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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서론 ; 청년에서 예술가 청년까지 청년론의 기원 ‘청년’의 출현 단독자 청년과 기독교 집단주체 청년과 사·회 청년론의 수사학 청년론의 역학구조 청년의 형성과 분화 근대적 인식장의 기반 : ‘과학-문명’론 근대적 변혁론의 원천 : ‘지리-문화’론 청년론의 계열화 : 직분론의 동심원 구조 문명화론의 구체화:도래하는 실업시대 신윤리의 등장:‘노력-성공’론 성찰적 시선의 등장:보편화된 과학정신 정서적 공감의 형성:저변화된 ‘학적 인식’ ‘제스사로’ 정신의 이중화:문명 지향형과 성찰 지향형 ‘제스사로’ 정신의 이종화:처세 지향형 청년론의 분기점:‘부랑청년’론 지식인론의 형성:‘이상적 청년’ 상의 구축 풍속개조론의 변주:‘학생 청년’ 상의 구축 미적 청년의 출현 근대적 인식장의 전환:‘문화-교양-인격’ 패러다임 개조시대, 두 개의 인격론:문사와 예술가 청년 ‘미적 청년’의 등장:데카당한 ‘부랑청년’과 청년론의 가상적 재연 미적 청년의 성격화 방식:세계 부정과 번민의 내면화 미적 청년론의 분기점:‘미/사랑’이라는 탈경계의 유예 공간 ‘참 자기’ 구상의 두 갈래 길:상호부조 정신과 극단적 부정의식 자기입법과 성찰의 장, 비평 ‘미적 청년’이라는 기호 참고문헌 주석/찾아보기 |
저소영현
1. "청년"이라는 기호를 통한 근대 읽기
“청년은 근대다” 미래를 선취해야 하는 상징적 주체의 이름, 청년의 탄생 청년은 근대다. 고정된 모든 것이 연기처럼 흩어져 버리는 미친 시간의 소용돌이가 근대라면, 흩어져가는 균열의 경계선에서 소용돌이를 만들어내는 장본인이 바로 ‘청년’이기 때문이다. 새로움을 자기화하는 모더니티의 본래적 속성을 체현하고 있기에, 청년은 미래를 선취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리는 시기마다 부정과 창조의 선봉에 놓이는 이름일 수 있는 것이다. 물론 미래는 규정할 수 없는 가능성의 세계이며 청년이 미래를 자기화하는 방식 또한 단일하지 않다. 때문에 청년은 통합될 수 없는 상호 모순적인 규정들의 복합체이며 끊임없이 변화하는 ‘형성적 주체’인 것이다.-머리말 중에서 1900년대를 전후해 ‘청년’이라는 용어가 근대 잡지와 신문을 통해 새롭게 등장했다. 특히 기독교청년회를 거점으로 1905년 이후 광범위한 영역으로 확대되고 수용되었다. 이러한 현상은 청년이라는 용어가 당시 젊은이들의 내적 열정을 표출해줄 수 있는 용어로 채택되었음을 말해준다. ‘청년’은 ‘국가/국민 만들기’ 기획 속에서 호명된, 과거와 결별하고 미래를 선취해야 하는 상징적 주체의 이름이었다. 끊임없이 현재를 갱신하고 새로운 미래로 나아가야 한다는 근대의 진보 논리는, 시대가 요구하는 새로움을 선취해야 하는 ‘청년’을 근대 주체의 대표적 표상으로 만들었다. 때문에 ‘청년’의 함의는‘과거’와 ‘미래’의 요청과 당위의 내용에 따라 바뀌게 되었다. 따라서 ‘청년’이라는 기호는 고정된 것이 아니며 유동적인 기호이며, 그 성격 또한 불확정적이다. 이 책은 특히 1920년대를 전후해 새롭게 등장하는 ‘미적 청년’을 청년 담론과 관련 지어 논의했다. 구체적으로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반에 발간된 근대적 인쇄 매체를 대상으로, ‘청년’과 ‘미적 청년’이 구성될 수 있는 여건으로서의 제도에 대한 고찰과 함께, ‘청년’과 ‘미적 청년’의 함의를 ‘담론’ 차원에서 구성했다. 요컨대, 이 책은 ‘미적 청년’의 등장이 근대적 주체의 대표적 표상인 청년론의 형성과 분화의 과정에서 이루어진다는 점을 밝히고 있는 것이다. “역사적 전환기마다 새로운 근대를 꿈꾸기 위해 새로운‘청년’을 건설 주체로 내세웠다” ‘청년이 아닌 존재’를 통한 ‘청년/근대 국가’ 만들기 1900년대 전후의 청년에 관한 논의는 ‘신대한 건설’이라는 목표 아래에서 계열화되었다. 