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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제1부 타락으로 가는 길 · 제1장 미궁 · 지리적 원근법 | 낮과 밤의 두 얼굴 | 오쿠히다를 떠난 무리 · 제2장 환청 · 전력은 국가다 | 물밑 소리 · 제3장 후지 · 최초 발견자 | 오르골 | 철로와 묘비명 · 제4장 증거 · 목격 증언 | 시간표 | 아스라한 어둠 | 열쇠 없는 집 · 제5장 부정 · 소토바 고마치 | 비밀 업무 · 제6장 유골 · 고학력 일가 | 장례식 광경 제2부 네팔 횡단 · 제1장 산봉우리 · 어두운 기내 | 선한 미소의 피고인 · 제2장 공판 · 고빈다의 이력 | 내 집 마련의 꿈 | 모호한 살해 시각 | 출입국관리법 위반 · 제3장 검증 · 열연하는 여검사 | 멀어지는 진실 · 제4장 정적 · 배웅 나온 남자 | 최악의 여행 · 제5장 귀향 · 카트만두 급행 | 당황스러운 왕실 | 선의의 죄 | 사고 발생 | 우루미라의 눈물 | 인도처럼 검은 밤 · 제6장 낙루 · 첫 증언 | 여대생은 왜 일람에 왔는가? | 일본에서 보내온 스웨터| 천만다행 · 제7장 진술 · 포카라 행 프로펠러 비행기 | 피고인의 알리바이 | 입막음 당한 증인 | 검은 숲의 괴담 · 제8장 폭행 · 경찰병원 진찰권 | 당근과 채찍 | 트리플 섹스 | 오천 엔 줘 | 붉은 벽돌 집 · 제9장 조서 · 콜걸 사야카 | 어묵 국물은 알고 있었다 · 제10장 환영 · 일자리 알선 | 의문의 대부업체 | 의미 없는 신문 | 경찰 스캔들 제3부 법정의 어둠 · 제1장 목격 · 수사방침 | 손님, 놀다가세요 | 거리의 목격자 · 제2장 검증 · 삼자 대면 | 으슥한 길 | 거리의 바닥 · 제3장 구속 · 높은 담장 아래 | 읽기 쉽게 쓴 편지 | 세 번째 면회 · 제4장 정액 · 삐걱거리는 법정 | 채취된 콘돔 | 가르시니아 다이어트 | 마지막 목소리 · 제5장 무덤 · 언덕 위의 묘지 | 계명의 비밀 · 제6장 관객 · 넋이 나간 풍경 | ‘소심한 타락’과 ‘대범한 타락’ | 사전 청취 | 배설과 사과문 · 제7장 노상 · 검찰의 변명 | 스가모의 ‘점과 선’ | 도난당한 정권 | 이오카드의 비밀 | 무너진 시나리오 | 방청석의 실소 · 제8장 육성 · 방침 전환 | 검약과 저축 | 접촉 | 전라가 된 여자 | 통통한 매춘부 | 변질된 정자 | 붉은 램프 | 위클리 맨션 | 살인강도죄 | 마군의 통과 · 제9장 편력 · 처벌받은 비타 섹슈얼리스 | 이국의 시선 | 논리 있는 섹스 | 무죄 역증명 | 타락한 남여 | 재감정 요청 · 제10장 방 · 마루야마초의 고층 | 거울의 공포 제4부 검은 히로인 · 제1장 구형 · 사막위의 집 | 심증 형성 | 암흑 재판 | 유배된 고빈다 · 제2장 결심공판 · 무죄 선고 | 잔류 정액은 무엇을 말하는가 | 위증 공작 · 제3장 음모 · 기주소 아파트 101호 | DNA 감정에 대한 의문 · 제4장 폐정 · 검은 가죽 정기권 지갑 | 범행의 시그널 | 그녀의 노르마 | 버려진 콘돔 | 몽롱한 재판장 · 제5장 거식 · 사랑의 공간 | 질식당한 이야기 | 찾아온 변화 | 고지식한 여대생 | 타락의 달콤함 · 제6장 활강 · 여성 관리직 0% | 전락으로 향하는 방아쇠 | 더블페이스 | 섞인 퍼즐 조각 · 제7장 대화 · 이너 마더 | ‘성스러운’ 아버지 | 비언어 메시지 | 적막한 매장 에필로그 맺음말 옮긴이의 말 |
