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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산 · 생일 축하해!
이유리 · 인어의 걸음마 전삼혜 · 고래고래 통신 이서영 · 데자뷔 |
저이종산
저이유리
저전삼혜
저이서영
앤윈
잃어버린 기분인데 무얼 어디다 잃어버렸는지 몰라 주머니를 더듬으며 길을 걷는 기분. 리라는 그 기분을 잘 알았다. 듣는 것. 아빠. 그런 것들. 처음부터 가지고 태어나지 않았으니 잃어버린 것은 아니다. 하지만 뭔가를 잃어버린 기분이었다.
그런데 이 광장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사람들 속에 서 있으니 양쪽 주머니에 만져지는 것이 하나씩 든 것 같다. 그것들은 태어날 때부터 리라의 주머니에 들어 있었다. 리라는 자랑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자신이 그런 것들을 가지고 태어났다는 것에 대해서. --- 「이종산, 〈생일 축하해!〉」 그곳은 온통 새파란 색이었어. 지금까지 그런 파란색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어. 그걸 대체 무엇에 비교할 수 있을까, 아무리 값비싼 보석도 그곳의 색보다 아름다울 수는 없을 거야. 한 번 보면 절대 잊을 수 없는 그런 색이 드넓은 공간에 가득 있었어. 그리고 빛이, 눈이 따가울 정도로 강하고 뜨거운 빛이 아주 먼 곳에서부터 내리쬐며 그곳을 꽉 채우고 있었어. 투명하고 부드러운 것이 멀리서부터 다가와 내 얼굴을 쓸고 지나갔고, 가슴 밑으로는 ‘수면’이 찰랑거리며 나를 간질이고 있었지. 아무리 설명해도 넌 완전히 이해하지 못할 거야, 그 멋진 감각을. --- 「이유리, 〈인어의 걸음마〉」 반향정위라는 건 초음파를 일종의 손처럼 사용하는 거라고 했다. 대략적인 크기와 위치부터 섬세하게는 재질과 굴곡까지 측정할 수 있다고. 눈이 아니라 손이었다. 결국 그 반향정위조차 이원에게 눈이 될 수 없었다. 하지만 내가 이런 생각을 한다고 해서, 이원이 처음 만났을 때의 건방진 애와 다른 애가 되는 것도 아닌데. 왜 자꾸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지. 허언증이라는 말을 들어서. 가족을 잃었다는 말을 들어서. 이원이 나랑 다를 바 없는 그저 그런 애라는 말을 들어서. 그럴 수 있지. 불쌍한 이야기를 들으면 사람은 불쌍하다는 감정을 느끼는 거지. 그런데 왜 나는 이 불쌍하다는 감정이, 역겹게 느껴질까. --- 「전삼혜, 〈고래고래 통신〉」 아니, 아닐 수도 있다. 괜한 피해의식에 없는 기억을 만들어냈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내 기억은 믿을 수 없으니까. 하지만 그런 일이 있었느냐고, 그때 기뻤느냐고 엄마한테 물어볼 용기는 차마 나지 않았다. 만약 엄마가 기뻤다고 말한다면, 속이 상하겠지. 하지만 엄마는 내게는 거짓말을 할 수도 있다. 엄마가 내게 거짓말을 한다면, 그 역시 기분이 나쁠 것이다. 기쁘지 않았다고 한다면, 나는 엄마를 믿을 수 있을까. 엄마를 의심하게 된다면, 마찬가지로 속이 상하겠지. 그 때문에 나는 단 한 번도 엄마에게 묻지 못했다. 그저 그 환희를 기억하고 의심하고 또 기억하며 살아왔다. --- 「이서영, 〈데자뷔〉」 |
편집자의 말
이 글은 어쩌면 책 소개이기보다는 편집 후기에 가까울 것 같다. 이 책을 처음 기획할 때, 정확히는 ‘장애’를 주제로 하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을 떠올렸을 때, 나는 동시에 어린 시절을 떠올리고 있었다. 내가 다녔던 초등학교는 한 학년에 두 학급뿐이었고, 한 학급에 속한 학생 수는 40명을 넘지 않았다. 가나다순이었던 출석부에서 ㅊ으로 시작하는 내가 늘 35번 언저리였으니까. 당시 학급당 평균 학생 수를 따져보면 놀랄 만큼 적은 수였다(수도권에 있는 꽤 큰 도시였는데도 그랬다). 학교가 그렇게 작다 보니 한 학년에 속한 모두가 서로를 알았다. 모두가 친했다고는 할 수 없지만 적어도 1반 이지현과 2반 이지현 중 누가 더 키가 큰지는 알았다. 