤 또 다른 고향 길 별 헤는 밤 서시(序詩) 간(肝) 참회록 흰 그림자 흐르는 거리 사랑스런 추억 봄 쉽게 씌어진 시 부록 - 윤동주 산문 달을 쏘다 별똥 떨어진 데 화원에 꽃이 핀다 종시(終始) 윤동주 시 이해를 위한 참고문헌 윤동주 연보 |
저이숭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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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아 너는 내 전(殿)에 언제 들어왔던 것이냐?
내사 언제 네 전에 들어갔던 것이냐? 우리들의 전당은 고풍(古風)한 풍습이 어린 사랑의 전당 순아 암사슴처럼 수정 눈을 내려 감아라. 난 사자처럼 엉클린 머리를 고르련다. 우리들의 사랑은 한낱 벙어리였다. 청춘! 성스런 촛대에 열(熱)한 불이 꺼지기 전 순아 너는 앞문으로 내달려라. 어둠과 바람이 우리 창에 부닥치기 전 나는 영원한 사랑을 안은 채 뒷문으로 멀리 사라지련다. 이제 네게는 삼림 속의 아늑한 호수가 있고, 내게는 준험(峻險)한 산맥이 있다. 이 시가 1938년 6월 19일에 완성된 것이라면 이 시기에 쓰인 작품 중 가장 완성도가 높은 작품으로 평가된다. ‘순’이라는 가상의 인물을 설정하여 자신의 감정과 사랑의 순수성을 정직하게 드러내고, 험난한 미래에 대한 각오까지 의연하게 표현했다. 21세 젊은 대학생의 순정한 내면을 시적인 화법으로 표현했기에 이 시기의 대표작이고 윤동주 일생의 걸작으로 평가할 수도 있다. 어떻게 사전 학습도 없이 이러한 걸작이 불시에 도출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창작의 순연한 불길은 예기치 못한 순간 뜨겁게 타오를 수 있으니 그의 창작 원고에 기록된 이 작품의 순도를 의심할 필요는 없다. (…) 순이와 내가 사랑의 전당에 함께 들어온 것은 맞지만, 너는 삼림 속 아늑한 호수로 남아 있어야 할 존재이고 나는 준험한 산맥을 넘어서야 할 사람이다. 이렇게 서로 다른 처지의 두 사람이 동행할 수는 없다. 너는 평온한 상태를 유지해야 하고 나는 시련의 길을 걸어야 한다는 생각이 녹아 있다. 윤동주는 자신의 앞길이 순탄하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운명적으로 직감한 것 같다. 그러한 처지에 누구를 사랑한다고 하여 상대를 시련의 길로 동참시킬 수는 없었다. 그래서 그는 홀로의 사랑을 지키며 상대를 삼림 속 아늑한 호수의 상태에 두고자 했다. 그것이 진정으로 상대를 아끼는 사랑의 마음이 아니겠는가. 연희전문학교 1학년에 다니는 21세의 청년 윤동주는 이렇게 아름다운 내면을 지니고 있었다. --- pp.225-227 「사랑의 전당」 중에서 여기저기서 단풍잎 같은 슬픈 가을이 뚝뚝 떨어진다. 단풍잎 떨어져 나온 자리마다 봄을 마련해 놓고 나뭇가지 위에 하늘이 펼쳐 있다. 가만히 하늘을 들여다보려면 눈썹에 파란 물감이 든다. 두 손으로 따뜻한 볼을 씻어 보면 손바닥에도 파란 물감이 묻어난다. 다시 손바닥을 들여다본다. 손금에는 맑은 강물이 흐르고, 맑은 강물이 흐르고, 강물 속에는 사랑처럼 슬픈 얼굴 - 아름다운 순이의 얼굴이 어린다. 소년은 황홀히 눈을 감아 본다. 그래도 맑은 강물은 흘러 사랑처럼 슬픈 얼굴 - 아름다운 순이의 얼굴은 어린다. 이 시를 읽으면 윤동주가 얼마나 해맑은 감성을 지닌 사람인지 알 수 있다. 일제 말에 옥사한 시인이라는 선입견에 가려 보지 못했던 윤동주의 온화한 내면과 유연한 감수성을 발견하게 된다. 이렇게 맑은 마음과 순정한 감성을 지니고 있었기에 그는 어두운 현실에 그토록 괴로워하고 스스로 부끄러워했으며 결국 시대의 질곡 속에서 죽음의 길로 떠날 수밖에 없었음을 알게 된다. 순수한 삶을 보장하지 못하는 세계 속에서 어떻게 순결한 자아의 존재가 지속될 수 있겠는가. --- pp.264-265 「소년」 중에서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헤일 듯합니다. 