저사노 신이치
Shinichi Sano,さの しんいち,佐野 眞一
역류순미
호텔에 들어가 350밀리리터 캔맥주 2개와 500밀리리터 1개를 마시면서 40분 정도 경제에 대한 논의를 펼치는 것이 그녀의 변함없는 패턴이었다. 한때 그녀의 ‘손님’이었던 50대 남자가 도쿄전력은 대기업한테만 몰래 할인해주는 건 아닌가, 대기업은 남은 돈으로 정치자금을 대고 있는 건 아니냐며 농담처럼 말했던 적이 있었다. 그러자 그녀는 평소엔 전혀 보이지 않던 불쾌감을 역력히 드러내며 ‘도쿄전력이 절대 그런 부정을 저지를 리가 없다’며 분노에 차서 단언했다고 한다. --- p.27
“정중한 말투에서 직업여성이 아니라는 걸 바로 알아챘어요. 하지만 차림새는 평범한 여자들하고는 거리가 멀었어요. 보라색 옷에 긴 머리는 허리까지 내려왔어요. 나중에야 가발이었다는 걸 알았지만 처음엔 옴진리교에서 나온 줄 알았다니까요. 옴진리교가 자금이 떨어져 마루야마초에서 매춘사업을 시작한 건가 하고요.” --- p.39 “2년 정도 알고 지냈는데 보석을 사달라고 하든가 밍크코트를 사달라고 한 적은 한 번도 없어요. 오히려 제 형편을 생각해서 그랬는지 술집 영수증을 몇 장 모아서 한 달에 한번 가져다주었어요. 프리랜서라 영수증 모으기 힘들 거라면서 금액은 보통 2만4000엔 정도였는데 우연인지는 몰라도 제가 내는 화대와 비슷한 금액이었어요. 그렇게 금전 감각이 확실한 그녀가 혼자서 술집에 들어가 돈을 내고 술을 마셨다는 생각은 안 드네요. 어디서 얻어온 게 아닐까 싶어요.” --- p.41쪽 “검찰 측이 101호 열쇠 문제에 이토록 집착하면서도 증인으로 부르지 않은 이유는 만약 그의 증언으로 다른 열쇠가 있다는 사실이 드러날 경우 고빈다의 범행일 거라는 논리가 무너지고 말기 때문이다. 검찰이 열쇠 문제를 중시하면 할수록 모순이 더해져 결과적으로 검찰은 자기 무덤을 파는 것이 되고 만다. 마루이를 증인으로 내세운 공판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사실 다른 곳에 있었다.” --- p.206 “러브호텔 골목의 네온이 일제히 전원을 켠 것처럼 눈부시게 빛나는 마루야마초는 변함없이 불야성을 이루고 있었다. 하지만 내게는 왠지 그 화려한 채색이 서글픔으로 다가왔다. ‘손님, 놀다가세요’라고 말하는 야스코의 목소리가 때때로 강한 회오리바람이 지나는 암흑 저편에서 들려오는 게 아닐까 내심 기다리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야스코의 부재가 내 안의 텅 빈 공간을 크게 벌리는 바람에 어둠이 더욱 깊어졌다. 그런 생각에 사로잡혀 나는 사건 당일의 야스코처럼 코트 깃을 세우고 무언가를 찾아 헤매는 여린 짐승처럼 마루야마초의 골목길을 잰걸음으로 걷고 있었다.” --- p.241 “만약 고빈다에게 야스코 살해의 용의가 농후했다고 하더라도 고빈다는 야스코를 저속, 비열한 보도의 희생양으로 삼은 적이 없는데다 야스코의 사후 명예를 훼손시킨 것도 아니다. 검찰의 논지는 항상 입고 나오는 쥐색 양복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흐리멍덩했고 마지막엔 그것을 만회하려는 듯 감정에 호소했다. 검찰은 결정적 증거를 제시하지 못한 분함 때문에 그런 말을 뱉고 말았던 것일까. 그것은 논리를 벗어났다기보다 논리의 폭발이었다. 