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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펴내며
프롤로그 - 언어 표현들 사이의 줄다리기 관전에 앞서 첫 번째 경기장 : ‘대통령 각하’와 ‘대통령님’의 줄다리기-비민주적 표현 경기장1 봉건주의 시대의 호칭, ‘각하’의 퇴장 / 도대체 각하가 뭐길래 / 각하는 경칭이 아니라 비칭이라서? /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더 톺아보기1/ 더 톺아보기2/더 톺아보기3 두 번째 경기장 : ‘대통령’은 지금 줄다리기를 기다리는 중-비민주적 표현 경기장2 민주주의 가치와 거리가 먼 단어, 대통령 / ‘어른 장’의 이데올로기 세 번째 경기장 :관점과 관점 사이의 줄다리기-관점 경기장 ‘경축, 정밀 안전진단 통과’를 바라보는 관점 / 관의 관점에서 붙인 이름, ‘쓰레기 분리수거’/ 정상이란 무엇인가? /기자가 담는 기업의 관점 / ‘갑질’을 바라보는 관점/더 톺아보기4/ 더 톺아보기5 네 번째 경기장 : 미혼과 비혼의 줄다리기-결혼 관련 표현 경기장 결혼한 경험이 있으면 모두 기혼인가? / ‘미혼’이 불편해 / 기혼도 불편해 / 비혼과 돌싱이 필요해 다섯 번째 경기장 : 미망인과 유가족의 줄다리기-차별과 불평등 표현 경기장1 남편이 죽으면 따라 죽어야 하나? / 가장 급변한 ‘남아선호사상’ 여섯 번째 경기장 : 여교사와 여성 교사의 줄다리기-차별과 불평등 표현 경기장2 남교사는 없고 여교사만 존재하는 이유 / 교사는 남자라는 이데올로기가 존재하는 방식/ 가르치는 것은 남자의 일? / 그랜저 검사와 벤츠 여검사 일곱 번째 경기장 : 청년과 젊은이의 줄다리기-차별과 불평등 표현 경기장3 청년은 누구인가? / 청년실업은 누구의 문제인가? 여덟 번째 경기장 : ‘요즘 애들’과 ‘요즘 어른들’의 줄다리기-주도권 경기장1 혼탁해진 언어와 추락하는 언어 품격, 그 주범은 늘 ‘요즘 애들’! / ‘요즘 어른들’도 사실은 ‘요즘 애들’이었다 / 욕설과 비속 어 : 누구와 누구를 비교하고 있는가? / 은어?신어?유행어 : 언어는 내가 가르치는 것! / 높임말 : 말할 때와 들을 때의 머나먼 거리 아홉 번째 경기장 : 자장면과 짜장면의 줄다리기-주도권 경기장2 짜장면이 해금되던 날 국민들이 열광한 이유 / 짜장면 투쟁사 / 짜장면의 해금이 늦어진 이유 / 짜장면으로 찾아야 하는 규범의 주인 / 신문 속 짜장면 표기 역사와 돈가스 열 번째 경기장 : 용천과 룡천의 줄다리기-주도권 경기장3 ‘용천’과 ‘룡천’의 줄다리기 / ‘룡천’ 표기의 이데올로기적 무게 : 표기법 줄다리기의 이면 / 한글 맞춤법의 역사 / 표준어와 문화어의 줄다리기 / 한국어와 조선말(어)의 줄다리기 / ‘한국어’와 ‘조선말’을 넘어 에필로그 - 줄다리기 관전을 마치며 |
저신지영
언어 표현들 사이의 줄다리기 경기를 통해 우리는 현재 우리 사회가 고민하고 있는 문제, 우리도 모르게 빠져 있는 함정 등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할 수 있게 된다.
