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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발레 무용수, 그리고 예술을 향한 열정] 나오키상과 서점대상을 동시수상한 일본소설 대가 온다 리쿠 데뷔 30주년 기념작. 천재 발레 무용수 하루를 중심으로 여러 동료들이 그가 표현해낸 예술의 확장성과 열정을 그려냈다. 다양한 춤의 움직임을 활자만으로도 상상이 가능하도록 써낸 작가의 능력에 감탄하게 되는 걸작. - 소설/시 PD 김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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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뛰어오르다
Ⅱ 싹트다 Ⅲ 솟아나다 Ⅳ 봄이 되다 참고 문헌 옮긴이의 말 |
Riku Onda,おんだ りく,恩田 陸,熊谷 奈苗(くまがい なな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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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갑자기 시야 한구석에서 위화감을 느꼈다. 왼쪽 뒤에 있는 무언가. 뭐지? 그 위화감은 말로 잘 표현할 수 없었다. 무언가 다른 질감을 가진 것. 무언가 주위와 다른 것. 그런 존재를 왼쪽 대각선 뒤에서 느꼈던 것이다. 나는 뒤돌아봤다. 그러자 거기에 녀석이 있었다. 그 밖에 다른 참가자들이 우글우글했는데 신기하게도 나는 한눈에 스튜디오 맨 뒤에 서 있던 녀석을 찾아냈다. 그 모습이 눈에 확 들어온 건 어째서인지 주변보다 색이 짙게 보였기 때문이다. 나중에 몇 번이나 기억을 곱씹어봤지만, 분명 그때 주위 아이들은 회색빛이 살짝 도는 옅은 색으로 보였는데 녀석만 거무스름해서 목탄으로 휘갈긴 데생처럼 윤곽이 또렷하게 보였다. --- p.13 「Ⅰ 뛰어오르다」 중에서 나는 눈을 의심했다. 녀석의 몸은 어떻게 봐도 내 시선보다 위쪽에 있었다. 녀석의 춤에서는 압도적인 삶의 환희가 넘쳐흘렀다. 녀석의 머릿속에, 그리고 녀석을 보고 있는 나의 머릿속에도 버르토크가 쩌렁쩌렁하게 울려퍼졌다. 아니, 녀석은 버르토크를 추고 있었다. 우주를 움켜쥐고 있었다. 그리고, 그가 보고 있는 ‘형태’가 나에게도 보이는 듯했다. 나는 터무니없이 행복했다. 동시에 터무니없이 분했다. 녀석의 눈부신 춤을, 지금 이때뿐인 요로즈 하루의 감동과 창조의 순간을 목격하는 행운을 독차지하는 기쁨과 어째서 이런 기적적인 녀석과 같은 시대에 태어나 같은 무용수가 되었을까 하는 분함을 음미하며 우두커니 서 있었던 것이다. --- pp.96-97 「Ⅰ 뛰어오르다」 중에서 난 말이야, 뭔가가 납득이 되면 여기가 딸깍 하고 울리거든. 그는 자신의 가슴에 손을 댔다. 사실 그 체조 클럽에서 공중회전을 했을 때는 딸깍 하고 울렸어. 그건 신기했지. 그때 뭔가 예감은 했던 것 같아. 하지만 집에 가는 길에 엄마가 물어봤을 때, 그 장소는 아니라고 본능적으로 느꼈어. 흐음. 그럼 그때는 아직 발레가 머릿속에 없었던 거네. 내가 묻자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발레의 ‘ㅂ’도 없었어. 내 사전에는 아직 ‘발레’가 없었지. 본 적도 없었으니까. 그는 문득 먼 곳을 바라봤다. 어릴 때는 딱히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았어. 언제나 내가 사는 세계를 이해하고 싶어서 관찰했고, 그렇게 세계를 내 안에 입력하는 것만 해도 벅찼거든. 그가 모든 것을 열심히 관찰하고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거듭했던 건, 계속 찾고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자신이 해야 할 무언가. 