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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1967. 9. 18. ~ 1968. 4. 30
B 1968. 05. 19 ~ 1968. 06. 17 C 1974. 12. 13 ~ 1975. 01. 06 D 1981. 5. 10 ~ 1982. 12. 17 E 1992. 12. 16 ~ 1995. 9. 14 F 1998. 12. 12 G 1999 ~ 2007 책의 탄생 옮긴이의 말 |
저실뱅 로시뇰
Sylvain Rossignol
역이재형
그 공장은 2년 전에 문을 닫았다. 그녀는 그 전해 여름, 굴뚝이 해체되던 장면을 기억하고 있다. 처음에 이 소식은 비밀에 부쳐졌으나 해체되기 직전에 온 도시로 퍼져 나갔다. 주민들이 마치 누군가의 장례식을 치를 때처럼 평상시와는 다르게 침묵 속에서 언덕으로 모여들었다. 굴뚝의 아랫부분과 가운데 부분에 폭약이 설치되었다. 아랫부분은 다리에 힘이 빠져 주저앉는 사람처럼 수천 개의 붉은색 벽돌로 튕겨져 나갔고, 윗부분은 잠시 똑바로 서 있다가 수직으로 떨어지더니 말뚝처럼 땅바닥에 처박혔다가 원호를 그리며 와르르 무너져 버렸다. 마치 사람이 털썩 무릎을 꿇고 축 늘어져 숨을 거두어 버리는 것 같았다. 땅바닥에 쓰러진 굴뚝이 괴롭게 헐떡이며 구경하는 사람들의 얼굴에 거친 숨결을 내뿜었다. 굴뚝이 마지막 숨을 내쉬었으니 이제 젊은이들은 일거리를 찾아 도시로 나가야 했다. --- p.29
“내가 자리를 비운 한 달 동안 공장에서는 65만 시간 이상의 작업이 이루어졌죠. 4천 명의 직원들이 한 달에 168시간씩 일하니까요. 교육받을 때 계산해 봤어요. 65만 시간을 일했다니, 짐작이 가요? 65만 시간이면 76년이에요. 1년 365일 밤낮으로 76년 동안 일을 한 거라고요! 그러니까 우리 공장에서는 한 사람의 삶에 해당하는 시간의 노동이 한 달 동안 이루어지는 거예요. 매일같이 4천 명에 달하는 직원들이 그 긴 삶과 같은 노동을 공장에 바친다니. 고용주가 여기에 관한 권한을 독점하도록 내버려 둘 수는 없어요!” --- pp.110-111 드골이 종적을 감추었다. 정오가 되도록 정부에서는 그가 어디 있는지 알지 못했다. 퐁피두 수상조차 그가 어디 갔는지 모르고 있었다. 저수탑 위에서 디노와 프랑크는 대통령 실종에 대한 가설을 하나씩 세워 가는 중이었다. 프랑크가 먼저 한 가지 가설을 내세웠다. “아무도 몰래 데모에 참가했을 거야. 그냥 재미로 말이지.” “지금 우리가 있는 저수탑 상황을 관찰하려고 계단을 올라오는 중인 것 같은데? 아, 저기 왔다! 안녕하세요, 장군님!” 디노가 드러누운 채 경례를 했다. “지긋지긋해진 나머지 자기 아버지 집에 가서 카드놀이 하는 중이야.” “이본느 아줌마랑 한이불 덮고 있는데?” --- pp.230-231 1974년 성 실베스트르 축일이었던 그날 밤 마리-로르에게 아쉬웠던 것은 디노의 따뜻한 손과 검은색 눈뿐이었다. “너의 검은 눈, 너의 부드러운 눈꺼풀.” 