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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번째 편지 007
리에의 사랑 059 못생긴 여자 105 이치카 163 작가의 말 2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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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영혼은 빈 의자예요. 아무도 앉는 사람이 없어서 하루하루 먼지만 쌓이고 있어요. 얇은 막에서 시작해서 이제는 제법 층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쌓인 이 먼지를 닦아내지 않으면 나는 먼지에 질식해 죽고 말 거예요. 후후 불어버리면 먼지 따위는 금방 날려버릴 수 있다고 믿었던 날들도 있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내가 그 먼지에 파묻혀 죽고 말 것이란 예감이 들어요. 나는 살아 있고 아직은 죽을 수 없어요. 이제 17일 남았어요.
나는 그냥 평범한 여자예요. 앞으로 열일곱 통, 희찬 선배의 삼백예순다섯 번째 편지를 받으면 그 사람의 사랑을 받아들일 거예요. 다시 말하지만 나는 평범한 여자예요. 돌아올지, 돌아오지 않을지도 모를 사람을 언제까지 기다릴 수는 없어요. 나를 기다리는 사람을 무작정 기다리게 할 수도 없고요.” --- 「365번째 편지」 중에서 사랑에 빠진 여자에게 어쩔 수 없이 이별해야 할 이유 따위는 없다고 생각했다. 사랑을 잃는다는 것은 사랑이 부족하기 때문이지 다른 이유는 없다고 믿었다. 누군가와 이별한다는 것은 사랑이 부족한 때문이지 다른 이유는 없다고 믿었다. 그런 생각은 나이가 드는 동안에도 변하지 않았고 지금도 변함이 없다. 그러나 내가 첫사랑을 잃어버린 것은 결코 사랑이 부족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차라리 사랑이 부족해서 그 사랑을 잃었더라면 이처럼 야윈 몸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 「리에의 사랑」 중에서 “사랑한다는 말에는 만 가지 약속과 확신이 담겨 있다고 믿었습니다.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은 무엇이고, 그 말을 하지 못하는 것은 또 무엇일까요. 남편은 하지 말았어야 할 말을 했고, 그 사람은 해야 할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우리에게 시간이 더 있었다면 달라졌을까요.” --- 「이치카」-중에서 고래(古來)로 사람이 하는 모든 행위에는 목적이나 이유가 있다. 선사시대 인류가 사냥을 한 것도, 현대인이 직장에서 일을 하는 데도 다 이유가 있다. 먹고 살기 위한 일뿐만이 아니다. 골프든, 테니스든, 하다못해 TV 드라마를 시청하는 데도 다 이유가 있다. 하지만 사랑은 다르다. 먹고 살기 위해서 사랑하는 것이 아니고, 재미로 사랑하는 것도 아니고, 누가 억지로 시켜서 하는 것도 아니다. 결혼하기 위해서 사랑하는 것도 아니고, 시간을 때우기 위해서 사랑하는 것도 아니다. 누군가를 위한 배려나 봉사도 아니다. 사랑은 그 자체로 목적이지 무엇을 얻거나 누리기 위한 행위가 아닌 것이다. 그런 까닭에 사랑은 얻고자 노력한다고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지키고자 애쓴다고 지켜지는 것도 아니다. --- 「못생긴 여자」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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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너무 사랑했기에, 사랑한다고 말하지 못했습니다.”
사랑을 말하지 못한 남자, 사랑을 알아보지 못한 여자 그리고 너무 늦게, 서로를 알아본 사람들에 대해 이 소설은 묻는다. “나는 당신을 첫눈에 알아보았는데, 당신은 나를 알아보지 못했을까?” 조두진의 연작소설 《365번째 편지》는 사랑을 고백하지 못한 사람, 사랑을 알아보지 못한 사람, 그리고 사랑을 너무 늦게 알아차린 사람들의 이야기다. 하지만 사랑은 언제나 양방향으로 흐르지 않는다.사랑을 먼저 알아본 사람과, 끝내 사랑을 알아보지 못한 사람 사이에침묵의 시간만이 길게 흐를 뿐이다. 언론사 서평 자료 사랑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흔히 “첫눈에 반한다”고 말한다. 이 소설은 “사랑하는 사람들이 서로 첫눈에 반하는 것은 비록 연인 자신들은 자각하지 못하지만, 두 사람이 오랜 세월 서로를 찾고 기다려 왔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묻는다. 내가 첫눈에 반한 사람, 그러니까 나는 오랜 세월 찾고 기다려 온 사람인데, 상대는 나를 알아보지 못하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나를 알아보지 못하는 사람에게 “당신이 바로 내가 긴 세월 찾고 기다려 온 사람이에요”라고 상대는 알아듣지도 못하는 말을 계속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사랑일까. 아니면, 나는 그를 첫눈에 알아보지 못했는데, 그가 여러 번 설명하니 어렴풋이 알아보게 되는 것이 사랑일까. 그리고 소설은 다시 묻는다. 오래 찾고 기다려 온 사람이라고 확신했는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내가 찾던 사람이 아님을 알게 되었을 때, 그러니까, 이미 내 곁에 와 있는 그가 내가 찾던 사람이 아님을 알았을 때, 나는 상대방에게 또 상대방은 내게 어떤 얼굴을 보여주게 될까. 소설은 누구도 내 사랑을 응원할 수 없고, 사랑을 잃어버린 나를 위로할 수도 없다고 말한다. 세상의 모든 실수와 잘못에 대해 우리는 누군가를 원망할 수 있지만, 설령 터무니없는 원망일지라도 퍼부을 수 있지만, 사랑은 누구를 원망할 수도 위로받을 수도 없다는 것이다.