가슴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요, 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요, 아직 나의 청춘이 다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 나는 무엇인지 그리워 이 많은 별빛이 내린 언덕 위에 내 이름자를 써 보고, 흙으로 덮어 버리었습니다. 딴은, 밤을 새워 우는 벌레는 부끄러운 이름을 슬퍼하는 까닭입니다.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무덤 위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내 이름자 묻힌 언덕 위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거외다. 이 시는 윤동주가 남긴 시 중에서 가장 길이가 길고 서술적이며 형태의 변화도 나타난다. 시를 쓴 날짜와 시의 배경도 부합한다. 그만큼 윤동주의 시인으로서의 현장감과 자의식이 강하게 투영된 작품이다. 요컨대 윤동주의 시 중 시를 쓴다는 의식이 가장 강하게 드러난 작품이다. 만약 윤동주에게 자신의 시 중 꼭 한 편을 골라 문학지에 투고하라고 했다면 이 작품을 보냈을 것이다. 다시 말하면 시인 윤동주의 모습을 가장 뚜렷이 부각하는 작품이 이 작품이다. (…) 이후 전개된 윤동주의 삶을 보면 이 시가 거의 예언적인 상징성을 지닌다는 사실을 이해하게 된다. 그는 해방 전 봄이 오기 전에 차디찬 감옥에서 죽었고, 북간도의 무덤에 유해가 묻혔다. 그 무덤에 ‘시인 윤동주’라는 그의 이름이 새겨졌다. 해방이 되어 그의 시집이 나오고 그의 이름이 알려지자 그야말로 그의 별에 봄이 온 것처럼 그의 자랑스러운 이름이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무성하게 퍼져 가게 되었다. 이렇게 보면, 분명 이 시가 그의 삶을 예언하는 상징성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 pp.334-342 「별 헤는 밤」 중에서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 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사상이 능금처럼 저절로 익어 간 결과 이런 자리에 이르렀다.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한 이 예민한 자아는 밤하늘의 별을 보면서 미미한 바람의 기미가 순수의 별도 스치는 것인지 괴로워했다. 지극히 예민하고 지극히 순수한 자아의 움직임을 한 치의 과장 없이, 숨김없이 서술했다. 이렇게 해서 스물네 살 청년 시인 윤동주의 기념비적인 서시가 탄생했다. --- pp.343-346 「서시(序詩)」 중에서 |
2025년 윤동주(1917~1945) 80주기
한국 시의 빛나는 별 윤동주, 그의 시 100편을 명품 해설과 함께 읽는다! 창작 순으로 읽으면 비로소 드러나는 ‘윤동주라는 예민한 자아’의 내면 “윤동주의 시에는 어려운 시대를 살아간 한 섬세하고 예민한 자아의 번민과 고뇌가 암시적 어법으로 형상화되어 있다. 그 암시적 어법은 때로 상징의 차원으로 이동하기도 한다. 이 상징의 내면성 때문에 그의 시어에 대해 과도한 의미 부여나 해석상의 비약이 초래되는 경우가 있었다. 또 그의 옥사(獄死)에 지나치게 비중을 두고 저항의식을 축으로 작품을 유형화하는 사례도 있었다. 이러한 착시 현상은 그의 시를 창작 순서대로 읽으면 상당 부분 해소된다. 그는 처음 시작(詩作)에 들어설 때부터 시는 무엇이며 시를 쓴다는 일이 어떤 의미를 지닌 것인가에 대해 비교적 뚜렷이 자각하고 있었다. 시에 관한 그의 탐구와 사색은 삶에 대한 진지한 태도와 연결되어 있었다. 세상을 진지하게 사는 것과 시를 진실하게 쓰는 일이 그에게는 동질적이다.”― 이숭원, 「서문: 윤동주 시의 올바른 이해를 위하여」 중에서 윤동주는 ‘저항 시인’인가? 우리는 흔히 윤동주를 일제 말의 저항 시인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는 1945년 2월 16일 새벽 후쿠오카 감옥에서 세상을 떠날 때까지 기성 문단의 문예지에 작품을 발표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를 저항 시인이라고 부른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그의 시는 일제강점기 정당하지 못한 현실의 억압에 괴로워하며 불의(不義)한 시대에 순결한 영혼을 지키는 길이 무엇인가를 모색한 내성적 지식인의 고뇌를 보여 준다. 