이는 한편으로 1900년대의 ‘청년’론이 ‘과학-문명’ 담론과 ‘지리-문화’ 담론을 통해 청년이 위치할 기반으로서의 근대적 인식장을 형성하는 작업에 주력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1910년대를 걸치면서 국권을 상실함과 함께 청년 담론은 ‘신대한 건설’이라는 목표를 상실했다. 이후 전개된 청년론은 청년이 부정해야 할 과거와 선취해야 할 미래가 무엇인가에 대한 보다 격렬한 쟁투를 보여주었다. ‘청년’의 범주를 새롭게 규정하고자 하는 다양한 논의들은 ‘청년이 아닌 존재’에 대한 논의에 집중하는 경향을 보여주었으며, ‘청년론’은 점차 근대가 요구하는 ‘보다 새로운 것’의 함의 변화에 따라 서로 다른 청년상으로 분화했다. 특히 이때의 ‘청년’은 역설적이게도 ‘청년이 아닌 존재’나 ‘부랑청년’에 대한 규정을 통해 보다 분명하게 드러났다. 청년과 부랑청년을 가르는 기준으로 ‘게으름’과 ‘나태’, ‘허영심’과 ‘사치심’이 등장하였으며, 이 기준에는 윤리적인 가치평가가 반영되어 있었다. 따라서 이런 분류 자체에는 윤리 문제로 위장한 통치와 탄압과 교화라는 힘의 논리가 새겨져 있다고도 볼 수 있다. 특히 1910년대에 청년 관련 논의에서 부랑청년에 관한 논의가 새롭게 대두된 까닭은, 청년이 새로운 시대 윤리를 만들어가는 근대의 주자로 재규정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부랑청년, 사치와 허영, 게으름과 나태에 대한 비판은 단순히 ‘이상적 청년’ 상을 만들기 위해 동원한 수사였다기보다는 근대 국가 수립을 위해 자국의 현실을 타국과 비교해서 비판하는 근거로 사용된 수사였다고 볼 수도 있다. 1900년대 이후 전개된 ‘청년’과 ‘부랑청년’에 대한 논의는 결국 근대적 세계상을 구축하는 작업의 다른 이름이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극단적 부정의식’속에서‘참 자기’를 찾은‘미적 청년’의 탄생 이른바 ‘문학 청년’으로 부를 수 있는 미적 청년은 ‘엘리트 청년’과 ‘조선 청년’ 양자를 부정하면서 등장한다. 미적 청년은 문화를 향유하고자 하고 인격의 완성을 목표로 삼았다. 그들은 현실의 자리를 예술이라는 가상현실로 대치한다. ‘미적 청년’은 민족의 중추인 청년과 교화와 감화의 대상인 청년, 속물적 출세욕에 사로잡힌 존재로서의 청년들 사이의 갈등과 경쟁을 가상 세계 속에서 재현한 것이다. ‘청년’이자 ‘미적 청년’일 수밖에 없는 자신들의 번민을 해결하기 위해, ‘미적 청년’은 ‘미’와 ‘사랑’을 대안적 공간으로 제시했다. 미적 청년이 선취하고자 했던 새로움은 ‘미적인 것’의 영역에서 구현되었는데, 미적인 것의 영역은 가상의 영역을 통해 모더니티의 작동 방식을 승인하면서 비판하게 된다. 이 책은 청년론의 분화 과정을 통해 1920년대 전후에 등장하는 ‘미적 청년’이 다양한 근대 주체의 모델 가운데 하나임을 확인한다. 이를 통해 ‘미적 청년’의 등장이 청년의 분화 과정에 관한 고찰과 겹치는 것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미적 청년’이 ‘청년’의 분화 과정에서 등장하는 근대적 주체의 대표적 표상인 ‘청년’이라는 점은, ‘미적 청년’을 둘러싼 논의 또한 청년론과 마찬가지로 형성과 분화 과정을 반복한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2. 이 책이 일군 학문적 성과 한국 근대 연구사의 틈새를 채우다 이 책은 1900년대 전후에서 1920년대 초기까지, 근대적 인쇄 매체가 등장한 후 동인지 형식이 마련되기까지, 통칭 근대 초기를 대상으로 한 연구다. 이 시기에 대한 연구가 ‘기원’ 류의 연구와 함께 유행처럼 번졌던 적이 있으나, 진지한 연구도 이루어지기 전에 연구 열풍은 곧 가라앉았다. 원인으로는, 첫째, 자료의 방대함이라는 문제를 들 수 있다. 문학, 문화, 주체, 예술 등 모든 범주가 새롭게 만들어지고 재규정되는 시기이기에 이 시기에 대한 연구에서는 특정 분야의 자료라는 것이 따로 없다. 무언가를 정리해내기 위해 모든 자료를 전부 검토해야 하는 상황이다. 연구자의 접근이 쉽지 않은 시기이다. 둘째, 방대한 자료를 검토한다 해도 가시적인 성과를 얻기 어렵다. 