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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국
금목서 동백꽃 명일엽 연꽃 옮긴이의 글 부록| 포포의 편지 |
Ito Ogawa,おがわ いと,小川 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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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아이의 육아에 쫓겨, 한동안 휴면 상태였던 대필 혼이었지만, 마이의 의뢰로 몇 년 만에 눈이 번쩍 뜨였다. 마이가 내 생활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어주었다.
내용 면에서는 상당히 어려운 것이 사실이지만, 내가 미츠로 씨의 아내도 아니고, 세 아이의 엄마도 아닌, 단순히 한 인간으로서 다시 사회와 접한다는 사실에 큰 기쁨을 느꼈다.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은밀하게 브이를 그렸을 만큼, 대필 일을 재개하는 것이 기뻤다. --- p.32 「수국」 중에서 할머니라면 그걸 어떤 형태로 상대에게 전했을까. 할머니가 떠난 뒤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그의 그림자는 색을 더해갔다. 나는 애초에 그런 것은 시간과 함께 색이 바래다, 이윽고 공기에 섞여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반대였다. 할머니의 존재는 조금씩 색이 짙어지다 윤곽을 알아볼 정도로 선명해졌다. 그야말로 언제 어떤 때고 곁에서 열심히 내 마음의 소리를 들어주는 듬직한 존재다. 때때로 그런 할머니의 모습이 정말 보이는 것 같다. 할머니는 언제나 나를 지켜주고 있다. --- p.38 「수국」 중에서 “시간이 흐를수록 풍경이 조금씩 달라지잖아. 매일 조금씩 변화하니까 눈치채지 못할 수도 있지만, 어느 날 문득, 어라? 눈앞의 풍경이 많이 달라졌네, 하고 깨닫게 되지. 그게 바로 시간의 힘이야. 사람에게도 자연치유력이 있어서, 상처도 그냥 놔두면 저절로 낫잖아. 의미 없는 반항을 하는 게 오히려 사태를 더 나쁘게 만드는 것 같아. 그런 때일수록 힘을 쭉 빼고 흐름에 몸을 맡기는 거야. 그러면 나중에는 그 일도 우스갯거리가 돼.” --- p.59 「수국」 중에서 그날 우리는 거의 말을 나누지 않고, 그저 묵묵히 바다만 바라보았다. 집에 돌아온 뒤, 나는 필기구와 편지지를 준비했다. 이미지는 에노덴을 타고 돌아오는 동안 이미 완성되었다. 아카네 씨에게 부탁받은 딸에게 보낼 말을 조금도 줄이지 않고, 흠집 없이, 변색 없이 집까지 가져와 편지로 만든다. 그것이 내가 맡은 사명이다. 지금, 나는 그것을 위해 살고 있다. 결국 남는 것은 종이뿐이네요. 두 번째인가 세 번째 만났을 때, 아카네 씨가 문득 흘린 이 말이 가슴 깊이 와닿았다. 디지털 기술이 발전해 사진도 영상도 데이터로 반영구적으로 남길 수 있게 되었지만, 디지털은 한순간에 사라질 수 있다. 그것을 재현할 환경이 아니면 보지 못하는 위험도 있다. 종이는 얼핏 여려 보이지만, 그림도 사진도 편지도 잘만 보존하면 아주 오래된 것도 남아 있다. 태우거나 젖지 않는 한, 오래 간다. --- pp.87-88 「금목서」 중에서 돌이켜보면 10년 전, 나는 가마쿠라에서 외톨이로 살았다. 바바라 부인과의 교류가 그나마 유일하게 따뜻한 인연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어느새 가족들에 둘러싸여 살고 있다. 츠바키 문구점을 이어받았을 무렵, 나는 이 오래된 일본 가옥에 홀로 살았지만, 한 사람, 두 사람 식구가 늘어나 지금은 다섯 명이 한 지붕 아래에서 함께 살고 있다. 생각해보면 기복이 많았던 격동의 10년이었다. 