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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의 말
프롤로그 : 늑대는 어덯게 문명화되었을까? I. 데코룸, 삶의 기술 1. '오만과 편견'이 '유브 갓 메일'에게 2. 부름과 선물, 바람 속의 소리 II. 트릭스터, 시간의 선물 3. 모노노케 히메 4. 시간 속에서 흩어지고 살아나는 존재 5. 폭력과 사랑, 그리고 화폐 III. 바보와 광인은 한 배를 탄다 6. 타자가 되어버린 자들 7. 트릭스터의 신체 8. 역사와 이야기 IV. 루두스, 진지하게 놀아라 9. 살아남는 트릭스터 에필로그 참고문헌 찾아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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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트릭스터―게임으로의 초대와 매혹 이 책의 개요 및 특징
서구의 문명화과정을 이끈 핵심은 무엇일까? 서양의 전체 역사와 미술사를 조망할 수 있는 개념은 존재하는 것일까? 이 물음에 답하려는 책이 발간되어 주목되고 있다. 서양미술사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인 데코룸(decorum)을 자신의 문화적 경험과 인문학의 문제제기들을 발견하면서 다채롭게 서술한 《트릭스터―영원한 방랑자》가 바로 그 작품이다. 지은이는 오래전부터 스스로에게 질문한다. “만일 가장 친한 친구에게 전체 역사와 미술사를 조망할 수 있는 단 하나의 개념을 소개해야만 한다면 무엇이 될까?” 《트릭스터―영원한 방랑자》는 그러한 질문에 대한 오랜 숙고의 결과다. 그가 제시하는 개념은 ‘역사, 또는 이야기라는 뜻을 지닌 ‘히스토리아’와 아울러 ‘적절함’을 뜻하는 ‘데코룸’이다. “어쨌든 사회적 게임들은 그것들이 지닌 이중의 진실을 살려 묘사하기 매우 어렵다. 사실 사회적 게임들에 가담하고 있는 사람들을 게임의 객관화에서 얻는 것이 거의 없다. 그리고 게임에 가담하지 않는 사람들은 게임에 참여하는 조건으로만 배울 수 있고 이해할 수 있는 모든 것을 경험하고 느끼는데 흔히 좋지 않은 위치에 있다.” 부르디외가 말한 사회적 게임 이야기다. 사회적 게임의 핵심에는 장(場)의 적합성 문제, 즉 데코룸이 있는 것이다. 《트릭스터―영원한 방랑자》는 미학적 판단기준인 ‘데코룸’이 미술사를 넘어 다양한 인문학에서 적용되는 예를 16~17세기의 바보와 광인 그리고 농민재현 역사를 되짚어보며 현대 인문학의 문제인 교환과 포스트콜로니얼리즘 문제와 연결시키고 있다. 저자는 문명화 과정의 행위적합성 원칙인 데코룸을 내부에서만 살펴보면 도그마가 되기에 잊혀지고 배제된 외부로부터 살펴보고 있다. 그 과정에서 만나게 된 초역사적 존재인 트릭스터에 대해 소개한다. 트릭스터는 한계에 선 유목민이라 할 수 있다. 트릭스터와 함께 모든 학문의 경계를 오가며 여행하며 즐기며 살아남기! 이 책은 그러한 흥미진진한 모험에의 초대이다. 이 책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 여러 인문학 분야의 연결 지음과 상징해석은 특히 문화의 생산자 그리고 유동성 가운데 매개자로서 활동해야 하는 사람들에게 긴요한 도움을 줄 것이다. 여행이란, 목적지에 도착하기 전에는 자신이 무엇을 찾고 있었는지, 어디로 떠났는지를 알 수 없는 법이다. 