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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에 변고가 생겨서 … 7
북관의 죄인 … 57 산장비문 … 129 다마노 이스즈의 명예 … 199 덧없는 양들의 만찬 … 275 |
저요네자와 호노부
Honobu Yonezawa,よねざわ ほのぶ,米澤 穗信
역최고은
7월 30일에 단잔 가문의 여자가 죽는다.
너무 두려운 나머지, 저는 아가씨께 여쭈었습니다. “아가씨. 대체 무슨 일일까요. 혹시 소타 님이 살아 계셔서, 단잔 가문 분들을 아직도 노리고 계시는 걸까요?” --- p.41 「집안에 변고가 생겨서」 중에서 그 순간에야 저는 깨달았습니다. 첩의 자식이란 신분으로 애물단지가 될 각오를 하고 찾아온 무쓰나 가문. 하지만 무쓰나 가문에는, 북관에는 이미 애물단지가 있었습니다. 저는 북관의 하녀이자 간수가 된 것입니다. 검게 빛나는 열쇠가 제게 그 사실을 가르쳐주었습니다. --- p.69 「북관의 죄인」 중에서 눈보라 치는 나날이 지나고 얼어붙었던 실개천이 녹아들며 다시 4월이 돌아왔을 무렵.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손님은 대체 어디에 계신 걸까요? 제가 관리하는 비계관은 일 년간 손님을 단 한 분도 맞이한 적이 없었습니다. --- p.140 「산장비문」 중에서 마지막 순간까지 나는 한 번도 저항하려 하지 않았다.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이 올바른 것이다. 그저 복종하는 것이 제일 좋은 방법이다. 이런 식으로 나는 온갖 이유를 늘어놓으며 스스로를 정당화했다. 그녀는…… 다마노 이스즈는 그런 나를 도우려 했던 것일까. 이스즈에게 명예란 과연 무엇이었을까. --- p.201 「다마노 이스즈의 명예」 중에서 취미 클럽인 ‘바벨의 모임’은 독서를 사랑하는 이들의 모임이었다. 나는 그곳에서 진정한 지성과 교양, 그리고 품격을 겸비한 사람들과 만날 수 있었다. 할머님 앞에서 이야기했던 지란지교가 머지않아 실제로 이루어질 것 같았다. 그리고 이스즈는 어느 것 하나 뒤지지 않는 ‘바벨의 모임’ 회원들 사이에서조차 그 빛을 잃지 않았다. --- p.232 「다마노 이스즈의 명예」 중에서 “자네가 요리해야 하는 건, 바로 아미르스탄 양 요리네.” 나쓰를 고용할 때, 중개업자는 기량뿐 아니라 교양까지 보증했다. 그런 그녀니까 당연히 아미르스탄 양에 대해서도 알고 있겠지. “아미르스탄 양 말씀이십니까.” “그래. 전에 또 이런 주문을 했던 사람이 있던가?” 그녀는 고개를 숙인 채 대답했다. “아니요. 지금까지 모셨던 어떤 집안에서도, 불려 간 어떤 연회에서도, 아미르스탄 양을 주문하신 분은 없었습니다.” --- p.320 「덧없는 양들의 만찬」 중에서 |
감미롭고도 잔혹한 블랙 미스터리
요네자와 호노부의 『덧없는 양들의 축연』은 명문가 출신의 아가씨들만이 속할 수 있는 독서회 ‘바벨의 모임’을 중심으로 느슨하게 엮인 다섯 편의 단편소설을 모은 작품이다. 오랫동안 곁에서 모셔온 아가씨에게 깊은 마음을 품은 몸종의 비밀(「집안에 변고가 있어서」), 전통 있는 집안의 유폐된 장남과 그와 함께 지내게 된 이복여동생의 이야기(「북관의 죄인」), 외딴 산속에서 홀로 지내며 별장을 관리하는 고용인을 찾아온 뜻밖의 손님(「산장비문」), 충성스러운 여종과 아가씨가 나눈 돈독한 우정(「다마노 이스즈의 명예」), ‘바벨의 모임’이 몰락하고 다시 부활하게 된 사연(「덧없는 양들의 만찬」) 등 어둡고 비밀스러우며, 그로테스크한 분위기가 돋보이는 각각의 단편 작품은 ‘하나의 고풍스러운 단막극’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바벨의 모임이란 환상과 현실을 혼동하는 덧없는 자들의 성역입니다. 너무나 단순한, 혹은 너무나 복잡한 현실을 견디지 못하는 이들이 우리 모임에 모여들지요.” (「덧없는 양들의 만찬」 중에서) 작중 묘사되는 오래된 명가의 문화와 관습은 그 시대를 가늠할 수 없음에도 현실세계와 부쩍 떨어져 있어 독자에게 옛 이야기 또는 오래된 동화를 읽는 듯한 오묘한 거리감을 남기기도 한다. 