그녀는 디노의 눈에서 영혼의 파도를 받아들일 수 있는 바다를 보았다. “난 나의 웃음을 너의 기다랗고 윤기 나는 눈썹의 옷걸이에 올려놓고, 그 검은 동공 속으로 들어가 내 몸을 담글 거야.” 디노는 말을 그렇게 잘할 수 있다는 게, 그 말이 자신을 향한다는 게 너무나 놀랍고 기뻤다. 자정이 되자 샴페인을 터트렸다. 그들은 1975년이 아름답고 행복한 한 해가 되기를 서로 기원했다. --- p.317 뱃속에 태아가 들어 있는 여성, 이 여성은 근무 부서를 바꾼다. 한 연구 팀이 피임약을 발견하려 하고 있다. 노조 운동가들은 새로운 대통령의 「삶을 바꾸자」라는 슬로건에 희망을 품는다. 한 작업반장은 정치적 상황에 불안해한다. 한 직원은 자신의 스카미 스패너로 밸브를 연다. 3천 명 이상의 사람들이 오늘 공장에 들어오고 다시 공장에서 나갈 것이다. 3천 가지 인생의 조각들. 공장은 성벽에 갇혀 있는 곳이 아니다. 세계가 투영되는 곳. 그곳은 세계의 근거이자 반영물이다. 공장이 곧 세계인 것이다. --- p.359 “팡뒤, 그것만 하고 마는 거예요?” “어떻게 하는 건지, 내가 시범을 보였잖아. 누군가가 말했지? 네 이웃에게 물고기를 주기보다는 그걸 잡는 법을 가르쳐 주라고 말이다.” “성경을 인용하는 거유?” “아, 젠장! 난 두 털보가 구분이 잘 안 돼. 우리 어머니는 성경이고, 우리 아버지는 『자본론』이고, 우리 할머니는 둘 다거든.” “할머니가 둘 다라고요?” “우리 할머니는 두아르네네의 통조림 공장 노동자인 동시에 기독교인인 동시에 공산주의자셨지. 말하자면 펜 사르딘 같달까?” “기독교인이자 공산주의자셨다고요?” “나 간다. 너랑 노닥거릴 시간 없어.” “나도 갈 거니까 설명 좀 해봐요. 유인물은 탈의실에서 좀 말렸다가 나중에 다시 나눠 줘야겠어요.” --- p.399 투쟁은 인간을 먹어 치우지. 그래서 늙는 거라네. 좋은 쪽으로도 늙고 나쁜 쪽으로도 늙는 거지. 말하자면… 삶이 가속되거나, 아니면 응축되는 거야. 노동조합은 내게 수년의 삶을 주었네. 노조가 없었더라면 난 일을 견뎌 낼 수 없었을 거야. 스스로 희생자라고 느꼈을 거야. 나 자신에게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을 거고, 그래서 사고를 당했을 거야. 아니, 병에 걸렸을지도 모르지. 투쟁은 삶을 도와준다네. 그리고 삶은 투쟁을 돕지. 만일 노조가 없었더라면 난 지금 여기서 ?네들에게 이런 얘기를 할 수도 없었을 걸세. --- pp.517-518 「우리가 불평등을 심화시켰으므로 50대와 60대 여러분께 부탁합니다. 여러분의 자식들이 다시 소비를 할 수 있도록 저금해 놓은 돈을 그들에게 주고, 또 그들이 교대로 일할 수 있도록 손자들을 돌봐 주십시오.」 하지만 우리가 우리 자식들에게 물려주어야 하는 것은 우리가 저금해 놓은 돈이나 유산이 아니라 「더 나은 세상」이다. --- p.538 |
다시 '68'이 35만여 시간의 결을 입고 돌아오다.
