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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숲을 가둔 사람들, 숲에 갇힌 사람들
2부 주시해야 하는 것, 주시하고 있는 것 3부 선택된 순간, 선택할 수 있는 순간 작가의 말 |
저최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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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하면 안 된다고 되뇌었다. 지금까지 몇 번이나 반복해 왔으면서도, 다시 한번 더.
--- p.7 인류 멸종의 카운트다운은 구 년 전 6월의 햇살 좋았던 어느 날 아무 예고도 없이 시작되었다. 사람들은 멸망의 시나리오로 핵전쟁이나 소행성 충돌 따위를 꼽으며 각국의 상호 견제와 똑똑한 과학자와 용감한 우주 비행사를 믿었지만 ‘그것’은 보다 조용히, 시시하게, 그러나 막을 수 없는 방법으로 사람들을 덮쳤다. --- p.13 정인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여상한 표정으로 손가락을 꼽다가 어깨를 으쓱했다. 하지만 여운은 알 수 있었다. 어느 누구도 상실에는 익숙해질 수 없다. 여운이 열두 살에 한 번에 잃은 것들을 이 아이는 구 년 동안 잃고, 다시 모은 것들을 잃고, 또 잃는 삶을 살아오고 있다. 여운은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하루하루가 이 아이의 일상이었던 것이다. 이 아이의 그림자를 자신이 이해할 수 있을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때 정인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조금 긴장한 듯 교복 넥타이를 괜히 당겨 대면서. “이제 누나 차례예요. 누나네 엄마는 어떤 분이셨어요? 말해 줄 수 있으면, 저도 좀 더 찾아볼 방법이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오직 선의로만 반짝이는 눈이었다. --- pp.98-99 “생존자는 없다고 정했으니까, 그것도 상관없다.” “……뭐?” “얘야. 벌써 구 년이나 지났단다.” 구 년밖에 안 지났는데. 그 사람들한테 우린 모두 죽은 사람들이야. 모두가 우릴 잊었어. 삼촌의 목소리가 스멀스멀 되살아났다. 정인은 빈손을 천천히 들어 손끝을 움직였다. 박 팀장은 그 손을 따라 주변으로 시선을 옮겼다. 망가진 거리, 그 자리에 못 박혀 나무가 되어 버린 사람들의 숲, 그리고 끊임없이 다가오는 운동성 변이체의 무리. “무슨 소리야……? 다 살아 있잖아. 모두.” --- p.159 사자 앞에서 모래톱에 머리를 파묻는 타조처럼, 사람들은 그렇게 두려운 대상을 숨기고 피하는 마음으로 자신들을 지켜 왔다. --- p.184 남들이 그러더라고. 돌이킬 수 없다고. 알아볼 수조차 없다고. 모두 빨리 보내 주고 추모하고 잊고 새롭게 출발하라고. 다들 그렇게 생각한다고. 아직 남아도는 약 기운에 현기증과 구역질이 동시에 치밀었다. “남들 일은 참 쉬워요. 멀리서 보면 너무 간단하죠? 가까이서 보면 아니거든요. 다들, 가끔은 바람 없는 날에도 움직여요. 나뭇잎 부딪히는 소리가, 어떨 땐 목소리처럼도 들려요. 우리 누나는 노래도 부른다고. 당신들은 모르겠지만!” --- p.233 어쩌면, 이해할 수도 있을 것 같은 마음이다. 재난의 앞에서 늘 그래 왔듯 짧은 순간만 유행처럼 애도하다 금세 치워 버리고 ‘아직도’라는 말로 슬픔마저 얼른 잊도록 강요해 온 세상에 대한 배신감. 초 단위로 갱신되던, 가족들과 친구들을 찾는 게시글 사이에 끼어들던 의약품 광고와 햇볕이 내리쬐는 휴양지 사진을 보며 느꼈던 세상과의 거리감. --- pp.306-307 그 순간이었다. 어디선가 가느다란 허밍 소리가 들려왔다. 바람결에 잘못 들은 것일까 착각할 만큼 작고 희미한 노랫소리. 여운은 눈을 번쩍 떴다. 끊어질 듯 끊어질 듯 이어지던 낮은 허밍에, 한 음 높은 다른 허밍이 겹쳐진다. 하나 더. 그리고 또 더. --- p.317 |
가까운 미래, 정체불명의 바이러스가 퍼져 서울의 수백만 명이 나무가 되어 버리고 서울은 방벽으로 봉쇄된다. 엄마를 서울에 남겨 두고 이모와 피난을 온 ‘여운’은 연구소에서 일하던 어느 날 낯선 메일을 받는다. 서울에 설치한 광역 방역 기기 ‘우산’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방벽을 넘으라는 것. 고민하던 여운은 높은 보수의 유혹에 방벽을 넘기로 결심하고, 9년간 봉쇄되었던 서울에서 예상치 못한 존재들을 만나게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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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서울의 수백만 명이 나무로 변했다
