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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주 작가의 작품은 독특하다. 선명하지 않지만, 계속 읽어나갈 수밖에 없게 만드는 힘이 있다. 매혹적인 미로를 글로써 만들어온 한유주 작가는 어떤 책을 어떻게 읽어왔을까? 이 책에 실마리가 있다. 책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독서 예찬도 함께한다. - 손민규 인문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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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우리는 삶의 끝까지 읽을 수 있다
버리지 않은 책 꽃그늘 아래 없는 답을 찾아서 풍장의 교실 단호한 조언들 선물 받은 책 상속 벵갈루루에서 구한 책 경이 독서와 비독서 사이 몰입 무인도에 가져갈 책 버리지 못한 책들 책 위의 식탁 애서가들 장비들 새벽 메모 낯선 사람들 유품 헤엄치기 내일은 ‘a’를 가르치세요 피아노 교습 같이 읽기 그렸다 지우기 언제든지 작은도서관 시적 문장들 파리를 아십니까? 일기 읽기 외출할 때 관습에서 벗어나기 흉내 이 책 저 책 인터뷰 감사의 말 |
한유주의 다른 상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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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초보 소설가였고, 실제 나이가 어리기도 했고, 지금도 그렇지만 여러 면에서 미숙했다. 소설이란 이런 것이다, 라고 다소 강압적으로 주어지는 명제들 사이에서 나는 갈피를 잡아야 했다. 잡고 싶지 않았지만 모두들 그래야 한다고 했다. (나는 휘둘리는 편이다.) 그 여파는 심각했는데, 예전처럼 마냥 읽는 행위를 즐길 수 없게 되었던 것이다.
--- p.88 뭔가 읽고 있으면 바깥세상이 잠시 잊혔다. 읽고 있으면 나만의 세계에 온전히 혼자 존재할 수 있었다. 읽고 있으면 혼나지 않을 수 있었다. 안전했다. --- p.102 읽어야 한다는 강박은 너무나 자의적이고 아무도 나를 타박하지 않는데도 어째서 읽어야 한다고, 반드시 읽어내야만 한다고 되뇌는 이유를 모르겠다. 책을 읽고, 어떤 책들을 여러 번 읽고, 그중 어떤 책들에 대해서는 꼼꼼히 기록하고, 그 후에는 내보내야 한다. --- p.121 격리와 봉쇄가 이루어지던 시기 초반에 수영장이 모두 문을 닫았다가 몇 달 후 제한적으로 입장이 가능해졌을 때, 물에 들어가 몸 풀기로 25미터 레인을 두어 번 가볍게 왕복하면서 내게도 신체가 확실히 있구나, 그런데 꽤 살아 있구나, 감각했던 기억이 선명하다. 그 활발해진 신체의 일부는 책 읽기에 쓰였다. 그리고 여전히 쓰이고 있다. --- p.149 인터넷에서 쓱 보고 지나쳤던 뇌 근육이나 마음 근육 같은 유의 “근육”들은 한 번 소실되면 다시 만들기가 어렵다는 걸 절감했다. --- p.172 가끔은 이처럼 우회하는 문장들에 오래 시선이 머무른다. 그리고 오래 곱씹어본 문장들은 오랫동안 기억에 새겨진다. --- p.18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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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에 관한 한 불행이 끼어들 수 없다