게다가 츠바키 문구점의 손님들도 예전에는 모르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는데, 지금은 남작, 마담 칼피스, 마이 등 단골손님이 많아졌다. 나는 얼마나 큰 은혜를 받고 있는가, 생각하니 연기와 함께 눈물이 차올랐다. --- p.200 「동백꽃」 중에서 꽃은 아무리 아름답게 피어도 결국엔 지고 맙니다. 이 침대에서 여름 동백나무를 보고 있으면 인생무상을 절실히 느낍니다. 더 바라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오로지 당신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을 뿐입니다. 일생에서 보면, 당신과 보낸 시간은 극히 한순간의 빛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나는 그 한순간의 빛을 숯으로 삼아 지금까지의 인생을 살아왔습니다. 당신을 만난 것을 진심으로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부디 마지막 순간까지 좋은 인생을 걸어가 주시기를. --- p.207 「동백꽃」 중에서 고개를 숙이고 스마트폰을 만지는 큐피를 보고 있으니, 갑자기 감정의 덩어리가 솟구쳤다. 큐피를 만난 뒤 함께 보낸 세월이 별똥별처럼 아름다운 빛의 띠가 되어 내 머릿속을 달려갔다. 이렇게 네가 내 입에 음식을 넣어준 게 사실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 두 번째라는 것을 본인에게 말해주고 싶기도 하고, 나만의 비밀로 간직하고 싶기도 한 복잡한 감정이 일었다. --- p.261 「명일엽」 중에서 “이 세상은 유원지 같은 걸지도 몰라. 제트코스터로 공포를 맛보고, 회전목마로 로맨스를 느끼고, 인생을 즐기기 위해 유원지에 온 게 아닐까? 부처님은 사람은 괴로워하기 위해 태어났으며, 인생은 고행의 연속이라고 하셨는데, 그것도 일리는 있어. 하지만 나는 사람은 웃기 위해 태어났다고 믿고 있어. 유원지에서 맘껏 즐기는 것이 인생의 참맛. 무서운 것도 괴로운 것도 전부 포함해서 경험 그 자체를 즐기는 것이지. 하지만 말이야, 누구나 반드시 유원지를 떠나야 하잖아. 어쩌면 그것이 세상의 유일한 규칙일지도 몰라. 유원지에서 얼마나 잘 즐기는지가 인생의 진짜 가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 p.338 「연꽃」 중에서 |
어서 오세요, 가마쿠라에 벚꽃이 피는 봄을 맞아
츠바키 문구점이 다시 문을 열었습니다 가마쿠라에서 문구점을 운영하며 가업을 이어 대필가로 살아가는 포포의 성장을 담은 이야기로, 일본에서 지금까지 70만 부 이상의 판매고를 기록하고 TV 드라마화 되는 등 독자들의 큰 사랑을 받아온 오가와 이토의 장편소설 『츠바키 문구점』(2017년). 마치 친구 같기도, 언니 같기도, 동생 같기도 한 포포의 이야기에 흠뻑 빠진 독자들의 뜨거운 요청에 그 후속편인 『반짝반짝 공화국』(2018년)이 출간되었고, 이후 오랜 공백의 시간을 깨고 마침내 3편 『츠바키 연애편지』가 출간되었다. 『츠바키 문구점』에서는 대필가의 길을 걸으며 과거의 상처를 치유하고, 『반짝반짝 공화국』에서는 가족을 꾸리며 자신의 삶에 더욱 단단히 뿌리내린 포포가, 이제는 『츠바키 연애편지』를 통해 세 아이를 기르는 엄마가 되어 돌아왔다. 연이은 출산과 육아로 6년 가까이 일을 쉴 수밖에 없던 포포는 마침내 다가오는 봄에 대필 작업을 재개한다는 소식을 편지로 띄우며 3편의 첫 장을 연다. 새벽잠을 줄이고 시간을 아껴가며 작업을 해야 하지만, 대필을 다시 시작하며 누군가의 아내나 세 아이의 엄마가 아닌 오롯이 한 인간으로서 사회와 연결된 것에 큰 기쁨을 느낀다. 죽음을 앞두고 사랑하는 딸에게 마지막으로 남기는 편지, 초로기 치매에 걸린 자신을 위해 보름마다 부치는 편지……. 포포가 세상에 대신 발신하는 여러 빛깔의 사랑 편지지와 그것을 담을 봉투, 봉투를 열었을 때 풍기는 향과 봉투에 붙이는 우표의 종류와 위치까지 신경 쓰는 포포의 섬세한 손길은 여전하다. 츠바키 문구점 대필 재개를 알리는 편지는 일부러 유키노시타 우체국까지 가서 부쳤다. 