버려진 비밀의 숲에서 펼쳐지는 숨 막히는 여정 가까운 미래, 서울에 정체불명의 바이러스가 퍼져 사람들이 순식간에 나무로 변한다. 급하게 서울에서 탈출한 사람들은 방벽을 쌓아 바이러스로 전염된 서울을 봉쇄한다. 봉쇄 이후 9년이 지난 시점, 국립재난대응연구소의 연구원으로 일하는 ‘여운’은 방벽으로 둘러싸인 서울에서 눈길을 떼지 못한다. 9년 전 그날, 서울에 엄마를 두고 이모와 도망쳐 왔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여운에게 낯선 지시를 전하는 의문의 메일이 도착한다. 서울에 설치된 광역 방역 기기 ‘우산’의 오류를 해결하기 위해 방벽 안으로 들어가 메모리 칩을 전달하라는 것. 위험한 임무에 여운은 잠시 고민하지만, 이내 높은 보수의 유혹과 엄마를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방벽을 넘기로 결심한다. 비밀스러운 장소에서 만난 인공지능 로봇 ‘R’과 함께 9년 만에 서울로 돌아온 여운. 도망치려던 모습 그대로 나무가 되어 버린 사람들이 만들어 낸 고요한 숲의 풍경이 서늘하게 다가온다. 방독 마스크를 쓴 채 조심스럽게 움직이던 여운의 앞에, 불현듯 기괴한 외양의 생명체가 나타난다. 나무가 되다 만 모습으로 찢어진 옷을 걸친 채 흐느적거리며 다가오는 괴물의 등장에 여운은 눈을 질끈 감는다. 봉쇄된 서울에서는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던 걸까? 아무도 생존할 수 없으리라 생각한 서울에 남아 있던 존재는 누구일까? 나무가 된 사람들과 나무가 되어 가는 사람들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는 무엇일까? 여운은 9년 전 참사로 서울에 남은 모든 사람이 나무가 되어 버렸다고 알고 있었지만, 그곳에는 생존자가 있었다. 바이러스에 면역이 있어 나무가 되지 않은 열여덟 살 정인. 정인은 서서히 나무가 되어 가는 삼촌과 할머니를 돌보며 봉쇄된 서울에서 살아왔다. 삼촌은 바이러스에 감염되지 않은 정인을 내보내려 노력했지만, 방벽 밖 관리자들은 잠복기가 긴 것일 뿐이라 말하며 삼촌을 화염 방사기로 내쫓았다. 그렇게 세상과 격리되어 지내던 어느 날, 정인은 바깥에서 들어온 수상한 사람들이 산불을 일으키는 것을 목격한다. 그들은 무슨 목적으로 9년 만에 봉쇄된 서울에 와서 불을 지르는 것일까? 나무가 되어 버린 서울의 수백만 명은 방벽 바깥 사람들에게 사실상 죽은 사람 취급을 받는다. 하지만 정인은 학교에서 나무가 된 형과 누나들에게 햇빛과 물을 챙겨 주며 그들을 돌본다. 나뭇잎이 부딪히는 소리가 어떨 때는 형과 누나들이 노래를 부르는 것처럼 들리기도 한다. 한편 여운이 마주친 움직이는 괴생명체는 인간인지 나무인지 불분명하게 보인다. 나무가 된 사람과 되지 않은 사람, 나무와 인간 사이에 있는 존재를 오가며 소설은 우리에게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에 대해 질문하고 그 이분법을 뒤흔든다. 참사 이후의 시간을 살아가는 이들 진정한 기억과 애도란 무엇인지 묻는 일 사자 앞에서 모래톱에 머리를 파묻는 타조처럼, 사람들은 그렇게 두려운 대상을 숨기고 피하는 마음으로 자신들을 지켜 왔다. (184면) R의 도움으로 괴생명체로부터 겨우 살아남은 여운은 임무를 수행하다 어느 학교에 가닿는다. 그리고 그곳에서 나무가 된 형과 누나들을 돌보며 살고 있는 정인을 만난다. 정인은 여운에게 왜 산불이 일어난 것인지 묻지만 여운은 영문을 알지 못한다. 바깥 사람인 여운에게 경계심을 보이던 정인은 참사로 엄마를 잃었다는 사실을 듣고 이내 연민과 동질감을 느낀다. 정인은 여운에게 저녁을 먹자며 자신의 집으로 초대하고, 둘은 삼촌과 할머니가 있는 집에 도착한다. 그런데, 문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선 정인이 날 선 비명을 지른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9년 동안 봉쇄되었던 서울에는 어떤 비밀과 음모가 숨겨져 있는 걸까? 여운과 정인은 모두 비극적인 참사로 가까운 가족을 잃고 힘든 시간을 견뎌 왔다. 9년 전 참사로 서울의 수백만 명이 희생되었지만 사람들은 잠시 추모한 뒤 방벽을 둘러쌓아 참사의 현장을 자신들의 시야에서 없애 버렸다. 참사와 참사 피해자를 금세 지우고 망각하는 태도를 보여 주며 소설은 진정한 기억과 애도란 무엇인지, 참사 이후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서늘한 긴장감 속에서 우리가 고민해 봐야 할 지점을 짚는 『허밍』은 독자들에게 독특한 매력의 작품으로 다가갈 것이다. 작가의 말 중에서 제 목표는 늘 똑같습니다. 일상의 고민거리가 한순간만이라도 깨끗하게 잊힐 만큼 정신없는 모험의 세계로 여러분들을 모시는 것. 그리고 안전하게 돌려보내 드리는 것. 그 과정에서 여러분들만의 기념품을 하나씩 챙겨 나오실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쁠 테고요. 그리고 혹 다음에도 다시 찾고 싶다고 생각해 주신다면, 다른 누군가에게도 권해 주실 수 있을 만큼 즐거우셨다면 작가로서는 그보다 큰 행복도 없겠지요. 이번에도 그 목표를 위해 제 나름 최선을 다해 보았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