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제1부 타락한 진실의 시대 비겁함이 죄다 언론은 왜 자꾸 실패하는가 ‘입틀막’ 하려고 청와대 나왔나 자격 없는 두 사람의 정치 얼어 죽을 ‘관전 포인트’ 정의 잃은 국가, 지킬 가치 있나 노동을 멸시하는 사회 ‘오십억 게임’에 분노한다면 미안함이 세상을 바꾼다 생각을 바꿀 수 있다는 건 얼마나 다행한가 진실은 가까스로 밝혀진다제2부 왜 그렇게들 떳떳한가 윤석열, 자기 배반의 정치 한동훈의 비겁함 이재명의 진짜 문제 조국의 반성할 용기 유시민에게 진실이란 무엇인가 음모공동체, 김어준과 민경욱 가세연의 피 묻은 돈 홍준표의 유머에 웃어도 될까 원희룡의 정치적 파산 윤희숙의 이상한 ‘책임정치’ 이준석, 여성혐오라는 새 정치제3부 차별이라는 폭력 차별 국가에서 아이 낳으면 뭐 하나 의원님, 교회가 두렵습니까? 차별할 권리란 없다 박성민 자격론과 뒤틀린 공정 이미 도래한 포퓰리즘 마리화나 합법화가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 성범죄 조장 국가, 대한민국 페미니즘을 여자들에게 맡겨두신 분들께제4부 우리는 다른 길을 선택할 수 있기에 소방관 함부로 건드리지 마라 엑스포 실패, 그 불길한 징후 검사, 증거 인멸의 기술자들 사법농단, 무죄면 없었던 일인가 양념이라는 이름의 파시즘 민주 없는 민주당 기본소득을 말할 기회 그럼에도 〈뉴스타파〉는 있어야 한다 희망을 한 뼘 넓히는 정치인들 절망의 정치를 넘어에필로그: AI, 존재의 전환기 앞에 선 인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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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김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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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들은 왜 그렇게들 떳떳한가?한국 사회는 왜 내로남불에 포위되었는가?저널리스트 김희원이 한국 사회의 비겁함에 주목하는 이유30여 년간 뉴스룸에서 벼린 단단한 사유와 언어한국에선 아무도 기자를 좋아하지 않는다. 2005년 11월부터 2006년 1월까지, 황우석 전 서울대 교수의 줄기세포 논문 조작 사건을 취재하고 진실 규명에 기여해 대한민국과학문화상, 한국여성기자협회 올해의 여기자상, 한국과학기자협회 과학기자상 등을 수상했던 김희원은 그것을 잘 알고 있다. 그는 몇 년 전 자신의 칼럼을 읽고 자신을 신뢰해서 만난 어느 변호사가 “기자를 사람 취급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던 것을 기억한다. 사실을 왜곡하는 기사로 오히려 사회적 혼란을 야기하고, 엉망인 기사를 쓰고서도 ‘데스크 지시’라는 핑계를 대며, 취재원 보호 따윈 아랑곳하지 않는 것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과거 한국 사회에서 존경받았던 기자들은 왜 그렇게 되었는가?기자뿐이랴. 현직 대통령은 불신과 조롱의 대상이 되어버린 지 오래다. 공당의 대표들은 검찰과 법원에 불려 다니느라 정신이 없다. 검사들에 대한 신뢰는 땅에 떨어졌다. 병원의 의사는 어떻고, 학교의 교사는 또 어떤가. 군의 지휘관들은 해병대 채수근 상병 사망 사건을 덮으려 안간힘을 쓴다. 우리 현대사를 진전시켰던 ‘민주인사’들은 줄줄이 성범죄를 저지르거나, 편법적인 재산 증식 혹은 자녀의 입시 비리를 고발당했다. 