그의 시에는 분명 당시의 상황을 부정하는 정신, 정당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신념이 내재해 있었고, 그는 그것을 상징적으로 표현했다. 정신을 행동으로 표출하지 못하는 자신의 나약함을 부끄러워하며, 그 부끄러움의 심정을 정직하게 시로 표현했다. 자신의 고민의 과정을 누구보다 치열하게, 그리고 정직하면서도 아름답게 시로 표현했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행동으로 저항한 것이 아니라 고뇌하는 순결한 영혼으로 불의한 시대에 저항한 것이다.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육첩방은 남의 나라 창밖에 밤비가 속살거리는데,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몰고,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의 나, 나는 나에게 작은 손을 내밀어 눈물과 위안으로 잡는 최초의 악수. ― 「쉽게 씌어진 시」 중에서 “역설적이게도 우리는 윤동주의 괴로움이 가득 담긴 이 시에서 그의 정직함을 보고 그것을 통해 말할 수 없는 위안을 느낀다. 이리 승냥이가 날뛰는 그 험악한 세상에서 자신의 작은 잘못에도 몸 둘 바 몰라 하는 이러한 젊은이가 존재했고, 그 심정을 시로 새겨 후세에 전했다는 사실만으로도 너무도 자랑스럽고 가슴 벅차지 않은가?” ― 이숭원 ‘일기’와도 같은 시, 순서대로 읽기 그의 시를 창작 순서대로 읽으면 윤동주라는 한 예민한 자아의 사색 과정과 변화의 내력이 자연스럽게 파악된다. 그는 마치 훗날 그 시기의 자기 생각을 알리고자 의도한 사람처럼 거의 모든 시에 창작 시점을 밝혔다. 그런 의미에서 그의 시는 일기와 같다. 윤동주의 시는 당시의 상황에서 자기 삶을 반성하면서 현재의 삶을 정리하고 앞으로의 방향을 모색하는 도정에서 창조되었다. 그런 점에서 그의 시는 필연적으로, 또 숙명적으로 그의 삶과 연결되어 있다. 그의 시를 창작 순서로 읽으면 윤동주라는 자아가 외부의 자극과 충격에 어떤 방식으로 대응하면서 성장하고 역사와 민족이라는 심각한 국면에 어떻게 접근해 갔는가를 파악할 수 있다. 고뇌하는 내성적 지식인의 자리에서 어떻게 역사 앞에 떳떳한 현실적 행동가의 자리로 변화할 수 있었는지, 그 변화의 시점은 어느 지점인지도 찾아낼 수 있다. 그래서 그의 시들을 창작 순으로 읽는 일이 반드시 필요하다. 21세 윤동주의 「새로운 길」(1938)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어제도 가고 오늘도 갈 나의 길 새로운 길 (…) 나의 길은 언제나 새로운 길 오늘도…… 내일도……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24세 윤동주의 「길」(1941) 잃어버렸습니다. 무얼 어디다 잃었는지 몰라 두 손이 주머니를 더듬어 길에 나아갑니다. (…) 풀 한 포기 없는 이 길을 걷는 것은 담 저쪽에 내가 남아 있는 까닭이고, 내가 사는 것은, 다만, 잃은 것을 찾는 까닭입니다. “1938년 봄, 윤동주가 연희전문학교에 입학해서 가장 먼저 쓴 시가 「새로운 길」이다. 스물한 살의 나이로 연희전문학교 문과에 입학하여 처음으로 맞이한 새봄에 쓴 이 시에는 그의 순정한 마음과 그 결이 잘 드러나 있다. (…) 그로부터 3년이 지나 4학년 2학기 때 쓴 「길」에도 길을 걷는 내용이 나오는데, 그는 무엇을 잃어버렸다고 고백하면서 그것을 찾기 위해 주머니를 더듬으며 계속 길을 걷는다고 말한다. 출구 없는 길을 걸으면서도 윤동주는 희망을 잃지 않는다. (…) 그의 ‘새로운 길’, ‘저쪽에 남아 있는 나’는 도대체 무엇이었던가. 그의 시는 이렇게 인간 존재와 삶과 역사에 대해 계속 반추하게 한다. 이것이 그의 시가 지닌 강력한 유인력이다.” ― 이숭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