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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유모토 가즈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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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 위에서 강물을 내려다보고 있던 날 저녁. 눈꽃 무늬 스웨터를 입은 아저씨가 어느 사이엔가 내 곁에 서 있었어.
어디서 왔을까. 스웨터는 낡고 보풀이 일어서 몇 년인지 몇십 년인지 오래 갈아입지 않은 것처럼 보였어. --- pp.2-6 휘익, 휘파람 소리가 나서 고개를 들었어. 호수를 본 적 있니? 아저씨가 물었어. 그저 그런 호수가 아니야. 그 물은 어두운 땅 밑 수로를 통해 너한테로 오고 있지. 무슨 이야기예요? 바로 네 이야기야. --- pp.19-20 배가 고플 때도 울 때도 숨이 차도록 달릴 때도 화가 날 때도 수로의 어둠 저편에는 오직 하나의 호수, 너만의 호수가 있어. --- pp.24-27 물 주변에는 반드시 누군가가 있지. 친구라든가 소중한 사람, 살아있는 사람 혹은 이제는 세상에 없는 사람. 잘 보면 그곳에는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사람이 있고, 모두 제각각 생각을 하면서 풀 위에 앉아 있거나 뒹굴거나 하고 있어. 나에게 말을 건네는 사람도 있고, 그저 조용히 바라보는 사람도 있어. 가다가 뒤돌아보며 내가 거기 있는 것을 보고는 미소 지으며 살짝 고개를 까닥이는 사람도 있어. 그때 만약 강에 뛰어들었다면 전부 만날 수 없었던 사람들이지. --- pp.44-46 |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다리 위에서 강물을 내려가 보고 있는 ‘나’에게 느닷없이 나타난 눈꽃 무늬 스웨터 아저씨. 몇십 년 동안 갈아입지 않은 것 같은 낡은 스웨터를 입은 그 아저씨가 내게 묻는다.
“강을 좋아하니?” “딱히… 뭐, 그냥 보고 있었어요.” 하지만 사실은 지금 여기서 강으로 뛰어내린다면 어떻게 될까, 하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렇게 손으로 지그시 귀를 막아 보렴.” 그러면서 아저씨는 이렇게 말했다. 그러면 너만의 호수가 보인다고, 그 호수의 물은 어두운 땅 밑 수로를 따라 너에게 온다고, 그리고 그 물이 네 몸을 둘러쌀 거라고. 그 잠깐의 시간 속에서 알 듯 모를 듯 이상야릇한 몇 마디 말을 남긴 채 아저씨는 사라지고 아이는 집으로 돌아온다. “어서 와. 잘 다녀왔니?” 이 뒤 문장은 ‘엄마 목소리를 들었을 때 누군가와 눈이 마주친 듯한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로 이어지는데, 엄마의 그 목소리와 눈꽃 무늬 아저씨는 동일 선상에 있는 건 아닐까. 엄마는 언제 어디서나 우리 곁에 있으니까. 눈꽃 무늬 아저씨로 혹은 그 어떤 것으로도 엄마는 아이 주변에 있으니까. ‘신은 모든 곳에 있을 수 없어 어머니를 만들었다’는 유명한 유대 속담도 있지 않은가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