사회의 법과 질서, 기틀을 잡아야 할 ‘보수의 아이콘’들은 부정선거 음모론에 귀 기울이거나 여성가족부 폐지에 동조하면서 동성애 혐오를 이어간다. 우리의 공론장엔 오로지 냉소와 비방, 파괴적인 공격만 남은 것처럼 보일 때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대체 누구를 존경해야 한단 말인가?가장 심각한 문제는, 그들이 한결같이 유지하는 떳떳함이다. 권력을 가졌거나 자신의 스피커를 가진 이들은 자신이 놓친 게 있을 수도 있다는 것, 자기 자신에게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결단코 인정하지 않는다.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마찬가지다. 다들 상대편을 악마화하며 모든 게 다 ‘네 탓’, ‘저쪽 탓’이라고 몰아붙인다. 김희원에 따르면, 그것은 알지도 못하면서 알려고 하지 않는 지적인 나태이며 자기 생각이 틀렸다는 걸 한 치도 의심하지 않는 오만한 태도라 할 수 있다. 그들은 언제나 자신은 죄가 없다고 강변한다. 한 점 부끄럽지 않으며 당당하다고 잡아뗀다. 진영에 따라 무수히 다른 진실과 도덕이 만들어지는 순간이다. 정의는 그렇게 오염되기 시작한다.“정의는 힘들게 승리하고 진실은 가까스로 밝혀진다”위선과 냉소, 혐오와 탈진실의 시대를 뛰어넘는 법그렇지만 그로 인해 온 사회에 만연한 냉소와 내로남불의 분위기는 이들에겐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 보편적 정의와 진실을 내팽개치고 모두가 서로를 향하여 손가락질을 하는 상황에선, 심각한 허물이 있는 이도 자신의 지지자들에겐 도리어 더 열렬한 응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정치와 언론을 비롯한 모든 공적 영역에 스며든 ‘정의의 오염’, 탈진실의 비극은 우리의 목전까지 차올랐다. 1993년 〈한국일보〉에 입사해 30여 년간 뉴스룸을 지켰던 김희원은 이처럼 정의와 진실이 송두리째 사라진 한국 사회를 파헤치기 시작한다. 김희원은 “비겁함이 죄다”라는 문장으로 이 책의 첫머리를 연다. 대통령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자신의 직분과 책임을 다하다가 좌천되었던 관료들의 이야기를 꺼내면서, 우리가 한 사람의 사회인이자 직업인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최소한의 의무’를 지키는 게 때로는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털어놓는다. 저자에게도 그런 경험이 있었다. 2005년 황우석 논문 조작 사건과 2013년 ‘〈한국일보〉 뉴스룸 폐쇄 사태’가 바로 그것이었다. 그 사건들의 회고로부터 책의 가장 중요한 모티브가 등장한다. 정의는 힘들게 승리하고 진실은 가까스로 밝혀진다는 게 그것이다. 정의와 진실은 쉽게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누군가가 타성에 젖어 자신이 해야 할 바를 그저 기계적으로만 수행한다면, 때때로 자신의 모든 것을 건 누군가의 고뇌와 결단이 없다면, 거기에서 이 사회의 비극이 시작된다. 1,258명의 무고한 죽음을 낳은 가습기 살균제 사건도, 304명이 목숨을 잃은 세월호 사건도, 끊임없이 실패하는 언론도. 우리 공동체를 절망에 빠지게 하는 정치인들도 다 마찬가지다.이 책의 1부 「타락한 진실의 시대」는 이러한 문제의식에 입각해 입체적으로 펼쳐놓는 ‘대한민국론’이다. 김희원은 자신이 치열하게 공부하고, 취재하고, 성찰한 것을 정돈해 열한 개 글을 완성했다. 