자신이 이해하고 싶은 무언가. 그걸 너무나 열심히 찾다 보니, 보통 사람에게 보이지 않는 것까지 보고 마는 것이다. --- pp.131-132 「Ⅱ 싹트다」 중에서 살며시 앞으로 기울인 자세. 목부터 등, 허리부터 그 아래는 잘 보면 삐딱한 지그재그 모양을 그리고 있었다. 오른팔은 팔꿈치까지 옆구리에 딱 붙였고, 팔꿈치부터 아래쪽은 앞으로 내밀었으며, 손바닥은 무언가를 움켜쥐듯이 벌렸고, 손가락은 팽팽하게 뻗었다……. 사방에 실이 쳐진 것처럼 아스라이 허공을 떠도는 매화 향기. 나는 오싹했다. 매화나무. 여기에 매화나무가 서 있다. 그런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창밖에서 실려 오는 매화 향기를, 그곳에 서 있는 그가 내뿜는 것으로 착각했다. --- p.165 「Ⅱ 싹트다」 중에서 오리지널리티를 계속 유지하려면 진화해야 하고, 심화해야 한다. 변하지 않으려면 끊임없이 변해야 한다는 건 온갖 분야에서 통용되는 진리다. 하루의 내부에서는 늘 눈이 돌아갈 만큼 무언가가 빠르게 움직이고 있고, 엄청난 기세로 흐르고 있다. 항상 신선하고 생생한, 정신 활동(아니, 생명 활동인가?)이라고밖에 부를 수 없는 무언가가 펄떡펄떡 고동치고 있다. --- pp.295-296 「Ⅲ 솟아나다」 중에서 난 말이야, 지금까지 쭉 궁금했어. 어째서 우리는 발레를 보는 걸까. 왜 발레를 보고 싶어하는 걸까. 그러다 〈어새슨〉을 보면서 처음으로 ‘아아, 나 대신 춤춰주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 그건 내가 발레를 했기 때문이 아니야. 무용수가 아니라도, 다른 일을 하거나 다른 환경 속에 있는 사람이라도, 무대 위의 무용수들은 그 모든 관객을 대신해 춤추고 있는 거야. 원래 무대 예술이란 게 다 그럴지도 모르지. 연기자나 음악가, 무용수는 무대 위에서 관객을 대신해 살아주고 있어. 모두가 무대 위에서 다시 사는 자신을 봐. 무대 위의 예술가와 함께 인생을 다시 사는 거야. --- pp.342-343 「Ⅲ 솟아나다」 중에서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무언가를 ‘본’ 것만 같았다. 인간이라는 생물이 그저 순수하게, 움직인다는 목적을 위해, 아름다운 형태만을 위해 봉사하는 모습을. 저걸 내 몸으로 재현해보고 싶다. 역시 첫 체험의 충동에 자극을 받아, 어느새 나는 뛰어오르고 있었다. 빙그르르 한 바퀴 돌았다. 착지한 순간, 가슴 한복판에서 딸깍 하고 무언가가 울렸다. 그 순간을, 그 감각을 뭐라고 불러야 할까. 세상의 문이 열렸다고 해야 할까.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을 허락받았다고 해야 할까. 어쨌거나 나는 온몸으로 그 충격을 받아들였다. 감격과 전율과 환희와 절망이 뒤섞인 충격을. --- pp.408-409 「Ⅳ봄이 되다」 중에서 춤은 기도를 닮았다. 「봄의 제전」을 만드는 동안 그런 생각을 마음속 어딘가에서 계속하고 있었다. 누가 누구에게 무엇을 기도하는지는 모른다. 내가 나에게 기도하는 것인지, 내가 보이지 않는 누군가에게 기도하는 것인지, 춤추는 행위가 기도인지, 기도하는 행위가 춤으로 나타나는 것인지. 그 부분은 혼돈에 차 있어서 명확하게 구분 지을 수 없다. 오늘도 하루를 온전히 춤출 수 있기를. 내일도 그다음 날도 계속해서 춤출 수 있기를. --- p.437 「Ⅳ 봄이 되다」 중에서 |
소설의 한계를 초월한