특수학급에 속한 아이들이 누구인지도. 지금으로부터 20여 년 전에 내가 ‘특수학급’이라는 단어를 알았는지는 분명히 기억나지 않는다. 그들에게 어떤 장애가 있었는지, 당시 ‘장애’라는 말이 멸칭이나 비속어로 쓰였는지도 분명히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도 (지금과 마찬가지로) 그렇게 쓰였을 것이다. 그들에 대해서는 별로 기억나는 것이 없다. 아침 출석을 부른 뒤였는지 아니면 1교시가 끝난 뒤였는지 일정한 시각이 되면 그들은 교실을 떠나 다른 교실로 향했기 때문에. 거기서 어떤 수업을 받는지 나는 알지 못했고, 여전히 알지 못한다. 내게 그들은 ‘그들’이었다. 다시 말하자면 나와는 다른 아이들, 하나의 경계선을 사이에 두고 이쪽이 아닌 저쪽에 서 있는 아이들. 같은 교실 안에 앉아 있기는 하지만 다른 수업을 받는 아이들. 어딘가 이상해 보였던 아이들. 나는 아주 나중에서야 알았다. 그들이 장애를 갖고 있었음을. 특수학교 설립에 반대하는 사람들 앞에서 무릎을 꿇었던 이들, 그들이 왜 무릎을 꿇었는지, 특수학교를 세운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특수학교가 없어 그들이, 장애를 가진 그들 아이가 어떤 일을 겪어야 했는지, 기본적인 인권을 요구하는 데에도 얼마나 많은 혐오를 받아야 했는지, 어린 시절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오랜 세월 동안 내가 얼마나 무심했는지, 내가 장애로부터 얼마나 먼 세계에 속해 있다고 느껴왔는지도. 이 책을 만들던 지난 몇 달 동안 그런 생각들 속에 있었다. 내게 쥐어졌던 책들 속에 장애를 가진 인물이 등장했다면, 그가 어떤 기쁨과 슬픔을 느끼는지, 누구를 좋아하는지, 무엇을 싫어하는지 알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학교 도서관에 꽂힐 수많은 청소년 문학 책들 속에 그런 생각이 함께 꽂히기를. 작가의 말 × 어느 날 차소영 편집자에게서 메일이 왔다. 내 전작인 《커스터머》에서 장애성에 대한 관심이 읽혔다며 소설 하나를 써달라고 했다. 《망명과 자긍심》을 추천하면서. 《망명과 자긍심》은 1년째 장바구니에 넣어놓고만 있는 책이었다. 결국 《망명과 자긍심》은 읽지 못했지만, 청탁을 받은 후에 자긍심에 대해 많이 생각했다. 퀴어와 장애를 나의 고유한 정체성으로 받아들이는 순간 그것은 나를 일으켜 세우는 자긍심이 된다. 한 사람이 그것을 깨닫는 순간을 만나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_이종산, 작가의 말 × 이 이야기의 마지막 문장에 마침표를 찍은 날 저녁, 온라인 게임을 하고 있을 때였다. 잠깐 집중이 흐트러져 실수를 한 내게 우리 편 팀원이 ㅈㅇ?라는 채팅을 보냈다. 그게 무슨 뜻인지 게임이 끝난 뒤에야 이해했고 속수무책으로 참담해졌다. 내가 만들어낸 이 세계와 모니터 저편의 세계는 같을까, 다를까. 같다면 어떻게 같고 다르다면 어떻게 다를까. _이유리, 작가의 말 × 대학 다닐 때까지는 뭔가 남을 돕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점역사도 속기사도 꿈꿔봤지만 어째서인지 결국 이야기 만드는 사람이 되었다. 이제 남을 돕기보다는 함께 살아가는 사람이 되고 싶으니, 이 이야기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기를 바란다. _전삼혜, 작가의 말 × 2020년 여름에 성인 ADHD 진단을 받았다. 대체로 정상성 안에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한 삶에 균열이 생겼다. 우리는 무엇을 ‘장애’라고 부르는가. 어떤 것이 ‘장애’가 되고 어떤 것이 ‘정상’이 되는가. 그 희미한 경계선은 어디에 위치하는가. 경계를 뛰어넘는 세계와 인간의 변화를 생각하면서 썼다. 소설을 읽는 이들이 그 경계에 서서 혼란스러워하길 바란다. _이서영, 작가의 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