대대적인 변화의 시기이기 때문에 시대정신이나 흐름을 포착하기도 어렵고, 그런 작업이 별다른 의미를 가지지도 않는다. 무엇이, 왜, 만들어지고 사라졌는가. 그 과정은 어떠했는가, 등 메커니즘에 대한 연구가 중요한데 분과학문으로 나뉘어 있는 현재의 연구 환경에서 그런 성과를 내기가 쉽지 않다. 셋째, 근대적인 틀이 새롭게 마련되는 시기여서 모든 것이 모호하고 불투명한 형태로 존재한다. 따라서 세련된 형식의 모던한 그림을 원하는 연구자(독자)의 흥미를 끌기 어렵다. 이런 원인들로 1900년대 전후에서 1920년대는 연구자들 사이에서 기피 대상이 되고 있다. 근대 초기든 해방기든 매 전환기마다 문제적인 국면은 서로 다르며, 그 국면들이 언제나 인과적으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근대 초기에 대한 연구 없이 한국의 근대에 대한 연구가 온전하게 이루어졌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우리는 역사적 굴곡으로 1900년대, 1930년대, 해방기 등 매번 다른 근대를 새롭게 시작해야 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책은 그런 시기를 대상으로 하고 있으며 근대적 주체의 형성 과정을 밀도 있게 살펴본다는 점에서 연구사의 빈 곳을 채워주는 연구라고 할 수 있다. ‘어떻게 청년이 근대일 수 있는가’에 대한 문화정치학적 성찰의 장을 열다 본래 ‘문학’을 패션처럼 휘감고 온몸으로 예술의 자립적 공간을 마련하고자 했던 1920년대 전후의 이른바 낭만적 ‘문학 청년’에 대한 관심에서 시작된 이 책은, 그들을 등장시킨 시대 정황으로, 등장을 둘러싼 메커니즘에 대한 관심으로, 점차 그 범주가 확장되었다. 그리하여 결국 이 책은 ‘어떻게 청년이 근대일 수 있는가’에 대한 문화정치학적 고찰이 되었다. 이 책이 다루었던 근대 청년의 형성과 분화와 관련해서 말하자면, 역사적 전환기마다 새로운 근대를 꿈꾸기 위해 새로운 ‘청년’을 건설의 주체로 내세웠다. 우리는 청년론의 메커니즘이 역사적으로 반복되는 장면을 여러 차례 목격해야 했다. 개체와 공동체의 관계 설정 방식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청년론이 매번 보다 정교해지지 못한 채 반복되고 있음은 우리 역사의 슬픈 일면이 아닐 수 없다. 근대가 시작되던 무렵의 청년론이 어떻게 생성되고 전개되었으며 분화되어갔는지를 되짚어보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의 근대를 주조한 주된 동력의 일단을 청년론에서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독교와 근대적 주체 형성과의 상관성을 밝히다 그간 기독교와 근대적 주체 형성과의 상관성에 대해서는 여기저기서 간헐적으로 언급되었으나, 명확하게 지적된 바 없었는데, 이 책에서는 그 점을 명확하게 정리하고 있다. 용어의 계보나 YMCA, 청년회, 기독교 내부의 변화 등을 검토하면서 청년이 단독자와 집단 주체 형식을 동시에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될 수밖에 없었던 역사적 정황을 밝혀주었다. 청년론은 개체와 공동체의 관계 설정 방식에서 등장하는데, 기독교와의 상관성을 검토함으로써 청년론 내부에 서로 다른 청년을 둘러싼 논의가 불안하게 공존하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연구의 공백기로 남겨져 있었던 1910년대를 새롭게 복원하다 청년의 분화 과정을 중심으로 고찰해봄으로써 우리 근대 연구사에서 공백기로 남겨두었던 이 시기를 새롭게 복원하고 연구의 장으로 이끌어 들인 결과를 낳았다. 아울러 1920년대 등장한 이른바 ‘문학 청년’을 다양한 청년군과의 상관성 속에서 자리매김함으로써 등장을 둘러싼 역학 구조,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그들의 위상에 대한 공정한 평가의 장을 마련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