일부 언론을 끌어들인 검찰의 논지는 취객이 분풀이하는 것과 다름없었다. 나는 나도 모르게 법정 안 천정을 올려다보았다.” --- p.387 “지옥과도 같은 15년을 보낸 일본을 어떻게 다시 찾게 되었느냐는 질문에 고빈다는 두 번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을 정도로 끔찍한 일을 당한 곳이지만 그래도 자신을 위해 싸워준 고마운 사람들이 살고 있는 곳이고 그분들을 만나 직접 감사인사를 하고 싶었다고 답했다. 그는 저널리스트이자 이 책 『도쿄전력 OL 살인사건』의 저자이기도 한 사노 신이치를 보자마자 끌어안고 회한의 눈물을 흘렸다.” --- 「옮긴이의 말」 중에서 |
용의자 네팔 노동자를 둘러싼 법정 공방
용의자로 붙잡힌 사람은 그녀와 관계를 맺었던 적이 있는 네팔인 노동자 고빈다 마이나리였다. 살해가 일어났을 것이라 추정되는 3월 8일 심야, 고빈다로 보이는 외국인이 야스코와 함께 아파트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는 목격 증언이 있었고 아파트에서 발견된 콘돔에서 채취한 정액이 고빈다의 것과 일치한다는 것이 체포의 결정적 이유였다. 하지만 이후의 법정 공방에서 그가 범인일 수 없는 다양한 증거들이 제출되면서 재판은 장기화되었다. 이 사건이 일본사회에 일으킨 파장은 대단했다. 지금껏 나온 논픽션 작품만 13종이 넘고 이 사건을 표제로 내세운 소설도 다섯 편이나 쓰였고 영화가 2편이며 심지어 시집도 한 권이 있다. 매스미디어의 관심은 주로 주인공 와타나베 야스코와 그 가족에게 집중되었다. 그 정도가 얼마나 심했으면 야스코의 어머니가 신문에 공개적으로 관심의 자제를 요청하는 글을 투고해서 실을 정도였다. 저자는 언론의 과도한 관심과 다른 한편으로는 과도한 도덕주의 속에서 이 사건이 어둠에서 또 다른 어둠 속으로 묻히는 것이 안타까웠다고 밝힌다. 이해할 수 없는 이중생활, 인간 내면의 어둠 이 책 『도쿄전력 OL 살인사건』은 그러한 언론과 기득권의 태도에 염증을 느낀 저널리스트가 피해자 여성의 내면의 수수께끼를 풀어내는 과정과 함께 억울하게 옥살이를 한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재판 과정을 3년간 취재한 내용이다. 이 사건을 둘러싼 궁금증은 명확하다. 와타나베 야스코는 사실 ‘OL’(오피스 레이디의 준말)이라고 불릴 정도의 평범한 여직원이 아니었다. 그녀는 세계에서 가장 큰 전력회사이자 직원이 3만 명(현재 기준)에 달하는 보수적인 풍토의 거대기업 도쿄전력에서 간부후보생의 지위에까지 올라갔다. 경제학 지식과 연구력도 대단해 경제학자들도 인정할 만한 전문적인 논문까지 발표할 정도로 수재였다. 대기업 간부에 일본 경제 전체를 조망하는 전문적인 안목을 갖춘 그런 그녀는 왜 밤거리에 섰어야 했을까? 모든 이들이 궁금해 했던 대목이다. 사실은 그래서 그녀의 가족사에 관심이 집중되기도 했다. 저자 사노 신이치가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부분도 바로 이곳이다. 피해자 와타나베 야스코의 아버지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놀라운 건 그녀의 아버지 또한 도쿄전력의 직원이었다는 점이다. 아버지는 50대의 나이에 간부 진급을 앞두고 갑작스러운 병환으로 유명을 달리했다. 취재 결과 이 일이 야스코에게 미친 영향은 어마어마했다. 