데코룸, 즉 규범과 규범 외부를 찾던 내가 발견한 것은, 트릭스터라는 ‘인간’이었다. 태고의 장난꾼 트릭스터는 규칙을 깨어가는 방식으로 새로운 규칙을 정립하며 장을 확장해간다. …… 그는 항상 고픔에 시달리며, 자신의 욕망을 끝까지 추구한다. 누구나 한시적으로 주어진 규범의 한계를 넘고자 할 때는 트릭스터가 된다. 법과 위반은 한데 묶여있다. 웃음과 기쁨을 가져오는 정의되기 힘든 그는 왕이자 광대이며, 사도이며 매개자이고, 웅변가이자 은둔자이고, 현인이자 바보이며, 늙었으나 젊었고, 방랑자이자 혁명가이다. 이미 있었고 앞으로 도래할 존재이다. 그는 한계선에 선 유목민이다. ― 《트릭스터―영원한 방랑자》 9쪽, 〈지은이의 말〉 중에서 2. 데코룸, 삶의 기술 이 책의 특징 1 데코룸은 서양의 전체 역사와 미술사를 통틀어 조망해 볼 수 있는 개념이다. 서구의 문명화 과정을 이끌어 왔고, 서구의 역사를 조망할 수 있는 핵심 이념이기도 하다. 데코룸은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에 대한 지식이라 할 수 있으며, ‘적절함’, ‘적합함’으로 번역된다. 지은이는 데코룸을 미술사라는 한정된 지평을 넘어 일반적인 인문과학의 견지에서 조명하며 소개하고 있다. 데코룸이 실제로 효과를 발휘하게끔 결정지은 역사적 조건들을 무엇일까? 데코룸의 미학적 준수는 고전주의를, 행위양식이나 행동규범으로서의 추구는 지배층을 만들어낸다. 데코룸은 고귀함에 연결되며, 고대로부터 보편교양을 지닌 엘리트 지배계층을 만들어왔다. 지배층의 행위양식을 규율한 이념, 거기에는 분명 지양된 부분이 있다. 지양된 그 바깥을 살펴보지 않고서 우리는 데코룸이 과연 무엇인지 알 수 없다. 문명화된 행위양식으로서, 귀족의 행위방식으로서 데코룸이 무엇보다 강조되던 시대에 데코룸하지 않은 것으로 간주된 것은 무엇일까? 여기에 대해서는 16~17세기 시각예술에서 숱한 범례(exempla)로 발견되는 바보와 농민들의 부정적 모습을 재현한 풍자적인 판화들이다. 바보와 한데 엮여서 풍자된 것은 떠돌이 약장수, 호색한, 연금술사 등 여러 부류의 사람들이었지만, 그 중에서도 구토하거나 방뇨하고 싸움질을 일삼는 등 흐트러진 행동을 보이는 농민들의 모습이 특별히 두드러진다. 데코룸의 인식은 노르베르트 엘리아스가 말하는 서구 문명화 과정의 핵심이다. 수치심을 모르는 자는 데코룸하지 않다. 때와 장소에 있어서의 적절한 것을 가릴줄 아는 것, 행위에 있어 ‘수치심의 경계(schaamtegrens)를 결정해주는 것이 바로 판단규준으로서의 데코룸이다. 데코룸의 미학은 규범이 통용되는 장을 확고히 하며, 그 장에서 적합한 것과 부적합한 것, 어울리는 것과 어울리지 않는 것을 가른다. 이것은 분명치 않고 정확히 이해하기에 어려운 점이 있는데, 엘리자베스와 레이디 캐서린의 기준이 다른듯 하면서도 결국엔 같은 것을 말하듯, 동일한 원칙 하에 완전히 상반되는 행위가 나타나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데코룸한 태도에 있어 결과적으로 공통적으로 추출해낼 수 있는 규준이란 중용과 절제, 절도의 정신이다. ― 《트릭스터―영원한 방랑자》 59~60쪽, 〈데코룸, 삶의 기술〉 중에서 3. 트릭스터와 함께 학문의 경계를 여행하며 즐기기 이 책의 특징 2 이 책은 여러 인문학 분야의 연결 지음과 상징해석이 매력적이다. 이러한 매력은 문화의 생산자 그리고 유동성 가운데 매개자로서 활동해야 하는 사람들에게 긴요한 도움을 줄 수 있다고 판단된다. 