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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아흔아홉 작품해설 |
저김도연
아내는 정물화를 닮았다.
Y는 자꾸만 그림 밖으로 달아나는 습성이 있다. 나는 두 여자 사이에 있는 고개를 넘는다. 안개와 바람, 그리고 폭설과 폭우가 고개의 주인이다. --- p.18 그것은 언뜻 보면 그리스나 로마의 고대 신전을 떠받치는 돌기둥과 비슷했다. 어두운 거실에서 술잔을 찾다가 술을 쏟고 나서야 그는 오래전에 Y와 함께 본 러시아 영화 〈노스텔지어〉의 한 장면과 바깥 풍경이 대단히 흡사하다는 걸 발견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영화 속의 사내는 고향을 떠나와 고향을 그리워하는데 그는 고향에 돌아와 어떤 혼돈 속에 휘말려 허우적거린다는 사실이었다. 그날 그는 거실에 쓰러져 잠들었다가 잠이 깰 무렵 꿈을 꾸었다. 서울에서 강의를 끝내고 Y와 이틀 간 놀다가 늦은 밤 집으로 돌아오던 중이었다. 영동고속도로 대관령 구간에서 갑자기 불어 닥친 강풍을 맞고 교량을 이탈한 자동차가 바닥도 없는 곳으로 한없이 추락하는 꿈을. 그 끝없는 추락의 어디에서도 아내와 Y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죽는다는 것보다 그 고독이 더 슬펐다.--- p.42-43 그와 Y는 단오장을 떠나지 않고 바람에 실려 나비처럼 팔랑거리는 재를 따라다녔다. 멀리서 보면 꼭 중요한 무엇인가를 잃어버린 사람들처럼. 점점 짙어가는 어둠을 어깨에 짊어진 채. “나, 그냥 버스 타고 돌아갈까?” “ ……데려다줄게.” “고마워. 내가 떠나면 쓸쓸하겠네.” “같이 쓸쓸하겠지.” “왠지…… 사라진 당신 와이프가 우리에게 주고 간 선물 같아. --- p.104-105 |
김유정과 이효석을 잇는“강원도 작가” 김도연 대관령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아흔아홉』 출간
비애를 감싸안는 특유의 정서와, 현실과 환상을 넘나들며 두 세계의 경계를 일시에 무너뜨리는 상상력으로 자신만의 위치를 단단하게 다져온 김도연 작가의『아흔아홉』이 주원규의 『광신자들』에 이어 소설락 시리즈의 두 번째 주자로 선보인다. 제1회 중앙신인문학상과 제6회 허균문학상 수상으로 문학성을 검증받아온 김도연은 「동백꽃」「봄봄」의 김유정, 「메밀꽃 필 무렵」의 이효석을 잇는 ‘강원도 작가’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강원도 작가답게 그는 강원도와 대관령이라는 서사적 공간 안에 길에 대한 상념과 삶에 대한 성찰을 독특한 상상력으로 그려 오고 있다. 또한 꿈과 현실, 현실과 환상, 환상과 꿈이 겹쳐지는 곳에서 낯선 의미들을 생성해내고, 그 위에 모순된 인간 심리와 행태를 담아내는 특유의 몽환적 미학을 완성해 간다. 허균문학상 수상작이자 동명 영화의 원작인 『소와 함께 여행하는 법』에서처럼, 그의 새 소설『아흔아홉』에서도 길을 따라 흘러 다니며 시간과 공간의 경계가 모호한 묘한 풍경 속으로 독자들을 초대한다. 김도연이 특유의 환상적 붓질로 그려낸, 김도연의 특색이 총체적으로 드러나는『아흔아홉』속에는 크나큰 어깨로 영(嶺)을 넘는 인생들의 마음을 떠받치는 대관령의 숨결이 느껴진다. 바람 자루, 삶을 감싸안는 환몽과 현실의 혼효 소설 『아흔아홉』은 내딛는 발걸음을 쫓으며 흘러가는 로드무비적 특성과 환상, 꿈, 현실이 얽힌 대관령의 풍경이 만나는 지점에 서 있다. 그 풍경 속에 혼곤히 젖어들다 보면 우리는 중년의 시간강사인 ‘그’를 만나게 된다. 그는 아내가 떠난 텅 빈 집을 홀로 지키고, 아내를 찾아다니고, 친구들과 술자리를 갖고, 밀애 상대인 Y와 함께 시간을 보낸다. 지극히 현실적인 이 사건들은 그러나 현실과 꿈, 환상이 중첩된 공간 속에서 펼쳐지며, 또 다른 비현실적인 사건들과 연결된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고라니가 불쑥 나타나 아내가 사라진 사실을 이야기하고, Y와 함께 있는 중에 관노 가면극의 시시딱딱이들이 나타나고, 친구와 여자들과 어울리는 중에 다른 시간대의 사건들이 얽혀 이어진다. 