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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 찾는 곳에 길이 있다
제대로 알아보기 백의종군, 백의종군길 해보고 싶은 것에 도전하라, 백의종군길 답사의 시작 백의종군길 답사 1일차, 한성을 뒤로하고 길을 나서다 백의종군길 답사 2일차, 나라 사랑, 부모 사랑을 생각하며 백의종군길 답사 3일차, 변화에 적응해야 살아남는 것 백의종군길 답사 4일차, 집을 향한 이순신의 발걸음을 생각하며 백의종군길 답사 5일차, 기쁨이 하늘이 무너지는 슬픔이 되어 백의종군길 답사 6일차, 길을 잃으면 방향을 먼저 찾아야 백의종군길 답사 7일차, 마침표가 아닌 쉼표, 힘들 땐 쉬어가라 백의종군길 답사 8일차, 홀로 앉아 비통함에 잠긴 이순신을 생각하다 백의종군길 답사 9일차, 뜻밖의 장소에서 환영해주는 사람을 만났다 백의종군길 답사 10일차, 도로의 주인을 따지기 전에 배려가 먼저 백의종군길 답사 11일차, 춘향이 이야기 따라 만인의총에 이르다 백의종군길 답사 12일차, 한쪽 길이 막히면 다른 길이 열린다 백의종군길 답사 13일차, 당당하게 나가면 길이 열린다 백의종군길 답사 14,15일차, 도원수를 만나지도 못하고 돌아오는 마음 백의종군길 답사 16일차, 백의종군길인가 둘레길인가? 백의종군길 답사 17일차, 가장 아름다운 길을 걸었다 백의종군길 답사 18일차, 산길을 걷고 또 산길을 걸었던 하루 백의종군길 답사 19일차, 삼도수군통제사 재임명지를 돌아보다 백의종군길 답사 20일차, 함께 걸으며 함께의 의미를 되새기다 백의종군길 답사 21일차, 백의종군길 도보 답사 대단원의 막을 내리다 마치며 - 많은 사람들이 걷는 백의종군길 조성을 바라며 |
저우상규
전화를 받고 인터넷 검색을 통해 이미 2015년에 해군역사기록관리단과 순천향대학교에서 서울에서 운봉까지 백의종군로 고증을 완료했다는 기사를 찾았다. 서울에서 운봉까지의 길을 고증하고 지자체에서 복원한 전남과 경남 구간을 더해서 680㎞의 백의종군로 전 구간이 복원되었다는 내용이었다. 이 기사는 백의종군로 도보 답사를 가려던 나에게 한 줄기 빛이 되어 다가왔다. 복원된 백의종군로 세부 정보를 얻기 위해 이곳저곳을 찾아보았다.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라는 말처럼 지속적으로 정보 검색을 하다 보니 한국체육진흥회 산하의 한국걷기연맹에서 ‘백의종군로 걷기’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 p.6 이순신은 이곳 서빙고 나루터에서 배를 타고 한강을 건넜다. 다리 한가운데에서 잠시 걸음을 멈추고 수백 년을 변함없이 도도하게 흐르는 한강을 내려다보았다. 당시 나룻배를 타고 강을 건너는 이순신은 자신을 옥에 가두고 죽일 것을 명령했던 임금을 원망하면서 강을 건넜을까? 아니다. 오직 나라와 백성만을 생각한 그의 삶을 봤을 때 그는 임금을 원망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저 유유히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며 무념무상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직분을 수행하는 방법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았을까.… --- p.35 어머니를 끔찍이 존경하는 이순신은 이날 어머니를 만날 생각에 마음이 설레었다. 어머니가 언제 나루에 도착할지 궁금한 이순신은 가만히 있지 못하고 배가 도착했는지 알아보라며 사람을 보냈다. 배가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는 기별에도 이순신은 설레는 마음으로 곡교천을 따라 포구로 달려갔다. 이순신이 달려갔던 곡교천 제방길을 걸으면서 본 하늘은 흰 구름과 어울려 그 푸르름을 더해주었다. 어머니를 맞이하러 나루로 달려가는 이순신의 마음도 푸르름 가득한 저 하늘처럼 기쁨으로 가득했을 것이다. 그런 그의 마음이 천둥과 번개가 치는 암흑의 하늘로 순식간에 바뀌었다. 조금 있다가 종 순화가 배에서 와서 어머님의 부음을 알린다. 뛰쳐나가 가슴을 치며 발을 구르니 하늘의 해조차 캄캄하다. --- p.80 이순신은 임실현에 도착하여 하룻밤을 묵었다. 당시 임실현감은 홍순각으로 이순신이 이곳에 도착했을 때는 현감으로 부임한 지 5개월 정도가 지났을 때였다. 임실현감도 예를 다해서 이순신에게 편의를 제공한 것으로 보인다. 호반로를 따라 내리막길을 걷다 봉황3길을 따라 임실읍사무소에 도착했다. 임실읍사무소는 군청과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해 있었다. 읍사무소 한쪽에 있는 정자로 가서 23번 스탬프함을 아주 쉽게 찾았다. 패스포트를 꺼내 도장을 찍은 후 잠시 휴식을 취하면서 고민에 빠졌다. --- p.146 도원수 권율이 경상도에 있는 것으로 알고 있던 이순신은 남원에 서운봉과 인월을 거쳐 경상도로 넘어가려고 했다. 