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는 아무도 나를 알아보는 이가 없는 카리브해나 인도해의 작은 섬에 있다고 상상하면서도 프랑스만의 장점을 누릴 수 있으니 일석이조다. 내가 말하는 ‘프랑스’는 스낵바나 손님들로 북적이는 가게가 늘어서 있는 현대 프랑스가 아니라 지중해 소나무인 알레포 파인과 유칼립투스, 라벤더 향기가 가득한 다른 시간대의 프랑스다.
이곳의 모든 것이 오로지 섬만이 갖고 있는, 뭐라고 딱 꼬집어 말하기 힘든 매혹을 강조한다. 여기서는 우리가 모래사장 위에 앉아 있건, 물 위에 떠 있건 거의 무게가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따라서 이 섬의 공기처럼 가벼운 분위기에서는 일상의 모든 짐을 벗어버려야 한다. 우리는 그런 곳을 ‘파라다이스’라 한다.
나는 특히 포르크롤르(Porquerolles) 섬에 갈 때, 내가 유동적인 물질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된다. 얕은 비취색 바다와 나 사이에는 물리적이건 정신적이건 아무 장벽이 없다. --- pp.34~35

귀스타브 플로베르의 소설 《보바리 부인》에 매료된 열성팬이 루앙 대성당(Cathedrale Notre Dame de Rouen)에 들어간다면 엠마와 레옹의 관계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고, 인생과 결혼에 대한 환멸로 점철되었던 철없는 여인의 삶을 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내 생각에 책과 여행이 가장 매혹적이고 불가항력적으로 얽히는 경우는 단순히 그곳이 어떤 작품에 등장했을 때보다 작가의 삶이 그곳에 온전히 투영되어 있을 때가 아닌가 싶다. 바로 그런 점에서 《위대한 개츠비》의 작가 프랜시스 스콧 피츠제럴드(Francis Scott Fitzgerald)와 남프랑스 지중해 연안의 앙티브(Antibes)에 위치한 가르푸 해변은 절묘하게 어울린다. 이곳에는 시간이 멈춘 듯한 독특한 분위기가 있다. 한여름의 완벽한 열기 속에서 빛과 바다가 하나가 되는 장엄한 광경과 그것을 바라보는 우리의 감정 이야기가 있다. --- pp.107~108

“당신이 사랑한 프랑스의 모든 것이 여기에 있다. 물론 훨씬 더 좋은 버전으로 말이다. 그것은 프랑스식 라이프스타일, 아름다운 풍경, 한가하고 소박한 시장, 주인이 요리사이기도 한 작은 레스토랑, 그리고 테이블 주변에 존재하는 진짜로 행복한 삶이다.”
도르도뉴에는 무려 1,001개에 달하는 샤토가 있고, 상당수가 프랑스와 영국의 백년전쟁 때 극심한 공격을 받았다. 이 샤토들은 포도밭 한가운데나 녹음이 짙은 언덕 위에 우뚝 서서 각자 개성을 뽐내고 있다. 특히 이 샤토들은 강에서 볼 때 가슴이 먹먹할 정도로 아름다우니 가능하다면 거롯배나 카누 또는 카약을 타고 바라보는 게 좋다.
그냥 노란색이 아닌, 말 그대로 꿀색의 크고 작은 샤토들이 강둑 바로 옆에까지 내려와 있는 마을에서 배를 타고 출발하면 노를 저으며 가다가 험준한 절벽 위에 서 있는 샤토를 여러 채 올려다보게 된다. 그 질식할 듯한 아름다움에 여행자들은 찬탄과 한숨을 뱉을 뿐 할 말을 잊는다. --- pp.168~169

그녀는 코르시카 이야기만 나오면 마치 엄숙한 진리라도 발표하는 것처럼 사뭇 비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코르시카는 사람들이 프랑스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손꼽는 장소들보다 열 배는 더 아름다워.”
그녀는 내 앞에 지도를 펼치면서 코르시카의 지명을 하나하나 손으로 짚었다. 보니파시오(Bonifacio), 칼비(Calvi), 포르토 베키오(Porto Vecchio)……. 그녀는 이렇게 덧붙였다.
“이곳들 하나하나만으로도 책 한 권을 충분히 채울 수 있어.”
코르시카는 프랑스에 속한 땅으로 지중해에서 네 번째로 큰 섬이다. 프랑스 남동부 끝자락에 있는 이곳을 조금 과장해서 말한다면, 지구가 제공할 수 있는 가장 원시적인 공간을 찾는 사람들에게 둘도 없는 지상낙원이 되어줄 것이다.
지중해 한복판에 위치한 코르시카는 지리적 위치 때문에 교황이나 국토 확장에 눈이 먼 제왕들, 지주들 그리고 해적들의 먹음직스러운 간식거리였다. 하지만 코르시카는 언제나 그들의 침입을 결연히 막아섰다. 그만큼 이 섬의 주인들은 오는 손님을 싫어한다고는 할 수 없지만 다른 섬에 비해 배타적인 인상을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