이런 거리감은 이야기의 기이하고 신비한 분위기를 배가하며 작품에의 몰입감을 높인다. ‘블랙 미스터리’ 또는 ‘기담’으로 소개되기도 하는 『덧없는 양들의 축연』은 독특한 매력을 드러내며 독자들마저 바벨의 모임 회원들처럼 “환상과 현실을 혼동”하게 만들고, 복잡한 현실을 잠시 잊고 어둑한 환상의 세계에 몰닉하도록 유혹한다. 미스터리 애호가, 독서가들에게 보내는 도전장 2001년 『빙과』로 제5회 가도카와 학원 소설 대상 장려상을 수상하며 데뷔한 이래 ‘청춘 미스터리의 기수’로 불리며 인기를 끌어온 요네자와 호노부는 세간의 평가에 안주하지 않고 미스터리 작가로서 끊임없이 장르를 연구하며 새로운 시도를 거듭해왔다. 그 결과, 장기인 ‘일상의 수수께끼’와 함께 애거사 크리스티나 아야쓰지 유키토를 연상케 하는 클로즈드 서클 미스터리 『인사이트 밀』(2007), 다섯 가지의 리들 스토리로 엮은 암호 미스터리 『추상오단장』(2009), 판타지와 본격 미스터리가 절묘하게 어우러지는 『부러진 용골』(2010) 등 고전 미스터리의 흔적이 농후한 작품을 차례차례 선보였다. 마찬가지로 『덧없는 양들의 축연』에도, 요네자와 호노부가 ‘미스터리’라는 장르를 깊숙이 탐닉해온 자취는 고스란히 남아 있다. 요네자와 호노부는 『덧없는 양들의 축연』에서 자신이 의도한 공통적인 요소를 ‘마지막 일격(finishing stroke)’, ‘와이더닛(whydunit, 왜 그랬는가)’, 그리고 ‘오래된 명문가의 이야기’라고 소개한다. 하지만 이 다섯 단편에서 또 주목해야 할 요소는 ‘독서가를 위해 마련된 예사롭지 않은 복선’이다. 전작에서도 고전 명작들을 곳곳에 배치하며 작가 본인의 고전에의 애착과 어마어마한 독서량을 짐작케 했던 요네자와 호노부는, 본작이 ‘바벨의 모임’을 소재로 한 만큼 동서고금의 작품들을 원 없이 언급한다. 그는 셰익스피어와 같은 고전 명작은 물론이고, G. K. 체스터턴, 존 딕슨 카, 스탠리 엘린 등 서양의 고전 미스터리 작가, 또 일본의 고전 미스터리 및 환상문학 작가 등을 끊임없이 상기시키며 암호 같은 복선을 쌓아나간다. 미스터리를 오랫동안 읽어온 독자들이라면 어쩌면 작가가 배치한 복선으로부터 기묘한 진상을 짐작해볼 수도 있을지도 모른다. “미스터리의 미학이란, 독자가 풀어낼 수 있도록 쓰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작가 인터뷰에서) 그러므로 『덧없는 양들의 축연』에 남겨둔 고전의 그림자는, ‘미스터리’라는 장르만이 아니라 책과 이야기를 사랑하는 독자들을 위한 요네자와 호노부의 안배이자, 작가가 독자들에게 보내는 도전장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
'바벨의 모임'이라는 의뭉스러운 독서 모임과 연관된, 환상과 현실의 경계에 걸쳐 있는 다섯 몽상가의 이야기들을 담은 요네자와 호노부의 연작소설집이다.
서구의 문물과 신분의 격차가 공존하는 시기의 일본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사건'들은 명망 높은 가문의 구중심처 같은 고요한 광기와 섬뜩함을, 그러나 때때로 의외의 인간미를 선보인다. 그리고 그 사건들의 한복판에서, 이지러지고 기괴하지만 시종일관 태연한 다섯 화자는 각자 기저의 공포와 함께 검붉은 의도를 잠깐씩 내비치며 서서히 본색을, 그들의 환상을 드러낸다. 개인의 환상이 현실을 침범하고, 이윽고 몽상의 정수를 담은 한 문장이 눈앞에 등장하면 독자는 비로소 서늘하고 담담하게 쌓아 올린 단서들이 씁쓸하고 텁텁하게 붕괴하는 광경을 보게 된다. 유서 깊은 단서와 추리의 문법은 적어도 이 소설집 안에서는 조연이며, 그들이 퇴장한 이후에 드러나는 사건의 진상이야말로 요네자와 호노부가 전달하고 싶었던 순도 높은 공포일 것이다. - 박상윤 (알라딘 MD) |
이 책의 묘미는 ‘끔찍하면서도 묘하게 깜찍한’ 마지막 한 줄에 있습니다.
주인공들의 고풍스럽고 사근사근한 말투에 연신 고개를 끄덕거리며 읽다 보면, 어느덧 마지막 반전에 머리를 세게 한 방 맞게 되죠! 다섯 편의 이야기 곳곳에 이처럼 매혹적인 트릭이 숨어 있습니다. 그래서 사실 저는 부럽기도 합니다. 요네자와 호노부가 선사하는 이 아찔한 반전의 재미를 느끼기 위해, 이제 이 책을 펼칠 독자분들이! - 박지영 (밀리의 서재 콘텐츠사업본부 매니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