이 책의 주인공은 트릭스터이다. 트릭스터란 융이 말하는 모든 인간의 내면에 깃든 그림자 존재이면서 영원한 방랑자이자 매개자이고 그의 욕망을 한계선까지 추구하는 존재로 마치 수학에서의 제로기호(0)처럼 어떤 체계의 성립에 필수적으로 전제되는 예외이다. 트릭스터는 얌전한 무리를 떠나 말썽피우는 ‘한 마리의 검은 양’인 것이다. 지은이는 각각의 적합함의 장들을 넘나드는 트릭스터라는 존재가 초석적 폭력으로 단죄 혹은 배제되거나 가치척도와 ‘적절함’의 규범적 존재로서 거듭나게 되는 과정을 드러내 보여준다. 《트릭스터―영원한 방랑자》를 통해 인문학의 현단계 문제들과 미술사학의 가장 전문적인 관심들이 일상적인 문화적 경험과 어떻게 만나는지 볼 수 있다. 트릭스터는 비분화되고 비문명화된 상태의 존재로서 이성과 감성이 분화되지 않은 원초적인 인간성을 나타낸다. 신성이 인간적으로 수용될 수 있는 제례로 바뀌는 과정에서 마스크를 쓰고 등장하는 “흉내내고 익살떠는 신”인 트릭스터들은 신화적인 원형으로서 모든 형태의 이야기들 속에 항상 존재해 왔다. 고대와 원시적 사회의 가면극에서, 중세 전성기에 성당한복판에서 벌어지던 신성모독적이고 반기독교적인 당나귀 축제에서, 셰익스피어 극에서, 유럽민담의 주인공인 바보한스와 이반, 엄지 톰에, 동화에서 공주와 결혼하고 크게 성공하는 바보같은 막내나 살해당하는 어릿광대에 트릭스터의 모습이 남아있다. 전통적으로 광대의 얼굴은 울면서 웃는다. 어릿광대의 의상은 대조되는 색의 짜깁기된 조각천으로 만들어지고 해롭지 않은 나무단검을 차고 있다. 광대는 미숙하고 교활하다. 이들 인물들 모두가 어떤 집단의 데코룸에 소속되지 않는 경계인이자 주변인, 장난치고 웃음짓게 하는 희생양, 트릭스터였다 ― 《트릭스터―영원한 방랑자》 155~156쪽, 〈트릭스터, 시간의 선물〉 중에서 4. 시간의 숲에서 만난 문화영웅, 트릭스터 이 책의 특징 3 모든 것은 이야기이다. 역사와 이야기, 즉 히스토리아의 반경에 들어가는 과거와 지금 내가 서있는 현재는 일견 전적으로 동떨어진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근본적인 변화 가운데에서도 면면히 지속되는, 여전히 공통된 것들이 있다. 트릭스터는 바로 그런 지속의 하나라 할 수 있다. 동물에서부터 초인으로까지 변화하는 트릭스터는 모든 인간 속에 잠재되어 있는 비분화된 심성이라 할 수 있다. 융을 비롯하여 트릭스터에 대해 처음으로 관심을 가졌던 20세기 초의 인류학자와 신화학자들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현장 조사와 문헌학을 통해 그 내용은 풍부하게 보완되어 왔다. 최근 인류학자들은 민담이나 허구서사 또는 개인적인 일상의 경험에서까지 트릭스터적인 요소를 찾아내고 있다. 디오니소스에서 할리퀸까지! 인터넷과 링크의 시대인 현대적인 상황과 비교해 볼 수 있는 다른 아메리카 설화의 트릭스터의 예로 장난꾼 로키는 어느날 다른 신들을 너무나 화나게 만들어서 도망쳐 숨는다. 아무도 없는 산에서 그는 혼자서 “모든 방향으로” 문이 달린 집을 지었다. 그것을 통해 로키는 수평선을 마음껏 바라볼 수 있었다. 어느날 그는 스스로 즐기기 위해 연어로 변하여 산의 개울로 헤엄쳐 가서 폭포를 타며 놀았다. 다른 날 아침 불가에 앉아 그는 상상해 본다.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그를 잡을 수 있을지를. 