자신이 오랫동안 천착했던 아동학대 문제, 군대문화 문제, 부동산과 집값 문제, 정치 현안과 저널리즘, 인권과 소수자와 노동 문제를 정리하고 우리 공동체의 앞날을 고민한다. 이어 2부 「왜 그렇게들 떳떳한가」에선 우리 사회의 정의를 오염시킨 정치인들을 비판적으로 다룬다. 그가 비판하는 인물은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를 비롯해 이준석과 홍준표, 유시민과 김어준 등 진영과 소속을 가리지 않는다. 그는 자신이 비판해야 할 대상에 성역을 두지 않는다. 김희원이 기록한 바를 뒤쫓으며 이들의 아찔한 궤변과 몰염치를 보는 일은 우리 사회가 ‘탈진실의 시대’를 용인한 대가를 확인하는 것만 같다.김희원에 따르면, 한국은 이제 선진국으로 분류되지만 세계 보편의 가치를 아직 내면화하지 못했다. 그는 책의 3부 「차별이라는 폭력」에서 필리핀 가사관리사 시범사업과 차별금지법 논란, 성범죄와 페미니즘, 우리 사회의 공정과 능력주의 담론, 한국 사회에서 득세 중인 여성혐오와 포퓰리즘 관련 논의를 펼쳐놓는다. 소설가 한강은 노벨문학상을 수상했고, 우리는 이제 구시대적인 차별에서 벗어나 성평등을 비롯한 세계의 도도한 흐름으로 더 빠르게 합류해야 한다. 나아가 책의 마지막 4부 「우리는 다른 길을 선택할 수 있기에」에는 한국 정치의 현재와 미래를 결정짓는 가장 첨예한 쟁점들이 묶였다. 사법부의 정치적 독립과 언론의 정파성 관련 논란, 팬덤 정치의 한계, 기본소득 논쟁, 나아가서 우리 정치구조의 근본적인 변혁까지…. 김희원은 우리 공동체가 더 나은 길을 찾을 수 있으리란 희망을 놓지 않으면서 자신의 오랜 고민을 풀어놓는다.김희원이 기자로서 오랫동안 세공해 온 지성의 힘위선과 냉소, 혐오와 탈진실의 시대를 뛰어넘는 법저자가 4년여간 〈한국일보〉에서 연재 중인 ‘김희원 칼럼’은, 진보와 보수에 구애받지 않고 우리 언론과 저널리즘의 가치를 신뢰하는 이들에게 두터운 신뢰를 받아왔다. 김희원은 시대의 균형추, 날카로운 비판자로 불리면서 지금 이 순간도 신문사의 뉴스룸을 지키는 중이다. 모두가 스스로를 의심하거나 돌아보지 않고 한 방향으로 달려가고 있는 세상에서, 언론의 사명을 기억하는 한 사람의 기자가 그것을 의심하길 기대하며. 사회를 비판하는 것과 똑같은 잣대를 자기 자신에게 들이미는 기자가 있기를 기대하며. 무엇보다도, 스스로를 가장 먼저 경책하고 깊이 반성하며. 큰딸의 문신을 자꾸만 탓하고 싶어 하던, 일과 가정의 양립에 무심했던, 소수자에게 진정으로 공감하지 못했던 스스로를 아프게 돌아보면서 말이다.굳이 기자에 한정되는 이야기는 아니다. 김희원은 우리 사회가 ‘오염된 정의’를 뛰어넘을 수 있게 하는 건 결국 구성원 한 사람 한 사람의 치열한 노력과 성찰이라 믿는 사람이다. 그는 남의 과오를 내 정당성의 알리바이로 삼고 있는 세상이 아니라, 자신의 과오를 끊임없이 반성하는 사람들의 공동체를 꿈꾼다. 상식에 입각하여 생각하고 독립적으로 판단하는 개인들의 사회를 간절히 바란다. 그래서 김희원은 사람들이 가정폭력의 문제에 더욱 관심을 가질 것을 기대하고, 우리 시민들 모두가 ‘부동산 불패 신화’에서 벗어날 수 있길 기대하고, 대다수의 ‘선량한’ 남자들이 남자-연대의 분위기를 떨치고 성범죄 문화에 ‘정색’할 것을 기대한다. 시민들이 정치인을 욕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새로운 정치를 향한 고민을 멈추지 않길 희망한다. 김희원은 민주주의자다. 내가 조금만 무책임했다간 공동체를 금방 망쳐버릴지도 모른다고 믿는, 다소 엄격한 민주주의자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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