천재 스토리텔러의 최고 도달점 춤을 통해 ‘이 세상의 형태’를 찾고자 하는 소년 요로즈 하루는 여덟 살에 발레를 만나고, 열다섯 살에 바다를 건너 유학 생활을 거치며 본격적인 무용수 겸 안무가로 거듭난다. 발레 학교를 함께한 무용수 후카쓰 준, 교양을 담당한 미노루 삼촌, 음악적 ‘뮤즈’이자 동료인 작곡가 다키자와 나나세, 그리고 하루 본인이 번갈아 화자로 등장해, 발레의 신에게 가닿고자 하는 하루의 여정을 저마다의 시선으로 흥미롭게 그려낸다. 새로운 작품을 출간할 때마다 독자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아온 천재 스토리텔러 온다 리쿠. 무대 위의 뜨거운 현장감을 종이 위의 활자로 완벽하게 승화해온 그가 ‘발레 소설’에 도전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출판계는 물론 무용계에서도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일으키며 화제의 중심에 섰다. “발레에 대한 깊은 사랑과 존경으로 만들어진 걸작” “사랑스러운 천진난만함과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천재성을 양립시키는 데 성공했다” “모든 장면과 음악이 내 전신에 흘러들어오는 느낌” 등의 찬사를 받은 것이다. 국내에서도 소설가 손보미, 〈씨네21〉 기자 이다혜, 무용수 기무간 등 작품을 먼저 접한 인물들이 하나같이 입을 모아 『스프링』이 보여주는 춤에 대한 깊은 통찰과 이를 정확히 표현해내는 언어에 감탄했다. 소설의 한계를 초월한 천재 스토리텔러의 최고 도달점을 보고 싶은가. 그렇다면 이제 당신의 눈으로 직접 확인할 차례다. 발레의 신에게 바치는 춤으로 그려낸 세상의 형태 세상을 그저 가만히 관찰하며 일상을 보내던 어린 소년 하루. 어머니와 체조 클럽을 견학하던 중 하루는 체조 선수들의 움직임을 지켜보며 자신의 몸속에서 딸깍, 하는 소리가 울리는 것을 듣는다. 그리고 그 소리의 정체를 알기 위해 길거리에서 혼자 점프를 하고 턴을 하던 중 우연히 발레 학원 선생님인 쓰카사의 눈에 띈다. 이를 계기로 발레 학원에 다니기 시작하며, 하루는 마침내 발레를 통해 세상과 소통하기 시작한다. 『스프링』은 총 4개의 부로 이뤄져 있다. 각 부마다 각기 다른 화자가 등장하여 저마다의 시선으로 요로즈 하루의 삶을 조명한다. 하루의 자취를 좇는 그 네 시선이 합쳐져서 세계적 무용수이자 안무가로 발돋움하는 그의 성장 과정이 완성된다. 1부에서는 발레 학교 시절을 함께한 친구이자 동료 무용수인 후카쓰 준의 시선으로, 탁월한 재능을 보인 하루의 청소년기를 그린다. 2부의 화자인 미노루 삼촌은 하루가 아주 어린 시절부터 신체적 성장에 발맞추어 정신적, 기술적 성장을 이루어낸 과정과 그에 따른 놀라운 일화들을 기록한다. 영문학 교수였던 미노루 삼촌은 하루의 교양 담당이었던 만큼, 하루가 삼촌 집에서 머물렀던 시간은 나중에 그가 안무가로서 구축하는 작품 세계의 원천이 된다. 3부에서는 어린 시절 발레를 함께한 친구이자, 이후 하루의 안무에 곡을 써주게 되는 작곡가 다키자와 나나세가 화자로 활약한다. 나나세가 하루와 협업한 과정을 엿보며, 안무가와 작곡가의 긴밀한 관계와 두 사람의 천재성을 짐작할 수 있다. 마지막 4장에서는 하루 본인이 화자로 등장하여, 지금까지 외부에서 내부로만 향하던 시선을 반전시킨다. 그동안 숨겨져 있던 그의 아주 사적이고 내밀한 이야기들이 밝혀지고, 독무 〈봄의 제전〉의 작업 과정과 초연 무대를 통해 그가 춤에 임하는 마음과 정신이 극적으로 드러나며 이야기는 절정으로 치닫는다. 소설 읽는 재미를 되찾아줄 베테랑 스토리텔러의 귀환 30년 동안 끊임없이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낸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오랜 세월 일본을 대표하는 소설가로 활동하며 ‘노스텔지어의 마법사’라는 애칭을 획득한 작가 온다 리쿠는 특정 장르에 갇혀 있기를 거부한다. 그는 독자의 다양한 갈증을 한번에 해소해주는 작품 활동으로 두터운 팬층을 쌓아올렸는데, 으스스한 괴담을 소재로 한 미스터리, 재기발랄하고 유쾌한 코믹 소설, 청춘의 고민과 성장을 그리는 필굿 소설, 그리고 천재 예술가들의 아름다운 표현에 천착한 ‘예술가 소설’까지 스펙트럼도 다양하다. 