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면, 대부분 사람들은 오랜 고민 끝에 “사랑한다”고 고백한다. 그 사랑을 얻거나 얻지 못하거나 간에 말이다. 하지만 고백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내가 아는 한 남자는 열렬히 사랑했던 여성에게 사랑한다고 고백하지 못했다. 못마땅한 세월이 흐르는 동안 두 사람은 각자 다른 사람과 연인이 되었고, 결혼을 했다. 각자 결혼한 이후에는 단 한 번 만난 것이 전부라고” 그가 오래전에 내게 이런 말을 했다. “내가 만일 그 사람을 ‘어느 정도’ 사랑했더라면 ‘사랑한다’고 고백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나는 그 사람을 너무나 사랑했기에 사랑한다고 말하지 못했어요.” ‘말 같지도 않은 소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많은 세월이 흐른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그럴 수도 있지 않겠는가 싶다. 오랜 세월 찾고 기다려 온 사람을 먼 곳에 두고, 밋밋한 사람과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고…, 무표정하게 살아간 그는 어떤 세상을 보았을까. 누군가에게 사랑한다고 말한다는 것, 사랑함에도 그 말을 하지 못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대체 왜 그래야만 하는 것일까. ‘이치카’는 그 사람의 이야기다. 작가의 말 사랑의 감정을 호르몬 작용으로 설명하는 사람들이 많다. 신체 내 도파민(Dopamine), 옥시토신(Oxytocin), 세로토닌(Serotonin), 엔도르핀(Endorphin), 아드레날린(Adrenaline) 같은 화학물질 분비 변화로 사랑을 이해하는 것이다. 그래, 사랑의 감정은 특정 호르몬 분비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여러 ‘미인’ 중에 특정 ‘미인’을 보았을 때 그런 호르몬이 분비되는 것은 왜일까? 여러 ‘잘생긴 남자’ 중에 특정 남자에게 특정 여자가 사랑을 느끼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첫눈에 반한다.” 남녀의 사랑에 대해 흔히 하는 말이다. 나는 사람이 첫눈에 반하는 까닭, 그러니까 특정 사람을 보았을 때 사랑 호르몬이 분비되는 까닭을 ‘연인 자신들은 비록 자각하지 못하지만, 두 사람이 오랜 세월 서로를 찾고 기다려 왔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내가 첫눈에 반한 사람, 그러니까 나는 오랜 세월 찾고 기다려 온 사람인데, 상대는 나를 알아보지 못하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나를 알아보지 못하는 사람에게 “당신이 바로 내가 긴 세월 찾고 기다려온 사람이에요”라고 상대는 알아듣지도 못하는 말을 계속 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이 사랑일까. 아니면, 나는 그를 첫눈에 알아보지 못했는데, 그가 여러 번 설명하니 어렴풋이 알아보게 되는 것은 사랑일까. 또 첫눈에 서로 오래 찾고 기다려 온 사람임을 알아보았는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내가 찾던 사람이 아님을 알았을 때, 그러니까, 이미 내 곁에 와 있는 그가 내가 찾던 사람이 아님을 알았을 때, 나는 상대방에게, 또 상대방은 나에게 어떤 얼굴을 보여주게 될까. ‘365번째 편지’와 ‘못생긴 여자’는 그 사람들의 이야기다. 누구에게나 사는 동안, 푸른 강물에 발을 담그면 온몸이 물빛으로 물들 것 같던 날들이 있다. 리에는 그 푸른 강물에 발을 담그는 대신 강물을 모두 퍼내서 아무렇게나 쏟아버렸다. 넘실대던 강물이 마르자 은빛 비늘을 반짝이며 뛰어오르던 물고기는 사라졌고, 허옇게 드러난 강바닥엔 깨진 유리 조각과 바다로 흘러가지 못한 마른 나무 둥치가 뒹굴었다. 그리고…, 물빛으로 물들었어야 할 푸른 몸은 흙빛이 되어버렸다. 제 잘못을 떠넘기며 원망할 사람, 하다못해 자기 불행을 위로해 달라고 울면서 매달릴 사람이라도 있었더라면 리에는 그처럼 마른 여자가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어떡하겠는가. 사랑을 잃어서 불행한 사람은 나일 수밖에 없다. 사랑은 두 사람만의 세상이어서 누구도 타인의 사랑을 응원할 수 없고, 잃어버린 사랑을 위로할 수도 없으니 말이다. ‘리에의 사랑’은 스스로 사랑을 묻어버린 여자의 이야기다.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면, 대부분 사람들은 오랜 고민 끝에 “사랑한다”고 고백할 것이다. 그 사랑을 얻거나 얻지 못하거나 간에 말이다. 내가 아는 한 남자는 열렬히 사랑했던 여성에게 사랑한다고 고백하지 못했다. 못마땅한 세월이 흐르는 동안 두 사람은 각자 다른 사람과 연인이 되었고, 결혼을 했다. 각자 결혼한 이후에는 단 한 번 만난 것이 전부라고 했다. 그가 오래전에 이런 말을 했다. “내가 만일 그 사람을 ‘어느 정도’ 사랑했더라면 ‘사랑한다’ 고백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나는 그 사람을 너무나 사랑했기에 사랑한다고 말하지 못했어요. 내 고백으로 그 사람과 우정마저 잃을까 봐 두려웠습니다.” ‘말 같지도 않은 소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많은 세월이 흐른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그럴 수도 있지 않겠는가 싶다. 오랜 세월 찾고 기다려 온 사람을 먼 곳에 두고, 밋밋한 사람과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고…, 무표정하게 살아간 그는 어떤 세상을 보았을까. ‘이치카’는 그 사람의 이야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