「프롤로그-언어 표현들 사이의 줄다리기 관전에 앞서」 각하가 담고 있는 이데올로기는 사람의 신분에는 차이가 존재한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즉 신분제를 전제하는 이 표현은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임을 부인하는, 반민주공화국적 표현이 되는 것이다. 「첫 번째 경기장: ‘대통령 각하’와 대통령님‘의 줄다리기-비민주적 표현 경기장?」 대통령이란 임기 동안 주권자인 국민으로부터 권한을 위임받아 국민의 권리와 이익을 위해 국정을 운영하는 국민의 대표자일 뿐이다. 따라서 주권자인 국민이 선출한 국민의 대표자를 대통령이라는 이름으로 부르는 것은 민주주의 정신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일이다. 「두 번째 경기장: ‘대통령’은 지금 줄다리기를 기다리는 중-비민주적 표현 경기장?」 즉 장애인이 아닌 사람을 정상인이라고 칭하는 것은, 장애를 가진 것은 정상이 아닌데 자신은 장애를 갖지 않아서 정상이라는 점을 강조하는 표현이 된다. 「세 번째 경기장: 관점과 관점 사이의 줄다리기-관점 경기장」 기혼과 미혼의 표현 뒤에는 결혼에 대한 관습적인 세계관이 담겨 있고, 결혼에 대한 강력한 이데올로기를 우리에게 제공하게 된다. 「네 번째 경기장: 미혼과 비혼의 줄다리기-결혼 관련 표현 경기장」 남편이 죽으면 당연히 따라 죽었어야 하는데, ‘아직’ 따라 죽지 못하고 살아남은 죄인이라는 뜻에서 남편을 잃은 사람이 자신을 낮추어 미망인이라고 표현한 데서 유래한 말이다. 미망인이라는 표현은, 그러니까 ‘남편이 죽으면 아내는 응당 따라 죽어야 한다’는 이데올로기를 담고 있다. 「다섯 번째 경기장: 미망인과 유가족의 줄다리기-차별과 불평등 표현 경기장?」 교사와 교수, 즉 ‘다른 사람을 가르칠 수 있는 사람은 남자’라는 이데올로기가 여교사와 여교수라는 단어에 담겨 있음을 알 수 있게 된다. 「여섯 번째 경기장: 여교사와 여성 교사의 줄다리기-차별과 불평등 표현 경기장?」 언어는 우리의 의식을 지배한다. 청년이 남성의 페르소나를 가지고 있는 한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청년실업이라는 언어 표현을 통해 청년실업의 문제가 젊은 남성의 문제라는 의식을 갖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젊은 여성의 실업 문제는 젊은 남성의 실업 문제보다 후순위에 놓이게 되는 것이 당연하다. 「일곱 번째 경기장: 청년과 젊은이의 줄다리기-차별과 불평등 표현 경기장?」 은어, 신어, 유행어에서 느끼는 불편함은 내가 알아듣지 못하는 말을 들은 데서 오는 불편함이다. 그리고 은어, 신어, 유행어에서 느끼는 요즘 어른들의 불편함의 저 안쪽에는 사실 언어 권력을 침해당한 데서 오는 언짢음이 도사리고 있 다. 「여덟 번째 경기장: ‘요즘 애들’과 ‘요즘 어른들’의 줄다리기-주도권 경기장?」 짜장면을 통한 저항은 언어의 주인은 언어 사용자라는 점과, 언어 규범을 만드는 주인공 또한 언어 사용자라는 사실을 망각한 언어 정책에 대한 항거였다. 또한 관 주도적인 언어 정책에서 민 주도적인 언어 정책으로의 전환을 촉구하는 외침이었다. 「아홉 번째 경기장: 자장면과 짜장면의 줄다리기-주도권 경기장?」 자신이 배우고 있는 언어의 이름을 어떻게 부를 것인가를 통해 자신이 의도하지 않는 자신의 정치적인 입장을 드러낸다는 점을 알게 된다면, 학습자들은 어떤 쪽도 아닌 중립적인 입장을 드러낼 수 있는 표현이 없을까를 고민하게 될 것이다. 그렇지만 불행히도 학습자들은 한국어 혹은 조선말 중 하나를 선택하여 표현해야만 한다. 정치적으로 중립적인 표현을 할 수 있는 선택지가 현재는 없기 때문이다. 「열 번째 경기장: ‘용천’과 ‘룡천’의 줄다리기-주도권 경기장?」 성찰적 말하기란 말을 할 때 듣는 사람의 감수성을 가지는 것을, 배려의 듣기란 들을 때 말하는 사람의 감수성을 가지는 것을 의미한다. 「에필로그-줄다리기 관전을 마치며」 --- 본문 중에서 |