유난하게도 딸을 아끼고 만나는 사람들에게 딸 자랑을 했던 아버지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고 영영 만날 수 없는 존재가 돼버렸다. 그녀가 게이오대학 경제학부를 다닐 때였다. 거식증에 걸린 야스코는 친구들이 놀랄 만큼 깡마르게 변했고, 어느 순간 그녀는 도쿄전력에 입사해 있었다. 바로 아버지가 간부의 꿈을 목전에 두고 좌절한 바로 그 회사에 말이다. 부친의 죽음 이후, 집착 또 집착 하지만 이것으로 모든 것이 해명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더욱 큰 궁금증이 들어설 뿐이다. 왜 그녀는 매일매일 거의 거르는 날 없이 몇 년 동안 지속적으로 매춘부의 거리로 퇴근해 남자들을 유혹했을까? 저자 사노 신이치는 아버지의 고향을 찾는다. 거기서 댐 건설로 인해 수몰된 그 마을 사람들이 야스코가 밤 영업을 하다가 살해된 시부야 특히 마루야마초로 집단 이거한 기록을 접한다. 고향을 잃은 사람들에게 도시가 허용한 밥벌이는 식당이나 숙박업 정도가 고작이었다. 그들은 그 지역에 둥지를 틀고 제2의 고향을 만들어나갔다. 한편 야스코는 어머니의 집안에 비해 상대적으로 처졌던 아버지의 집안으로 인해 아버지가 어머니로부터 과연 야스코는 왜 유독 이 장소에서만 그렇게 집착해야 했던 것일까. 관련자들의 인터뷰와 자료 조사를 통해 저자는 하나씩 그 비밀을 밝혀나간다. 그녀는 자신의 수첩에 매춘으로 얻은 수입과 만난 사람에 대해 꾸준히 기록을 남기고 있었다. 야스코는 돈에 대한 집착이 무척 강했으며, 하루에도 몇 차례나 남자 손님을 받았다. 시간이 남으면 빈 캔이나 병을 주워 가게에 갖다 주고 푼돈을 받아 챙겼다. 저자가 묘사하는 그녀의 모습을 보면 이런 행동은 가정형편이 어렵다거나, 알뜰한 성정으로 이해된다기보다는 돈에 대한 강박적인 집착으로 다가온다. 게다가 여관에서 남자손님과 벌인 각종 기행, 매일 같은 시간의 전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가 한번도 외박을 하지 않은 일 등은 그녀의 내면에 도사리고 있는 상처 혹은 욕망은 어떤 종류의 것이었는지에 대한 강렬한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 이어 저자의 취재는 용의자로 긴급 체포된 고빈다 마이나리에게로 향한다. 과연 그는 진범일까, 야스코를 알고 있을까, 만약 죽였다면 왜 죽였을까? 면회를 신청해서 만난 고빈다에게 받은 첫 느낌은 죽이지 않았다는 쪽이었다. 그와 인터뷰를 마친 저자는 네팔로 비행기를 타고 찾아가서 고빈다와 함께 지내며 야스코와 관계를 맺은 친구들을 만나 인터뷰한다. 그의 집도 방문해 부모와 누나를 만나 고빈다라는 사람에 대해 여러 가지 정보를 모은다. 또한 고빈다가 근무한 식당들을 일일이 찾아가서 인물평을 들었으며 심지어 고리대금업자까지 만나서 인물의 배후를 깊게 파헤친다. 이 과정에서 드러나는 고빈다와 야스코의 관계는 자못 충격적이었지만, 그것이 사건의 진실을 알려주는 것은 아니다. 이후 법정에서 계속된 검사 측과 변호인 측의 증거 대결은 책의 상당한 부분을 차지하는데 크게 사건 당일 목격 증언의 사실 여부, 채취된 정액과 피부세포의 일치 여부, 범행을 할 만한 동기가 있었냐는 여부, 범행 장소의 분석 등이 주류를 이룬다. 무죄 → 무기징역 → 무죄 저자는 고빈다를 지속적으로 면회하고 사식을 넣어주는 등 보살폈으며 법정이 열릴 때마다 참관하면서 사태를 관찰하고 기록한다. 