누군가에게는 단지 시간이 남긴 흔적으로, 혹은 이미 넘겨진 책장으로 남아 있을 68년. 그러나 그 순간을 심장에 각인하고 현재화하기 위해 35만여 시간 동안 수많은 역사의 결을 엮어 온 이들이 있다. 한때 프랑스 제약 산업의 심장부였으며, 프랑스 노동 운동의 상징이기도 했던 로맹빌의 노동자들. 그들이 1967년부터 2007년에 이르는 시간 동안 노동자로서, 누군가의 아내이자 남편으로서, 동지이자 친구로서 겪었던 경험들이 로맹빌이라는 장소에 쌓이며 소설이 되었다. 따라서 이 소설은 제목이 의미하듯 한 편의 소설이기도 하며, 하나의 공간이기도 하다. 그리고 하나의 질문이기도 하다. 서사와 공간이 맞닿아 뒤섞이고 솟아오르면서 이 소설은 우리에게 묻는다. 우리가 직시해야 할 공간은 어디인지. 그 공간을 우리는 어떤 서사로 채워나가야 하는지를. 시간의 흔적을 기록하고, 복원하다 오래된 사진 한 장. 시간이 멈추며 깊게 흔적을 남긴 공간에 가만히 귀를 기울이면 다양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인간이 연출해 낼 수 있는 가장 극적인 순간, 스스로는 역사로 기억될지도 모른 채 꿈틀거렸던 혁명의 시간을 마주한다는 것은 묘한 설렘을 준다. 『우리 공장은 소설이다』의 갓 스무 살 청춘들처럼. 이 소설은 68년을 기점으로 삶의 변성기를 겪는 이들의 집단적인 목소리다.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고, 돌아갈 이유도 없는 단절의 시간을 겪은 로맹빌의 평범한 노동자들이 지워진 필름을 복원하고 이어붙인 결과물이다. 자신이 해고와 투쟁을 직접 겪어낸 노동 운동가 출신인 실뱅 로시뇰은 화려한 기법이나 표현보다는 그들이 겪은 시간의 흐름을 담담히 따라가며 인터뷰 형식을 결합함으로써 시간의 복원을 완성 지었다. 절망의 웅덩이에서 길어 올린 희망의 조각들 낭만이 있고, 가벼운 농담이 있었다. 비록 입을 벙긋거려도, 아우성을 쳐도 들을 수 있는 이가 별로 없었지만 아직 제 색을 입지 않은, 그래서 그 어떤 색으로 채워도 어울릴 것 같은 소박한 꿈들도 숨을 쉬고 있었다. 68년이 선사한 성장과 81년 좌파 대통령의 탄생은 이들에게 구체적인 색을 입히고, 그들의 말을 귀 기울여 듣는 세상이 열렸다는 기쁨도 선사했다. 그러나 달콤함은 오래 가지 못하고, 그들이 나이를 먹듯 낭만도 농담도, 노동도 침침해진 미래 앞에 속절없이 지워져 버리고 만다. 세상이 얼음의 슬픔을 간직하는 것은 고통과 벼랑 끝에 몰린 절망의 순간에도 삶의 기쁨이 피어오르기 때문이다. 로맹빌은 40여 년 동안 수없이 많은 겨울을 버텼고 벼랑 끝에 위태롭게 서 있었다. 그러나 그때마다 사람들은 서로를 사랑했고, 서로의 온기에 잠을 청했으며, 서로의 기억 속으로 웃으며 걸어 들어갔다. 이 모든 순간들이 로맹빌의 투쟁을, 그리고 그 속에서 삶을 윤기 나게 만드는 웃음을 촘촘하게 엮어 나간다. 우리가 걸어가야 할 길, 우리가 말해야 할 이야기 "자본은 노동을 파괴하고, 그러면 다시 자본이 늘어난다." 계란으로 바위치기였지만, 체스로 비유하자면 언제나 '그들'은 두, 세 수 앞서 있었지만 로맹빌의 노동자들은 싸웠다. 결과는 매순간 그래 왔듯이 로맹빌의 패배였다. 패배를 알고 시작했던 싸움들. 그럼에도 그들이 싸울 수밖에 없었던 것은 물러설수록 더 큰 상처가 남기 때문이었다. 가능한 것만을 모색하는 건 희망이 아님을, 현실에 순응하며 패배에 길들어 가는 것임을 로맹빌은 체득한 것이다. 그러나 세계지도를 펼쳐 놓고 아무리 찾아보아도 영원한 승리의 깃발을 펄럭이는 지명은 찾아보기 힘들다. 역사는 그렇게 냉정하게 흐른다. 그 어디에도 해피엔딩의 가능성을 쉽사리 드러내지 않은 채 도도히 흐를 뿐이다. 로맹빌의 사람들도 승리의 깃발을 꽂지 못했다. 그러나 그것은 소설의 결말일 뿐이다. 로맹빌은 여전히 그들의 이야기를 써내려가고 있으며, 자신들이 채우지 못한 부분에 미래로 향하는 문을 열어 두고 있다. 그 문으로 걸어 들어가고, 그 문으로부터 시작될 새로운 길이 어떤 모습일지는 어쩌면 이 소설을 읽는 독자들에게 달려있을지도 모른다. 이 소설이 단순한 후일담이나 동굴 속 벽화가 아닌 이유도 바로 이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