그중에서도 『초콜릿 코스모스』 『꿀벌과 천둥』 『스프링』으로 이어지는 ‘예술가 소설’은 작가가 가장 애정을 쏟고 심혈을 기울여 집필한, 게다가 그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온다 리쿠만의 전매특허다. 작가가 자신의 데뷔 30주년 기념작으로 발레 소설인 『스프링』을 집필한 것은 어찌 보면 필연적인 선택이다. 영화나 드라마는 물론 온갖 숏폼 영상까지, 눈과 귀를 자극하며 우리의 정신을 쏙 빼놓는 콘텐츠가 매분 매초 끝없이 쏟아져나오는 시대다. 그러나 그런 말초적인 즐거움은 대부분 그저 스쳐 지나가면 그 뿐, 결국 도파민 중독만 남는다. 그런 탓에 집중력이 극도로 짧아져 가만히 앉아 책을 읽기 어렵다고 호소하는 사람도 많다. 어쩌면 온다 리쿠의 『스프링』은 그런 중독의 해독제 역할을 할지도 모르겠다. 다시 말해, 『스프링』은 소설 읽는 본연의 즐거움을 되찾게 해주는 소설이다. 이 작품을 읽으면 자연스레 무용수들의 아름다운 움직임이 눈에 보이고, 공기를 섬세한 진동으로 가득 채운 오케스트라 연주가 귓가에 들려온다. 뇌가 상상으로 만들어낸 영상과 음악은 더욱 오랫동안 우리 가슴에 머물며 고유한 즐거움을 안겨준다. 자신만의 리듬을 살아내는 생생한 인물들의 두려움 없는 도전의 끝에는, 그들이 사랑해 마지않는 발레의 신 역시 언뜻 모습을 드러낸다. 활자에서만 느낄 수 있는 환희! 그건 오직 온다 리쿠의 글에서만 얻을 수 있는 지극한 기쁨이다. |
역시 온다 리쿠가 좋다. 천재 요로즈 하루의 발레가 책장을 뚫고 나와 우리 앞에 생생하게 펼쳐진다. 늘 좋은 소리가 난다는 그의 움직임, 탐닉하는 단계를 뛰어넘은 발레의 언어. 전율케 하라. 그 절대명령이 완성되는 순간을 목도한다. - 이다혜 (씨네21 기자, 북칼럼니스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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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내내 나는 아름다움에 대해 생각했다. 아무도 바라보지 않는 곳을 탐색하고, 세상의 형태를 궁금해하고, 잊지 않는 것. 주인공 하루가 경이로운 건, 그가 끊임없이 이 세상에 있는 힘껏 손을 뻗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그의 춤은 이야기가 되고, 이 세상의 모든 이야기는 그의 춤이 된다. 아니, 이 세상의 모든 이가 자신의 춤을, 자신의 이야기를 품고 있으면 좋겠다. 무엇이든 바라볼 것. 시선을 거두지 말 것. 그렇게 찾아오는 우리의 꿈, 우리의 사랑, 우리가 움켜쥘 만 개의 봄. - 손보미 (소설가, 『디어 랄프 로렌』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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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며 무용수로서 ‘움직임’의 본질을 되돌아보았다. 춤은 자신의 내면과 가치관을 움직임으로 풀어내는 행위라는 것을, 춤과 삶이 맞닿아 있음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각자의 무대 위에서 자신만의 리듬으로 움직이며 살아가는 게 아닐까. 삶을 춤처럼 살고 싶은 이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 기무간 (무용수, 「스테이지 파이터」 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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