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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가슴 씻으리니 어디가 그곳인가
산새는 정을 다해 울어 주는데 봄이 가고 봄이 오니 그 주인은 누구 저 달은 누가 나누어 옹달샘에 던졌나 혼이여, 돌아가자 작가의 말 |
LEE,MUN-KU,李文求, 호:명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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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을 씻지는 못하더라도 그나마 가슴을 어루만져 주고 다독거려 주는 것은, 그것은 성城도 아니고 들도 아니고 산이었다. 또 집도 아니고 절도 아니고 길이었다. 울음도 아니고 웃음도 아니고 광기였고, 욕도 아니고 잠도 아니고 책이었고, 물도 아니고 차도 아니고 술이었고, 병도 아니고 꿈도 아니고 글이었다.
--- 「이 가슴 씻으리니 어디가 그곳인가」 중에서 “일을 해보지 않으면 백성의 어려움을 모르게 되고, 백성의 어려움을 모르고 본즉 백성을 아낄 줄 모르게 되고, 백성을 아낄 줄 모르고 본즉 백성을 해롭힐 줄만 알기에 이를 뿐이니, 이러고도 이를 어찌 인도人道라고 하겠느냐.” --- 「산새는 정을 다해 울어 주는데」 중에서 매월당은 그러면서도 걷고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았다. 그 먼 길을 걸어서 이 반벽강산에 이르는 동안, 무엇은 무엇만큼 줄고 무엇은 무엇만큼 늘었을 것인가. 는 것도 많고 준 것도 많았다. 는 것은 몸에 스며들어서 더부살이하는 병이요, 술이요, 잠이요, 꿈이요, 울화였고, 준 것은 몸에 기생하는 그 여러 것들에게 부대끼고 시달리다 못해 제 모습을 잃어버린 몸뚱이 자체였다. 한 삼십 년 동안 머리 검은 짐승의 고기로 안주를 하며 주야로 갈아 대다가 잇몸에서 달아난 이빨이 그렇고, 못 볼 꼴만 보는 데에 질려 버려 저만치에 있는 것만 보이고 이만치에 있는 것은 보이지 않게 된 두 눈이 그렇고, 못 들을 소리만 듣다가 열이 오른 나머지 먼 데 소리는 가까워도 옆의 소리는 아득하게 들리는 두 귀가 그렇고, 산수간에 티끌을 이고 산 적이 없어 감고 빗기를 게을리하는 사이 반은 세고 반은 빠져 버린 쑥대머리 또한 그러하였다. --- 「봄이 가고 봄이 오니 그 주인은 누구」 중에서 매월당은 놓여나고 싶었다. 그리하여 사방팔방 시방十方으로 밑도 끝도 없이 놓여난 길에다 몸을 풀어 주고 싶은 것이었다. 뜨락의 한 뼘 거리도 길이 아닌 것이 없다고는 하지만, 말로는 같은 길이라고 해도 울안에 갇혀 있는 길보다 들판에 풀려 있는 길에다 몸을 맡겨 보고 싶은 것이었다. 중원에서 동국으로 건너오기 전부터 낡아 버린 형식을 버리고 길에다 몸을 숨기되, 기氣는 기대로, 질質은 질대로, 자유自由하고 싶고, 자재自在하고 싶고, 자적自適하고 싶은 것이었다. --- 「저 달은 누가 나누어 옹달샘에 던졌나」 중에서 혼이여 돌아가자 어디인들 있을 데 없으랴(魂兮歸來無四方). 매월당은 그 귀글을 자주 되뇌었다. 소쩍새는 으레 돌아감만 못하다고 이르고, 그 자신은 으레 돌아가려고 해도 돌아갈 곳이 없다고 읊었다. --- 「혼이여, 돌아가자」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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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뇌와 방황으로 살다 간 자유로운 영혼, 김시습의 이야기
김시습은 우리에게 우리나라의 최초 한문 소설 『금오신화』의 작가로 잘 알려져 있다. 그는 다섯 살부터 천재성을 드러내었다고 한다. 세종의 부름을 받고 시를 짓고 “오세 신동”이라는 별명을 얻었다는 일화도 유명하다. 2천여 수의 시를 남긴 시인이자 탁월한 문장가였던 김시습. 그는 세조가 단종을 폐위시키고 왕권을 잡은 다음부터 단종에 대한 절개를 지키며 은둔했다. 생육신의 한 사람으로 출세의 뜻을 접고 스스로 중이 되어 전국을 방랑하며 평생 동안 고뇌와 방황을 반복했다. 그러나 방외인으로 살면서도 당시 정치 상황을 외면하지 않고 민생을 파괴하는 현실을 비판한 지식인의 삶 또한 놓지 않았다. 이 작품은 혼돈이 가득했던 조선 초기의 정치 상황 속에서 살아간 김시습의 일대기를 유려한 문장으로 그려낸다. 먼저 「이 가슴 씻으리니 어디가 그곳인가」에는 세조를 왕위에 올린 훈구대신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여기에 서거정과 김시습의 일화도 더해졌다. 다음으로 「산새는 정을 다해 울어주는데」에서는 공신에게 주어지는 토지 제도로 피폐해져가는 민생을 여과 없이 드러내 세태를 비판했고, 산적 말범이와 양양부사 유자한과 맺은 인연에 대해 이야기했다. 「봄이 가고 봄이 오니 그 주인은 누구」에는 기생 소동라와 함께 지낸 이야기를, 「저 달은 누가 나누어 옹달샘에 던졌나」에서는 단종의 생애를 다뤘다. 단종의 초혼제를 지내는 김시습의 모습을 통해 단종의 비극적인 생애를 생생하게 담아냈다. 마지막으로 「혼이여, 돌아가자」에는 사육신을 장사 지낸 일과 함께 어릴 적 천재로 세종의 부름을 받고 격려를 받았던 일을 돌아봤다. 생육신으로서 절친하게 지냈던 남효온의 죽음으로 상심해 또 다시 먼 길을 떠나는 김시습을 보여 주며 이야기를 마무리했다. 작품을 쓴 작가 이문구는 김시습을 우리나라 최초의 저항적 지식인이자 시인으로 바라보았다고 한다. 어쩌면 작가는 김시습의 모습에서 자신의 모습을 보았던 것은 아닐까. 재야에서 지조와 절개를 지키며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 간 문인이자 작가였던 김시습. 소설을 통해 그의 모습을 되새겨보고, 우리가 살아가면서 지켜나가야 할 것은 무엇인지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기를 바라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