폭력적이고 성차별 표현이 도처에 깔려 있는 한국어의 민낯
이 책 『언어의 줄다리기』에서 소개하는 단어 중 가장 많은 지면을 할애하는 것은 단연 성차별 표현이다. 우리 사회에서 뜨거운 논란을 거듭하고 있는 ‘여성을 폄훼하고 차별하는’ 언어 표현은 가부장적 이데올로기가 여전한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을 여과 없이 드러내는 대목이다. ‘(죽은 남편 따라 죽어야 하는데) 아직 죽지 않는 죄인’이라는 뜻의 미망인(未亡人)이라는 단어는 참담함을 자아낸다. 대단히 폭력적이고 극단적인 성차별 표현이다. 더욱 아이러니컬한 사실은 봉건시대의 순장제와 관련 있는 이 단어가 ‘제법 고상한 뉘앙스’를 풍기는 표현인 양 쓰이고 있다는 점이다. 상류층이 아닌 서민층 부인이 남편을 잃었을 때 지칭하는 ‘과부(寡婦)’라는 단어 역시 극단적으로 여성을 폄훼하는 언어다. 대충 ‘(남편이 죽어서 이제는) 부족한 사람이 된 부인’쯤으로 해석되는 이 단어는 여성에게 있어 대단히 모멸적인 표현이 된다. 여성과 아동을 차별하는 이데올로기가 녹아 있는 한국어의 현주소는 언어학자의 친절한 해설을 곁들인 구체적인 자료와 어우러지면서 책 속 곳곳에 발견된다. 청년이라는 단어가 왜 여성을 아우르지 못하는지? 교수?교사?검사 등의 단어에서 왜 남자를 전제하고서 여교수?여교사?여검사 등의 단어를 별도로 써야 하는지? 인간을 이분법으로 나누는 ‘기혼’과 ‘미혼’은 적절한 표현인지? 이런 질문들에 대해 이 책은 저자가 만든 ‘경기장’으로 독자를 안내하며 흥미로운 해설을 전개한다. 저자가 만든 ‘경기장’에서 살펴보는 ‘언어의 팽팽한 줄다리기’ 저자가 만든 경기장은 ‘팽팽한 언어의 줄다리기’가 펼쳐지는 곳이다. 봉건적이고 반민주적인 가치를 담고 있는 각하라는 단어가 민주화운동의 파고에 밀려 사라졌듯이 언어는 언어사용자들 간의 치열한 격돌을 통해 바뀌고 있다는 것이 이 책이 전하는 뜨거운 시선이다. 그 시선은 또 언어들 속에 숨어 있는 거대한 이데올로기 작동원리를 설명하면서 조목조목 그 근거를 뒷받침한다. 경기장 안에는 ‘차별적인 언어에 대한 줄다리기’, ‘비민주적인 표현에 대한 줄다리기’, ‘서로 다른 관점 사이에서 펼쳐지는 줄다리기’, ‘세대 사이에서 벌어지고 있는 줄다리기’, ‘남과 북의 언어 간에 지속되고 있는 줄다리기’, ‘관(官)과 민(民) 사이에서 진행되는 있는 줄다리기’ 등의 경기가 쉼 없이 이어진다. 이 과정에서 책의 관전자인 독자는 치열한 줄다리기의 긴장감을 마음껏 살필 수 있으며, 자연스레 언어에 내포된 이데올로기 작동원리를 체감할 수 있게 된다. 이 책을 읽는 가장 큰 즐거움이 여기에 있다 할 것이다. 더욱이 이 경기장들의 관전 과정에서 우리는 ‘갑질’이라는 단어를 통해 우리 사회가 얼마나 불평등한 곳인지를 실감나게 경험하게 될 것이다. 이렇듯 저자의 지적처럼 언어는 사회를 반영하는 숙명을 안고 살아간다. 그만큼 우리 사회의 현실을 단적으로 반영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의 지향점은 사회의 미래상과 그대로 연결된다. 성숙한 민주사회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시대정신과 부합하지 않는 언어를 줄다리기를 통해 바꿔야 하기 때문이다. 또 ‘짜장면과 자장면의 줄다리기’에서 볼 수 있듯이 관(官) 주도 하에 일방통행식의 언어 사용을 강요하는 것은 시대정신에 한참 뒤떨어지는 행태이다. 저자의 주장처럼 언어의 주인인 ‘민’이 주도하는 시스템으로 언어정책을 전환해야 하는 것은 참으로 가볍지 않은 이 시대의 과제임이 틀림없다. 이 책 마지막 지점은 공정하고 질 높은 소통을 가리키고 있다. 성숙한 민주사회로 나아가는 데 있는 소통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 밑바탕에는 당연히 건전하고 민주적인 언어의 줄다리기가 깔려 있다. 이 책 여행을 통해 한껏 언어의 감수성을 높여 언어에 대한 비판적 사고력을 높이자는 게 저자의 들뜬 바람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