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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그림천명기
민족 저항 시인
이육사 「초강의 사」 수인번호 264. 1925년 의열단에 가입한 그는 1927년 10월 18일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파 사건에 연루된 큰형 이원기, 동생 이원일과 함께 약 3년간 투옥되었습니다. 그는 당시 받은 수인번호를 자신의 호로 삼았는데 여기에는 ’독립에의 사명을 잊지 말자‘는 뜻이 담겨 있었습니다. 실제로 그는 출옥 후, 언제 어디에서든 자신을 ’이육사‘로 소개했습니다. 그리고 독립운동에 더욱 힘을 쏟았습니다. 시인이자 독립운동가로 활동한 그는 정처 없이 떠도는 망국의 길에서 자유를 갈망하는 보다 넓은 세상을 보았고, ’들개에 길을 비켜주는 겸양을 보이지만, 달려드는 표범을 겁내어 물러서지 않는 데‘ 자신의 길이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그가 본격적으로 독립운동에 뛰어든 시기는 항일 비밀결사 단체인 의열단에 가담하면서부터입니다. 여러 번 검거되고, 참혹한 고문을 견뎌내야 했지만, 그 와중에서도 그는 詩를 쓰며 독립에의 의지를 다지고 또 다졌습니다. 조국이 처한 안타까운 상황을 아름다운 시의 선율로 녹여냈습니다. 이육사는 서른이 넘어 시를 쓰기 시작해 시인으로서 경력이 10년이 채 되기도 전에 36편의 작품을 남겼습니다. 총 작품 수는 적은 편이지만, 시를 썼던 시기와 더불어 그가 독립운동에 열중했음을 상기하면 작품이 많고 적음을 논하는 건 무의미한 일입니다. 오히려 고단하고 치열했던 생의 내력과 함께 저항 시인으로서 이육사를 떠올릴 때 그의 대표 시 「광야」, 「청포도」, 「꽃」, 「절정」 속에 담긴 심오한 정서와 강인함 그리고 선비로서의 기상과 기개가 더 깊은 인상을 전해줍니다. 작가의 말 한국인들은 죽을 ‘死’와 어감이 같은 숫자 ‘4’를 싫어합니다. 그러나 1904년, 40세, 1944년의 ‘4’는 좋아할 수밖에 없는 숫자입니다. 죽을 ‘死’가 아닌 선비 ‘士’로 읽어야 할 한 사람의 일생을 담은 4이기 때문입니다. 생몰 40년간 17번이나 일제 옥살이를 하면서도 저항의 총과 붓을 놓지 않고, 끝내 일제의 감옥에서 순국한 이육사가 그 주인공입니다. 제목 ‘초강(超强)의 사(士)는 ‘초강력 선비’라는 뜻입니다. 웹툰은 시인이 아닌 항일무장투사로 이육사를 그렸습니다. 웹툰을 계기로 ‘청포도’와 ‘광야’보다 ‘의열단’,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 출신의 무장투쟁가‘가 이육사를 추념하는 키워드이기를 바라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