『연대기』, 『나의 왼손은 왕, 오른손은 왕의 필경사』, 『우리가 세계에 기입될 때』 등 아귀가 들어맞는 듯하면서도 미묘하게 어긋나는 시간과 사물, 사람의 관계를 그려내며 삶과 존재에 불가피한 모순을 건드려온 소설가 한유주의 첫 단독 에세이 『계속 읽기』가 출간되었다. 소설가이기 전에 독자로서 쓴 이 책은 그가 2023년에 번역한 책 『계속 쓰기: 나의 단어로』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쓰기는 읽기에서 시작된다. 한동안 글이 써지지 않더라도 우리는 언제나 읽기로 돌아갈 수 있고, 다시 시작할 수 있다”(『계속 쓰기』, 321쪽)고 말한 그는 “순전히 독자였을 때 나는 대단히 행복했고, 독서에 관한 한 불행이 끼어들지 못했다”(『계속 쓰기』, 318쪽)고 선선히 고백할 만큼 읽기를 사랑하고, 그 마음을 뭉쳐 『계속 읽기』를 썼다. 기억하지 못하는 것을 두려워 말자 어차피 책은 수수께끼다 이 책에서 가장 자주 등장하는 표현을 찾는다면 단연코 ‘기억나지 않지만’일 것이다. 읽은 직후에 분명 진한 여운이 남았던 것 같은데도 제목이 가물가물하고, 독후 감상조차 기억나지 않기도 한다. 하물며 그 책을 끝까지 읽기는 했는지, 아니 애당초 읽은 적 없던 것은 아닌지도 희미할 때가 있다. 읽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저자는 ‘기억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굳이 숨기지 않는다. 왜냐면 그마저도 읽을 이유가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기억의 공백에서 다시 출발할 수 있다. 잊어버린 것이 있기 때문에 책에서 새롭게 수수께끼를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아무리 여러 번 읽어도 책에는 수수께끼가 숨어 있다. 귀스타브 플로베르의 『마담 보바리』를 스무 번도 넘게 읽었다는 저자는 헐거워진 책을 또다시 펼쳐든다. 아무 페이지나 펼쳐도 수수께끼가 튀어나온다. 샤를 보바리의 모자가 기이할 정도로 화려한 모양인 이유는 무엇일까? 그 모자는 실제로 어떻게 생겼을까? 묘사대로 그린다면 이런 모양일까? 모자의 수수께끼를 얼추 풀었다고 생각하지만 그 다음엔 인칭 대명사가 바뀐 것이 신경이 쓰인다. 나중엔 보비에사르 후작의 무도회에서 하인 한 명이 창문을 깨뜨리는 장면이 이상하게 다가온다. 수수께끼 자체가 그에겐 읽기의 첫 번째 경이다. 다른 사람들은 다른 수수께끼를 찾는 것은 두 번째 경이다. 세 번째는 아마도 발견되지 않은 무엇일 것이고, 저자는 늘 그것을 기다리며 읽는다. 이것은 거의 모든 독서인의 생활 책을 잘 버리지 못한다든가, 여러 권의 책을 산만하게 읽는다든가, 외출하기 전에 책 고르느라 책장 앞에서 시간을 꽤 보낸다든가, 책이 쏙 들어가는 주머니가 달린 외투를 선호한다든가, 독서대를 세 개쯤 가지고 있다든가... 독서인이라면 고개를 끄덕이다가도 절레절레 젓게 되는 저자의 선택과 행동 때문에 도리 없이 작은 웃음이 터진다. 혼자 밥 먹을 때에만 읽는다는 프랑스 혁명사 시리즈는 무려 10부작인데 겨우 1권 초반을 읽고 있고 그마저 혼자 밥 먹는 때가 줄어서 읽는 속도가 더디다(199쪽). 독서대를 사 모으다가 보면대에까지 욕심을 내고(125쪽), 친구들과 하는 독서모임은 서로의 사정을 충분히 양해하며 자주 미뤄진다(161쪽). 소설을 쓸 때에도 ‘미량의 유머’를 추구하는 한유주 작가의 요란하지 않은 재치가 이 에세이에도 녹아 있다. 별것 아닌 반전, 괄호 속에 고스란히 적은 속내가 유난히 재미지다. 그의 소설을 잘 아는 이라면 소설과 산문 사이의 간극 때문에 신선하단 느낌을 받을 것이고, 그의 소설을 접해보지 않은 이라면 과연 어떤 소설을 쓰는 작가일지 궁금해질 것이다. 한유주라는 소설가를 통해 우리의 책 세계는 한 뼘쯤 넓어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