운봉에 도착했을 때 비가 많이 내려 박산취의 집에 들어가 있었는데 거기서 권율이 순천으로 떠났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그 소식을 듣고 어디로 가야 할지 잠시 혼란스러웠을 것이다. 당시 상황을 그려보는 가운데 27번 스탬프함이 있는 운봉초등학교 정문 앞에 도착했다. 패스포트에 도장을 찍고 점심 식사를 위해 주변에 식당을 찾아 들어갔다. --- p.168 4월 27일 이순신 장군이 순천에 도착한 것을 안 권율은 군관을 보내 조문했고 그 외 여러 사람들도 이순신을 찾아왔다. 이후 이순신은 5월 14일 순천을 출발해서 구례로 갈 때까지 18일간 순천 정원명의 집에 머물면서 많은 사람들과 만나며 나랏일을 걱정했다. --- p.198 마을회관 앞에는 엄청나게 오래된 나무가 있었는데 표지석을 보니 수령 550년의 보호수였다. 이 나무는 이순신이 이곳에 있을 때 활동사항을 직접 봤겠구나. 보호수를 지나 올라가는데 집 부근에 표지판이 없어서 정확하게 어느 집인지 구분하기가 어려웠다. 어렵게 찾아낸 손경례의 집은 하주 허름했고 관리도 부실하게 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기둥과 서까래는 오래된 것이었지만 지붕과 기초는 손을 많이 봐서 옛것이라는 느낌은 없었다. 다만 마당 한쪽에 이곳이 이순신이 삼도수군통제사를 재수임한 곳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비석만 쓸쓸하게 서 있었다. --- p.238 |
이순신 장군의 ‘백의종군로’ 680km(1,700리) 전 구간 복원,
전 천안함 함장이자 충무공 이순신의 후예가 그 길을 걷고 보고 느끼다 ‘옥문을 나왔다.’ 목숨이 경각에 달려있던 장군이 여러 신하들의 상소로 구명되어 4월 1일 감옥에서 풀려나면서 담담하게 남긴 이 한마디가 『난중일기』에 실려 있다. 이튿날 장군은 아들들을 만나고 사흘째 되는 날 여러 대신들의 위로를 받은 뒤 영의정 류성룡과 이야기를 밤새 나누다가 닭이 울어서야 헤어져 길을 나선다. ‘일찍 남쪽으로 길을 나섰다.’ 이순신은 4월 3일 한성을 출발한다. 권율이 있는 남쪽 지방으로 가기 위해서는 조선시대 6대로 27 중 ‘영남로’나 ‘삼남로’ 중 한 길을 이용해야 했다. ‘영남로’는 이태원?양재?분당?용인을 경유하여 동래까지 가는 길이고, ‘삼남로’는 용산?사당?과천?수원을 경유하여 해남까지 가는 길이다. 숭례문 밖에서 남쪽으로 길을 떠난 장군은 동작나루로 향했다. 남쪽으로 가는 길로 ‘삼남로’를 택했던 것이다. ‘자는 방을 새로 도배하고 군관이 쉴 방 두 칸 만들었다. 오후에 원수가 진에 도착하므로 나도 즉시 가보고 원수와 함께 이야기하였다.’ 이후 약 680㎞를 걸어 도원수 권율이 있는 합천에 도착한 날이 6월 4일이니 딱 60일이 걸렸다. 이 긴 여정을 ‘백의종군로’라 부른다. 이순신 장군이 거쳐 간 곳은 다음과 같다. 서울 → 수원 → 평택 → 아산 → 게바위 → 이산 → 공주 → 논산 →익산 → 전주 → 임실 → 남원 → 운봉 → 구례 → 순천 → 석주관 → 악양 → 하동 → 산청 → 삼가 → 합천 26년간 천안함 함장 등 해군장교로 복무한 후 전역한 저자 우상규는 이순신 장군이 전투를 지휘하면서 느꼈을 리더로서의 긴박한 감정과 (사)서울여해재단 이순신학교 교장으로서 장군이 ‘백의종군로’에서 느꼈을 인간적 고난을 체험해보고 싶어 버킷리스트에 담았다. 현재 백의종군로는 서울에서 구례 운봉까지의 길을 고증하고, 지자체에서 복원한 전남과 경남 구간을 더해서 680㎞(약 1,700리)의 백의종군로 전 구간이 복원되어 있다. 또한 한국체육진흥회 산하의 한국걷기연맹에서 ‘백의종군로 걷기’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연맹사무국에서는 답사자들이 쉽게 길을 찾을 수 있도록 지도와 코스별 지명이 표시된 패스포트를 제작하여 무료로 배포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백의종군로를 따라 대략 15㎞마다 스탬프함을 설치하여 ‘충무공 이순신 백의종군길 패스포트’에 스탬프를 찍을 수 있게 하고 있다. 저자는 이순신이 걸었던 ‘삼남로’의 시작점인 남대문(숭례문)-용산-동작대교-남태령-과천을 경유해 인덕원 갈산동 행정복지센터에 설치된 스탬프함에서 패스포트에 첫 번째 인증도장을 찍으며 21일간의 대장정을 시작한다. 그의 여정은 합천군 매화마을 마을회관에 도착해 마지막 스탬프함에서 일련번호 46번이 아닌 ‘완보 축하’ 글귀가 찍힌 스탬프를 찍으면서 마무리된다. 저자는 마지막 스탬프를 찍으면서 흥분되기보다 장군의 나라와 백성을 향한 마음을 헤아리며 ‘충무공 이순신 정신’ 전파에 더 매진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고 고백하고 있다. 인생의 전환점을 돌고 있는 독자라면 ‘제주 올레길’이나 ‘산티아고 순례길’도 좋지만 이순신 장군의 고뇌가 서려 있는 ‘백의종군로’를 걸어보는 건 어떨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