이 모호하고 불분명한 비현실적 공간과 서사를 통해 작가는 꿈으로서 실체를, 비현실의 상황으로서 현실의 진실을 드러내며 인생을 이분법으로 재단하는 경계를 지운다. 이와 같이 작가는 소설 속에서 삶과 사랑과 증오와 용서가 정형화되지 않음을 바람 자루로 보여 준다. “자루 속으로 수시로 드나드는 게 바람”이듯이 바람이 들어갔다가도 구멍으로 빠지는 바람 자루는 차오르는 듯해 보이는 것들도 언젠가는 다시 꺼져 버리게 마련이며, 동시에 어느 때고 다시 차오를 수 있음을 함께 말하고 있다. 소설 『아흔아홉』의 세 남녀의 관계도 이와 같아서 바람 자루에 바람이 차오르고 꺼지기를 반복하는 것처럼 무상하고 무의한 것이다. 사랑과 욕정이 풍화되고, 질투도 미움도 희석된 세 사람의 소풍 아내가 사라졌다. 아내를 사랑한 것도 아니면서,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돼버린 남자는 쓸쓸한 겨울 오대산을 오르고, 강릉 단오제의 가면극과 굿판을 구경하고, 산비탈 고속도로에서 모래바람 때문에 차올랐다가 쪼그라드는 바람 자루를 본다. 오래된 밀애 상대 Y를 자유롭게 만날 수 있을 법도 한데, Y도 나도 어디를 가나 아내와 함께 있는 것 같다. 다음 해 봄, 눈이 녹기 시작한 삼월에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돌아온 아내는 며칠이나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러다가 문득 대관령으로 소풍을 가자고 한다. “그냥 셋이 함께 봄날 대관령 길을 걷고 싶네요. 소풍이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그는 아내와 애인과 함께 대관령 옛길을 오른다. 길을 오르니 새 길이 보인다. 그가 Y를 만나고 집으로 달려오던 길이다. 아내가 그를 떠나 건너가던 길이다. 그러나 이제 셋이서 느리게 새 길을 걷는다. 영을 넘는 바람에 사랑도 욕정도 풍화되고, 질투도 미움도 어설픈 용서도 희석된다. 아내와 Y는 마치 자매 같다. 팽팽한 활을 켜는 듯한 관계 속의 긴장감은 무의해진다. 누가 누구를 미워하는가. 미워하는 대상과 미움을 받는 대상은 누가 정하는 것인가. 소설을 따라가며 읽다 보면 미움도 증오도 사랑도 덧없어지고 그저 셋이서 대관령 길을 오르는 것 자체를 관조하는 것이 이 책의 독법임을 깨닫게 된다. 그것은 곧 우리가 삶을 읽는 독법과도 상통할 것이다. 아흔아홉 굽이, 끝나지 않은 삶의 상징 김도연은 강원도 대관령에서 나고 자랐고, 그의 소설 속 배경으로도 강원도는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작가가 단순히 익숙한 공간이기에 배경으로 등장시키는 것이 아니라, 몸에 밴 삶에 대한 감각이 상징적 공간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대관령은 예부터 고개가 험해 구십구곡(九十九曲), 즉 아흔아홉 굽이로 불렸다. 눈이 많이 내리는 지역이자 태백산맥의 관문으로도 알려져 있는 곳이다. 그는 아내와 애인과 함께 그러한 대관령 옛길로 소풍을 떠난다. 멀고 험한 아흔아홉 굽이 산길과 소풍은 어쩐지 어울리지 않는다. 하지만 작가는 그 무거움과 가벼움을, 아픔과 즐거움을, 환멸과 환희를 절묘하게 대비시키며 대관령의 옛길과 신도로를 나란히 놓는다. 거북의 시간과 토끼의 시간. 그는 신도로를 통해 아내에게서 Y에게로, Y에게서 아내에게로 달렸다. 그러나 그 토끼의 시간은 일시에 무너지고, 이제 옛길을 통해 거북의 시간을 보내며 무너진 관계를 마음을 믿음을 회복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고갯길을 거의 다 올라오고 나서야 깨닫는다. 눈물도 울음소리도 낼 수 없는 자신이 영영, 고개를 넘을 수 없을 것만 같다는 걸, 소풍은 쉽게 끝나지 않는다는 걸 말이다. 어쩌면 그에게만 그러할까. 우리도, 우리의 사랑하는 사람들도, 백에 다다르지 못하는 아흔아홉 굽이를 그렇게 오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