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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드를 그리며
들어가는 글 1장 시의성과 말년성 2장 18세기로의 회귀 3장 「코시 판 투테」가 진정으로 말하고자 하는 것 4장 장 주네에 대하여 5장 사라지지 않는 구질서의 매력 6장 지식인 비르투오소 7장그 밖의 말년의 양식들 작품해설 옮긴이의 글 주(註) 찾아보기 |
저에드워드 사이드
Edward W. Said
역장호연
사람은 나이가 들면 더 현명해지고, 예술가들이 경력의 말년에 이르러 얻게 되는 독특한 특징의 인식과 형식이 과연 존재할까? 우리는 몇몇 말년의 작품에서 공인된 연륜과 지혜를 만나는데, 이런 작품들은 특별한 성숙의 기운, 평범한 현실이 기적적으로 변용된 화해와 평온함의 기운을 드러낸다. 우리 모두는 말년의 작품이 어떻게 평생에 걸친 미적 노력을 완성하는지, 그 예를 얼마든지 열거할 수 있을 것이다. 렘브란트와 마티스, 바흐와 바그너를 생각해보라. 하지만 예술적 말년성이 조화와 해결의 징표가 아니라 비타협, 난국, 풀리지 않은 모순을 드러낸다면 어떨까? 나이와 나쁜 건강 때문에 무르익은 성숙함이 느껴지는 평온함을 만들어내지 못한다면? 내가 양식의 요건으로서 특별하게 흥미를 갖는 것은 바로 이런 두 번째 유형의 말년성이다. 나는 조화롭지 못하고 평온하지 않은 긴장, 무엇보다 의도적으로 비생산적인 생산력을 수반하는 말년의 양식을 탐구하고 싶다. _
---저자의 말 중에서 |
인생의 황혼과 원숙함
동서양을 막론하고 인생에서 말년은 원숙함과 원만함이 미덕으로 여겨지는 시기이다. 공자 시대의 나이에 대한 관념이 요즘과 다르긴 하겠지만, 우리나라를 비롯해 동양에서는 40의 나이면 이미 유혹에 흔들리지 않으며(不惑) 50세에 이르면 하늘의 명을 깨우치고(知天命) 환갑을 맞이한 60세에는 생각이 원만해져서 어떤 일을 들으면 곧장 이해가 되는 것(耳順)을 삶의 지혜로 여긴다. 한편 서양식 삶의 지혜를 대표하는 키케로 역시, 육체적 활동이 무기력해지고 감각적 쾌락이 줄어드는 노년의 삶은 행복하지 않다는 쾌락주의자들의 주장에 맞서 절도 있는 삶과 원숙함과 함께 하는 노년이야말로 더 큰 축복이라고 말한다. 요컨대 ‘나이듦’은 시간의 흐름과 물리적 쇠락의 결을 거슬러 올라가기보다는 결을 따르는 것을 뜻하는 것이 보통이다. 시간에 따라 늙어가는 것, 그것이 곧 시간에 맞는 일, 시의성(timeliness)이다. 예술가의 말년 우리는 이런 통념에 따라 예술가들이 나이가 듦에 따라 연륜과 지혜, 세상 모든 것을 한데 품을 수 있는 포용력을 보여주기를 기대하곤 한다. 초심자의 치기와 발전 단계의 미숙함을 지나 원숙해진 단계를 기대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거장이란 칭호는 기교의 과시나 세상과 빚는 불협화음이 아니라 공인된 연륜과 지혜, 깨달음에 대한 칭송이다. 실제로 특별한 성숙의 기운, 평범한 현실이 기적적으로 변용된 화해와 평온함의 기운을 드러내는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렘브란트와 마티스, 바흐와 바그너, 임권택 등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하지만 예술적 말년성(lateness)이 조화와 해결의 징표가 아니라 비타협, 난국, 풀리지 않는 모순을 드러낸다면 어떨까?(29쪽) 사이드의 관심은 바로 이런 말년의 양식이다. 망명, 그리고 말년성 말년의 양식이 새로운 기법과 형식을 통해 기존의 부르주아 사회와 예술과 불협화음을 빚는 아방가르드 예술을 지칭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또 팔레스타인 인이면서 기독교인이고, 미국 최고의 대학 가운데 하나인 컬럼비아 대학의 교수이면서도 미국 아카데미 내에서 고립되고 소외되었던 에드워드 사이드가 말년의 양식에 관심을 갖는 까닭은 단지 예술이 사회적이라는 걸 말하기 위해서도 아니다. 화해되지 않은 개인의 비판적 사고가 지닌 ‘저항의 힘’을 말년성에서 찾고 있기 때문이다. 죽음을 눈앞에 두고도 침묵과 균열로 작업한다는 것은 포장과 관리를 피한다는 것이며, 사실상 자신의 말년성 지위를 수락하고 수행한다는 뜻이다. 말년성은 일반적으로 용인되는 것에서 벗어나는 ‘자발적 망명’이다.(40쪽) 탈식민주의를 비롯한 최근의 담론에서 망명과 디아스포라 같은 개념이 대두되는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니다. 단지 코스모폴리탄이라고 불리기 힘든 망명자의 삶을 살았던 탈식민주의의 대부 사이드는 이 책에서 정치 체제, 민족 사이의 망명이라는 개념을 문화산업 내에서의 예술, 과거로의 퇴행으로 보이는 작품, 대중 소설과 영화 등으로 확장시켜 나간다. 또한 사이드는 파국과 망명이라고 해서 말년의 양식을 비극적인 측면만으로 국한하지는 않았다. 사이드는 재미와 즐거움, 때로는 아무런 걱정 없는 사치와 자유 역시 현상황이나 지배체제와 화해하지 않는 형식으로 포용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