그곳에서 보내면 가마쿠라의 상징과도 같은 쓰루오카하치만궁 풍경의 소인을 찍어주기 때문이다. 우체국을 오가며 얼마 전 보수 공사를 마친 ‘단카즈라’를 걸어 하치만궁에 슬쩍 눈길을 준 다음, 농협 판매소인 ‘렌바이’에 들러 새로 생긴 화과자점에서 맛있기로 소문난 후토마키를 사 먹는 포포의 소풍과도 같은 여정을 좇다 보면, 『츠바키 연애편지』에서도 이전 작품들과 같이 가마쿠라라는 바닷가 마을의 아름다운 풍경이 생생하게 그려질 것을 예감하게 된다. 이번에도 책 말미에 유키노시타 우체국을 포함해 책 속에 등장하는 실제 장소를 방문하는 권남희 번역가의 생생한 가마쿠라 탐방기를 함께 수록하였다. 대필 재개를 알리는 편지를 보내자마자 기다린 듯 찾아오는 고객들의 사연은 여전히 찌릿하고 뭉클하고 따스하다. 그 첫 시작은 단짝 마이로부터의 의뢰다. 시어머니가 만들어주는 요리에서 자꾸 머리카락이 발견된다는 것. 시어머니를 많이 아끼기에 그냥 지나치자니 마음에 걸리고, 막상 얘기하면 상대가 기분 상해 하거나 의기소침해질까 걱정이 되니 포포에게 대신 편지를 써달라는 것이었다. 그 밖에도 비혼으로 살며 일과 여가생활 모두에 열심이었던 여성이 초로기 치매에 걸려 그런 자신을 잊지 않도록 보름마다 자신에 대한 정보를 담은 편지를 써서 보내달라고 의뢰하기도 하고, 암 투병으로 죽음을 앞둔 엄마가 곧 결혼할 딸에게 마지막으로 남기는 편지를 써달라고 부탁해오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소음 문제로 이웃과 관계가 불편해진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아이들의 필체를 흉내 내어 대필 편지를 완성하기도 한다. 할머니가 남긴 인생 마지막 연애편지, 그 비밀스런 진실을 알아가는 과정에서 더욱 깊어진 사랑과 두터워진 관계들 그러던 어느 날, 포포의 우편함에 낯선 편지가 도착한다. 자신을 할머니가 과거에 사귀었던 남자의 조카라고 소개하면서, 할머니가 보낸 연애편지를 발견했다며 전해주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늘 엄마 같고 엄한 스승 같기만 했던 할머니의 연애사라니, 더는 알고 싶지 않기도 하고 얼마나 뜨겁게 사랑했는지 궁금하기도 하다. 가마쿠라까지 포포를 만나러 온 조카라는 남자는 뜻밖의 제안을 한다. 이생에서 끝내 이루어지지 못한 두 사람의 사랑을 기려주고 싶다는 것이었다. 이에 포포는 편지 공양을 하는 날에 맞춰, 두 사람이 주고받은 편지들을 모아서 태우며 공양하자고 제안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할머니의 애절한 연애편지를 하나라도 더 찾아야 한다.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츠바키 연애편지’는 사실, 포포의 할머니가 쓴 연애편지를 가리키는 것이다. 할머니의 비밀스러운 사랑 이야기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오롯이 한 여인으로서의 모습을 마주하게 된 포포는 그간 할머니와의 사이에 쌓였던 묵은 앙금과 서운한 감정을 말끔히 씻어낸다. 그리고 할머니의 편지 공양을 위해 떠난 짧은 여행은 딸 큐피와의 오해를 풀어줄 계기가 되기도 한다. “행복은 어쩌면 날마다 몸부림치는 진흙탕 속에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옆에서 보면 그 모습이 아무리 꼴사납고 우스꽝스러워 보여도, 나는 그런 나와 소중한 사람들이 사랑스럽다.”(324쪽) 포포가 마지막에 나지막이 중얼거리는 이 말은 가마쿠라에서 이어진 사람들과의 관계가 보다 두터워졌음을, 그리고 처음 가업을 이어야 했을 때 갈피를 잡지 못했던 마음이 이제는 완전히 단단해졌음을 말해준다. 매 편 조금씩 더 성장하는 포포와 그 주변 인물들의 모습을 응원하고 지켜보며, 독자들은 그다음의 이야기도 기대하게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