드디어 내려진 1차 재판의 판결은 무죄였다. 이 책이 출간된 시점에서는 그랬다. 하지만 경찰은 항소했고 두 번째 재판에서는 무기징역을 받아 복무하게 된다. 고빈다 측은 이에 불복해 재심 청구를 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다가 사건 발생으로부터 15년이나 지난 2012년에 재심 청구가 받아들여져 재판이 다시 열렸으며 여기서 그는 다시 무죄 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무려 15년을 낯선 이국에서 감옥에 갇혀 있었으며 고향에 있는 그의 딸은 살인자의 딸이라는 누명으로 인해 자살까지 생각할 정도로 고빈다 가족의 삶은 망가진 뒤였다.(※2012년 이후 진행된 재심 과정과 고빈다가 최종 무죄로 풀려나는 재판 과정은 독자를 위해 옮긴이 류순미 번역가가 별도의 조사를 통해 ‘옮긴이의 말’에 그 전말을 밝혀놓았다.) 모두 30차례에 달하는 법정 공판을 지켜보고 야스코의 고향, 고빈다의 고향과 감옥을 드나들며 정말 혼신의 힘을 바쳐 이 사건을 취재한 저자는 아래와 같이 후기에서 그 소감을 털어놓고 있다. “나는 사건을 처음 접했을 때 몸 안에서 대량의 아드레날린이 분비되는 것을 확실하게 느꼈다. 왜 나는 이 사건에 이리도 발정이 났던 것일까. 그것이 이 사건의 취재를 시작하게 된 나의 자발적 충동이었다. 지난 3년간 많은 사건이 일어났다. 고베에서는 소년A 사건이, 와카야마에서는 비소를 넣은 카레사건이 일어났다. 니가타에서는 소녀 감금 사건이 발각되었고 사이타마에서는 보험금을 노린 살인사건이 세상에 드러났다. 나는 이들 사건도 신경이 쓰였으나 생리적으로 끌리는 것은 아니었다. 다시 말하면 이러한 사건들은 어느 사이엔가 ‘이해’라는 라벨을 붙이고 나의 ‘정리상자’에 담겼다. 하지만 이 사건만큼은 달랐다. 그것은 이 사건의 피의자가 무죄일 가능성이 농후해서만은 아니었다. 파고들면 파고들수록 사건의 수수께끼와 살해당한 와타나베 야스코의 내면의 수수께끼는 깊어만 갈 뿐이었다. 내게 있어 살해당한 와타나베 야스코는 수수께끼라는 물을 가득 채워놓은 무너지기 직전의 거대한 댐과 같은 존재였다. 그것을 무너뜨리지 않고 수수께끼는 수수께끼대로 독자 앞에 그대로 옮겨다 놓을 수는 없을까. 나는 그것을, 아니 오로지 그것만 생각했다. 마루야마초, 오쿠히다, 카트만두, 간다역, 고탄다, 후지스소노, 일람, 니시가와구치, 고스게, 다마 언덕, 요사노, 마쿠하리, 포카라, 고야마, 오사키, 스가모, 시부야 중심가, 니시에이후쿠. 내가 3년간 취재를 다녔던 ‘땅’에는 이 사건과 야스코에 얽힌 ‘이야기’가 그림자처럼 묻혀 있었다. 하나하나 괴담 같은 이야기와 만날 때마다 나는 더욱 사실을 파헤치고 싶다는 충동에 사로잡혔다. 살해된 도쿄전력 여직원과 네팔인 피고가 본 풍경을 내 눈과 다리만으로 더듬어가며 30차례에 걸친 공판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무죄판결이 나온 지금, 이 사건이 억울한 누명이었음이 밝혀졌다. 내가 무죄라고 확신을 가지게 된 여정을, 도쿄전력 여직원의 깊은 내면의 어둠에 다다르기까지의 길과 포개어 독자 여러분도 함께 걸어준다면 저자로써 더 이상 바랄 게 없다.” _맺음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