그는 줄을 꼬아 물고기 잡는 도구인 그물(네트)을 만들었다. 어망이 만들어졌다. 마침 사람들이 들이닥쳤기에, 그는 그물을 불 속으로 던지고 연어로 변하여 헤엄쳐 달아난다. 그러나 신들은 그가 만든 네트의 재를 보았으며, 그 무늬(文)로부터 그들이 만들어 내야 할 도구의 모양을 유추할 수 있었다.…… 그의 탐욕스러운 허기는 그렇다면 어떻게 되는가? 이것은 제례의 발명으로 귀결된다. 욕망의 단념과 희생제의가 있다. 트릭스터는 요컨대 욕망의 존재인데, 그 끝없는 욕망이란 불가능한 일을 가능하게 하는 그런 욕망이기에, 열망의 극한은 역설적으로 모든 것에 대한 단념으로 흐른다. 트릭스터는 중용의 미덕을 모른다. 희생제의는 불멸의 추구다. 열망하지 않는다면 트릭스터가 아니다. 그러나 코요테 여정의 이야기는 끝이 없는 반면, 헤르메스의 경우는 욕망을 조율하는 제의를 발명해낸다. 헤르메스 자신이 문화영웅이다. 제례, 상징화와 해석, 대체물의 희생이 있다. 그는 문화영웅답게 희생제의를 발명한다. 소 두 마리를 잡아 가죽을 벗기고 깨끗이 열두토막을 내어 손질한 후 아폴로에게 봉헌한다. 희생제물을 먹지 않고 헤르메스는 어머니 마이아에게 말한다. 언제까지나 고기를 먹으며 어두운 동굴에서 지낼 수는 없다, 올림푸스로 가서 자신은 영원불멸한 향기로운 신의 음식을 먹겠다고. 고기를 향한 끝없는 탐식은 신들의 음식을 먹기 위해 단념된다.(음식을 향한 욕망 자체가 없어진 것은 아니다) 시간으로서 흩어지고 되살아나는 그는 사랑의 존재다. 자신이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을 다른 이들에게 기꺼이 선물한다는 의미에서. ― 《트릭스터―영원한 방랑자》 191~193쪽, 〈트릭스터, 시간의 선물〉 중에서 5. 80여 컷의 판화와 그림들이 보여주는 상징과 해석 이 책의 특징 4 이 책에는 80여 컷의 판화와 그림 들이 존재한다. 우리가 흔희 볼수 없는 독특한 판화들이다. 이 그림자료들을 통해 그것이 담고 있는 기호와 상징은 일상적으로 보던 것과는 다를 것이다. 미술사에서 사용하는 주요한 이론적 도구가 도상해석학이다. 도상해석학은 문헌사적이고 계보학적이며 콘텍스트를 중시한다. 영화든 애니메이션이든 하나의 작품을 대하는 방식은 천차만별이다. 철학자들에게는 철학이 보이고, 비평이론에 관심있는 사람에게는 구조가 드러난다. 도상해석학적인 읽기를 통해 밝혀지는 것은 일차적으로 형상 언어인 상징과 은유의 다양한 해석들이다. 그러기에 상징의 내용은 표면적으로 쉽게 드러나지 않으며 잠재적이다. 그리고 상징과 은유들의 의미는 시대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옛 사람들의 사고방식은 당연히 오늘날과 같지 않다. 우리는 이것을 자주 잊어버린다. 의미는 당시 유행하던 텍스트에 따라, 관련된 역사적 사건에 따라, 당대인들이 지니던 심성에 따라 변해간다. 즉 의미는 콘텍스트에 의존한다는 것이다. 저자 최정은은 미술사학 연구자로서, 미술사의 대표적인 방법인 요컨대 도상해석학(iconography)적인 읽기가 현대의 문화적 경험에 적용된다면 어떤 모습일지, 무엇이 반복되고 있는지를 해석의 실제적 결과물의 형태로 제시하고 있다. 분석과 해석을 통해 우리는 “누가 무엇을 어떤 의도로 말하는가”, 또한 표면적 서사에서는 지워졌다 해도 의식의 검열을 피해서 실제로 말해지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에 귀기울이고 있는 것이다. |